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를 찾아 봅니다.
나흘 전이네요.
그날 치평동에 있는 등기국에 갔더랩니다.
존만하고 씩씩한 송정리의 영감탱이!!!
기운차게 니꾸샤꾸를 메고 등기국에 다달아서
서류를 발급받고 급하게 귀가하려고
쌕에 사용한 인감도장을 넣고 다시 그 쌕을 배낭을 구겨 넣고 정류장으로 향했습니다.
버스를 타고 버릇처럼 좌석에 앉지 않고 스맛폰으로 검색질입니다.
좌석에 앉으면 더 늙어 보입니다.
늙은 놈이 늙었다는 소리 듣는 것은 싫습니다.
송정공원 역에 내려 잠시 송정도서관 정보자료실에서 자료 좀 열람하려고
등에 맨 배낭을 탁자 위에 내려 놓는 순간
배낭의 지퍼가 열려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오고 열려있는 배낭 안에 있어야 할 쌕이 안보입니다.
그 사이 예쁜 도서관 사서가 인사를 합니다.
'오마낫!! 안녕하세요. 우리 사서님은 이쁘기도 해요'
사서의 가지런하고 하얀 이가 드러났다가 투명한 붉은 색의 입술 속으로 감춰지는 짧은 순간에
다시 배낭을 고쳐 메고 왔던 길을 되짚어 갑니다.
광주 행정서비스콜인 120번을 통해 제가 타고온 버스회사 전화번호를 확인합니다.
대창 운수....38번 버스입니다.
이동 편의를 위해 집으로 가서 승용차 시동을 겁니다.
운전중 막내에게 전화해서 카드 분실신고를 대신 부탁하고..
당근 마켓의 동네소식의 분실코너에 글을 올립니다.
'성인 주먹 두 개 크기의 까만 쌕, 겉면에 제 전화번호가 있습니다.
현금은 94,000원 쌕을 습득하신 분께 드리겠습니다.
인감과 카드 6장, OTP가 들어 있습니다. 연락 기다립니다.'
등기국으로 다시 돌아가 직전 제 동선을 따라가며 찾아 봅니다.
없습니다.
종점인 송산유원지를 돌아 나와 등기국으로 다시 돌아온 38번 버스에 올라
제가 앉았던 자리 주변을 샅샅이 찾아 봤지만 쌕은 보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경찰을 대동하고 와서 버스 CCTV 확인하실 수도 있어요.
그런데 습득한 사람이 물건을 집어 든 모양이 확실하게 찍혀야 책임을 물을 수 있거든요.'
운전자가 어쩌다 물건을 잃어 버렸냐는 표정을 지으며 조언을 해 줍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나고...
그 사이 등기국에 제가 들렀던 시간대의 CCTV도 확인했지만 쌕이 흘러내린 장면은 못찾았습니다.
완전분실이 확실해져갑니다.
인터넷으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카드의 재발급을 신청했습니다.
인감만 새로 새기면 됩니다.
오늘은 법률구조공단에 들렀다 큰 교통사고 작은 상처를 입은 큰형을 보러 갔습니다.
버스기사의 조언이 자꾸 떠오릅니다.
그동안 추적한 결과를 종합해 보면 송정공원 역에서 제가 버스에서 내리고
다시 그 차가 종점을 회차해서 등기국까지 오는 사이에 버스승객이 주워간 것이 100프로 확실해 보입니다.
큰형집 들르는 대신에 경찰서에 분실신고를 하고 해당 버스회사 CCTV를 확인해 볼까 합니다.
쌕에 들어 있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새로 발급받아 버린 카드나 신분증이 문제가 아니고
쌕 겉면에 적어 둔 핸드폰 번호가 있음에도 연락을 취하지 않은 습득자가 괘씸한 겁니다.
'암튼 니(습득자)는 디졌어....CCTV 보존 기일 내에 확인만 하면 넌 잡힌 몸이여~'
대형 교통사고 중에도 무사생환한 큰형 축하를 먼저 해주기로 합니다.
고깃집에 가서 큰형 먹고 싶다고 하는 생고기, 구이용 고기, 뿌라스 돼지고기 항정살까지 챙겨오니
전날이 형수 생일이었답니다.
큰형 생환 이야기는 쏙 빼고 전날 형수 생일축하파티라고 뻥치고 술잔을 돌립니다.
한참 형수에게 입에 발린 이쁜 소리를 날리고 있는데 제 전화벨이 울립니다.
죄지은 것이 많아서 모르는 번호는 겁부터 납니다.
전화를 받아 보니 이쁜 아가씨의 낭낭한 목소립니다.
'송정도서관인데요~ 선생님 전화번호가 적힌 쌕을 발견해서 전화 드리는 거에요.
내일은 오후 5시에 폐관하니까 그 전에 찾아 가시기 바래요~'
재발행할 카드나 신분증은 다~~ 신청한 상태에서 쌕 찾았다는 전화가 오니
반가운 마음보다 의아한 생각이 앞섭니다.
도서관 정보자료실에 들어서면서 배낭을 풀었는데 푸는 사이에 쌕이 떨어 졌었나?
왜 나흘 간이나 발견이 안되었을까?
웃어야 할 타임에 잡념은 금물입니다.
잡생각하다 보니 웃어야 할 타임을 놓쳐 버렸습니다.
그래도 인감도장은 건졌습니다.
내일은 도서관 사서들이 먹을 간식거리를 잔뜩 사서 송정도서관을 들러야 겠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니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법률구조공단의 상담자들은 변호사들이 아닌가요?
첫댓글 ㅎㅎ 웃어도 되는 건가요?
맘 조리시고 애 쓰시고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가 잃어버렸던것도 생각나고 조마조마했습니다
찾았다니 다행이네요
돈은 없었겠죠?ㅎㅎ
천만다행 입니다 ㅎㅎ
마음고생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