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손 없는 광복군 17위 추모 및 2023 설날합동다례 관련 3개 참고자료 모음
1) 참고자료 1 :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지와 무후독립유공자 추정>
o 개혁연대민생행동 제공
2) 참고자료 2 <무후광복군 참배기>
o 황문식 (사)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겸 동학마당 전국조직위원장
3) 참고자료 3 <무후광복군 참배 동행기록>
o 윤영대 투기자본 감시센터 공동대표
참고자료 3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지와 무후독립유공자 추정>
1965년 9월 15일 민간임의단체 형태로 출범한 광복군동지회(2021년 10월 18일 광복군기념사업회로 단체명 변경)가 1967년부터 서울 북한산 수유리 산기슭에 조성하기 시작했고, 1981년 완료한 뒤에도 계속 관리해 왔던 곳으로서 뫼 봉우리 하나에 19위 광복군 유해를 합장했다. 1945년 7월 산서성 태원에서 순국한 김천성 애국열사가 1975년 8월 8일 동작동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로 이장했고, 광복군 모집과 정보공작을 하다가 1945년 5월 순국한 한성수 애국열사 또한 1991년 6월 19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이들 무후광복군 독립유공자는 가족이 나타나서 이장(移葬)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7위는 김성률, 김순근, 김유신, 김찬원, 동방석, 문학준, 백정현, 안일용, 이도순, 이한기, 이해순, 전일묵, 정상섭, 조대균, 한휘, 현이평 애국열사로서 이들 모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이고, 그동안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휘 열사에게 지난 해 정부가 애족장을 추서함으로써 전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동안 국가는 이 묘지는 물론 그 주변 애국선열묘지를 사실상 방치했다. 물론, 1985년 국가보훈처가 이 묘지단장을 지원했고, 2001년 10월 봉분을 확장할 때 다시 단장하기도 했다. 또, 2017년에는 강북구청이 추모조형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2020년 3월 개정된 이후인 2021년 2월 25일에야 비로소 국가보훈처가 그 주변 애국선열 묘지와 광복군 합동묘지 등을 국가관리 묘역으로 지정했다. 이는 그 전까지 정부가 이들 묘지를 사실상 방치했던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1991년 우리나라 정부는 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를 529명 인정했고, 그 전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게다가 국가가 인정했지만 가족유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방계가족이 있더라도 촌수가 너무 멀어 훈장을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해당되는 사실상 무후독립유공자는 무려 7천여 명에 달한다.
보훈처는 공훈전자사료관( https://e-gonghun.mpva.go.kr/user/index.do )에 약 7천여 명에 달하는 성명 등을 등록하고, 우측 위에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습니다.”라는 곳에서 누구나 검색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가족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국가유공자는 정확하게 6,964명이다. 본적지가 평안도와 함경남북도(남북 미상 포함) 및 황해남북도(남북 미상 포함) 등이기에 고향이 이남으로 추정되는 독립유공자는 2,805명으로서 약 40%에 달한다.
이에 비해 본적지가 서울(구 미상 포함)과 경기(시군구 미상 포함) 및 인천(구, 군 등 미상 포함) 그리고 제주, 충청남북도(남북미상), 경상남북도(남북미상 포함), 전라남북도(남북미상 포함) 등이기에 고향이 이남으로 추정되는 독립유공자는 2,678명으로서 약 39%, 주소일체가 미상인 독립유공자는 1,472명으로서 약 21%에 달한다.
참고자료 4 <무후광복군 참배기>
황문식 (사)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겸 동학마당 대표
지난 목요일(1월 26일) 오후 12시 20분경 오락가락 휘날리던 함박눈 눈발이 갑자가 거칠어지고, 매서운 겨울날씨로 체감온도가 영하 7∼8도를 기록하는 국립대전현충원 제7묘역 무후광복군 묘지에서 <무후광복군 17위 추모 및 유지(遺志) 계승발전 서약 등 2023년 설날다례 행사>가 열렸다.
송운학 대표는 “마이크와 앰프 그리고 애국가와 독립군가 등 음악 및 주과포 등 제물운반을 담당하기로 했던 차량이 교통체증으로 늦어져 추모행사 제1부를 약식으로 빨리 끝내고, 차량이 도착하면 제2부인 설날다례는 격식을 제대로 갖춰 진행하자”고 제안하고, 참석자 약 55명이 동의하여 행사가 시작됐지만, 예정보다 약 50여분 늦은 시각이었다.
