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손으로 시작한 창업의 기적
(주) 안토니제화 김원길 대표
멋진 인생을 원하면 불타는 ‘구두를 신어라’
어제 TV를 보면서 내가 저렇게 살았구나 하는 했다.
저는 구두를 잘 만든다.
지난해 김문수 지사님이 오셔서 우리 회사 구두 선전을 많이 해 주신다.
구두를 잘 만들어 돈 벌어가지고 재미있게 잘 살고 있다.
열심히 쓰기 위해 돈을 번다.
살아온 이야기 말씀드리고 돈을 벌어서 어떻게 쓰는지 자랑을 늘어놓겠다.
저를 심사하지 마시고 별난 인생도 있구나,
저런 스타일도 있구나 하면서 공감해 주시기 바란다.
전국에 매장 53개가 있고 유명 백화점에서 판매중이다.
일단 제 이야기를 들어보시고 다음 이야기를 나누었으면 한다.
30년 전으로 이야기를 돌리면 중학교 나오고 고등학교 못갔다.
7남매중 셋째이다.
당진출신이다. 대오진 도외리,
미호중학교까지 9km를 걸어 다녔다.
중2때 돈이 필요하다 하니 어머니께서 500m를 이웃집에 뛰어가 빌려다 주시면서
‘다음에 돈이 필요하면 미리 이야기하라’하신다.
세 번이나 돈 달라면 뛰시는 엄마를 보면서 중2때 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였고
고등학교 보내주는 것에 대해 물어보지 않고 중학교 졸업하면 뛰겠다고 마음먹었다.
돈벌러 처음 온 곳이 고양시 지축기지에 농장이 있었는데 가니까 연탄불 가는
것을 시키더라.
하루에 150장을 갈았다. 당진에는 연탄이 없었다.
연탄가스를 처음 만났다.
월급이 12,000원이라 뭐 할 것이 없었다.
돈이 남지 않았다. 돈 벌기가 쉽지 않구나 해서 다른 곳, 노가다 판에 갔다.
페인트 도장일을 했다.
일당은 좋은데 비가 오는 날에는 꽝을 치더라.
수성페인트는 시멘트에 나무에는 유성을 칠하는데 모자 안 쓰고 로라질을 하니
머리에 페인트가 묻었다.
추석에 집에 가니 작은 아버지가 서산에서 양화점을 하시는데
우리 집에 와서 구두기술을 배워라 하셨다.
전에도 작은 아버지가 구두를 만들라고 했지만 작은아버지 구두직업이 멋지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연탄불 갈고 페인트 묻혀보니 작은 아버지의 구두 만들라는 말이 귀에
들렸다. 해볼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은아버지 손에 끌려 서산으로 갔다.
심부름 시키면서, 본드칠 등 기본적인 것을 가르쳐 주었다.
깎는 것만 가르치고 상급으로 가르치지를 않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로 기술 배우러 간다 했다.
구둣가게 가서 취직 시켜 달라 하겠다고 말했다.
작은아버지가 주신 20,000원 들고
영등포역에 내려서 구둣가게를 찾아 다니면서 먹고 재워 만 주라고 부탁을 하고 다녔다. 하지만 쉽게 취직이 되지 않는다.
만만하지 않구나.
그리하여 영등포에서 하숙만 하는 조건으로 구두를 만들기 시작했다.
당시 먹는 것을 잘 먹었다.
하숙집에서 밥을 조금만 주는 것이다. 하숙집 딸이 밥을 조금 퍼주었다.
밥을 원 없이 먹고 싶었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했다.
3개월 정도 지나니 사장님이 부르신다.
장마철이 오니 지금부터는 가을까지 3개월간 놀다오란다.
그래서 걱정을 하다가 하숙 룸메이트에게 사정을 말하니
설악산 아르바이트를 하러 오란다.
마장동에서 속초로 가는 버스를 타고 친구 집에 가서 저녁 얻어먹고 다음날
설악동에서 아르바이트를 찾아다녔다.
자리가 없어, 파출소에 가서 사정 이야기를 했다.
속초 오는 차비뿐이니 서울 갈 차비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무서워 말을 못 꺼내고 다시 나가 알바를 구했다.
5만원짜리 알바를 구했다.
