비양도(飛揚島)·우도(牛島)·
상추자도(上楸子島)·하추자도·
횡간도(橫干島)·가파도(加波島)·
마라도(馬羅島) 등 8개의 유인도와
54개 무인도로 이뤄진.,제주특별자치도.
1.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2002년 12월),
2. 세계자연유산(2007년 2월),
3. 세계지질공원(2010년 10월 4일).,9곳.
제주도는 유네스코 3대 보호 제도(諸島)
세계에서 유일하게 인증 받은 곳이기도 하다.
..........유네스코.........
1.사려니숲길 ~비자림로
2. 세계자연유산.
제주 화산섬, 용암 동굴, 한라산 천연보호구역.
성산일출봉 거문오름 용암 동굴계(거문오름, 벵뒤굴,
만장굴, 김녕굴, 용천 동굴, 당처물 동굴 등으로 이뤄졌다.
제주 세계자연유산지구 면적은 제주도 면적의 10.1%(188.4km2).
3. 세계지질공원.
한라산, 성산일출봉, 만장굴,
산방산, 용머리해안, 수월봉,
주상절리, 서귀포층, 천지연폭포.
...........................................
제주특별자치도의 지질은 화산암류와
기생화산에서 분출한 화산 쇄설암(碎屑岩)
그외 대부분이 흑갈색 화산 회토로 덮여 있다.
북으로 목포와의 거리는 141.6㎞,
북동쪽 부산과의 거리는 286.5㎞이며,
동으로 일본 쓰시마섬[對馬島]과 255.1㎞.
동쪽으로 대한해협을 사이에 두고
일본 쓰시마섬 및 규슈 나가사키현.
서쪽으로 중국의 상하이와 마주한다.
러시아,·중국, 일본,·동남아를 연결하는 요충지.
천혜의 자연경관이 수려한 세계적인 휴양관광지.
한라산은 1,800 종 식물과 수천 야생노루의 서식처.
1970년대 말부터 신혼여행 명소.,제주도.
면적 1,845.88㎢, 인구 604,670 명(2013년 말, 현재).
'홍콩'과 유사한 입지 조건을 갖고 있는., 제주특별자치도.
홍콩은
면적 1.092 ㎢
인구 : 약 700 만명.
'제주특별자치도'의 미래.
아울러, 미래의 '경쟁 대상.'
또한, 본받아야 할.,롤 모델 대상.
절물휴양림.,장생이 숲길.
제주도는 가면 갈수록
좀 더 자세히 알면 알수록
여기저기 돌아 보면 볼수록
모르는 것들이 투성이인 곳이다.
방언, 지명, 유래,
풍습, 역사, 전설 등.
1970년대 신혼여행지로서
처음 찾았을 때부터 현재까지
항상 처녀지에 첫 발을 딛는 느낌.
'벽랑국 3공주 & 탐라국'.,신화 속에서
'벽랑국 3공주가 입도했다.'는.,당케포구.
'표선 당케포구'에서 '남원 포구'까지
올레 4코스(23km.6~7시간 도보거리.)
'할망당'이 있어, ' 당포' ' 당개' 라고 부르다가
'당케' 지명이 된., 당케포구 '신년 해맞이' 축제.
설문대할망은 설화 속에서 제주도를 만든.,창조여신.
...................설문대할망 설화....................
'어디선가 치마폭에 흙을 담아와 제주를 만들고
다시 흙을 더 가져와 한라산을 만들었다.'고 전해온다.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는 제주 앞바다 관탈도에 닿았다.'
.....................................................................................
'조선시대 제주도 유배길의 선비가
관탈도에 이르면 갓을 벗었다.'고 한다.
하여, 설문대할망 설화는 조선시대 구전.
조선 중종 때 왕실 찬수관을 지낸 이맥이 쓴.,태백일사.
'탐라국의 기록을 고고학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주장.
......................태백일사..................
이맥李陌(1455~1528)은 연산군 때 사람.
성품이 강직하여 연산군의 미움을 샀기에
충북 괴산 유배생활 후, 중종 때 관직에 복귀.
'단군세기'를 쓴 '이암'의 고손자.,이맥.
중종 즉위 후, 찬수관(纂修官)으로 재등장.
내각의 비장(秘藏) 도서를 읽고 깜짝 놀랐다.
'고조선 역사.' 이전의 상고사 역사가 전혀 달랐던 것.