송운학 대표가 “후손 없이 산화하신 모든 광복군은 물론 별세하신 모든 광복군 등 항일독립유공자 그리고 모든 무후민주열사를 위한 묵념”이라면서 “일동 묵념”이라고 말하지 협조차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국립대전현충원 의전담당자가 구슬프게 진혼나팔을 불었다.
묵념이 끝난 후 송운학 대표는 “추운 날씨인데다가 계획보다 많이 늦어져 약식으로 빨리 진행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빼먹었다”면서 사과하고 미리 준비해서 묘소 뒤편에 설치한 태극기를 향해 참석자들이 경례하도록 행사를 진행했다.
그 뒤 ‘무후광복군 17위 공적’을 간단하게 직접 보고하면서 “광복 이전에 돌아가신 12위의 평균연령이 25세다. 추운 만주벌판에서 총자루 들고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쳐 싸우다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분들의 숭고한 뜻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남북협조로 이분들 가족을 찾아 유전자검사 실시 등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2023년 설날 추모 및 다례 행사 개최 경과보고’에서 “오늘 행사는 지난 해 이곳으로 17위 선열님들을 모셔온 이후에도 그 이전처럼 대한민국 순국선열 숭모회, 무후광복군기념 사업회, 흥사단 등이 각각 세 갈래로 나눠져 지난 해 개최한 추모행사를 하나로 모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불완전한 첫 걸음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행사의미를 부여했다.
공적보고와 경과보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운반차량이 도착해서 마이크 등이 설치된 후 원래 계획대로 김선홍 글로벌 에코넷 상임회장이 사회를 맡아 행사를 진행했다.
김선홍 회장은 “오늘 행사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후손이 없어 추모 발길이 닿지 않는 광복군 17위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2023년도 최초행사”라고 그 의미를 보완해서 설명하면서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에 임시정부의 법통이 있다는 취지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광복군은 마땅히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이자. 9월 17일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애국가’와 ‘독립군가’를 제창했고, 아래와 같은 추모헌시도 낭송했다.
비바람도 찼어라.
나라 잃은 나그네야.
바친 길 비록 광복군이었으나 가시밭길 더욱 한이었다.
순국하고도 못 잊었을 조국이여!
여기 꽃동산에 뼈나마 묻히었으니 동지들아 편히 잠드시라.
이 시는 1967년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광복군동지회가 동지들인 무후광복군에게 바친 추모헌시로서 짧고 간결하지만 애절하고도 애틋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 날 낭송은 한옥순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회장, 김재경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강승연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사랑 나눔 봉사회장, 임진아 촛불계승연대 상임운영위원, 글로벌 에코넷 강순금 여성위원장, 회원 고영자, 김은순 등 여성 대표단이 담당했고, 참석자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 뒤를 이어 참여단체 대표들이 추모사를 통해 여러 가지 좋은 각종 내용을 제안했다. 가장 먼저 올해 망백(望百)이라 부르는 구순(九旬)을 맞이하는 오의교 3.1정신 선양회장이 “무후광복군 묘비에 성명이 없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독립유공자를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냐? 이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목이 메어 울먹이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해 더욱 더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대표는 “광복군 17위를 양지바른 국립묘지로 이장해 국가적 예우를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17위 묘소에 각각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면서 “보훈처 공훈사료관에 등재된 독립유공자 17위가 이름 없는 무명용사가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김정일 중앙대학교 4.19혁명기념 사업회장 역시 “보훈처는 17개 비석에 광복군의 이름과 새겨 넣어야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장석 법치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 회장은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 등을 설치하여 이산가족이 상봉하도록 지원하자는 등 남북협조와 관련된 각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뒤 만세삼창 및 설날다례가 엄숙하게 진행됐다.
사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었지만, 다름대로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와 같이 쌓여있어 늘 마음뿐이었다. 26일에도 오후 3시 서울에서 시작하는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미리 약속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행사를 빨리 마치고 상경하는 자가용에 탑승케 하겠다고 보장하여 모처럼 시간을 냈다. 시간을 내길 잘했다. 보람찬 하루였다.
