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홀한 외출
이향숙
오늘은 아들과의 데이트다. 손녀가 일 년 동안 닦은 재주를 발표하는 학예회 날이다. 아들은 아이들 학예 발표 보려고 일부러 휴가를 냈다. 공연을 제대로 잘 보려면 앞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래서 공연 시작 시각보다 이십 분이나 일찍 도착해도 이미 많은 사람이 공연장의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뒷자리에라도 앉을 수밖에 없었다. 5학년 큰 손녀는 인디언 춤, 2학년 손녀는 오카리나 합주였다. 여러 곡을 연주하는데도 한 사람도 돌발 음이 나오지 않고 잘했다. 춤이나 오카리나 등 오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춤사위 하나, 음정 하나도 틀리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이 대견했다.
아들은 앞으로 나가 손녀의 합주 모습을 동영상에 담고 있었다. 다른 학부모들도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앞으로 나와 찍고 있다. 나는 합주하는 손녀를 보는 순간 아들이 어렸을 때 갖가지 공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이렇게 어른이 되었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개구쟁이 어린이가 사회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대견하여 흐뭇하게 지켜보았다. 오늘 공연을 마친 이 아이들도 각자의 소임을 다하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진다. 학예회가 끝나고 나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었다.
“엄마 여기 음식 잘하는 집 있어 밥 먹고 들어가자.”
“그래, 그러자”
나는 아들과 둘이 식당을 향해 걸었다. 어렸을 때 손잡고 다니다가 성인이 되어 단둘이 이렇게 걷는 감정이 묘했다. 어려서 그 사랑스러웠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든든함이었다. 행복의 농도가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한 데이트 시간이었지 싶다. 남편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같이해온 그 어떤 시간도 오늘 같은 감정은 느껴보지 못했다. 식당에서도 엄마가 좋아하는 비빔냉면이 없는데 물냉면이라도 시킬까 하며 묻는다. 키울 때 여러 가지로 성가시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그런 아들이 성인이 되니 어엿한 나의 바람막이가 되어 준다.
인생에 연습이 없으니 후회할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젊어서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런 마음을 안다면 아기를 낳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생산적인 일은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잘한 일이 자식을 낳아 기른 일이다. 이런 아들을 키우지 않았다면 어찌 오늘과 같은 날이 있었을까. 국가를 위해서나 나를 위해서나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깨닫는다.
노후에 자식이 없었으면 얼마나 삭막했을까. 아이는 태어나 열 살 이전에 효도를 다 한다는 말은 서양에서나 있을법한 일이다. 우리나라는 서양사고 하고는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기였을 때 무한한 기쁨을 주었지. 학생 때는 애를 끓이느라 행복한 줄을 몰랐다. 남들처럼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했고 좋은 대학에 보내지 못한 것이 부모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했다. 다른 부모들처럼 충분한 뒷받침을 해주지 못해 마음에 편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전 아들이 내게 말했다.
“엄마 나 때문에 속 많이 상했지! 이제는 앞만 보고 갈 거야” 엄마 욕심을 다 채워 주진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생활에 어느 정도는 만족한다고 말했다.
“엄마의 노후가 행복한 건 네가 착실하게 잘살아준 덕분”이라 고맙다고 말했다. 서로를 위하는 마음 이것이 가족이 아닌가. 부모와 자식 아들과 딸 이런 관계가 얼마나 소중한가. 각자 흩어져 살아도 위기가 닥치면 한마음으로 뭉쳐 헤쳐나간다. 서로를 다독이며 사랑할 수 있는 것도 가족이 아니면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결혼 시기를 미루어 나이가 점점 많아진다. 아기를 낳을 수 있는 기간이 자꾸 짧아진다. 오히려 비혼주의를 앞세우며 가정을 피하는 경향도 있다.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것 같다. 그런 이기주의적인 젊은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면 즐거워진다. 누구를 위해주거나 관심을 가지는 마음은 자신도 같이 행복해지는 일이다.
누구라고 하면 모두가 알만한 연예인이 젊어서 혼자가 편하고 구속되는 것이 싫어서 결혼을 멀리했다고 한다. 자유롭게 혼자 살아온 그는 육십 대가 되니 삼십 대의 자기 생각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후회했다. 늙어보지 않았으니 그 마음을 어찌 알았겠는가. 인생은 후회를 반복하는 것이 아닐까. 후회가 두려우면 성공도 없는 법이지. 기왕에 살아가는데 결혼해도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거라면 차라리 하고 후회하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 결혼하면 자식을 얻고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도 있으니까.
나만 편하게 잘살겠다는 마음은 잘못이다. 그렇다고 행복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가족은 이루어질 수 없다. 부모는 자식으로 인해 마음이 단단해지고 진정한 어른이 되는 길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한다. 그렇지 않아도 인생은 외로운 것인데 평생을 혼자서 살아간다면 얼마나 외로울까. 젊어서는 모르지 늙어봐야 알 일이다. 몸이 아프면 어디에 의지할까. 혼자 있는 젊은이들을 보면 자꾸만 측은한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의 기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