즉, 단군 이전 시대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던 것.
이맥이 '태백일사'를 쓴 때는 중종(재위 : 1506~1544) 초.
세조(재위 : 1455~1468)가 세조 2년 모든 상고사 기록을
거두어 들이라는 어명을 내린지 불과 50년 뒤의 일이었다.
세조 2년, 각도 관찰사에게 내린 어명은 '분서갱유' 같은 탄압.
"모든 상고사 기록을 압수하라.
이 영을 어기고 책을 숨기는 자는
사형에 처한다." - 세조 2년 -
이때 압수된 고기(古記) 서목(書目)이 실록에 기재.
그 중의 일부 서목이 『태백일사』에 수록되어 있다.
'이맥'은 당시 목숨 걸고 '태백일사'를 저술하였던 것.
'태백일사(太白逸史)'란 정사(正史)에 빠진, 태백 역사.
'태백'이란 태백산 즉, 환인 환웅 단군의 역사란 뜻이다.
당시, 조선은 명과와 외교를 고려하여 고기(古記)를 수거.
조선시대 세조 재위 이후에도
상고사는 비기(秘記)의 역사요.
국시(國是)에 반하는.,고기(古記).
『태백일사』를 소중하게 여겨 후세에 전한 사람은
'이맥'의 후손인 해학(海鶴) 이기(李沂 :1848~1909).
구한 말, 애국지사이자 '환단고기'를 통해
우리나라 상고사(上古史)를 밝혀 낸 사학자.
...........................................................
이 책에는 '기원 전, 1632년 탐라가 평양 부단군
을아왕에게 말 30필을 헌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오늘날, '청동기시대 말기' 말뼈가 제주시에서 출토.
가파도 고인돌, 비양도에서 신석기시대 유물을 발견.
이러한 점에서 조선시대 '태백일사' 기록은 눈길을 끈다.
'제주의 옛지명' 영주(瀛洲)에 숨겨진.,마고지나 신화.
약14000~12000년 전, 마고(麻姑)가 세운 나라.,마고지나.
동이족(東夷族)은 지구온난화 이전 우리 민족의 직계 조상.
설문대할망은 마고지나 신화 속.,마고(麻姑).
제4 (마지막) 빙하기가 빠르게 끝난.,약 1만년 전.
북부 유럽과 북아메리카까지 덮고 있던 빙하가 후퇴.
대홍수로 고인돌문화가 열리며 서해에 잠긴.,마고지나.
마고가 세운 인류 최초의 나라이자
하늘 땅 사람 '삼신신앙'의 발원지라는
신화 속 마고문명 중심에 위치한.,제주도.
여자, 돌, 바람이 많은 섬.,삼다도(
표선 당케포구는 태풍이 불 때마다 피해지역인데.
설문대할망이 '당케포구'를 만들어주었다고 전해온다.
지형 상 바다가 열려있어 포구로는., 적합하지 않은 위치.
표선면.,당케포구.
물위에서 정처 없이 떠도는 배.,표선(漂
옛부터 이곳은 풍랑에 표도한.,난파선 다발지역.
동아시아 해상 실크로드 상에서 가까운.,당케포구.
동서양 선박들이 잠시 풍랑을 피하기 위한 임시 대피소.
기진맥진 비몽사몽 표도인을 살린.,제주 해녀들.
그 고마움에 대한 보답으로 명명된 지명.,당케포구.
당케(Danke/ (G. dáŋk
조선시대 제주도 외국인 표도인 약 20 여회
중국, 일본, 유구국, 화란인 등이 풍랑에 표도.
인조 5년(1627) '오우벨 켈크'호 얀 얀세 웰테부리.
だんけい 男系 (일본어)
Thank you, Thanks(영어).
Danke(독일어), Dankie(아프리칸)
Dank u 당끼(네덜란드어), 당뀌(스웨덴) 등.
할망당이 있어 '당케'라고도 부르는
당케포구 인근에 위치한 관광 명소로는
표선 해수욕장, 해비치 콘도, 제주 민속촌.
황루알 해변.
온평리 해안.,연혼포(連婚浦)
성산읍 온평리해안.,연혼포(連婚浦 : 황루알 해변)
벽랑국 세 공주가 탐라의 삼신인과 혼인을 하기 위해
탐라에 상륙한 포구라 하여.,연혼포(일명 : 황루알 해안)
연혼포
..........연혼포에 얽힌.,탐라국 탄생 설화...........
