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공고 자소서 항목
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3.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4. 자신이 어떠한 일에 가장 크게 몰입해서 ‘재미있고 즐겁게’ 했던 경험에 대해 기술하세요.
- 몰입하게 된 이유, 그 과정에서 얻은 점과 잃은 점 (1000 자 10 단락 이내)
5. SK건설에 지원한 동기는 무엇이며,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 [1] 합격 자소서 By. 삼별초
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진로를 위해 실무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STX조선해양에서 4주간 현장실습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실습이 시작되고 OJT를 받으며 두 가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첫 번째로, 업무시간 배분능력의 부족이었습니다. 기술기획팀의 업무 파악과 주어진 과제에 대한 자료조사, 회의 참석 같은 여러 가지 업무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처음이었기에 몇 일간은 제대로 업무파악도 하지 못했고 혼란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빠른 적응을 위해 OJT 관리 프로그램을 이용했습니다. 아침에 출근 시 당일 해야 할 일을 프로그램에 미리 입력하여 적절한 시간배분을 위해 노력했고, 퇴근 전 당일 업무시간 관리에 대해 반성을 하며 다음 날의 계획을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업무시간 동안 일의 우선순위를 두고 계획을 세워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능력을 길렀습니다.
두 번째로, 프레젠테이션의 압박이었습니다. 플랜트에 관한 주제를 받아 파트원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그 후 지도사원들이 피드백을 해주었습니다. 주제도 어려웠고, 지도사원들의 촌철살인같은 피드백은 저를 더욱 주눅 들게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피드백을 발판 삼아 더욱 노력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의견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는 연습을 했으며, 손짓이나 어투를 생각하면서 리허설을 반복했습니다. 또한 모르는 내용은 멘토사원에게 자문하고, 플랜트에 관련된 서적과 신문 기사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끈기를 길렀습니다. 그 결과, 처음에 지적받았던 부분들을 보완하여 마지막 발표 때는 칭찬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의 노력으로 실습평가에서 최우수 성적을 받을 수 있었고,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플랜트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면서 저의 진로에 대해 확신을 가졌습니다. 또한 설계의 시작부터 인도까지의 전체 스케쥴을 짜고 관리하는 기술기획팀에 있으면서 많은 유관부서들 간의 협업하는 모습을 보며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2.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으며, 소모임에서 동아리로 승격된 '발리스타'란 단체가 있습니다.
신입생 시절, 축구에 관심 있던 저는 기계공학부 축구동아리이자 학교에서 유명한 신화창조에 가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빡빡한 연습일정과 축구부를 같은 훈련강도가 부담되어, 축구소모임 '발리스타'에 가입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소모임이라 체계도 갖추어져 있지 않았으며, 모임원들의 참여율 또한 저조했습니다. 발리스타에 큰 애정을 갖지 못한 채 군대를 갖다온 뒤 다시 발리스타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군대를 가기 전과 달라진 게 없었지만, 딱 하나 저와 동기들이 주축이라는 것이 전과 다른 점이었습니다. 저는 회장을 맡아 학교대회에서 3승을 목표로 정하고 발리스타를 바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첫 번째로, 본래는 없던 학기회비를 걷어 체계적인 운영을 꾀했습니다. 평소에는 식비와 구장 사용료, 차비를 경기 당일 대중없이 걷었으나 이를 회비로 대체함으로써 모두가 공평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한 회비를 이용하여 초반에는 강제적으로라도 참여율을 높였지만, 날이 갈수록 자발적인 참여의지로 소속감과 연대감이 높아졌습니다.
두 번째로, 매주 상대팀을 섭외하여 팀의 수준을 알게 하여 승부욕과 의지를 이끌어내고자 했습니다. 친목을 위해 하는 축구도 좋지만 목표를 정한 이상 실력도 보강해야 했습니다. 따라서 실력과 참여율에 따라 주전과 후보를 배정하여 스스로 노력을 하게끔 만들었습니다.
6개월간의 노력으로 2승이라는 쾌거를 이뤘고, 전과는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습니다. 2012년에 들어 더욱 활발한 활동을 통해 많은 신입생들과 복학생이 가입을 하여 20명이었던 인원이 48명까지 늘어났습니다. 늘어난 인원만큼 소모임이 아닌 동아리로 활동하기 위해 과동아리 신청을 했습니다. 1년간의 성과로 인해 정식동아리로 승격되어 동아리방을 얻을 수 있었고, 효원배 3승이라는 목표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동료들의 도움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조직은 여러 사람의 협업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3.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GENTLEMAN, 축제를 바꾸다]
팀워크를 통한 발상의 전환으로 저를 환기시키는 일은 언제나 가슴 뛰는 일입니다. 지난 학기, 대학시절 마지막 추억을 남기기 위해 친구 16명과 ‘젠틀맨’ 이라는 팀을 만들어 학교 축제에 참가했습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말이 있듯이 많은 인원 때문에 축제 기획을 시작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각자 하고 싶은 주제들로 많은 의견 충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효과적인 기획을 위해 5개의 파트로 분담하여 진행하기를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주제를 바로 정하기보다는 차별성, 흥미, 이목집중과 같은 키워드를 정해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파트간의 활발한 의사소통을 통해 많은 아이디어를 도출했습니다.
많은 회의 끝에 똑같은 대학 축제 주막의 이미지를 탈피하여 저희 팀만의 특색을 각인시키기 위해 칵테일을 팔기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자리가 좁고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는 점과 유동인구가 많을 것을 고려하여 비닐봉투를 이용한 테이크아웃을 하기로 했습니다. 소비자의 상황을 고려하고 다른 곳과는 차별성을 둠으로써 큰 효과를 볼 것 이라 기대했습니다. 더불어 저희를 알리기 위해 SNS를 이용한 홍보활동을 했습니다. 팀의 페이지를 만들어 축제 한 달 전부터 포스터를 제작하고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꾸준히 업로드 했습니다. 처음에는 홍보가 많이 안되는 듯 했으나, 날이 갈수록 많은 댓글이 달렸습니다. 축제 전 날은 저희 페이지를 본 사람 수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축제 기간 중 반응은 폭발적이었습니다. 그 결과 자본금 65만원으로 200만원의 순이익을 기록했으며, 축제 주막 중 기획이 완벽한 팀으로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또한 공대생임에도 축제를 기획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분들이 놀라워했습니다.
새로운 변화를 통해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축제를 만든 것은 물론이고, 만족스러운 결과 또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세상을 환하게 밝혀 주는 발전플랜트를 만들어 행복한 삶과 더 나은 세상을 추구하는 SK건설과 뜻을 함께 하고 싶습니다.
4. 자신이 어떠한 일에 가장 크게 몰입해서 ‘재미있고 즐겁게’ 했던 경험에 대해 기술하세요.
- 몰입하게 된 이유, 그 과정에서 얻은 점과 잃은 점
[전신마취를 할 때까지 일하겠습니다.]
