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과 곡선
김혜옥
부드러움이 솜털 같다. 버선코같이 날렵하면서도 미끈하다. 모나지 않아 편하고 고즈넉하다.
누가 말했던가? 직선은 인간의 선이고, 곡선은 신이 선이라고….
그래서 그런지 곡선은 직선보다 품격이 높아 보인다. 새벽안개 속에 이어진 능선을 보면 신비하기까지 하다.
마침 우리나라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숨 쉴 틈을 주고 있다.
모처럼 네모 상자 같은 도심을 벗어나 산에 오르니 자연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창 젊음을 자랑하던 푸른 잎도 고운 빛깔을 뽐내던 단풍잎도 모두 벗어버린 나목 앞에 섰다. 빈 몸으로 삭풍 앞에 선 나목의 모습이 숭고해 보인다. 군데군데 푸른 잎을 달고 있는 소나무의 모습도 만만찮다.
바람이 불고 눈이 오면 저 무거운 짐을 어찌할꼬! 소나무의 겨울나기가 걱정된다. 하지만 흰 눈을 덮어쓴 멋진 모습이 떠올라 그도 나름대로 임무가 있다는 걸 알겠다.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물조차도 자신의 임무를 위해 내공을 쌓고 있는 듯하다.
고개를 들고 앞을 바라보니 맞은 편에 드러누운 산등성이가 소잔등처럼 편안해 보인다. 굽이치듯 이어진 능선을 보고 있으면 내 영혼도 창공을 날아오르는 것 같다.
아파트 숲에서 닭장에 갇힌 닭인 양 네모 상자를 중심으로 숨죽이며 살아온 세월이 얼마던가?
하늘로만 향해 고개를 한껏 치켜든 고층 건물의 뾰족한 첨탑을 보고 있으면 왠지 불안하다. 신의 영역을 침범하다 불벼락이라도 맞을 것 같다.
그 옛날 신의 영역에 도전하고자 하늘을 향해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를 본 하나님은 인간의 오만에 일격을 가하게 된다. 탑을 쌓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뒤섞어 놓았다. 같은 말을 쓰며 함께 탑을 쌓던 사람들이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되자 하나 되지 못하고 흩어지게 됐다. 그때부터 말이 통하는 사람끼리만 무리를 이루어 살게 됐다.
여기서 ‘바벨’은 하나님을 저버린 사회를 상징한다. 이미 신께서는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무모한 도전으로 인간 본연의 위치를 잃어버릴 것이라 예상했던 것 같다.
911테러로 미국의 쌍둥이 빌딩이 힘없이 무너졌던 일을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한순간에 무너져 내리는 인간의 욕심을 보는 것 같다.
그때 난 대학 2년생으로 미국에 어학 연수차 가 있었다. 온 세계가 이 테러로 몸서리쳤는데 정작 미국에 있는 사람들은 지역이 멀면 그다지 위험을 느끼지 않았다. 한국에서 도리어 난리가 났다. 분명 내가 사는 곳과 먼 곳에서 일어났는데도 부모님과 지인의 전화가 빗발쳤다. 미국이 손바닥만 한 줄 아는 모양이다. 외출한 시간에 부모님이 전화했는데, 그 전화를 룸메이트가 받았다. 외국인이니 말이 통할 리 없다. 이후 결국 통화가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국제 전화요금이 엄청 많이 나왔다. 그때는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라 일일이 국제전화로 통화했다.
직선으로 이루어진 네모난 건물들은 아무리 높다고 해도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보잘것없다. 비행기를 타고 공중으로 조금만 높이 날아보면 알 수 있다. 하늘을 찌를 자세로 높이 솟은 빌딩도 아기 주먹만 하게 보이다가 이내 점이 되어 시야에서 사라진다.
손바닥만 한 공간 속에서 도토리 키 재기 하듯 아웅다웅하며 살아가고 있다.
목은 뻣뻣이 세우고 어깨는 한껏 치켜들었다. 이들은 서로 많이 갖겠다고 아우성친다. 남의 피해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만 바라보고 불나방이 된다. 이 속에는 모난 마음과 이 마음을 둘러싼 육면체의 공간 만 존재한다.