아득한 옛날, 한라산 북녘 삼성혈에서 솟은 3 신인.
첫째는 고을나, 둘째는 양을나, 셋째를 부을나, 3인.
세 사람은 비범한 생김새에 가죽옷을 입고 육식 위주
사냥을 일삼아 가정을 이루지 못했던 어느 날.
한라산에서 동해를 바라보니, 해변에 자줏빛 나무상자.
3 신인이 산에서 내려와 안개에 싸인 상자를 열어보니,
그 안에 푸른 옷을 곱게 차려입은 선녀 같은 처녀가 셋.
나이는 십오륙 세쯤 되고 얼굴과 태도가 범속하지 않았다.
기품은 그윽하였고 얌전하게 앉아 각자 화장하고 있었는데
그 상자 안에는 송아지 망아지 오곡의 종자 등이 들어있었다.
"세 공주는 하늘이 우리에게 내려 주신 것이다."
.
황루알 해안
벽랑국 공주들이 탐라에 도착하여
'목욕 재개 하였다.'는., '황루알' 해안.
그당시, 이곳 탐라국 탄생신화가 흥미롭다.
'영화 - 마고 '.,한 장면.
"저는 동해 벽랑국에서 온 사자입니다.
우리 임금님께오서는 세 딸을 두셨는데
배필을 구하지 못하여 여러 해를 보내던 중에
임금님께서 자소각에 올라 서쪽 바다를 바라보니,
보랏빛 기운이 하늘로 이어지고 찬란한 서광이 한라산
높은 봉우리에 서려 있었습니다. 그곳에는 삼신인이 솟아나
나라를 세우려 하지만, 배필이 없어 저에게 세 공주를 모시고 가라.
임금님께오서 말씀 하셨으니 혼례를 치르시고 부디 대업을 이루소서."
'그 사자가 승천하며 남겨진
백마 발자국이 온평리..'황루알'
..........................................
'벽랑국 사자가 승천하며
남겼다.'는.,백마의 발자국.
쾌성개 해안
...........'쾌성개'(황루알) 해안..........
궤짝을 열자 벽랑국의 세 공주가 나타났고
이에 너무 기뻐 소리를 질렀다고 해서 '쾌성개'
또한 세 공주가 도착할 무렵에는 석양이
바닷물에 비쳐서 황금빛 노을이 출렁거려
마치, 황금빛 노을에 물들었다는 뜻말.,황루(노).
..................................................................
'알.'은 제주 방언으로 '아래'하는 뜻.
'알 + 뜨르'는 '넓은 뜰 아래.'란 뜻말이고.
‘정 + 뜨르.'는 '사정(射亭)’이 있던 넓은 들판.
‘활쏘기 하던 정자가 있던 들판’이 현재 제주공항.
.
혼인지(婚姻池)
혼인지
혼인지( 제주특별자치도 기념물 제17호)
소재지 : 제주 서귀포시 성산읍 온평리 1693 .
..............................혼인지 전설................................
탐라국(제주시) 삼성혈에서 솟아난, 고·양·부(高梁夫) 삼신인
(梁은 원래 良으로 기록되었으며, 良高夫로 적힌 문헌도 많음.)
세 신인이 동쪽나라에서 온 세 공주를 맞아들여 혼례를 올렸다는 못.
아득한 옛날 3신인은 황량한 들판에서 사냥하며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면서 살았다고 전하는데,
하루는 자줏빛 흙으로 봉한 나무함이 동해에서 떠밀려와
이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돌함이 들어 있었다.
돌함을 열었더니 푸른 옷을 입은 3처녀와
송아지·망아지와 오곡 씨앗이 들어 있었다.
3 처녀는 벽랑국의 공주들로, 세 신인은 나이에 따라
세 공주를 맞아 혼인지에서 목욕하고 혼례식을 올렸다.
그 때 나무함이 발견된 곳은 온평리 바닷가 ‘쾌성개’라 하며,
이것이 떠오른 곳을 ‘황루알’이라 하고 세 처녀가 바닷가에서
처음 남긴 발자국이 온평리 바닷가 바위 위에 지금도 남아 있다.
.....................................................................................
혼인지는 고대인이 수렵생활에서
농경생활로 탈바꿈하여가는 과정과
씨족형성의 실마리를 말하여주는 설화.