제 겨울 취미는 ‘스노보드’입니다. 처음 스키장을 가서 넘어지기를 수십 번 반복하면서 S턴까지 하였습니다. 무언가를 한번 시작하면 정상까지 가야지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 탓에 goofy 자세, carving 등 완벽하게 하기까지 한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손목, 주상골 골절로 인하여 세 번의 전신마취를 하여도 포기하지 않고 보드를 탔습니다. 이런 저를 보면서 사람들은 왜 하느냐고 그러지만 새로운 기술을 못 하다가 포기하지 않고 끝내 하였을 때 그 기쁨은 말로 표현 못 할 정도입니다. 한번 시작하면 포기하지 않는 책임감으로 SK건설 선배님들과 함께 세계의 무대에서 1위를 할 때까지 저의 역량을 힘껏 발휘하고 싶습니다.
[나만의 F1 그랑프리]
차를 구매하면서 자동차 동호회 가입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동호회 튜닝 게시판을 보던 중 그 매력에 빠져서 한번 해보자고 하여 ECU 튜닝부터 서스 등 다양하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자동차 튜닝을 시작하면서 “절대 남에게 피해를 주는 튜닝은 하지 말자!”라는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내 차의 성능을 끝까지 테스트할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집 근처 안산에 서킷이 있다는 사실은 확인하고 바로 서킷을 갔습니다. 하지만 개인에게는 개방해 주지 않고 동호회나 단체로 할 때 개방을 해주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돌아가면서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하면 더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였고, 저는 지역장의 허락을 구하고 주최하여 서킷을 섭외하였습니다. 준비하는 과정이 처음이라 서툴렀지만, 회원들은 이해하였고 그에 보답하려고 밤을 지새워 노력하였습니다. 당일 많은 분이 와주시고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가졌습니다. 앞으로 제가 맡을 업무가 기존에 접하지 못한 새로운 일일 수도 있고, 제가 경험해 보았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저는 그 중 무엇에서도 도전정신을 발휘하여 동료들과 최대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SK건설 인재가 될 것입니다.
5. SK건설에 지원한 동기는 무엇이며,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현재 나온 기관들의 효율보다 1%라도 더 높은 효율을 가진 기관을 만들 수 있는 엔지니어가 되는 걸 목표로 삼아라'
열역학과목의 최경민 교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때 부터 저는 열에너지 쪽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를 해왔습니다. 현장실습을 통해 플랜트를 알게 되고 자연스럽게 플랜트 엔지니어가 저의 목표가 되었습니다. SK건설에 입사 후 배관설계 엔지니어로써 지속적인 자기계발을 통해 5년 안에 전문성을 갖춘 엔지니어로 발돋움할 것입니다. 최근 SK건설이 스페인, 이탈리아 기업들을 제치고 수주한 칠레 석탄화력발전소처럼, 전문성을 토대로 외국 엔지니어링 회사보다 더욱 앞서나가 100%자체 기술력으로 플랜트를 만드는 데 큰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엔지니어의 기본 소양을 갖추기 위해 직무에 대한 전공지식을 쌓았습니다. 대학 4년 동안 설계 과목들을 수강하면서 기초설계부터 상세설계, 설계 프로그램을 통한 모델링 그리고 제품제작까지의 과정을 수행한 경험이 있습니다. 특히 유체역학, 응용유체역학, 열역학, 응용열역학을 수강하면서 열유체의 특성에 대한 이해도를 높였습니다. 그리고 플랜트 설계 엔지니어로서의 역량을 높이기 위해 P&ID와 PIPING PLAN을 바탕으로 PDS를 이용한 3D MODELING 공부도 틈틈이 하고 있습니다.
또한 학업 외 12개월간의 멘토링 활동과 16개월간의 근로장학생 활동을 통해 성실함과 책임감을 길렀습니다. 빠듯한 학과일정이었지만 책임감을 가지고 멘토링과 근로장학생 활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성실함과 책임감은 설계 중 발생하는 오작을 줄이고 납기일을 지켜야 하는 설계파트에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인성적인 측면이 업무에서 잘 활용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SK건설 플랜트사업은 그 동안의 성공적인 프로젝트 수행경험을 바탕으로 플랜트 사업의 Global Top Tier로 성장할 것입니다. 그 성장을 이룩하기 위한 톱니바퀴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달려가는 SK건설인이 되고 싶습니다.
■ [2] 합격 자소서 By. 강돌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나는 지구인
SK그룹과 타 기업과의 가장 큰 차이는 '인류애'일 것입니다. SK의 Madagascar급식소 등의 사회공헌을 보면 Promotion이 아닌 순수한 인류애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세계를 타겟이 아니라 '같은 주체'로서 파악하는 것, 이것이 제가 SK에서 일하고 싶은 이유입니다. 저도 이러한 조류에 동참하고 한국인을 넘어 '지구인'으로서 살아가려 합니다.
때문에 저는 국내외를 넘나드는 '글로벌한 현장관리자'가 되고 싶습니다. 처음엔 국내현장을 가장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누구의 손으로부터 어떻게 인류최고의 산물이 나오게 되는지를 철저히 분석하고 파악할 것입니다. 이후엔 시야를 넓혀 SK가 현재 더 나아가야할 개척분야의 현장에서 힘을 쏟고 싶습니다. 현재 SK건설은 세계 곳곳에 퍼져있지만, 아직 취약한 분야가 러시아 및 CIS지역입니다. 이 지역은 광대한 영토와 자원을 보유하고 있기에 특히 건설회사로서는 무한한 가능성의 땅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리적 여건이나 점점 안정되고 성장하는 러시아권국가 정세를 봐도, 분명 근시일내에 우리나라와 막대한 경제협력 가능성이 있는 지역이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해외 진출 시 필수로 요구되는 해당지역의 '언어'를 공부했습니다. 또 연수기간동안 그들의 문화와 삶을 이해하기 위해서 2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소수민족문화축제에 참여하기도 하고, 우크라이나와 모스크바를 탐방하기도 했습니다.
또, 관리직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조직구성원들과의 긴밀한 '소통능력'과 구성원들이 '같은 꿈'을 공유토록 하게 하는 능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저는 창립이래 가장 성공한 축제를 개최한 고교학생회장, 소통의 문화를 퍼트린 사법시험준비반장, 이어지는 의지를 지킨 동아리회장 등의 경험에서 '소통'과 '같은 꿈'의 Leadership을 익혀왔습니다.
