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같이 아름다웠던 퍼스트 레이디
서구 선진국의 예를보면 대통령 또는 국가원수의 부인을 " 퍼스트 레이디라는 별칭을 사용하는데
우라나라의 경우 대통령의 부인이라는 뜻으로 "령(영) 부인이라고 호칭을 하다가 언젠가부터 " 여사로 호칭을 하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부터?
한국인의 선조들은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접을 받았었는데 실제가 그래서인지 아니면 과장을 해서 자화자찬을 하다가 겸손해저서 인지 이들의 후예 한국인들이 예의를 잘지키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한국인들은 굽실거리길 잘하지 예의를 잘지키는 국민이 아니다. 한국인들의 예의는 "끼리 끼리만 예의를 지나칠 정도로 잘지키지 한발짝 건너 모든타인들에게 예의를 잘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경우 서양사람 특히 백인들에게는 예외이다!
요즘 언론의 구설수에 심심치 않게 오르내리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 김건희에게 신문은 김건희여사라고만 표시한다.
퍼스트 레이디 김건희라고 표기하면 어디가 덧나나? 한마디로 국가원수의 부인을 대하는 기본적인 예의가 없다.
작금에 들어와서 대한민국 퍼스트 레이디에 대하여 이렇쿵 저렇쿵 소문이 떠돌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노무현대통령 령부인 권양숙부터 아닌가 생각이 든다.
부친의 죽창 살인사건서부터 미국에 살고 있는 아들에게 집을 사라고 현금 150만불을 전달해준 이야기에다가
결국엔 사업가 박연차로부터 600만불의 현금과 무슨 시계를 수수하고 잡음이 나니까, 논두렁에 버렸다는둥
권양숙 여사 개인에게는 둘도 없는 자랑스럽고 용감한 싸나이가 독박을 뒤집어 쓰고 부엉이 바위에서 다이빙 한 사건으로 종결되었지만, 참으로 엄청난 사건인데, 흙으로 덮고 말았다!
이어서 일부 언론에서 문재인을 노무현 변호사의 친구라고 하는데 사실은 나이 차이도 있고 친구가 아니라 시다바리였었다.
말인즉슨 노무현이 변호사시절부터 남쪽대통령이 될 수 있도록 기반을 띢아주었다는 얘기이다.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고 청와대로 데리고 들어가 민정수석, 비서실장 등 요직에 앉혀 놓고 인지도를 한껏 높여주었다는 얘기이다.
요즘 윤석열 대통령이 누구를 키우고 있듯이!
이시절 부산 저축은행 금융비리 사건이 터졌을때 민정수석이었던 문재인은 금융감독원에 전화 한통 해주고 변호사 수임료조로 50억 이상의 돈을 받았다.
고위 공직자가 겸직을 할 수 있나? 국가 공무원법, 제 64조 ( 영리업무및 겸직금지) 에 의해서 문재인은 명백히 범법행위를 저질렀기에 당시 검찰은 수사를 했어야 했다. 대한민국 헌정사가 달라질 수 있었던 것이다.
문재인 남쪽 대통령의 배우자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김일성의 부인의 이름과 같은 김정숙인데
이를보면 문재인의 선견지명은 대단하다.
북한에서는 김일성의 부인에 대한 호칭으로 "여사님이라고 하는데 이런 호칭은 북한에서 김일성 부인에게만 유일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인가? 남쪽대통령 부인의 호칭도 김정숙 "여사로부터 시작되었다.
문재인 남쪽대통령시절 김정숙여사의 구설수들은, 한여름 똥파리 한마리가 얼굴에 앉은듯한 기사내용은 한국언론의 수준을 말해준다.
얼굴에 파리가 앉았을때 어떻게 하나? 손바닥으로 내려쳐 때려잡을 수도 없고......
대통령이 동부인으로 해외를 출장중 김정숙여사의 개인행동은 당시 문재인의 시다바리들도 혀를 내둘렀다. 몰상식 그자체 이기때문이다.
전직 대통령의 령부인이야기를 할려면 이순자 여사의 이야기를 빼놓고 할 수가 없지 않는가? 주는 것 없이 미움을 받는 스타일이다.
다시 원론으로 돌아가 한국인들이 예의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화는 전두환 고스 톱이라는 게 당시 대유행을 했었다.