산장, 여관촌에서 일을 했다. 부자들이 설악산으로 신혼여행 올 때였다.
경주,설악산, 제주도가 신혼부부 여행지이고 아직 해외는 가지 않을 때였다.
신혼부부 심부름 해주면 1,000원을 준다.
부자들이라 2,000원을 주는 신혼여행 부부도 있다.
1달이 지나 다락방에 쌓아둔 돈을 세어보니 돈이 50만원이더라.
50만원을 쥐니 일하기 싫더라.
월급 5만원을 합해 55만원으로 성남시 상대원동에 자취방을 만들었다.
솥 사고 냄비사고. 쌀사다 배터지게 밥해 먹었다.
그리고 기술을 배우러 그 집으로 안가고 ooo 사장님 공장으로 갔다.
oooo 개발실장 하신 분으로 구두 디자인으로 유명한 분이다.
해외에서 디자인 공부하신 유능한 분으로 이분의 견습공이 되어 그 회사에서 열심히
일했다.
19살에 상견습생이 되었다.
선생 직전까지 갔다. 돈벌이도 잘 되었다.
19살에 인생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한다.
구두 만드는 선생님에게 인생은 무엇인가요 하고 물으니 ‘구두나 잘 만들어라’한다.
1년 동안을 그러고 다녔다.
20살이 되니 매일 ‘인생이 뭐냐고?’묻기보다 내가 정의를 내리는 것이 낫겠다
생각하고 ‘인생이란 내 앞의 끝없는 사다리를 올라가는 것이다.
올라가도 끝을 볼 수 없는 사다리고 싫으면 안 올라가면 되는 것이다’라고 정의했다.
친구들이 나에게 ‘足쟁이’라 불렀다.
고등, 대학 나온 친구들이 나보고 ‘족쟁이’란다.
30년 전에 나보고 ‘족쟁이’라는 친구들이 나보고 운전사를 시켜달란다.
나는 대리기사 쓴다. 그러자 警備라도 써달란다.
20대에 케리부룩에 입사했다.
사장이 예뻐하는 직원이 있다.
사장이 말하기를 ‘메달리스트’라고 부른다.
메달 따면 상금 500만원, 1984년이면 집 전세금이었다.
이제 보니 나보다 더 멋진 메달리스트가 있는 것이다.
메달리스트가 자꾸 도망을가니 사장이 포기한다.
나를 시켜 달라 했다. 말 같은 소리도 하지 마라.
여자구두 기술자가 남자 구두를 만드는 것에 나갈 수 없다는 것이다.
공법이 다르단다.
출전일이 70일 남았는데 하겠다고 덤비니 공장장은 열받아 있었다.
다시 공장장에게 사정했다. 공장장은 안 된다고 했다.
한 번 더 사정했더니 공장장이 사장에게 나를 데리고 갔다.
내가 도망간 구두기술자 대타 시켜달란다고 사장에게 보고했다.
사장님은 하나 만들라고 시켜보라.
공장장이 ‘예’하고 너 하나 만들어 보란다.
그래서 하나 만들어 내놓으니, 너 만들어 봤어? 만들지는 않았었고 만드는 것을
보기는 보았다. 구두 만드는 일은 꿰매고 깍는 것이 기술이다.
3개째 구두를 만들어 내어놓으니 ‘시켜 봐도 될 것 같다’고 한다.
일요일에도 열심히 구두를 만들었고 50일정도 하니 사장이
‘너 김원길! 구두 천재!’라며 칭찬한다.
나도 금메달 딴다. 인생도 뒤집어 진다. 출전하여 동메달을 땃다.
회사에서는 금메달 따면 광고하려 준비까지 다 했는데.......
회사에서 눈길을 주지도 않는다.
동료들이 잘난 척 하다가 ‘폼 난다’면서 코너로 몰아간다.
피로가 몰려온다. 이틀 휴가내서 부산으로 갔다.
금메달도 못 따고 한탄하면서 부산 태종대에 갔다.
태종대 등대 아래로 가서 소주한잔 먹고 두잔 먹고 세 잔째는 안들어 갔다.
술이 취했는데 시원한 바람에 파도가 치는데 (9월말 10월초인데) 그 멋진 경치가 눈에
들어온다. 이것을 누가 멋있게 만들었지?