참고자료 5 <무후광복군 참배 동행기록>
윤영대 투기자본 감시센터 공동대표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는 무후광복군 17위 선열님을 참배하러 지난 목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8시 40분경 약속장소인 사당역 1번 출구에 도착했다. 평소 존경하면서도 바쁜 일정으로 함께 하지 못해 늘 죄송했던 송운학 대표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반갑게 맞았다.
문제는 날씨였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설과 매서운 추위로 도로가 빙판이라 교통체증이 발생했고, 대절한 45인승 대형버스가 출발예정시간인 9시보다 약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참석예정자들 가운데 일부 역시 약속시간인 8시 45분을 넘어 9시 15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송운학 대표는 이리저리 전화를 주고받으랴 또 뒤늦게 도착한 참석예정자들을 근처 공영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안내하랴 정신이 없었다.
버스는 9시 20분경 출발했다. 출발 5분 뒤 걸려온 전화를 받은 송운학 대표는 “사당역에 늦게 온 유 튜브 생중계방송 예정자를 위해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면 약 10분 정도 기다리겠다.”면서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9시 30분경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약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유 튜브 방송예정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로 사정을 알아본 송운학 대표는 “방송예정자가 버스를 잘못 타서 약 15분 정도 더 기다렸으면 좋겠다.”면서 양해를 구했으나 여기저기서 그냥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송운학 대표는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그냥 가기로 결정하고 버스를 다시 출발시킨 후 유 튜브 방송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원래 탑승예정자는 32명에 달했는데 23명뿐이었다, 참석예정자 중 4명은 오후 일정이 갑자기 잡혀 자가용으로 함께 내려가고, 또 다른 1명 역시 같은 이유로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각각 불가피한 사유 등으로 불참하기로 한 사람도 2명이었고, 방송예정자는 뒤늦게 왔지만, 이미 밝힌 그대로 함께 탑승하지 못했다, 마지막 1명은 연락 자체가 두절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보수와 중도 및 진보를 망라하는 단체들이 각각 처지에 따라 아래와 같이 역할을 분담하여 참석자들이 50여명을 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o 주최 : 관청피해자 모임, 광주·전남 시민행동, 글로벌 소비자네트워크, 기독교개혁연대, 단원예술단, 민주주의를 지키는 행정사 모임, 보험이용자협회, (사)공정산업경제포럼, (사)4.19문화원, (사)사회 안전 예방중앙회, (사)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삼청교육대 진실규명 추진위, 생물다양성한국협회, 선한 국민 착한 감시 국민감시단연합, 수도권매립지연장반대 범시민단체협의회, 아라 뱃길 환경문화포럼, 아리랑협동조합, 아리수환경문화연대, 언론소비자 주권행동, 올바른 전력산업추진 운동본부, 우리 다 함께 시민연대, 이아모(이건 아니잖아요 시민모임), 인천광역시 서구 단체총연합회, 인천 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정의연대, 지구 살리기 22, 착한 도농불이운동본부, 천지인산악회, 친환경추진국민운동본부, 투기자본 감시센터, 평화재향군인회, 평화통일포럼, 학교폭력 없애기 운동본부, 학교폭력예방범국민운동본부, 한겨레 주주단, 한국 환경시민단체협의회, 호남의열단, 흥사단 고려대학교 아카데미 총동문회, 흥사단 서울대학교 아카데미 총동문회, 흥사단 연세대학교 아카데미 총동문회 외
o 주관(무순) : 가습기살균제 등 사회적 참사 재발방지 및 안전 사회건설 등을 위한 연대모임, 글로벌 에코넷, 3.1정신 선양회, 중앙대학교4.19혁명기념 사업회,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사)무후광복군기념 사업회, 고양파주흥사단, 고백고통일문제연구소, 기독교대한감리회 개혁연대, 동학마당,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시 지부, 법치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 사랑나눔터 장애인인권상담소, 선감학원 (아동 인권) 진실규명추진위, 정의사법실천연대, 중도유적 보존 범국민연대회의, 친일청산 국사복원 시민연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바른 사회 시민연대, 기업윤리 경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협의회, 대한 중도 유적 보존협회 추진위,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 자원 활동 센터,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사랑 나눔 봉사회 외
o 후원 : 개혁연대민생행동, 공익감시 민권회의, 국민연대, 국민주권개헌행동, (사)동학민족통일회,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 외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은 제2부 설날다례에서 송운학 대표와 나를 비롯한 참여단체 대표 5인 등 총 6인이 순차적으로 축문을 낭독한 것이다. 사전에 배포하여 의견을 수렴했으므로 동참단체와 개인자격 참석자들이 비록 만장일치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공감대를 갖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무후광복군 17위 추모 관련 순차적·단계적 상호협력과 관계개선 3대 시범 특별사업을 남과 북 정부에 각각 제안했다는 것과 특히, 국민경연공모 경연한마당 공동개최 제안 및 서약 등이 바로 그렇다.
