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에게 길을 묻다
함인석 / 경북대학교 총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1982년에 창립된 이래로 오늘날처럼 어려움에 부딪친 적도 없다. 그것은 지난해 11월 7일 ‘등록금 부담 완화’ 및 ‘감사원 감사결과 대응’ 방안의 일환으로 대교협 202개 회원교 중 150여 개 대학의 총장들이 모인 임시총회에서 성명서 채택의 토론과정을 지켜본 이들의 공통된 소회일 것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구동성으로 감사원의 감사 과정에서 대학의 자율성에 많은 상처를 입었다는 점이 토로되었다. 또한 이 초유의 사태에 대교협이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했으며, 결과적으로 대교협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인 발언까지 제기되었다.
이날의 회의 과정에서 산고를 거듭한 끝에 대교협이 밝힌 세 가지 입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대학의 자율성은 어떤 경우에도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백년대계인 교육의 미래를 위해 발전적인 논의로 전환해야 할 때이다. 셋째, 대학은 국민뿐 아니라 대학 구성원의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하고 스스로 뼈를 깎는 아픔을 감수하는 개혁방안을 자율적으로 마련하고 실천할 것이다. 물론 당면과제의 대응 수위를 바라보는 입장에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이 성명서에 담긴 고뇌와 함축을 헤아리면서 우리나라 대학 및 대교협의 나아갈 길을 물어보고자 한다.
먼저, 대교협의 구성원으로서 대학이 맞고 있는 위기에 대해서이다. 대교협 회원교들이 당면한 일차적 위기는 등록금 반값이라는 폭격이다. 이것은 도덕과 예산의 이원적 충격이다. ‘대학재정 운영실태’의 감사원 감사 결과를 지켜보는 국민들이 대학경영에 대해 따가운 시선을 보냄으로써 진리의 전당이 회복하기 어려운 도덕적 상처를 입게 된 것이다. 위기의 더 엄혹한 실상은 반값 등록금으로 대학의 살림살이를 꾸려가기 어려운 데 있다. 매년 증가하는 물가상승에 대응하고 우수한 교수 및 학생을 확보해서 양질의 교육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필요 충분한 예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 점에 있어서 사정이 더 열악하기로는 재정 확보의 대부분을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국립대학일 것이다.
대교협 회원교들이 당면한 또 다른 위기는 우리 대학이 타성이라는 수렁에 빠져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몇 년 간 대학을 걱정하는 목소리 가운데 우리 대학들이 백화점 식으로 획일화됨으로써 선호학과·입시·교육과정·교육방식을 비롯하여 도서관의 장서 면에서도 특성화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반복되어 왔다. 현장에서는 늘 구식인 ‘현장 중심 실용주의 교육’의 한계, 복수전공 및 부전공으로 인해 한층 더 약화된 전문성, 그리고 인성 교육의 부재를 두고 “우리는 지금 정신적으로 굶어 죽게 생겼다.”고 한 노교수는 개탄한다. 한마디로 치열한 대학정신을 잃어가는 타성이야말로 우리의 더 큰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무엇보다도, 대학이 당면한 위기를 제대로 읽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반값 등록금’으로 대표되는 대학의 도덕적 상처 및 재정적 위기, 그리고 학문의 바다 한가운데를 버린 채 파고 없이 평온한 해수면을을 찾아다니며 타성의 수렁에 빠져가는 현실. 이 위기를 읽고 대처하는 방식은 대학마다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단연코 그 차이가 장차 대학의 명운을 가늠하는 지표가 될 것이다. 이 위기를 체감하지 못하거나 외면하는 집단, 설령 체감했다 하더라도 소통을 통해 변화하거나 도전하지 못하는 집단은 공룡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이다. 대조적으로 위기의 한복판에 뛰어들어 이 현실과 정면 대결하는 집단, 선장과 함께 구성원들이 고통을 분담하면서 파고를 헤쳐 나가는 집단은 풍랑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더불어, 대학이 자기 확인을 통해 새로운 항해를 시작하는 일이다. 나라 안팎에서 진행되는 무한 경쟁의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디에 있으며, 어디로 갈 것이며, 그 어디를 어떻게 가야 할지를 냉정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지구촌을 선도하거나 그 대열에서 뒤처진 대학들을 살펴 타산지석으로 삼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된다. 어설픈 진단에다가 남을 탓하는 데만 열을 올리거나 눈가림식 처방에 급급하다 보면 이런 기회가 더 이상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실로 오늘날 우리 대학은 정기항해를 수행하는 일 이외에, 창의적 인재 육성을 위해 블루오션을 탐색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된 것이다.
요컨대 길을 묻는 우리에게 스티브 잡스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고 말한다. 이런 상황을 두고 맹자는 “우환이 나를 살릴 것이요, 안락이 나를 죽일 것이다.”고 하며, 장자의 목계지도(木鷄之道)에서는 “아직 멀었습니다.”고 가르친다. 이 절박함과 겸허함의 인식은 자율성에 기반해야 하며, 도덕성에 뿌리를 두어야 하며, 가치에 생명을 걸어야 마땅하다. 그런 뜻에서 장차 대교협은 우리 대학의 위기를 한층 더 절실히 읽고 보다 더 슬기롭고 적극적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광장으로서 어느 때보다 그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총장소개)
경북대학교 의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교 의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부산대학교 의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북대학교 교수,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장, 보건대학원장, 수사과학대학원장,
(일)동경대․(미)피츠버그대 객원교수 및 대한신경외과학회 상임이사, 대한뇌신경과학회 이사 등을 역임하였다. 2010년 9월 경북대학교 총장으로 취임하였으며, 현재 한국연구재단 이사,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이사(대학평가인증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 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