삼공주가 삼신인 고양부와 결혼한.,혼인지.
'삼신인이 혼인 후 신방을 차렸다.'는.,신방굴.
신방굴 안으로 들어가면, 3 갈래의 동굴이 있다.
신방굴(神房窟 : 제주 기념물 제17호)
삼사석.
삼신인은 제물을 바쳐 하늘에 제사 지내고,
온평리에 있는 연못에서 목욕재계를 한후 혼례
물맑고 비옥한 곳으로 활을 쏘아 영역을 결정한다.
이들이 활을 쏘았던 곳이 '활쏜디왓'
제주시 화북동 지방기념물인 <삼사석>.
활을 쏘아 고을나가 정한 주거지는 <일도>.
양을나 주거지 <이도>., 부을나 주거지 <삼도>.
그후 오곡을 심고 우마를 길러 탐라국을 이루었다.
'벽랑국왕께서 자소각에 올라 서해를 바라보니,
보랏빛 기운과 찬란한 서광이 한라산에 서려 있어.,
그곳 모흥홀에서 솟은 삼신인이 나라를 세우려 하지만,
배필이 없어 세 공주를 모시고 가라.'하셨읍니다. - 벽랑국 사신 -.
벽랑국 사신이 황루알 해안에 당도하여 만난
탐라의 삼신인에게 벽랑국왕의 명을 전하였고
벽랑국왕이 자소각에 올라 본 곳이.,삼성혈 일대.
......................삼성혈(三姓穴)............................
제주 원주민 발상지로 3신인(神人)이 솟아났다는 구멍.
벽랑국(碧浪國 또는 日本國)의 세 공주를 각각 맞이하여
혼인하고 농경생활을 시작하여 삶의 터전을 개척한 인물들.
위쪽 구멍.,고을나,
왼쪽 구멍.,양을나,
오른쪽 구멍.,부을나
3신인이 솟아났다는 곳이다.
1964년 6월 사적 제134호 지정.
일명 모흥혈(毛興穴)이라고도 한다.
...............................................
조선시대 삼성혈은 그 주위가 성역화되어 있었다.
1526년(중종 21) 이수동(李壽童) 목사가 그 주위에
돌담을 쌓고 혈 북쪽에 홍문(紅門)과 혈비를 세웠다.
삼신인 후예로 하여금 춘추제를 모시게 하고,
매년 11월 상정일(上丁日)에 도민이 혈제(穴祭).
그 뒤 1698년(숙종 24) 유한명(柳漢明) 절제사가
혈 동쪽에 '삼을나묘' 삼성전(三聖殿)를 세우게 하고,
1772년(영조 48) 양세현(梁世絢) 방어사가 바깥 담을 쌓아
소나무를 심게 하고 제전을 마련하여 혈제를 지내게 하였다.
1827년(순조 27) 이행교 방어사가 전사청(奠祀廳)을 창건.
1849년(헌종 15) 장인식 방어사가 숭보당(崇報堂)을 세웠다.
제례는 향교의 석전(釋奠)과 같이 제복을 갖추어
매년 봄(4월 10일)과 가을(10월 10일)에 삼성전에
삼성의 후손들이 모여 춘추대제(春秋大祭)를 지낸다.
삼헌관은 고·양·부 3성씨가 윤번제로 한다.
매년 12월 10일에는 삼을나의 탐라개벽을 기려
봉향하는 건시대제(乾始大祭)가 제주도민제로 열린다.
초헌관은 도지사, 아헌관과 종헌관은
기관장이나 제주 유지 중에서 선임한다.
춘추대제(春秋大祭)는 삼을나 위패를 모신 삼성전에서 지내고,
건시대제(乾始大祭)는 삼성혈단에서 지내므로 혈제라고도 한다.
1735년(영조 11년) 제주목사 김정이 세운 삼사석비.
1997년 발굴, 이듬해 표석을 건립하여.,지방문화재 제4호.
삼성혈은 국가 소유가 아니어서 재단법인에서 관리하고 있다.
....................................삼사석.................................
3 신인(神人)이 벽랑국(碧浪國)의 세 공주를 배필로 정한 뒤,
살아갈 땅을 정하기 위해 화살을 쏘았을 때 그 화살이 꽂혔던 돌.
그 장소를 일도리(一徒里)·이도리(二徒里)·삼도리(三徒里)라고 하였다.
