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 제사를 즐기는 민족
제사(祭祀)는 신을 경배하는 인간의 최고 예식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은 제사(祭祀)를 즐겨 드리던 민족이다. 우리 민족이 제사를 많이 드렸다는 것은 민족의 기원이 바로 성경과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 즉, 노아 홍수 직후에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아라랏산 정상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번제를 드린다. 하나님께서는 그 제사를 받으시고 노아에게 나타나서 언약의 축복을 주신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복을 주셨고, 무지개를 보이시며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아니하시리라고 약속하셨다. 함께 방주에 있었던 노아의 자녀들에게 이 장면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놀라운 경험이 되었다. 그날 이후에 그들에게는 하늘 높이 우뚝 솟은 높은 산은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곳, 즉 성산으로 간주되었다. 거기서 바로 고산숭배 사상이 형성된다. 이후 노아의 자손들은 각지로 흩어진다.
창세기 10장을 흔히 민족장이라고 하는데, 노아의 후손들에 의해 형성된 세계 여러 민족 계보의 기원에 대한 기록이다. 이 계보를 자세히 보면 노아로부터 믿음의 계보를 잇는 축복을 받는 아들인 셈에게서 믿음의 후손들이 나온다. 즉, 셈은 아르박삿을 낳고,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는다. 그리고, 이 에벨에게서 벨렉과 욕단이 나온다. 그러니까 이 벨렉과 욕단은 하나님에 대한 노아의 믿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셈족의 후예인 것이다. 후에 바벨탑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온 인류가 사방으로 분산될 때 벨렉의 후예는 바벨론에서 비교적 가까운 지역인 유프라테스 유역인 이라크 남단 우르와 페르시아 만에 정착한다. 그리고 그 벨렉의 6대손에게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나온다. 결국 믿음의 계보를 이어받았던 셈의 자손인 벨렉의 후손에게서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믿음의 혈통 셈의 4대손인 에벨의 아들 벨렉과 욕단중 벨렉 후손의 계보는 성경이 계속 언급하고 있지만, 욕단의 후손에 대해서는 13명의 아들들의 이름이 언급되고는(창10:26~29, 대상1:19-23) 그 이후에 언급이 없다. 다만 그들이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쪽 산에 거주하였다고만 나온다. 그런데 학자들은 욕단의 자손들이 함이나 야벳의 후손들이 흩어진 경로와는 다른 곳, 동쪽 산으로 민족의 이동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동쪽 산은 har ha kedem이라는 뜻으로 태양이 떠오르는 가장자리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즉 극동지역을 말한다. 곧 믿음의 혈통인 셈의 후손 에벨에게서 나온 벨렉과 욕단중 벨렉의 후손은 가나안 지역의 선민이 되었고, 욕단의 후손은 동쪽으로, 동쪽으로 이동하여 한반도까지 온 것이다.
성경에서 그들이 거주하던 ‘스발’로 가는 길의 ‘ 은 곧 한반도이다. ( : 새땅이라는 뜻으로, -> -> 서울) ( 땅: -> ->배달)은 곧 한반도이다. 하나님의 사람 욕단의 후예들은 곧, 해가 뜨는 새 땅 한반도에 나라를 세운 것이다. 그리고 노아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 동녘에서 가장 높고 밝은 산인 (백두산)에 올라 하나님께 제사하던 ‘제의’ 민족이 된다. 실제로 백두산 정상 부근에서는 아라랏 산에서 노아가 번제를 드리던 제단과 같은 형태의 거대하나 돌 제단이 발견되었다. 욕단은 우리 민족의 직계조상이었으며, 우리 민족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제사를 즐겨하던 민족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우리 민족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단군’의 어원에서도 분명히 나타나고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단군의 단을 ‘제단 단(壇)’으로 보고 있는데, 곧 ‘제단을 섬기는 임금’이라는 뜻이다. 그 밖의 다른 단군 신화에서는 박달나무 단(檀)을 써서 단군(檀君) 즉, ‘박달임금’이라고 썼다. 여기서 박달은 ‘ ’ =배달=밝은 땅을 뜻하는데, 단군은 곧 밝은 땅의 임금이라는 의미이다. 이 토박이 말이 후세에 한자로 의역되어 단군이라고 쓰여지게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단군의 기원 년도를 BC2333년으로 보고 있다. 그런데, 이 연대는 성경상의 욕단의 연대와 너무나도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또한, 단군은 노아시대의 믿음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백두산정에서 하나님께 제천의식을 거행하고 ‘조선’을 건국한다. 조선은 아침조(朝), 빛날 선(鮮)으로서 ‘아침 해가 빛나는’ 뜻이다. 순 우리말로는 ‘주신’이라 했는데 빛나는 땅이라는 의미이다. 놀랍게도 노아의 대 홍수 이후 아리랑 고개를 넘어 동쪽의 끝 ‘ 의 땅’으로 이동한 셈의 증손자 에벨의 둘째 아들 욕단은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이었던 것이다. 우리민족은 처음부터 하나님께 참 제사를 드리던 믿음의 후손들이고, 또 하나의 선민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민족이 줄기차게 하나님께 드리던 ‘제사’가 중국의 영향을 받아 그 의미가 훼손되고 만다. 중국은 우리 민족하고는 그 뿌리를 달리한다. 믿음의 후손인 에벨의 ‘욕단’ 후예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민족이다. 그들은 토템신앙의 대상인 용을 숭배하는 민족이고, 조상신을 섬기는 족속이다. 그 토템신앙과 조상신에 대한 ‘제의’가 동이족인 우리에게로 흘러들어와 우리 민족의 제사의 성격이 조상신을 숭배하는 것으로 변질된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이 들어 쓰시려고 남겨두신 ‘믿음의 후예’가 우상을 섬기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이것은 물론 마귀의 장난이다. 마귀의 가장 큰 욕심은 바로 절 받는 것이다. 자기도 하나님처럼 예배를 받고 싶어한다.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자기를 경배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는가? '나한테 절만 하면 모든 부귀영화를 네게 주리라.' 그렇게 마귀는 사람들이 자기를 하나님처럼 섬겨주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래서 수천, 수만년 역사 속에서 속일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사람들을 속여 왔다. 마귀의 하수인인 귀신들을 동원해서 말이다. 그 결과 세상 많은 나라들이 열심히 귀신에게 절하고, 조상신이라는 이름앞에 엎드려 복을 빌게된 것이다.
이제 우리 민족은 그 정체성과 참 제사를 다시 회복해야 한다. 토템신앙에 의해 변질된 제사에서 우리 민족이 처음부터 거행하던 성경의 제사로 다시 회복해야 한다. 성경의 제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제사로 완성 되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피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서 예배를 드린다. 이것을 신약제사라고 그러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믿음의 예배라고 그런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믿음의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마귀의 하수인인 조상신 정도에게 드릴 수 없다. 우리가 조상제사를 거절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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