이런 저의 경험과 앞으로의 길은, 인류의 행복한 삶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려는 따뜻한 프로페셔널의 길과 분명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 [3] 합격 자소서 By. 백만볼투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우연히 "중동 플랜트강자 한국"이라는 TITLE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습니다. 처음 플랜트산업에 대해 관심을 갖은 것도 그 기사를 본 후였습니다. 뉴스에서 들어 본적은 있지만 학교에서 따로 배우지는 않았던 분야이기에 호기심이 생겼고 이를 계기로 플랜트 전문 인력 양성 교육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교육 중 다양한 건설업체 강사님들의 강의로부터 더욱 흥미가 생겼고 실제로 플랜트 현장을 경험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여 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복합 화력발전현장에 지원하여 인턴 생활을 하였습니다. 짧은 시간 이였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보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협력업체 및 시공관리를 시작으로 수많은 VENDOR로 부터의 자재 조달, 현장 여건에 맞는 도면 변경, 시공시방서 및 TEST SHEET 승인 획득, SCHEDULE 및 공정 관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향후 사업관리 직무에 있어 빠르게 흡수 하고 적응 할 수 있는 발판이 될 것이며 맡은 분야 뿐 아니라 전 분야에 두루 관심을 갖고 저만의 역량을 확장 시켜 나가며 플랜트에 특화된 전문 인력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 할 것입니다.
■ [4] 합격 자소서 By. 캐논데일이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저의 추진력 넘치는 도전 정신과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SK건설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준비를 해왔습니다. 먼저, 대학교에서 토목을 전공하였으며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더욱 더 습득하기 위해서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 토목기사와 건설재료시험기사를 취득하였습니다. 이론으로는 부족한 저의 실무 경험을 기르기 위해서 실제 택지개발조성사업 공사 현장에서의 경험을 쌓았으며 7개월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공사 현장에서의 시공관리 및 공사 관리에 대해서 알 수 있었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동안 시공 및 현장관리 분야에 있어서 현장 근무자분들과 협력업체 및 발주처, 시공처 등의 업무를 숙지할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 전 직원들이 함께 철저한 감독 및 점검을 통해서 위험 요소를 줄이고 무엇보다도 현장에서의 실무 경험을 통해서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문제들에 있어서 해결하는 방법을 직접 배울 수 있었으며, 사람이 함께 사는 사회인만큼 공사현장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민원 발생 시 대처 요령 등을 숙지해서 누구보다도 빨리 현장 상황에 적응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SK건설 품질 및 시공관련 분야에서 저의 역량을 발휘해서 철저하고 안전한 품질 관리부터 시공까지 프로젝트를 수행해서 최적의 공정과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기여를 하겠습니다.
■ [5] 합격 자소서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최우수 튜터링팀 열역학 팀!"
저는 2010년 2학기 중 교내에서 실시하는 튜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튜터링이란 기존에 A+ 또는 A, 즉, 우수한 성적을 받은 기 수강생이 튜터로서 그 프로그램에 지원했지만 지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원한 과목은 열역학이었습니다. 평균 2~3명의 튜티들이 지원한 반면 제 반에는 무려 6명이나 지원하는 등 폭발적인 반응이 있었습니다. 다른 팀보다 많은 튜티들을 지도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다가왔지만 다른 한 편으로 들었던 생각은 '날 믿고 지원해준 이 사람들을 온 힘을 다해서 지도하고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이겠다.'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각각의 학습 성취도 차이가 천차만별이지만 뒤처지는 인원을 모두 천천히 이끌고 가기에는 우수한 성취도를 보인 인원들이 손해를 본다는 것이었습니다. 소규모 그룹의 강의이기 때문에 이 점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습니다. 게다가, 한 그룹의 지도자가 된 것도 누군가를 지도하는 것도 처음이었기 때문에 프로그램 초반에는 굉장히 우왕좌왕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한 방법은 매주 강의를 한 후 피드백을 받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써 저는 개개인의 학습 성취량을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고, 추후 지도 방향을 쉽게 정할 수 있었습니다. 같은 시간 동안 지도를 받지만 적절한 시간분배와 차별화된 교육자료를 이용해서 튜티들을 지도했습니다. 이렇게 하루하루 발전하면서 중간고사, 기말고사를 치르게 되었고 모두가 목표했던 것보다 우수한 성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과정이 끝나고 시상을 하게 되는데, 저희 팀이 수십팀 중에서 상위 3팀에 속하게 되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어느 그룹의 리더 역할과 강사 역할을 병행하는 굉장히 어려운 시간이었지만, 이를 통해 팀을 이끌고 지도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 [6] 합격 자소서
우리 회사를 지원하게 된 동기와 희망직무 및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십시오. (9줄 이내)
『 SK건설과 저는 바라보는 곳이 같습니다. 』
‘SK건설은 한발 앞서 갑니다’ - 국내최초 "Easy-odrer system" 도입으로 반주문식 아파트 시공, 업계 최소 아파트에 브랜드 도입, 세계 최고의 터널발파기술 Supex-cut공법등 SK건설은 선도적인 입지를 굳혀왔습니다.
‘SK건설은 튼튼합니다’ - 9조원 이상의 수주잔량을 확보, 쿠웨이트에서만 매년 1조원 이상의 대형공사 수주, 태국 플랜트 사업에서의 우위 등 SK건설은 흔들림이 없습니다.
저에게도 SK건설과 같이 “믿음직스럽고 진취적인” 시공엔지니어가 되겠다는 꿈이 있습니다. SK건설은 시공엔지니어로서 살아있는 랜드마크(land mark)가 되겠다는 제 꿈을 펼치기 위한 최고의 이인삼각(二人三脚)의 동반자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에 대해 기술하십시오. (9줄 이내)
- 성장과정, 자신의 강약점(각각 3가지 이상), 가족사항 등 –
“스스로 반성하고, 스스로 길을 찾아라” 제가 초등학교도 다니지 않던 어릴 적 부모님께서 제가 떼를 쓰곤 하면 절 다른 동네에 버려두고 가시면서 하시던 말입니다. 그럼 전 울음을 멈추고 동네 어른들께 길을 물어 혼자 집을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때는 부모님이 야속하기만 했고 초면인 어른들께 길을 여쭙는 것이 어렵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어려움이 있을 때 항상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제 자립심과 적극성은 그때부터 만들어 진 것 같습니다. 자율성을 중시했던 집안 분위기에 따라 어려서부터 방 청소나 실내화를 혼자서 빨기도 하고 혼자서 해야 할 일은 찾아서 하면서 독립심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한 번도 부모님께 용돈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저의 이러한 면들로 인해 수업관련 프로젝트나 실험 등을 수행함에 있어서 항상 주도적인 입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삶 속에서 겪은 사회생활과 해외경험에 대해 서술하십시오. (9줄 이내)
-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사회활동, 해외연수 경험 등 -
『 생각한 것은 무조건 행동으로 옮긴다! 』
2001년 단국대학교 신입생 시절 “건축구조연구회”를 창단하여 Teamwork의 중요성을 익혀왔으며 창단 2년 만에 교내 학술제에서 “제주월드컵 경기장”의 트러스 구조적 측면접근으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방학이나 주말을 이용해 자진해서 대학원 선배들의 실험을 도와가며 경험을 쌓았습니다. 주로 내진실험의 일환으로 “감쇠기”를 이용한 실험들이 그 주된 내용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대학생활 동안 롯데제과 창고관리, 음식점, 할인마트, 주점, 당구장, PC방, 과외 등 총10회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사회생활을 미리 연습해 왔으면 특히, 3개월 반 동안의 창원 “대우건설 아파트 현장 아르바이트”와 2개월의 창원 “롯데백화점 건설현장 아르바이트”를 통해 건축현장을 미리 경험했습니다.
