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 개념과 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
사회 구조적인 측면에서 폭력을 살펴보면 세 가지로 유형화되는데, 폭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그 폭력에 대한 명명이 달라진다. 첫째, 지배 계층이 사용하는 폭력은 '억압'으로, 둘째, 이러한 억압에 대하여 반기를 드는 행위로서의 폭력은 피억압자의 '반역'으로, 그리고 셋째, 이러한 피억압자의 항거를 제압하려는 지배 계층의 폭력은 '진압'으로 불려진다. 이렇게 폭력의 주체가 누군가에 따라서, 그리고 누가 그 폭력에 대하여 규정하는가에 따라서 각기 그 폭력에 대한 가치 판단이 달라진다. 그러나 사실상 어떠한 폭력이든지 목적이 다를 뿐 폭력 자체의 양상은 동일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있지만, 결코 정당성을 가질 수는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진다.
그러나 폭력의 주체가 누구인가에 따라서 폭력은 어떤 상황에서는 정의라는 저울대의 균형을 다시 맞출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폭력은 사실상 원인들을 촉발시키지 않으므로 역사도 혁명도 진보도 반동도 일으키지 않지만, 불만을 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그래서 공적인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혁명보다는 개혁을 위한 무기가 될 수 있으며, 권력을 지니지 못한 자들의 존재가 비로소 주목받게 되는 것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학생 운동을 통하여 개혁이 가능하게 된다든지 하는 경우는 이렇게 폭력을 사용하여 새로운 구조의 수용을 가능하게 하는 단기적 의미에서의 폭력 사용의 정당화를 부여받는 예이다. 즉, 인간 생명을 억압하고 비자유에로 이끄는 반생명적 폭력에 저항하기 위한 폭력은 불의를 넘어서는 정의에 이르기 위한 도구로 정당화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중략)
이렇게 폭력이 다양한 측면에서 각기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폭력 현상들은 폭력의 개념이 얼마나 다의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가를 보여준다. 육체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은 물론, 심리적․언어적․제도적․문화적․성적 폭력 등 폭력의 종류를 열거하는 것은 사실상 한이 없다. 폭력 논의에서 우리가 분명히 인식해야 할 점은 폭력 개념이 이렇게 다의적으로 형성될 수 있다는 점이며, 비억압적 사회일수록 폭력에 대한 예민함이 더욱 첨예화된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폭력에의 예민함을 가질 때 비로소 포력과 비폭력의 경계를 볼 수 있는 시각이 형성될 것이다.
- 강남순, 『폭력 개념과 현상에 대한 비판적 고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