현재, 제주시 행정 구역인 ‘일도동’·‘이도동’·‘삼도동.
이 일대는 탐라 시대 이후 제주의 중심 지역이었다.
......................................................................
제주시 화북동 주공아파트 정문 앞,
삼사석이 놓인 지역 옛지명.,‘활쏜디왓’
신화 속의 이야기인 것만은 아닌 것 같다 .
통오름.,망아지.
'황루알 해안'이 내려다 보이는.,'통오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난산리
탐라국 탄생 설화에 의하면
'탐라 삼신인이 수렵을 하다가
한라산에 올라가 멀리 바라보니..'
황루알 해안이 바라보이는. 지역은
'통오름'초원 & 조천읍 산굼부리 일대.
'조천읍 북촌리' 주거지 일대는 신석기시대 유적지
압인(押引) 점렬(點列)무늬토기편 등이 발굴된 지역.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주거지 흔적이 있던 곳.
1948년 '4.3사태'로 상당한 인구 손실이 있었던 제주도.
그해 11월에 중산간마을 강경진압 소개령으로 95% 소실.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禁足) 지역이 전면 개방되었다.
1948년 4.3 사태가 발발한 후,
7년 7개월 만에 막을 내린 곳.
예나 지금이나 '주거지였던 흔적'이.,야생화 초원.
화전, 초지가 조성된 곳은 전국 어디나.,야생화 천국.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인적이 거의 없던.,드넓은 초원.
1970년대까지만 해도
야생 꿩이 사람을 보아도
전혀 경게심도 갖지 않던 곳.
제주 360 기생오름 분화구들는
예나 지금이나., 야생동물의 천국.
마실 물이 귀한 초원에서 샘이 있는 곳.
통오름 분화구.
통오름., 야생화 초원.
통오름 초원의 '이름 모를., 풀꽃들'.
통오름.,천상(天上)의 화원(花園).
통오름., 야생화
통오름.,방목장.
통오름.,산책길.
'통오름 초원 .,민들레.
.........................민들레(앉은뱅이)...................
'앉은뱅이' 라고도 하는데, '줄기는 겨울에 죽지만
이듬해 다시 살아나는 생명력을 소유한 다년생 초본.'
그래서, 민들레의 모진 생명력에 비유되는 ,민초(民草).
.........................................................................
'평생 '단한번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운명을 갖고 태어난 왕.
자신의 운명을 그렇게 결정한 별들을 늘 원망해오던 어느 날,
왕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단한번 별들을 향해 명령을 내린다.
"내 운명을 결정한 별들아~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져
꽃이 되어 피거라!"
그 명령이 떨어지자 하늘의 별들이 우수수 땅으로 떨어져,
순식간에 모두 들판 위에 희고 작은 꽃들로 피어나게 되었다.
그래도 울분이 가시지 않은 왕은 양치기가 되어
양떼를 몰고와서 그 꽃들을 짓밟고 다니게 했지만,
그 짓밟힘을 이기고 모질게 생명을 이어온 꽃이 민들레.
그래서, 민들레의 끈질긴 생명력을
백성의 모진 삶에 비유한.,민초(民草).
옛날 어느 산간마을에 '민들레'라는 처녀가 살았다.
전쟁터로 떠난 애인이 살아 돌아오길 애타게 기다렸는데,
애인의 전사소식을 듣고 들판 끝 낭떠러지에서 몸을 던졌다.
그런데, 민들레가 애인과 함께 즐겨 보내던 들판 곳곳에
꽃이 피어나 사람들은 그 꽃을 '민들레.'라 불렀다고 한다.
통오름.,묘.
따라비오름.,분화구(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62)
따라비오름.,가시리 갑마장길.
따라비오름' 가시리 갑마장길.,오랑케꽃.
4월은 먹을거리가 없는 잔인한 계절이다 보니
굶주림을 모면하기 위해 풀뿌리까지 캐먹는 시기.
제비꽃이 피는 시기이자 오랑케꽃이 피는 시기이다.
따뜻한 바람이 불어와
꽁꽁 얼었던 눈밭이 녹아
길이 열리면서 피는 제비꽃.
길이 열리면 북쪽의 오랑캐는
먹을 것을 찾아 한반도로 내려와
약탈을 일삼았다고 하여.,오랑케꽃
중국 대륙보다 조금이라도 봄이 먼저 찾아오는 한반도.