내 삶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십시오. (15줄 이내)
- 사건, 원인, 과정, 결과를 중심으로 -
예)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실패사례 및 가장 큰 성취사례
『 홍/길/동 생일은 222, 행동은 E.E.E 』
끈질김(Endurance)과 노력(Effort), 사람을 대할 때의 웃음(Enjoy)으로 대학시절 소중한 성취감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2005년 ‘건설경영’이라는 전공수업 때 건축 공사현장을 방문, 견학하여 3달간의 공정변화와 현장상황관련 보고서 제출 과제를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처음 잠실에 아파트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소식에 무작정 찾아갔지만 건설현장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입구에서 제지를 당했습니다. 3달간 공정변화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0번 이상을 방문해야 했고, 또한 공사 중 세밀한 사진촬영이며 인터뷰도 해야 했기에 공사에 방해가 될 수도 있고 위험하기도 하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위치적으로도 공사 진척 상황면에서도 놓칠 수 없는 현장이었기에 매일 찾아가서 부탁을 했고 거절당하면서도 웃는 모습으로 1주일간 끈질긴 방문과 요구에 승낙을 받았습니다. 대학생으로서 열의가 있다는 칭찬과 함께 현장 소장님께로부터 직접 공사 개요 및 전반에 관한 설명도 듣고 현장기사도 한명 동반시켜주어서 3달간 보고서를 작성 하는데 있어서 많은 도움을 얻었고 A+라는 좋은 학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행운은 자신이 지속적으로 노력하는 가운데 얻어지는 열정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제 생활신조에 확신을 가질수 있었고 모든일이든 웃으면 노력하는 마을가짐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기타 우리 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술하십시오. (5줄 이내)
『 신입사원일 땐 적극적인 발(足)이, 10년 후엔 행동하는 손(手)이, 20년 후에는 SK건설의 생각하는 머리(頭)가 될 것입니다 』
저는 SK건설에 입사 후 많은 현장 경험과 부족한 점, Know-how, 건설동향(動向) 등을 스스로 정리할 것 입니다. 그리고 20년 후에는 SK건설에 머리(頭)가 되어 2007년 “글로벌화”를 경영전략으로 내세웠듯 새로운 “성장엔진”을 제시하고 추진하고 싶습니다.
■ [7] 합격 자소서 By. 영일영일
1. 우리회사를 지원하게 된 동기와 희망직무 및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십시오. (9줄 이내)
게임에서 지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며 최선을 다 하지 않는 모습은 더욱 싫어합니다. 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이 되려하며 노력하는 모습을 가지고자 합니다. 시도도 하지 않고 안 될 것 같다는 것은 부끄럽다고 생각합니다. SK건설은 더 많은 도전이 필요하며 제가 적합한 인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도전을 기다리지 않을 것이며 도전을 찾겠습니다.
SK건설의 플랜트 분야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특히 해외 건설 프로젝트에 직접 참가하고 싶으며 SK건설이 한국의 건설을 리드하는 현장에서 뛰고 싶습니다. 제 손으로 직접 SK건설이 플랜트 사업 분야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합니다.
2. '자신'에 대해 기술하십시오. (9줄 이내)
- 성장과정, 자신의 강약점(각각 3가지 이상), 가족사항 등 –
<성장과정>
아버지께서는 저를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키우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되도록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시키셨고 자존심과 창피함보다는 자신감과 떳떳함을 가르쳐 주시려고 노력하셨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남보다 못한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지 않는 모습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강점>
1. 하고자 하는 의지
2. 할 수 있다는 긍정적 사고
3. 즐길 줄 아는 열정
<약점>
1. 꼼꼼함에 따른 일처리 속도
2. 하고 싶은 말은 다하려는 태도
3. 적은 주량
<가족사항>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여동생
3. 나의 삶 속에서 겪은 사회생활과 해외경험에 대해 서술하십시오.(9줄이내)
-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 사회활동, 해외연수 경험 등 –
<폭넓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능동적으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였으며 힘든 노동이 필요한 아르바이트를 통해 의지력을 갖고 싶었습니다. 주야교대 근무를 했던 사출성형공장, 마트직원, 학업 중에 했던 편의점 야간 점원 등으로 부모님께 저의 의지를 보여주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고용주에게는 약속한 근무기간을 지켜 신뢰를 얻고자 하였습니다.
<열정(熱情)을 가지고 젊음을 즐기자!>
복학 후 야구부에서 새로운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복학생이라 부원으로 받아주려 하지 않아 일주일간 야구하고 싶다고 매일 동아리 방을 찾아 갔던 것이 생각납니다. 훈련을 같이 해보고 좋은 태도를 보이면 부원으로 받아 준다고 하기에 열심히 뛰었습니다. 결국 부원으로 받아 주었고 매니저 역할도 하게 되었습니다. 수도권 대학 리그에서 8강까지 오르는 결과도 있었습니다.
4. 내 삶에 있어 가장 기억에 남는 일에 대해 상세히 기술하십시오. (15줄 이내)
- 사건, 원인, 과정, 결과를 중심으로 -
예)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실패사례 및 가장 큰 성취사례
<학자금을 스스로 마련하였습니다.>
제가 가장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은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던 저의 모습입니다. 그동안의 시간이 저의 큰 자산이라고 생각하며 제가 이룬 성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자신의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저는 멋지게 시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저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했습니다.>
대학수학능력 시험에서 좋지 못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재수를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대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학교생활을 원만하게 적응하지 못하였고 방황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 군대를 빨리 입대하였고 패배주의에 젖어 현 상황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모습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이후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생각하며 인생을 스스로 개척하는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5. 기타 우리회사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기술하십시오. (5줄 이내)
<SK건설을 세계 제 1의 건설회사로 만들겠습니다.>
SK건설은 세계를 무대로 하는 Global 기업입니다. 지금의 SK건설을 이루어 놓으신 선배들의 아성(牙城)을 넘고 싶으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가겠습니다. 더 큰 꿈을 갖은 자는 더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을 주고자 하는 SK건설의 Vision에 매료되었고 저를 기꺼이 투자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 [8] 합격 자소서 By. bbsug8731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대학 4학년 때입니다. 제 담당 교수님께선 참신하고, 실용적인 제품 만들기라는 프로젝트를 주셨고 저는 그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았습니다. 처음엔 정말 막막하였지만 한번 해보자는 생각으로 많은 자료를 조사한 결과, 기존의 음악 분수는 분수의 패턴을 미리 입력해 놓고, 지정된 음악 밖에는 표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것을 개선하여 어떤 음악이 나와도 사람이 리듬감을 느낄 수 있게 반응을 하는 음악 분수를 만들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디어만 생각하면 척척 일이 진행 될 것 같았지만 그게 아녔습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전부 저에겐 큰 벽 같이 느껴져 '다른 주제로 바꿀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책과 인터넷 그리고 여러 지인을 이용하여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 나갔습니다. 외관을 구상하고 회로도 구상했습니다. 모의 회로를 만들어 한 실험도 성공적으로 진행하였습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분수의 리듬감이 음악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음악과는 달리 펌프에 의해 쏘아지는 물의 속도가 너무 느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약 일주일 동안 실험실에서 살다시피 하며 실험을 거듭하였지만,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항상 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러던 중 올라가는 물줄기 보다 떨어지는 물줄기가 훨씬 빠르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음악 분수'가 아닌 '음악 비(rain)'를 만들기로 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성공적으로 프로젝트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막막하기만 하던 프로젝트를 갖가지 노력 끝에 성공하니 그 보람과 성취감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하면 어떤 문제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FC 보헤미안]
제게는 제 손으로 일구어 낸 축구팀이 있습니다. 위의 제목은 제 축구팀의 이름입니다. 이 축구팀이 제가 이룬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합니다.