마지막으로 남북협조 관련 순차적·단계적 상호협력과 관계개선 3대 시범 특별사업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 남북공동으로 이북출신 14위 선열과 3위 고향미상 선열의 가족을 찾아 유전자(DNA) 검사를 실시하고 묘비에 정확한 이름을 새기는 사업 ▲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 또는 이산가족 만남시설 등을 조성하여 인도주의적 상봉 사업을 지원하는 사업 ▲ 남북공동관리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사업 등이다. 끝
후손 없는 광복군 17위 추모 및 2023 설날합동다례 관련 3개 참고자료 모음(수정)
1) 참고자료 1 :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지와 무후독립유공자 추정>
o 개혁연대민생행동 제공
2) 참고자료 2 <무후광복군 참배기>
o 황문식 (사)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겸 동학마당 대표
3) 참고자료 3 <무후광복군 참배 동행기록>
o 윤영대 투기자본 감시센터 공동대표
참고자료 3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지와 무후독립유공자 추정>
1965년 9월 15일 민간임의단체 형태로 출범한 광복군동지회(2021년 10월 18일 광복군기념사업회로 단체명 변경)가 1967년부터 서울 북한산 수유리 산기슭에 조성하기 시작했고, 1981년 완료한 뒤에도 계속 관리해 왔던 곳으로서 뫼 봉우리 하나에 19위 광복군 유해를 합장했다. 1945년 7월 산서성 태원에서 순국한 김천성 애국열사가 1975년 8월 8일 동작동 국립묘지(국립서울현충원)로 이장했고, 광복군 모집과 정보공작을 하다가 1945년 5월 순국한 한성수 애국열사 또한 1991년 6월 19일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했다. 이들 무후광복군 독립유공자는 가족이 나타나서 이장(移葬)이 가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17위는 김성률, 김순근, 김유신, 김찬원, 동방석, 문학준, 백정현, 안일용, 이도순, 이한기, 이해순, 전일묵, 정상섭, 조대균, 한휘, 현이평 애국열사로서 이들 모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이고, 그동안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했던 한휘 열사에게 지난 해 정부가 애족장을 추서함으로써 전원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그동안 국가는 이 묘지는 물론 그 주변 애국선열묘지를 사실상 방치했다. 물론, 1985년 국가보훈처가 이 묘지단장을 지원했고, 2001년 10월 봉분을 확장할 때 다시 단장하기도 했다. 또, 2017년에는 강북구청이 추모조형물을 만들었다. 하지만, ‘국립묘지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이 2020년 3월 개정된 이후인 2021년 2월 25일에야 비로소 국가보훈처가 그 주변 애국선열 묘지와 광복군 합동묘지 등을 국가관리 묘역으로 지정했다. 이는 그 전까지 정부가 이들 묘지를 사실상 방치했던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뜻한다.
한편, 1991년 우리나라 정부는 후손이 없는 독립유공자를 529명 인정했고, 그 전후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게다가 국가가 인정했지만 가족유무 여부를 확인하지 못했거나 방계가족이 있더라도 촌수가 너무 멀어 훈장을 전달하기 어려운 경우 등에 해당되는 사실상 무후독립유공자는 무려 7천여 명에 달한다.
보훈처는 공훈전자사료관( https://e-gonghun.mpva.go.kr/user/index.do )에 약 7천여 명에 달하는 성명 등을 등록하고, 우측 위에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찾습니다.”라는 곳에서 누구나 검색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가족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들 국가유공자는 정확하게 6,964명이다. 본적지가 평안도와 함경남북도(남북 미상 포함) 및 황해남북도(남북 미상 포함) 등이기에 고향이 이남으로 추정되는 독립유공자는 2,805명으로서 약 40%에 달한다.