나무의 잎이 돋기 전이지만 봄나물이 나오기 시작하기에
중국 대륙의 굶주린 오랑캐는 한반도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이는 곧 전쟁이라는
참혹한 현실로 이어져
꽃이름도 제비꽃(오랑케꽃).
...........................
...........................
‘삼성개벽신화’에 의하면, 제주에는 사람이 없었는데,
'한라산의 북쪽 기슭' 모흥혈에서 삼신인이 솟아났다.
"삼신인은 땅이 거칠기 때문에 수렵하며 살았다." 한다.
또한 각종 문헌에는 고을나 15세손 고후(高厚) 등
삼형제가 신라에 입조하여, '탐라'라는 국호를 받고,
성주(星主)·왕자(王子)·도내(徒內)라는 작호를 받았다.
476년(문주왕 2)에 탐라가 방물을 바쳤고,
498년(동성왕 20) 백제에 복속. - 삼국사기 -.
그 기록보다 훨씬 이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제주도.
제주도 구석기시대 유적지.,애월읍 어음리 '빌레못동굴.'
약 7~8만년전에 사람이 살았다고 하는 천연기념물 342호.
한라산 북사면의 용암평원지역에 애월읍 어음2리 707번지.
4.3사태 때 제주도민 30여명 은신처.,빌레못 동굴.
곰·붉은사슴·노루 동물화석 & 긁개 박편석기(剝片石器).
제주도 여러 곳에서 청동기시대.,'고인돌 선돌 조개더미' 발견.
이러한 유물로 보아, 이곳은 '신석기시대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곳.
신석기시대 유적지.,'조천읍 북촌리' 주거지에서
압인(押引) 점렬(點列)무늬토기편 등이 나왔으며,
한림읍 월령리 한들굴에서도 같은 토기와 골각기 수습.
총 길이 11.75㎞, 주굴의 길이 2.9㎞.,비공개 영구보존 동굴.
동굴 입구 주변에 '작은 연못' 빌레못이 있어서., 빌레못동굴.
세계 최장 동굴이자 입구 하나인 미로굴이라 일반인 출입 금지.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산굼부리.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산굼부리
제주도 유일의 폭렬공 측화산(오름)이다.
1979년 6월 18일, 천연기념물 지정. 제236호.
산굼부리는 평지에 있는 분화구로서
'산이 구멍난 부리.'라는 뜻말 그대로
특이한 분화구 안에는 원시상태 식물군락.
그 가치가 높아 1976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제1횡단도로~표선면 성읍리·표선리'., 연결도로 개설.
한라산 기생오름 생성과정을 알려주는 360 오름 중 하나.
산굼부리는 용암분출을 일으킨 마그마의 공급이
갑자기 줄어들거나 마그마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지하 빈 공간이 무너져 내리면서 만들어진.,함몰 분화구.
산굼부리 분화구 깊이 약 100m, 지름 600m가 넘는다.
한라산의 다른 기생화산들의 분화구와 달리 낮은 평지에
커다란 분화구가 생성되어 있어 화구의 모양이 진기하다.
바깥둘레 2,067m, 안둘레 756m, 높이 100∼146m
원추형 절벽을 이루는 화구는 바닥넓이 약 8,000평.
화구 주위 지면은 해발 400m 평지이고
화구 남쪽에 해발 438m 언덕이 있을 뿐.
주위 평지보다 5∼30m 더 높은 것에 불과.
산굼부리분화구는 전혀 높은 화산의 화구임이 특징.
분화구 규모가 백록담보다 큰데 물은 고여 있지 않다.
용암을 거의 분출하지 않고
폭발에 의하여 구멍만 패인 것.
폭발 물질은 사방으로 던져지고
소량만 분화구 주위에 쌓여진 흔적.
화구에 내린 빗물은 화구벽의 현무암
자갈층을 통하여 바다로 흘러나간 것.
이런 화구를 마르(Maar)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산굼부리가 유일하며
세계적으로는 일본과 독일에 몇 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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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굼부리.,억새밭.
산굼부리에서 한참 더 올라가면.,조천읍 선흘리.
1970년대까지 화전을 일군 화전민 마을들 이외에는
바다도 보이지 않고 한라산도 보이지 않는 끝없는 초원.
조천면 선흘리 화전민 마을은
경운기조차 가기 힘든., 돌밭 길.