전역 후 비슷한 시기에 복학한 4명의 친구와 함께 운영해온 축구팀입니다. 처음엔 충분한 인원이 나오지 않아 다른 축구팀과 인원을 합쳐 축구를 하곤 했습니다. 이 팀을 키우기 위해서 저희는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첫째, 팀의 인원을 늘리기 위해 학기 초에 학교 전체를 돌아다니며 홍보전단을 돌렸습니다.
둘째, 매주 운동장을 예약하였고 여러 축구팀과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매주 경기를 잡았습니다.
셋째, 4명뿐이지만 각자의 직책을 정하고, 그 직책에 따른 할 일을 나누어 활동하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총무 역할을 맡아 매월 회비를 거두어 팀에 필요한 물품 구매, 음료수 사기, 하계 동계 MT 등을 계획하였고, 친구들도 회장, 부회장, 등을 맡아 각자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이런 노력 덕분이었는지 저희 축구팀은 점점 커졌고, 3학년 때에는 외국인을 포함해 30명이 넘는 팀으로서 체계를 잡아 나갈 수 있었습니다. 팀이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더욱 열심히 활동하였고, 3학년 2학기 때 열린 교내 축구 대회에서 4강 진출이라는 믿을 수 없는 성적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특히 강팀이라고 소문이 나 있던 학교정식축구동아리를 제압한 것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제 자랑거리입니다.
팀을 운영해 나가면서 처음엔 작은 씨앗이 열정으로써 큰 열매를 이루는 것을 몸소 체험하였고, 저라는 작은 씨앗이지만 SK건설에서 큰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습니다.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자신과의 싸움]
지난 겨울 저의 취업 의지를 다지기 위해 혼자 자전거 국토 종주를 다녀왔습니다. 약 700km의 거리를 4박 5일만에 완주할 것을 목표 삼고 국토종주 출발점인 인천으로 갔습니다. 평소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하였습니다. 하지만 첫날, 추운 날씨와 싸우며 150km의 자전거 라이딩을 한 결과 제 무릎에 이상이 생겼습니다. 오른 무릎이 슬슬 아파 오더니 급기하 페달을 밟는 다리에 힘을 줄 수 없을 정도로 아파 왔습니다. 찜질방에서 잠을 자고 다음날, 여전히 무릎이 아팠지만, 진통제와 소염제의 힘으로 몸의 아픔을 잊고 열심히 달렸습니다. 11시가 넘는 시간까지 라이딩을 하였습니다. 하루는 아무도 없는 시골에서 멧돼지를 만나 자전거와 충돌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또 하루는 역풍을 만나 약 100km이상을 달리며 고생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저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이를 악 물고 달렸습니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버텨낸 결과 마침내 부산하구둑에 도착하여 국토종주를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입사 후에도 이 경험을 되새기며 열정적으로 업무에 임하겠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전역하고 복학생이 되면 정신을 차리고 공부를 해서 성적이 잘 나온 다들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성적이 더 떨어지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열심히 공부했지만, 성적이 잘 나오지 않자 공부 방법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저를 돌아보니 공부를 하다 막히는 게 있으면 넘어가지 못하고 파고드는 성향이 있었고 그 성향 때문에 기간 내에 시험 범위를 겨우 한번 보는 게 다였습니다.
저는 공부방법을 바꾸어 보려고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했고,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전체를 여러 번 훑어 보라는 충고를 받았습니다. 그 의견대로 전체적인 숲을 보는 연습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 한번 보는 게 다였던 시험 범위를 같은 시간 안에 3번, 4번 훑어 볼 수 있었고, 전제적은 흐름을 파악하니 처음엔 몰랐던 부분도 나중에는 저절로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공부 방법으로 그다음 학기에는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고, 대학생활 동안 전액장학금을 포함하여 총 4번의 성적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SK에 입사하여 저의 진취적인 성격과 도전정신을 바탕으로 플랜트 시공 업무를 하고 싶습니다. 그 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노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보았습니다.
[플랜트인재양성 교육]
3학년 때 부터 관심을 가졌던 플랜트산업을 더 알고 싶어 국토해양부에서 실시하는 '플랜트 인재 양성 교육'을 수료 하였습니다. 이 교육을 통해 입찰(letter of tender)-계약(Letter of Acceptance)-착공-시운전-하자보수-계약이행완료로 마무리 되는 플랜트산업의 절차를 이해하였습니다. 또한 제가 지원하는 시운전 임무의 단계별 절차 동안 알고 있습니다.
[설계경험]
시공 임무를 수행하려면 플랜트의 구조를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 구조 파악을 위해서 설계경험이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시절 전기설비설계 라는 과목을 통해 대학교 학생본부를 직접 설계해 보았습니다. 이 과목을 이수하면서 AutoCAD를 능숙하게 다룰 수 있게 되었고, 건물의 구조와 시설들을 도면에 나타내고 도면을 통해 건물의 구조를 머리 속에 떠올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품질관리]
제품의 품질은 회사의 능력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알기에 저는 품질부분에도 관심을 가져 왔습니다. 그 관심은 저에게 6SIGMA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였고, 이 자격증을 통해서 품질을 체계적으로 관리하여 제품의 질을 향상시키고 고객의 만족도를 높이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 [9] 합격 자소서 By. 낭만우녀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FRAME의 구조를 튼튼히 하라]
저에게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학부 3학년 때 교수님의 지시로 구조스터디 FRAME을 이끌었던 것이었습니다. 당시 교수님 연구실에서 조교로 공부하고 있던 저를 눈여겨보신 교수님께서 구조분야 흥미 유발과 학업성취도 향상을 말씀하시며 스터디를 만들어 지도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하지만 학부생이 학부생을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과 지도해 본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막막했습니다.