이 속에서 뒹굴게 되면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게 된다. 서로가 각을 세워 상대를 찌르고 할퀴다가 자신도 부서지게 된다.
옛말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라고 했다. 정 맞은 자와 찔린 자들의 신음이 들리는 듯하다.
언제부턴가 우리나라가 자살 순위 1위로 자살 왕국이 됐단다. 물질이 구세주인 양 쫓아가다가 부드러운 곡선을 잃은 게 원인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높이만 올라가면 모든 게 해결되는 줄 알고 높이 높이 고층 건물을 쌓아 올렸다. 그 건물의 바닥에선 서민들의 고통 소리가 낭자하다.
옹기종기 모여 살며 가난하지만 정답던 달동네가 개발이라는 이름 아래 무참히 짓밟혔다. 갈 곳을 잃은 서민들의 서글픔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원래 우리나라의 모습은 이게 아니었다. 단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자연 속에서 자연과 닮은 곡선 집을 짓고 지나친 욕심 없이 그저 둥글둥글 살았다. 자신이 굶주릴지라도 이웃을 외면하지 않았다. 이렇게 정이 많고 곡선을 좋아하던 민족이었다.
순리와 달관으로 빚어낸 단아한 곡선의 우수한 문화도 창조했다. 우선 의상 문화만 보더라도 부드러운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한복 소매의 우아한 곡선은 저고리 깃에서 절정을 이룬다. 또 버선코의 날렵한 곡선은 어떻고…. 여기에다 고운 빛깔의 비단으로 만든 복주머니까지 차고 나면 완벽한 곡선의 의복이 된다.
능선을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마음이 행복해진다. 지난 여름휴가 때 찾았던 민속 마을과 어릴 때 봤던 시골 외갓집이 생각이 난다.
옹기종기 머리 맞댄 지붕들이 정답게 이웃하고 앉아있다. 둥그스름하게 호를 그리는 초가지붕도 멋진 곡선 작품이다. 여기에 드문드문 섞인 기와집도 환상적이다. 추녀의 곡선이 날아갈 듯하다. 기왓장 하나하나도 자세히 보면 모두 곡선이다. 추녀 끝의 곡선은 하늘을 향해 뻗어 있지만, 날카롭지 않고 멋스럽다.
이 속에서 살았던 우리 민족이 만든 작품은 그 우수성이 세계적이다. 고려청자, 조선백자의 우수함은 말할 것도 없다. 그 외에 투박한 옹기 항아리와 서민들이 사용하는 막사발까지도 우리 민족이 추구하는 곡선의 혼을 담고 있다.
우아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우리 민족의 고고한 품격이 느껴진다. 능선으로 둘러싸인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하나 되어 둥글게 살았던 옛날이 그리워진다.
얼마 전 스페인에 갔다가 세계적인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의 작품을 만났다. 그의 작품은 6개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됐다고 하니 놀라운 일이다. 그의 대표작인 ‘성가족성당’은 미완성으로 남아있지만, 그의 설계도가 남아있어 2026년에 완성된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은 모두가 자연에서 영감을 얻어 모든 건축물에 끌어들였다. 얼핏 보면 성당의 뾰족한 첨탑이 직선 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곡선으로 이루어졌다. 구엘 공원도 자연을 모델로 삼았다. 바람 부는 모습을 본떠 동굴을 비스듬히 만들고, 도마뱀 모양의 분수도 만들었다. 도 카사 밀라(밀라 씨의 저택)는 그의 작품세계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다. 벽면은 물결치는 파도 모양으로 만들었고, 기둥은 사람의 뼈 모양을 본떴다. 발코니는 미역이나 김 등의 해초 모양을 본뜬 것이라 그 모양이 특이하다. 그가 이토록 칭송받는 이유도 바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곡선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능선은 강물로 흘러가 굽이치는 곡선을 이룬다. 물결치는 강을 보고 있으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능선에서 강물로 이어지는 기나긴 곡선을 따라가 보면 어느새 마음의 고향인 천국에 닿을 것 같다.
날이 밝으면 또 직선의 소용돌이 속에서 곡선을 잊고 살아갈 것이다. 점점 사라져가는 곡선을 붙잡아 그 옛날의 평안을 되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