이것은 바람과 파도가 만들었구나.
바람과 파도가 이것을 만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을까?
어머어마한 시간이 걸렸겠구나. 바람과 파도가 부럽다.
나도 바람과 파도처럼 살수 있을까?
안되지 택도 없는 소리 하지마. 내 자신의 교감과 부교감이 충돌하는 것이다.
그 정도에서 신세한탄 하는 너라면 택도 없다. 아니면 말고다.
바람과 파도처럼 살거야. 손해 볼 것이 없겠더라. 다시 힘이 올라온다.
왜 여기서 소주먹고 고민하나?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난다.
내 인생이 어떤 작품이 될지는 모르지만 다시 기차를 타고 올라온다.
중국말에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아주 쉽다는 생각을 하였다.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올라오면서 원수 같던 동메달이 갑자기 소중해 졌다.
동메달이 나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구나.
금메달을 땃다면 잘났다고 돌아다녔을 것인데.
바람과 파도를 따라가게 한 것이 동메달이구. 그래서 금메달 인생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사장님을 만났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사장님이 그래 알았다, 다음에 한 번 더
하자라는 소리를 끌어냈다.
일을 할 분위기가 마련된 것이다.
그 후 열심히 일했다.
1984년에 100만원을 벌던 시절이었다. 주머니가 따스하면 일하기 싫어진다.
이 구두가 내 인생을 바꾸겠어. 하면서 싫어진다.
그리하여 관리를 배우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루에 10,000켤레를 만들고 싶었다.월급도 적은데 왜 그리 가려하느냐.
기능공 100만원일 때 관리직은 25만원이었다. 바닥에서 다시 기겠다.
당시 동생 두명을 공부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관리직으로 가겠다고 했다.
출고반 일하는 직원이 전표와 알맹이를 틀리게 5켤레 모자라게 보냈다.
대리점에서 난리가 났고 그 직원이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
나 저 자리 보내주세요. 중졸이지만 가감승제는 된다.
구두박스에 포장하는 것은 된다. 그래서 그 자리에 보내준다.
월급이 100만원에서 25만원을 줄어드는 것을 감수했다.
거기서 생산관리를 배우고 싶어 간 것이다. 잘 하니까 검사, 기획 등을 하고
2년 만에 김원길이(당시별명 : 컴퓨터)가 사장님의 인기가 올라갔다.
대리점에서 전화가 오면 왜 전화를 하였는지 알았다.
대리점 공장 사장, 가죽공장 사장 만나 여러 가지 일을 했다.
사장이 나를 보니 ‘미친 놈 같았다’고 말하더라.
1인 5역을 한다고 했다. 꿈이 크기 시작했다.
나는 케리브룩 사장이 되겠다는 꿈을 가졌다.
주임 지나 대리를 시켜주었다.
과장 이사 전무 사장 앞에서 케리브룩 사장되겠다고 하니 아찔한 노릇이다.
대리로 일할 때, 자재가 잘못되면 바로 잡아낸다.
나쁜 재료로 구두를 만들면 내가 욕을 먹는다. 재자 납품자들의 원망이 커졌다.
케리브룩 사장이 회고 하기를 전에 우리 회사와 같이 일하는 다른회사 사장이
‘김원길이를 택할 것이냐 나를 택할 것이냐?’를 결정해 달라는
어려운 상황까지 겪었다고 회고했다.
좋은 가죽 좋은 제품이라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아마도 그분들은 납품에서 눈을 감아주면 좋겠는데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50개 대리점 물건출고 생산기획을 담당하고 있을 때이다.
백화점에 영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3개월 만에 쫒겨 난다고 한다.
내가 해결하겠다고 하니 회사에서는 백화점 앞에까지 차를 태워주고 가버린다.
어설프게 백화점에 가서 항의하면 얻어맞겠고 그냥 회사로 돌아가면 병신소리
듣게 될 상황이다.
코너에 몰렸다. 그래서 백화점에 가서 난리를 쳤다.
다른 메이커 월 5천만원에 비해 당시 우리회사 매출이 10%수준이었다.
600만원이었다. 내가 매출 올려주겠다 했다. 매장 빼지 마라. 야! 1억 팔아주겠다.