처음에는 수업내용이 빈약하고 수업방식도 효율적이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수동적이며 적극적이지 못한 후배들의 수업태도는 스터디의 존폐 자체를 위협했습니다. 체계적이고 명확한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 우리과 수업뿐만 아니라 토목과의 구조과목, 고려대학교 건축공학과의 구조과목들을 청강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21시간의 구조 수업을 들었고,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며 공부했습니다.
한 달쯤 시간이 지난 뒤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교수님들의 수업을 들으며 익힌 강의방식 덕분에 처음과는 달라진 수업내용에 후배들도 관심을 보이며 적극적으로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에 두 번의 수업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찾아오는 후배들도 생겨났고, 주제를 선정하여 토론하는 시간에는 열띤 설전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 학기가 끝난 뒤 FRAME의 모두가 철근 콘크리트와 구조역학 과목에서 전원 A 이상의 성적을 받는 성과를 거뒀습니다. FRAME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2학기에는 지원자가 많아져 20명이 넘는 후배들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상대적으로 꺼리던 구조과목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기존 후배들이 주도적으로 스터디를 이끌어주어 FRAME은 건축공학과 대표 스터디로 성장했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많은 노력을 쏟아 부어 자신의 성장과 학과의 동반 성장을 이끌어낸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FRAME을 이끌며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고민했던 시간은 내 공부이자 실력이 되었고, 건축 구조에 대한 시각의 폭을 넓힐 수 있었습니다.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위기는 곧 기회다]
제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고등학교 기타동아리였던 DIMINISH였습니다. 음악에 대한 열정이 많았던 저는 교내에서 유명했던 DIMINISH에 입부하게 되었고, 2학년 때 부장이 되어 동아리를 이끌었습니다.
1년 중 가장 큰 행사였던 축제기간에 3학년 선배들의 불미스러운 일로 우리 동아리는 학생회로부터 축제예산 절반 삭감과 무대공연 금지라는 처분을 받게 되었습니다. 축제를 한 달 남긴 시점에서 동아리 분위기는 절망적이었습니다. 부장으로서 부원들과 함께 동아리를 재정비하고 부원들의 사기를 진작시켜야 했습니다. 특히 처음하는 축제에 들이닥친 위기와 긴장 속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을 독려하기 위해 특유의 넉살로 동아리 내 분위기를 밝게 하려고 하였습니다. 또한, 본질에 충실하면 진심은 통한다고 생각하기에 감동을 줄 수 있는 공연을 강조하며 팀원들이 긍정적인 자세를 갖게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후배들의 열정과 저의 생각을 끈질기게 설득한 결과 학생회에서도 삭감된 예산을 다시 복구해주었고, 중간평가에서 1위를 기록하여 무대공연 참가도 다시 확정되었습니다. 침체되었던 동아리의 분위기는 활기를 찾았고, 이는 축제 공연 대흥행으로 나타났습니다. 공연장은 관객으로 가득 찼었고, 무대 공연에서의 기타부의 틀을 깨는 공연으로 관객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이끌어 냈습니다. 축제 이후 울산 청소년 문화제 ‘랑’에 학교대표로 초대를 받아 최우수상을 수상하였고, 울산 라디오 ‘별밤’에서 고등학교 동아리를 주제로 취재를 오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성과는 성공적인 공연이라는 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성원들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열정적인 노력을 통해 이뤄질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위기라고 생각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본질에 충실하면 이를 극복할 수 있다는 신념과 자신감을 더욱 확고히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와 더불어 나타난 결과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과정에서 겪었던 노력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으라차차 유도부, 전국제패를 노리다]
유도도장에서 후배들을 이끌어 전국대회에서 입상한다는 목표를 세워 도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사범님의 지도 아래 준비하던 중 대회를 한 달 앞두고 사범님의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고, 사범님은 7년을 수련한 저에게 대회 지도를 맡기셨습니다. 개인적으로 수상경력이라고는 시 대회 3위 입상이 전부였고, 단기전을 준비해본 경험이 없기에 지도력 부족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체육대학 입시를 앞둔 후배들에게 전국대회는 무척 중요한 시점이었고, 병상에 계신 사범님에게 힘이 되어드리기 위해 마음을 굳게 먹고 노력하리라 다짐했습니다.
역시나 지도력 부족이 드러났고 무더운 여름 날씨에 지쳐 후배들의 기량은 쉽사리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체중감량이었습니다. 3주 만에 1인당 3kg에서 최고 8kg까지 감량해야만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생각을 바꾸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처럼 기본기에 충실한 지도로 방향을 바꾸었고 마지막 1초까지 포기할 수 없는 유도라는 운동의 속성을 역설하며 후배들을 지도했습니다.
이를 위해 그동안 지켜봐 왔던 후배들의 습관과 성격을 바탕으로 맞춤형 지도를 통해 자세에서부터 호흡까지 체득시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였던 체중조절에 실패한 후배들과 한여름에 두꺼운 잠바를 몇 개씩 껴입고 함께 몇 시간이고 달렸습니다. 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승부하는 제 성격을 아는 후배들이기에 싫은 내색 없이 저의 지도를 잘 따라주었습니다.
결국, 후배들은 체급조절에 성공하여 대회에 출전한 후배들은 단체전 전국 2위, 개인전 금메달 1명, 동메달 1명이라는 너무나도 우수한 성적으로 대회를 마쳤습니다. 게다가 그 해 4명 중 3명이 성공적으로 목표했던 체대입시에 성공하였습니다. 누구보다 뛰어난 끈기와 뜨거운 열정을 가진 후배들과 밀어주고 당겨주며 다 같이 목표하였던 곳까지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쉽을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검정 눈동자의 거리악사 아메리카에서 소통하다]
밴쿠버 유학 시절, 저는 현지인들과 더 가까이 소통하기 위해 기타 하나만 매고 거리로 나가 공연을 하여 현지인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그들의 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를 비롯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학원과 도서관에서 주로 공부를 하고 학원의 외국인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다니는 틀에 박힌 유학 생활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거기에 늘 같은 패턴의 대화와 소통의 한계를 느끼고 해결책을 고민하던 중 거리공연을 기획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거리공연 경험은 전무 했고 외국에서 한국노래를 부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한다는 생각에 걱정은 이내 열정으로 바뀌었습니다.