당시절 경기가 좋아지면서 대한민국 전국 곳곳에 사우나가 광풍을 불던 시절,
고스 톱이 치매예방에도 좋다는 정신과 의사의 권유로 국민적인 스포츠가 될 때,
전두환식 고스 톱이리고 판 스리를 하면 상대의 아무화투장이나 한장씩 뺐어오는 것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만 세상에 이런 국민이 어디 또 있나? 북한같았으면 잡히면 삼대가 멸하는 패륜 인 것이다. 대한민국 한국인의 자유와 풍요는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졌었는데,
대통령의 령부인 필담을 쓰려고 "육영수 여사에 대하여서 찾아보았는데 어디 한군데에도 험담을, 비하를 하는 얘기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대통령의 령부인으로서 표상 인 셈이다.
청와대 속의 야당당수라는 이름을 들을 정도로 남편인 대통령의 실수를 걱정했으며 낮은대로 임했으며, 즉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보살폈으며 근검절약에 솔선수범이었다.
무슨 명품 핸드백구( Hand Bag.) 를 누구로부터 받았다는 흔적은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었다.
구멍난 속치마를 손수 꿰메 입었다는 사실은 세간에 너무나도 잘알려진 사실인데,
이방면에 둘째가라면 서러워하실 또 한분의 퍼스트 레이가 게셨었다.
초대 건국대통령 이승만의 퍼스트 레이디 프란체스카 여사이다.
이분은 태생이 오스트리아 사람이면서 1948년부터 1960년까지 大대한민국 대통령의 퍼스트 레이디이셨는데 1960년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금으로부터 60여년 이상 전의 이야기들이며 당시로는 우리나라에서 연필 한자루, 종이한장 못만들던 시절이었다.
더우기 프란체스카 여사는 서양사람이며 1900년생이며 당시 48세 부터 12년 동안 대통령의 령부인을 지내셨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워낙 검소하시고 근검절약 정신이 타의추종을 불허 할 정도이니 본인도 뒤질세라 그러했으며 당시로는 항상 생활물자가 부족했었다.
이따금씩 주한 미군장성들이 청와대를 방문할시에 이승만 대통령이 좋아하시는 미군용 레이션을 한상자씩 선물했다는 일화가 있다.
프란체스카 여사는 1960년 4월 경무대를 나오신 이후 돌아가실 때 까지 매우 궁핍한 삶을 사시다가 1992년 작고 하셨다.
이부분에서 위정자, 사회에 욕이 절로 쏱아져 나온다! 이분 역시 구멍난 속옷을 손수 기워 입으신 분이다.
마지막으로 김영상 대통령의 령부인 손명순 여사에 대하여서도 역시 이렇다할 구설수가 없었다. 이분은 행동반경이 좁으셨으며 역시 검소하신 분이다.
필자가 기억하는 한장면은 김영삼 당선자시절 상도동 자택의 부엌모습을 텔레비죤을 통해서 본적이 있는데
손명순 여사는 한복차림에 저고리 소매를 걷어 붙이고 좁은 부엌에서 손수 멸치 다시국물은 내는지 석유곤로에 찍으러진 큰 냄비를 올려 놓고 일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는데
석유곤로야 일반서민들이 다 쓰는 구닥다리였었으며 큰 물통같은 노란 냄비는 찍으러져 있었다.
물론 프란체스카, 육영수, 손명순 같은 퍼스트 레이디 분들이 사셨던 시대를 지금과 비교하는 것은 공평하고 공정하고 형평성이 맞는 일은 아니지만
적어도 당시로 보아선 세도가 쎄면 더 셌을텐데 그분들이 명품 핸드백꾸( Hand Bad.) 를 누구로부터 받았다는 구설수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없다.
참고로 "크리스챤 디올. 명품 제조회사는 1946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77년이 되는 프랑스 명품 제조회사이다.
왜, 프란체스카, 육영수, 손명순 여사님들은 구설수가 없을까?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신분들이 아니라 일국의 대통령의 령부인으로서 남편인 대통령의 위신과 체면을 먼저 생각하시고 나라와, 국민과 그늘진 곳을 우선으로 눈여겨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 됨됨이 여성으로서의 품위가 여타 퍼스트 레이디들과 너무나 차이가 나니까,
문제의 령부인들과 비교 불가한 아름다운 여성이시며
국민들 개개인의 마음속에 어머니 같은 존재가 아닐까? by/조영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