이에 비해 본적지가 서울(구 미상 포함)과 경기(시군구 미상 포함) 및 인천(구, 군 등 미상 포함) 그리고 제주, 충청남북도(남북미상), 경상남북도(남북미상 포함), 전라남북도(남북미상 포함) 등이기에 고향이 이남으로 추정되는 독립유공자는 2,678명으로서 약 39%, 주소일체가 미상인 독립유공자는 1,472명으로서 약 21%에 달한다.
참고자료 4 <무후광복군 참배기>
황문식 (사)동학민족통일회 공동의장 겸 동학마당 대표
지난 목요일(1월 26일) 오후 12시 20분경 오락가락 휘날리던 함박눈 눈발이 갑자가 거칠어지고, 매서운 겨울날씨로 체감온도가 영하 7∼8도를 기록하는 국립대전현충원 제7묘역 무후광복군 묘지에서 <무후광복군 17위 추모 및 유지(遺志) 계승발전 서약 등 2023년 설날다례 행사>가 열렸다.
송운학 대표는 “마이크와 앰프 그리고 애국가와 독립군가 등 음악 및 주과포 등 제물운반을 담당하기로 했던 차량이 교통체증으로 늦어져 추모행사 제1부를 약식으로 빨리 끝내고, 차량이 도착하면 제2부인 설날다례는 격식을 제대로 갖춰 진행하자”고 제안하고, 참석자 약 55명이 동의하여 행사가 시작됐지만, 예정보다 약 50여분 늦은 시각이었다.
송운학 대표가 “후손 없이 산화하신 모든 광복군은 물론 별세하신 모든 광복군 등 항일독립유공자 그리고 모든 무후민주열사를 위한 묵념”이라면서 “일동 묵념”이라고 말하지 협조차원에서 대기하고 있던 국립대전현충원 의전담당자가 구슬프게 진혼나팔을 불었다.
묵념이 끝난 후 송운학 대표는 “추운 날씨인데다가 계획보다 많이 늦어져 약식으로 빨리 진행하겠다는 마음으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빼먹었다”면서 사과하고 미리 준비해서 묘소 뒤편에 설치한 태극기를 향해 참석자들이 경례하도록 행사를 진행했다.
그 뒤 ‘무후광복군 17위 공적’을 간단하게 직접 보고하면서 “광복 이전에 돌아가신 12위의 평균연령이 25세다. 추운 만주벌판에서 총자루 들고 조국 독립을 위해 청춘을 바쳐 싸우다가 돌아가셨다. 우리는 이분들의 숭고한 뜻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면서 “남북협조로 이분들 가족을 찾아 유전자검사 실시 등 이름을 찾아주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또, ‘2023년 설날 추모 및 다례 행사 개최 경과보고’에서 “오늘 행사는 지난 해 이곳으로 17위 선열님들을 모셔온 이후에도 그 이전처럼 대한민국 순국선열 숭모회, 무후광복군기념 사업회, 흥사단 등이 각각 세 갈래로 나눠져 지난 해 개최한 추모행사를 하나로 모아가기 위한 첫 걸음이다, 불완전한 첫 걸음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긴밀한 협조가 이뤄지기를 기대하며, 그렇게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행사의미를 부여했다.
공적보고와 경과보고가 이루어지고 있는 동안 다행스럽게도 운반차량이 도착해서 마이크 등이 설치된 후 원래 계획대로 김선홍 글로벌 에코넷 상임회장이 사회를 맡아 행사를 진행했다.
김선홍 회장은 “오늘 행사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쳤으나 후손이 없어 추모 발길이 닿지 않는 광복군 17위의 숭고한 뜻을 기리는 2023년도 최초행사”라고 그 의미를 보완해서 설명하면서 “광복군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정규군이다.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에 임시정부의 법통이 있다는 취지가 명시되어 있으므로 광복군은 마땅히 우리나라 최초의 국군이자. 9월 17일 광복군 창건일을 국군의 날로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참석자들이 ‘애국가’와 ‘독립군가’를 제창했고, 아래와 같은 추모헌시도 낭송했다.
비바람도 찼어라.
나라 잃은 나그네야.
바친 길 비록 광복군이었으나 가시밭길 더욱 한이었다.
순국하고도 못 잊었을 조국이여!