또래 유학생들과 교민들은 타지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하는 저의 모습을 보고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예상과 달리 현지인들도 제 공연에 크게 열광해 주었고 그들과 자연스레 소통하며 많은 친구들 사귈 수 있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다양한 주제와 방법으로 이야기하는 방법을 길러주었고 7개월간 계속된 거리공연을 통해 저의 영어 실력은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또한, 공연에서 얻은 수익은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유학생활이 아닌 저만이 할 수 있는 유학생활을 위해 시작하긴 했지만, 점차 한국인으로서 책임감이 생겼고 그 때문에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노력은 한 캐나다 유명 PODCAST 채널과의 인터뷰 행운까지 가져다주었습니다. 이후 3달간의 남미 여행에서도 기타를 준비하여 여행지에서 거리공연을 펼치며 현지인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소통하니 저 자신이 민간 외교의 첨병이라는 책임감까지 들었습니다.
거리공연을 통해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이해할 수 있었고, 저의 열정에 책임감을 가지고 도전한다면 인종, 문화, 언어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을 감동 시킬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SK건설은 최고의 구조전문가를 맞이하실 것입니다]
SK건설 입사 후의 희망업무는 구조 엔지니어로 일하는 것입니다. 앞으로의 건설은 수익성보다 지속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어 기업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지속가능성의 핵심이 되는 구조분야의 최고봉인 구조기술사가 되는 것이 저의 최대 목표입니다.
제 전공이자 가장 관심 있는 분야는 구조였습니다. '구조의 신!' 이것이 학과 시절 제 별명이었습니다. 건축구조 수업을 들으며 구조의 매력에 빠져 원서를 찾아가며 공부하였고 철근 콘크리트 수업을 들은 뒤에는 교수님 연구실에 조교로 근무하며 더블T보와 슬래브 설계를 주제로 공부했습니다. 그 무렵, 구조공부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후배들을 위해 교수님의 지원으로 FRAME이라는 구조 스터디를 결성하여 이끌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구조의 핵심과목인 재료역학, 구조역학, 철근콘크리트, 강구조 과목은 텍스트를 세 번 이상 정독하여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이론뿐만 아니라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던 현장에서 방학마다 일하며 RC 구조를 이론과 실무에서 이해하고 공부하였습니다.
건축은 창의적인 사고가 요구됩니다. 창의성은 다양한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그 창의성을 갖추기 위해 저는 다양한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공사현장 막노동, 안전관리, 일식당 주방장, 텔레마케터 등의 아르바이트와 30여 개국 57개 도시를 여행하여 다른 문화를 체험한 것은 저의 직접경험의 폭을 늘려주었습니다. 게다가 다양한 분양의 지식을 얻기 위해 제법 많은 양의 책을 읽어 풍부한 간접경험 또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창의성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간접 경험을 통해 준비해 왔습니다. 현장에서 이론에 실무를 접목시켜 전공지식을 확립시키고 이를 토대로 꾸준히 자기계발시간을 투자하여 구조 기술사 자격증을 취득할 것입니다. 10년 뒤에는 구조 공학분야에 관한 한 SK건설에서 최고의 전문가가 되어 SK건설이 세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하는 원동력이 되겠습니다
■ [10] 합격 자소서 By. 사과
자신에게 주어졌던 일 중 가장 어려웠던 경험은 무엇이었습니까? 그 일을 하게 된 이유와 그때 느꼈던 감정, 진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내 생에 가장 행복했던 하루]
인턴생활 중 수행했던 업무 중, 다문화 가정을 위한 봉사프로그램인 '5월의 행복한 상상' 이 있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단독 업무였습니다. 무엇보다 사원에 동등한 업무조건을 제시하였기에 최대 1,000만원의 예산 규모는 부담감이 다가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한편으로 설렘이 있었습니다. 다른 인턴으로 경험하지 못할 단독 업무였기에 프로젝트 초기부터 열정이 가득했습니다.
먼저 회사의 주변지역에는 다문화 가정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에 따라 다문화가정을 봉사수혜자로 결정하고 타이틀을 정했습니다. 가장 처음 접했던 어려움은 봉사수혜자 선정단계 이었습니다. 경기지역 내에 수많은 다문화가정 센터가 있었지만 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많은 기업들이 가정의 달만 되면 진정성 없이 접근했기 때문입니다. 대상선정과 동시에 후원업체 모집, 프로그램 기획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여기서 핸드폰 전화번호부 800명이 넘는 제 인맥과 커뮤니케이션이 힘을 발휘했습니다. 봉사 센터에 자주 봉사활동을 다니는 지인에게 뜻을 전했고, 제 능력을 잘 알고 있던 분이었기에 단 번에 센터들을 소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진심이 전달되어 자연스럽게 여러 센터들로 확대되었고,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모든 준비와 운영을 대학생이 한다는 모토 아래 자원봉사자, 재능기부자 등 많은 대학생을 모집했습니다. 그 결과, 300여명의 다문화가정 가족들과 200여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수원의 실내농구장에서 웨딩촬영, 풍선아트 및 각종 공연 등으로 채워진 행복한 하루를 선물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행사의 경우 재능기부와 자원봉사 모두 대학생들이 만들었기에 각종 언론에 보도될 수 있었습니다. 또한 회사의 간부급 인사들로부터 인턴이 사원보다 더 낫다는 우스갯소리 칭찬을 듣기도 했습니다. 이에 공로를 인정받아 매 년 정기적으로 사내 행사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제까지 가장 강하게 소속감을 느꼈던 조직은 무엇이었으며, 그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했던 것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입니까? 개인적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일과 그 때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밴드 활동을 하며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공연을 하고 제가 서게 될 공연을 기획하면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즐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활동이 대학생기획단 '상상friends]' 입니다. 그 중 전국의 기획안 공모전이 함께 진행되었던 대학연합 공연기획은 가장 헌신적으로 임했던 미션입니다.
[Seed the rainbow @Soundpark]
평생 잊을 수 없는 슬로건으로, 기획팀장으로 활동 중 밴드공연 기획당시에 만든 타이틀입니다. ‘일곱 개의 씨앗이 소리의 공원에서 열매를 맺는다’는 의미로, 밴드 인큐베이팅을 받은 대학밴드 6팀과 관객이 함께한 공연이었습니다. 컨셉선정후, 기획/운영/홍보/UCC팀에게 각각 업무를 분담했습니다. 물론 의견충돌이 있기도 했지만 저는 리더로서 바로 감정적인 상황을 진정시켰고, 팀원들 모두의 개인적인 만남을 통해 마찰의 원인을 찾고 목표를 되새기며 자연스럽게 갈등을 해소시켰습니다. 공연준비 외에도 수익금 전액기부를 통한 분교묘목심기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전교생이 41명뿐인 두창분교를 대상으로 선정하고, 공연 당일 학생들과 부모님을 초대했습니다. 이는 ‘공연과 함께한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어필해 7개 기업에서 후원을 받았습니다. 그렇게 준비한 공연은 홍대 상상마당에서 300여명의 관객과 함께 호흡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경기도 내 대학밴드들의 교류의 장을 열었을 뿐 아니라, 공연이 끝난 후에도 함께 묘목심기 행사에서 따뜻한 정을 나누었습니다.