열흘이 지나니 1억 팔아준다더니 뭐하는 것이냐? 매장 철수하겠다.
사장님에게 제가 한번 해보겠다. 구두 팔러 나갔다.
인천 전봇대에 전단지 붙이고 마이크 잡고 떠들어댔다.
마이크 잡고 장사를 했다. 열흘 만에 250만원까지 올라갔다. 작전을 썻다.
우리는 특공대다.
술 한잔 하고 내일 목표는? 400만원, ‘특공대’ 소리 들은 결에 질러보겠다 한다
다음날 진짜 400을 팔았다.
다시 회식하고 ‘내일 목표는 얼마?’ 500! 100씩 올라갔다.
그리하여 최고 1,100을 팔았고 그 달에 1억1천만원을 팔았다.
영업이 재미있다.
공장에서 지지고 볶다가 영업에 나가니 재미가 있다.
이제 공장에서 일 안하겠다. 영업 하겠다. 제가 알아서 하겠다.
대형 백화점에 가서 영업을 시작한다.
일주일 영업하였더니 일주일 더 하란다.
우리 사장님 구두가 강남에서 팔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일주일로 시작한 것을 한 달간 판매하니 1억원을 팔았다.
다른 매장 매니저들이 나를 만나러 왔다. 회사의 재고를 다 팔았다.
어느 날 월요일 회사의 분위기가 안 좋다.
김원길이 구두 팔아서 부자가 되었다고 소문을 낸 것이다.
사장님을 만났지만 나를 의심하는 분위기다. 일하기 싫어졌다.
집에 가서 10일정도 울었다.
8년 동안 미친 듯이 일한 나날들이 부서지는 느낌이다.
퇴직금이 270만원인데 가불한 것이 300만원이니 30만원을 갚아야 하는 처지다.
경리과에서 퉁퉁 치자고 한다. 그만두는 것으로 했는데
사장님이 200만원을 담아 주었다.
사장님 주신 200만원으로 새롭게 사업을 시작한다.
직장은 재미있는데 사업을 하자니 힘든 것이 많다.
공부하기가 제일 쉬운가요? 강의를 들어보면 힘들더라.
80번 강의를 들었는데 1시간 반이 참으로 힘들더라.
재미없더라. 삼성 부사장, 기업인, 금감원 감사 등이 참여하는 지도층 인사들인데도 공
부하기 힘들어 한다. 기억에 남는 강의는 5개 정도이더라.
MBC 프로그램을 틀어주는 것이 편하게 되었다. 5
0분짜리 잘 만들어졌으니 그것으로 대체하고 강의요청을 피할 수 있겠다.
주변에서 너는 손으로 구두 만들다가 이제는 입으로 구두를 만드냐?고 놀린다.
지난해 연수원 강의를 통해 팬을 많이 확보하였다.
사업을 시작하니 어려웠다. 어음도 쓰고 당좌도 쓰고 다른 분 담보도 빌려보고.
전 사장님 물건으로 3개월 동안 구두를 열심히 팔았다.
팔 구두가 없단다. 자리 잡았더니 안준다.
로얄티를 주고 구두를 받아 판매를 시작했다.
상품권을 발행하고 부도를 낸 사건으로 어음을 막아야 하는 힘든 상황에 처했다.
아! 이것이 부도구나. 물건을 팔아서 돈으로 가지고 있으면 되는데.....
어음을 막아야 하는데...
싸스라는 발이 편한 신발이 유행하였고 이태리 제품이 들어오고.
은행빛 막아가면서 4년 동안 많이 힘들었다.
4년동안 악마의 터널을 지나갔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나를 밀고 들어온다. 새벽, 아침까지 비디오테잎만 보았다.
내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혼수상태 같았다. 친구에게 ‘나 안보이면
한강에 차 몰고 들어간 줄 알아라“하니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편안하겠지만
세상은 복잡해지고 너는 무책임한 자다. 현대정공에 잘 있는 나를 데려다 놓고
그러면 나는 뭐냐?‘
이 친구가 동정하면 죽으려 했다. 하지만 이 친구의 무책임하다는 말에 ‘죽으면서
욕을 먹는다’니 참 싫었고 죽더라도 일하다 죽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좋은 구두, 잘 팔리는 구두를 96년에 나왔고 정신없이 팔려나갔다.