이곳 주민 대부분 지계로 짐을 운반.
이곳은 1948년 4.3사태 발생 후, 그해 11월 21일.
선흘초교 주둔군에 의해 온 마을이 소개되었던 곳.
지금은 '선녀와 나무꾼'의 마을로 알려진.,전설의 고향.
'중국 윈난(雲南)성 대협곡 누장(怒江)강 인근., 혼욕 풍습.
서쪽 궁산(貢山), 동쪽 쉬에산(雪山).,미녀 마을이자 여인국.
예나 지금이나 남자가 귀한 그곳은 뭇 지구촌 남성들의 이상향.'
'독일, 일본에도 혼탕 문화가 오늘날까지 전해온다.
전세계 화산지대는 어느 곳이나.,혼욕 풍습이 생활화.
엄격한 유교관 조선시대에도 혼욕 풍습이 있었던 제주도.'
'조천면 선흘리'의 흙은 화산재 성분이라 검고 가볍다.
한번 피부에 묻으면 아무리 씻어도 잘 지워지지 않는다.
1980년대 이곳은 지하수도 귀하여 씻을 물도 드물었던 곳.
가뭄에는 빗물을 독에 받아 식수로 사용할 정도.
비온 직후, 건천 웅덩이 고인물이 주민들의 목욕처.
잠깐 고인 물이 화산암 바닥으로 스며들면 다시.,건천.
남녀유별을 염두에 두지 않는.,목욕하는 풍습.
이곳 자연환경이 자연스러운 풍습을 빚어낸걸까?
아니면, 여성 인구의 비율이 남성보다 더 높아서일까?
그래서, 조천면 선흘리는
아득한 옛날이나 지금이나
'나무꾼과 선녀' 전설의 고향.
남자들은 몸을 가리고 씻는 편이고
여자들은 자연스럽게 목욕을 하는 편.
일할 때 남자들은 여자가 시키는 일만 한다.
남자가 나서면, 일이 안되고
여자 십장이 나서야 일이 된다.
일당은 남녀 간 차이가 별로 없다.
단, 일 잘하는 사람은
성별(性別) 구분이 없이
두곱절 일당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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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창조 여신' 설문대할망은
치마에 흙을 담아와 제주도를 만들고,
다시 흙을 일곱 번 떠놓아 한라산을 만들었다.
한라산을 쌓기 위해 흙을 퍼서 나르다 가 터진 치마.
그 틈새에서 새어나온 흙이 360여 개 오름이 되었다.
주먹으로 봉우리를 쳐서 만든 것이 다랑쉬오름의 굼부리,
성산일출봉 아래 등경돌은 할망이 바느질할 때 등잔 받침대.
한라산을 베고 누우면 다리가 관탈섬까지 뻗었는데,
관탈섬에 난 구멍은 할망이 다리를 잘못 뻗어 생긴 것.
관탈섬과 마라도를 밟고 우도를 빨랫돌로 삼아 빨래했는데,
오줌 줄기가 강해 우도와 성산일출봉 사이의 조류가 거칠다.
제주사람들에게 명주로 속옷을 만들어 주면
뭍까지 이어지는 다리를 놓아 주겠다고 제안.
사람들이 좋아라며 명주를 모으기 시작했지만
99통 밖에 모으지 못하였고 결국 1통이 모자라
속옷을 만들지 못하자 다리 놓던 일을 멈췄는데
그때 흔적이 '북제주군 조천~신촌' 사이.,엉장매.
큰 키를 자랑하며 깊다는 물을 다 찾아다녔다.
용담 용연은 발등까지, 서귀포 서홍리 홍리물은 무릎.
그러다가, 한라산 중턱 '물장오리'에 들어가 빠져 죽었단다.
............................물장오리........................
물장오리, 테역장오리, 살손장오리, 불칸장오리 등
4곳 오름 가운데 하나로, 모흥혈에서 솟은 삼신인이
각각 살 곳을 정하기 위하여 화살을 쏜 오름이란.,전설.
‘쌀손장오리’, ‘살손장오리’라고도 하는데,
'장오리'의 뜻말은 아직까지 확실하지 않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고
비가 많이 와도 물이 불지 않는 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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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못 가까이 가서 떠들면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사방에서 모여들어
자욱하면 사나운 비바람이 몰아 친다고 전해진다.