15명의 팀원들이 함께 한 공간에서 자취를 할 정도로 한 달 동안 붙어 있었습니다. 총괄을 담당하는 기획팀장으로 무엇보다 팀원들이 ‘함께’라는 단어로 어우러지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팀원들보다 더 많은 노력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하나의 목표로 함께 했기에 전국 3위를 수상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요구된 것보다 더 높은 목표를 스스로 세워 시도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목표 달성 과정에서 아쉬웠던 점이나 그 때 느꼈던 자신의 한계는 무엇이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스물 셋 공대생, 경제학에 첫 도전]
고등학교 자연계, 공과대학, 조경학과의 연속으로 경제학의 입문조차 해본 경험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늘 재무, 회계에 대한 관심은 다른 한 편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경제학과 복수전공을 결정하게 됩니다. 이공계 학문만 배워왔기에 성격상 분석을 통해 정답을 알아내야겠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 중 처음 보는 ‘수요-공급곡선 이론’ 을 한 달 동안 붙잡고 공부했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정답을 도출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경제학에 완전히 흥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복수전공 첫 학기 중간고사 시험기간이 다가왔고, 다른 전공생이 보고 있는 시험족보, 물어볼 선배조차 없었기에 오직 독학에 매진했습니다. 제 책상에는 맨큐의 경제학 원서를 가운데 둔 채 국내 경제학원론 2권, 행정고시 경제학 기출문제 2권이 늘 비슷한 단원, 주제의 페이지로 펼쳐 있었습니다. 시험의 출제유형 조차 전혀 알 수 없었기에 무턱대고 도서관에서 행정고시 기출문제를 풀며 공부했던 기억은 살면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때입니다. 이렇게 남들보다 없는 정보력은 자칫 시간과 효율성을 저하시켰습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노력하며 공부한 결과, 경제학원론 과목에서 A+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때부터 경제학에 대한 도전이 더 커졌습니다. 다음 학기 진도를 한참 뛰어넘는 전공심화 과목에서 과 수석을 차지해보겠다는 혼자만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특히 관심이 있었던 자원경제학으로 목표를 선정하였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기 위해 함께 수강하는 학생들과 전공스터디를 직접 구성해 경제학을 즐겼습니다. 단순한 수업내용의 예습, 복습을 넘어 직접 Case Study와 Model을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경제 Model을 교수님께 보여드리니, 공공기관에 제안서를 작성해서 제출해보라는 격려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노력 끝에 공대생의 경제학도 도전, 한 학기 만에 100명이 넘는 수강과목에서 과 수석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기존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하여 이전에 비해 조금이라도 개선했던 경험 중, 가장 효과적이었던 것은 무엇입니까? 그 방식을 시도했던 이유, 기존 방식과의 차이점, 진행 과정에서 했던 행동과 생각, 결과에 대해 최대한 구체적으로 작성해 주십시오. (1000 자 10 단락 이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다]
작곡가를 꿈꾸며 건반과 기타를 배웠지만 부모님의 권유로 인문계 고등학교로 진학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 진학 후, 잠시 미뤄둔 음악에 대한 열정을 펼치고 싶어 밴드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조명아래 공연 직전의 설렘과 관객들과 소통에 매 공연이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부족함을 느꼈습니다. 무대 위 희열은 느꼈지만 끝나고의 성취감이 적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무대와 음악이 있는 공연이 아닌 만들어가는 공연을 해보자고 제의했습니다. 밴드 내에서 10년이 넘게 해왔던 행사들이라 음악만 있어도 관객들이 즐기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부정적인 선배들의 시각이 많았습니다. 만약 만들어가는 기획공연을 하게 된다면 음악을 제외한 공연 준비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당연히 음악을 소홀히 해 공연의 본질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 반발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여기서 저는 학교 내 서포터즈를 모집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평소 우리 밴드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었고 공연기획팀, 운영팀, 홍보팀으로 나누어서 모집을 하겠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그리고 대형 Rock Festival의 예를 들며 우리도 이런 페스티벌을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주었습니다. 진심은 통했고, 모두의 지원을 받으며 기획을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선후배들과 서포터즈의 힘을 합치니 공연준비는 성황리에 진행되었고, 그렇게 07년 11월 말 동기들과 함께 ‘희로애락(喜怒哀樂)’ 기획공연을 열었습니다. 희로애락 각각의 특성에 맞는 팀, 선곡, 제작물, 무대세팅 등 모두를 고려했습니다. 공연이 끝나고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성취감을 느꼈고, 그 후 밴드 내 모든 공연들은 준비된 기획공연으로 발전할 수 있었고 동아리 전체적으로 발전을 이루어 냈습니다.
스물한 살, 어리지만 서른이 넘는 선배들과 조율을 이루어낸 값진 경험이었습니다. 공연의 질 뿐 아니라 개인적으로는 사람을 대하는 법, 내 주장을 이끌고 갈 수 있는 방법들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SK 입사 후 어떤 일을 하고 싶으며, 이를 위해 본인이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 왔는지 구체적으로 기술하십시오. (800 자 10 단락 이내)
[모든 Supporting의 기본, 회계]
초등학교 시절, 교내 암산대회에서 1위를 차지한 적 있습니다. 지금도 누구보다 암산에 있어서만큼은 지지 않을 정도로 숫자, 수학에 있어서는 강한 면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경제학 전공들은 저에게 쉽게 다가왔습니다. 또한 기본 경제학 전공지식 외에 경제학과 내에 열리지 않는 재무회계, 중급회계 등을 경영학과 강의실에서 청강하며 실력을 키웠습니다.
타 기업 인턴부서의 경우 그룹 본부 내 직속 독립부서였기에 마케팅/기획팀에도 불구하고 예산업무까지 담당하였습니다. 저는 인턴사원의 신분이었기에 기획프로그램에 대한 예산수립까지는 참여하였지만 위험성과 보안으로 직접 회계프로그램을 다루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회계에 관심이 많은 것을 팀장님들께서 아셨기에 의자를 옆에 내어주시며 프로세스와 업무 모습을 보아도 좋다고 허락하셨고 배울 수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배운 이론과 실무는 현저히 차이가 있었고, 무엇보다 경험이 중요해 보였습니다. 따라서 입사 후, 회사의 회계 시스템을 신속히 숙지하고 적용하기 위해 업무메뉴얼과 과거 선배들이 이루어놓은 자료들을 분석하며 가장 중요한 실수 없는 계속성을 유지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업무 숙지가 끝난 후부터는 본격적으로 외부 회계감사에 대비하여, 검증가능하고 발생주의 원칙에 따른 회계처리로 회사의 투명성을 높이는 회계사로 성장 하겠습니다. 지나치게 꼼꼼해서 스스로 피곤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숫자를 사랑하는 이공계 경제학도, SK건설 회계업무로 시작하여 다양한 Supporting 업무를 다루도록 성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