여기 꽃동산에 뼈나마 묻히었으니 동지들아 편히 잠드시라.
이 시는 1967년 수유리 무후광복군 합동묘지를 조성하기 시작한 광복군동지회가 동지들인 무후광복군에게 바친 추모헌시로서 짧고 간결하지만 애절하고도 애틋한 위로를 전하고 있다.
이 날 낭송은 한옥순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회장, 김재경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단체협의회 회장, 강승연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사랑 나눔 봉사회장, 임진아 촛불계승연대 상임운영위원, 글로벌 에코넷 강순금 여성위원장, 회원 고영자, 김은순 등 여성 대표단이 담당했고, 참석자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 뒤를 이어 참여단체 대표들이 추모사를 통해 여러 가지 좋은 각종 내용을 제안했다. 가장 먼저 올해 망백(望百)이라 부르는 구순(九旬)을 맞이하는 오의교 3.1정신 선양회장이 “무후광복군 묘비에 성명이 없다니 이게 무슨 일이냐?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독립유공자를 이렇게 대접하는 나라가 무슨 나라냐? 이렇게 할 수는 없다”면서 목이 메어 울먹이면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해 더욱 더 분위기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전대열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대표는 “광복군 17위를 양지바른 국립묘지로 이장해 국가적 예우를 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17위 묘소에 각각 이름이 새겨지지 않았다”면서 “보훈처 공훈사료관에 등재된 독립유공자 17위가 이름 없는 무명용사가 되고 말았다”고 개탄했다. 김정일 중앙대학교 4.19혁명기념 사업회장 역시 “보훈처는 17개 비석에 광복군의 이름과 새겨 넣어야한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김장석 법치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 회장은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 등을 설치하여 이산가족이 상봉하도록 지원하자는 등 남북협조와 관련된 각종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뒤 만세삼창 및 설날다례가 엄숙하게 진행됐다.
사실 언제나 함께 하고 싶었지만, 다름대로 해야 하는 일이 산더미와 같이 쌓여있어 늘 마음뿐이었다. 26일에도 오후 3시 서울에서 시작하는 회의에 참석하겠다고 미리 약속해서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행사를 빨리 마치고 상경하는 자가용에 탑승케 하겠다고 보장하여 모처럼 시간을 냈다. 시간을 내길 잘했다. 보람찬 하루였다.
참고자료 5 <무후광복군 참배 동행기록>
윤영대 투기자본 감시센터 공동대표
국립대전현충원에 모셔져 있는 무후광복군 17위 선열님을 참배하러 지난 목요일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8시 40분경 약속장소인 사당역 1번 출구에 도착했다. 평소 존경하면서도 바쁜 일정으로 함께 하지 못해 늘 죄송했던 송운학 대표가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계시다가 반갑게 맞았다.
문제는 날씨였다. 전날 저녁부터 내리기 시작한 폭설과 매서운 추위로 도로가 빙판이라 교통체증이 발생했고, 대절한 45인승 대형버스가 출발예정시간인 9시보다 약 5분 정도 늦게 도착했다. 참석예정자들 가운데 일부 역시 약속시간인 8시 45분을 넘어 9시 15분이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 송운학 대표는 이리저리 전화를 주고받으랴 또 뒤늦게 도착한 참석예정자들을 근처 공영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버스로 안내하랴 정신이 없었다.
버스는 9시 20분경 출발했다. 출발 5분 뒤 걸려온 전화를 받은 송운학 대표는 “사당역에 늦게 온 유 튜브 생중계방송 예정자를 위해 ‘예술의 전당’에 도착하면 약 10분 정도 기다리겠다.”면서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 9시 30분경 ‘예술의 전당’에 도착해서 약 10분 정도 기다렸지만, 유 튜브 방송예정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화로 사정을 알아본 송운학 대표는 “방송예정자가 버스를 잘못 타서 약 15분 정도 더 기다렸으면 좋겠다.”면서 양해를 구했으나 여기저기서 그냥 가자는 소리가 들렸다. 송운학 대표는 이러한 의견을 받아들여 그냥 가기로 결정하고 버스를 다시 출발시킨 후 유 튜브 방송인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다.