못가에는 조개껍데기가 쌓여 있는데,
바다 새들이 입으로 물어다 놓은 것이고
그 새 소리가 ‘공공’하므로 ‘공공새’라고 부른다
.......................물장오리오름.......................
제주시 봉개동 한라산 기슭에 위치한 오름(측화산).
원형의 분화구를 지닌 화산체로 습지로 이루어진 화구호.
한라산 오백 나한들과 더불어 성스러운 산으로 인식되고 있다.
영실 '윗세오름' 설경.
한라산.,영실 코스.
남한에서는 제일 높은 한라산(해발 1950m)
'은하수 (漢)'를 손에 '잡을(拏)' 듯 높은 산(山)'.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은 '흰 사슴이 살았다는 호수'.
옛날에 사냥꾼이 흰사슴을 향해 활시위를 당겼다는 곳.
1980년대까지 제주도민이 제주마를 방목하였던.,백록담 초원.
벽랑국 3공주와 탐라국의 탄생신화는 사실에 가까운듯 여겨진다.
제주를 여행하면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것이 신당이다.
해안가 검은 돌담 속 해신당, 산에는 산신당 & 본향당이 있다.
제주 민속과 풍속을 이해하려면 본향당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
본향당이란 제주 마을마다 있는 신당(신집).
현재까지 남아 있는 본향당은 약 300 개 정도.
'1만 8천' 신들의 고향인.,제주시 송당리 본향당.
이 중에는 남신도 있지만, 제주를 만든 신이 설문대할망.
제주에서는 남신보다 여신 위력이 더 세고 귀하게 모셔진다.
300 본향당 중 민속적 자료로 가치가 큰 본향당.,송당본향당,
그외 수산본향당, 세미 하로산당, 월평 다라굿당 와흘본향당.
송당리 본향당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당집이고,
금백주 할망이라는 여신이 좌정하고 있는 곳이다.
제주에서 널리 불려지는.,'이공본풀이.'에서.,한 대목.
꽝오를 꽃, 살오를 꽃
오장육부가 기릴 꽃
불붙을 꽃, 맬망꽃 부제될 꽃
(뼈 오를 꽃, 살 오를 꽃)
(오장육부 만들 꽃)
(불붙을 꽃, 멸망 꽃, 부자 될 꽃)
<이공본풀이>의 주인공 '할락궁이'는
서천에서 가지고 온 꽝오를 꽃, 살오를 꽃으로
권력자에 의해 난도질당해 죽은 가련한 어머니를 살려낸다.
;이공본풀이' 무속신화에서 꽃은 아주 중요한 상징.
제주신화 속 주인공들이 사람을 살려내는.,신비한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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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는 서해와 동해로 갈라지는 해양문화 중간 기착지.
대만, 오키나와를 거쳐 북상하는 쿠로시오 난류의 길목이다.
즉, 고조선이 남방 해양문화와 교류와 교역을 할 때.,해양거점.
고조선은 조개화폐 제조 및 유통을 제공한 패권국.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신석기시대 고래잡이를 입증.
창녕 비봉리 유적에서는 약 8천년 전 통나무배가 발견
고조선의 대표적 유물 빗살무늬토기, 고인돌, 비파형동검
발해만 중심으로 환발해만유역에서 발견, 분포.
그 출처가 분명한 카우리조개를 사용한 조개화폐.
고조선이 발해만을 자유롭게 이동한 해양술의 증거.
고조선은 교역국들과 조개 화폐를 사용할 당시
패권국으로서 상당히 오랜기간 평화를 유지한듯.
'환단고기' 고조선 역사가 그 사실을 대변하여 준다.
신라시대 십성(十聖)으로 알려진 안함로에서부터
조선시대 이맥까지 당대 지식인으로 평가된 다섯 사람이
각각 저술한 사서(史書)가 하나의 책으로 모아진.,환단고기.
특히, '단군세기'는 1대 단군왕검에서부터
47대 고열가 단군에 이르는 역대 단군의 이름과
제위 연수, 업적과 역사적 사건 등이 기술되어 있다.
아울러, 조개화폐 '패전' 제조와 사용, 세금제도 등
고조선의 국가경제체제 이해에 많은 정보를 주고 있다.
즉, 신화 속 탐라국은 실존하였던 고조선의 해양거점인듯.
영주지(瀛州志) 기록에 의하면
탐라국 시원은.,BC2337년 갑자년.
BC2333년 고조선보다 4년쯤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