이러다 돈좀 버나보다.
너무 좋아서 운전하다가 빨강불에도 직진을 하여 교통사고 크게 날뻔 했다.
내가 이제 살아나는구나. 하지만 1997년에 많은 기업이 넘어갔다. 산너머 산이다.
IMF때 두 번 고비가 있었으나 잘 넘었다. 빛이 엄청 늘었다.
매년 빛이 4억씩 늘었더라. 직원들에게 더 이상 돈 빌리지 않고 회사내에서 움직이자
했다. 회사가 돌아가기 시작하니 재미가 있고 돈이 모이고 빛을 갚게 되었다.
여유가 생기니 잔머리가 돌아간다. 나 이러다가 성공하는 거 아니야?
성공이 뭘까? 성공이 뭘까요?
[성공의 정의]
성공은 내가 행복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에서 존경받으며 사는 것이 성공이다.
행복지수 1등인 회사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출산장려금, 셋을 나면 1,000만원. 나의 어머니는 아들 5명중 사장이 4명이다.
회사에 벤츠, 배 사주고 직원들 멋지게 살게 한다.
나는 스키강사다. 스키시즌에 직원들 데리고 놀러간다.
전복 요리를 잘한다. 족발,요리 오물렛, 바비큐 요리해서 직원들에게 회식시킨다.
겨울에는 스키장, 여름에는 수상, 봄가을에는 승마장. 기숙사는 아파트로 지원해 준다.
나라마다 파트너를 잡고 있다.
세계 각국에 존경받는 구두기업을 만드는 것이 나의 꿈이다.
존경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할까? 나눔이 최고다.
2012년 봉사활동 목표가 5억원이다.
연평도 지키러 들어온 쌍둥이에게 보험 깨서 장학금 2천만원 주었다.
휴가때 회사에 온 군인형제에게 격려하니, 이들은 그 돈을 해병대를 위해 쓰겠단다.
보험하나 더 깨서 기부단체에 3천5백 기부했다.
골프꿈나무. 아들이 프로골퍼. 고양시 골퍼 4명을 키우고 있다.
군부대 자매결연하여 신병교육대 훈련병과 함께한다.
군대생활 재미있게 멋있게 하자. 제대 후 60년 살 인생계획서를 2년 동안 만들어 보라. 지루하게 軍 생활한동료들과는 다른 인생을 만들어 보자.
성공한 사람은 선배에게 잘한다. 후배에게 잘한다. 동료들에게 잘한다.
그런 멋있는 군인이 되어보자. 멋있는 군인 4명을 뽑아서 8박9일 해외여행 보내준다.
유럽여행. 9사단 백마부대에서는 여기에 뽑히기 위해 군대생활 열심히 한다.
군 병사들의 생각을 바꿔주어서 고맙다는 사단장의 칭찬을 듣는다.
당진에도 결연단체가 있다.
효도잔치도 하고 연예인도 오고 저도 노래하고. 노인들에게 가방, 신발 하나씩
만들어 드린다.
일산에서 시민강좌, 장학금도 전달한다.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은 힘든 고비를 잘 넘겼기 때문이고 자살 안했으니
다행이고 oooo회사에서 나를 물어 뜻은 그 사람이 고맙다.
나를 넓은 세상으로 내보내 준 그 친구가 고마운 사람이다.
요즘에는 나도 추락할 것인데 하면서
정신 차리고 공부를 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공부에 대한 정의를 한다.
공부가 무엇인가?
[공부에 대한 정의]
공부란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하게 갈고 다듬는 것이 공부다.
세상이 나를 필요로 할 때 나는 추락하지 않는다. 그것을 향해 가겠다.
회사가 망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우리 회사에 관심이 없는 것이다.
공부하셔서 대한민국이 세계 1등 나라로 만들어 주시기 바란다.
세계인과 함께하는 기업인이 되겠다.
2011년에 쓴 책 : 멋진 인생 불타는 구두를 신어라.
책을 쉽게 썼다. 2시간에도 본다더라.
사업에는 오르막도 있고 내리막도 있더라. 인생도 마찬가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