원래 탑승예정자는 32명에 달했는데 23명뿐이었다, 참석예정자 중 4명은 오후 일정이 갑자기 잡혀 자가용으로 함께 내려가고, 또 다른 1명 역시 같은 이유로 자가용을 이용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각각 불가피한 사유 등으로 불참하기로 한 사람도 2명이었고, 방송예정자는 뒤늦게 왔지만, 이미 밝힌 그대로 함께 탑승하지 못했다, 마지막 1명은 연락 자체가 두절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이날 행사는 보수와 중도 및 진보를 망라하는 단체들이 각각 처지에 따라 아래와 같이 역할을 분담하여 참석자들이 50여명을 넘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o 주최 : 관청피해자 모임, 광주·전남 시민행동, 글로벌 소비자네트워크, 기독교개혁연대, 단원예술단, 민주주의를 지키는 행정사 모임, 보험이용자협회, (사)공정산업경제포럼, (사)4.19문화원, (사)사회 안전 예방중앙회, (사)한국기업회생지원협회, 삼청교육대 진실규명 추진위, 생물다양성한국협회, 선한 국민 착한 감시 국민감시단연합, 수도권매립지연장반대 범시민단체협의회, 아라 뱃길 환경문화포럼, 아리랑협동조합, 아리수환경문화연대, 언론소비자 주권행동, 올바른 전력산업추진 운동본부, 우리 다 함께 시민연대, 이아모(이건 아니잖아요 시민모임), 인천광역시 서구 단체총연합회, 인천 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전국철거민협의회중앙회, 정의연대, 지구 살리기 22, 착한 도농불이운동본부, 천지인산악회, 친환경추진국민운동본부, 투기자본 감시센터, 평화재향군인회, 평화통일포럼, 학교폭력 없애기 운동본부, 학교폭력예방범국민운동본부, 한겨레 주주단, 한국 환경시민단체협의회, 호남의열단, 흥사단 고려대학교 아카데미 총동문회, 흥사단 서울대학교 아카데미 총동문회, 흥사단 연세대학교 아카데미 총동문회 외
o 주관(무순) : 가습기살균제 등 사회적 참사 재발방지 및 안전 사회건설 등을 위한 연대모임, 글로벌 에코넷, 3.1정신 선양회, 중앙대학교4.19혁명기념 사업회, 한국정치평론가협회, 나누고 베풀고 봉사하는 그룹, (사)무후광복군기념 사업회, 고양파주흥사단, 고백고통일문제연구소, 기독교대한감리회 개혁연대, 동학마당,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시 지부, 법치민주화를 위한 무궁화클럽, 사랑나눔터 장애인인권상담소, 선감학원 (아동 인권) 진실규명추진위, 정의사법실천연대, 중도유적 보존 범국민연대회의, 친일청산 국사복원 시민연대,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바른 사회 시민연대, 기업윤리 경영을 위한 시민사회단체협의회, 대한 중도 유적 보존협회 추진위,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 자원 활동 센터, 인천광역시 서구 여성사랑 나눔 봉사회 외
o 후원 : 개혁연대민생행동, 공익감시 민권회의, 국민연대, 국민주권개헌행동, (사)동학민족통일회, 촛불계승연대천만행동, 행·의정 감시네트워크 중앙회 외
가장 기억에 남는 인상적인 장면은 제2부 설날다례에서 송운학 대표와 나를 비롯한 참여단체 대표 5인 등 총 6인이 순차적으로 축문을 낭독한 것이다. 사전에 배포하여 의견을 수렴했으므로 동참단체와 개인자격 참석자들이 비록 만장일치는 아닐지라도 상당한 공감대를 갖는 내용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컨대, 무후광복군 17위 추모 관련 순차적·단계적 상호협력과 관계개선 3대 시범 특별사업을 남과 북 정부에 각각 제안했다는 것과 특히, 국민경연공모 경연한마당 공동개최 제안 및 서약 등이 바로 그렇다.
마지막으로 남북협조 관련 순차적·단계적 상호협력과 관계개선 3대 시범 특별사업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 남북공동으로 이북출신 14위 선열과 3위 고향미상 선열의 가족을 찾아 유전자(DNA) 검사를 실시하고 묘비에 정확한 이름을 새기는 사업 ▲ 비무장지대에 평화공원 또는 이산가족 만남시설 등을 조성하여 인도주의적 상봉 사업을 지원하는 사업 ▲ 남북공동관리 경제특구를 설치하는 사업 등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