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기고 싶은 엄지발가락
김현순
“어르신 어서 오세요?”
한참 더위가 극성이던 7월 말쯤 연세가 조금 있으신 할머님께서 진열되어있는 신발만 쳐다보며 아무 말씀이 없으시다.
입은 마스크를 착용하셨으니 더욱더 답답하고 표정 또한 어떤지 알 수가 없다.
나는 슬며시 다가가 “손님 몇 문 신으세요?” 물어봐도 묵묵부답이다.
대답하실 때까지 잠시 기다리는 중에 할머님 눈동자가 한곳에 머무른다.
한참을 서서 보시고는 신발 한 켤레를 덥석 집으시더니 “에이 나한테 작겠네!”라고 말씀하시며 또 다른 신발을 바닥에 툭 떨어뜨리고 신어보고는 “이것도 작아” 하신다.
혹시나 하고 신으셨던 신발 문수를 눈짐작으로 본 두 켤레를 다 신어보시라고 앞에서 놔드리며 신겨드리려고 하니 발을 빼지 않고 “내가 신을게 놔둬.” 하시며 조금 짜증스러운 말투를 내뱉고 좌우를 힐끔 쳐다보신다.
이곳은 4호선 지하철 출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곳과 이어지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이다.
“할머니 안에 들어오셔서 편하게 신어보세요” 하고는 다른 손님에게 장화 한 켤레를 팔고 다시 와보니 신발을 신으신 채로 제자리걸음만 하고 계신다.
‘또 작은가?’ 하고 엄지발 앞을 눌러보니 만져지지 않고 비어있는 것이 아닌가?
나는 잠시 멈칫하고 음료수 한 병을 건네드리며 “젊으셨을 때 높은 구두 많이 신으셨나 봐요?”라고 여쭈어보니 “어떻게 알지? 내 나이 때는 뒷굽이 8cm짜리인 걸 많이 신었지.”라고 하신다.
긴장이 조금 풀리셨는지 말씀을 하기 시작하신다. “젊었을 때는 미니스커트도 입고 모양도 많이 내고 카페에 가서 팝송도 듣고 친구들도 만나며 즐겁게 지냈지”라고 기억을 되살려 말씀을 하신다. 그 시절엔 조금 여유 있게 사신 듯했다.
58년 전 이야기를 짧게 말씀하시더니 “나이 들면서 엄지발가락이 이상해지더니 이렇게 됐다우” 하시며 보여주신다. “처음엔 엄지 발만 그랬어, 그런데 이제는 셋째 발가락이 넷째 발가락 위로 올라 앉았어” 하시며 멋쩍어하신다.
나는 발가락을 보는 순간 너무 놀랐다. 태어나서 이런 발 모양은 처음 봤기 때문이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할머님께 “제가 신발 가게를 처음 해보고 있는데 이곳에 생각보다 무지외반증 발 모양을 가지고 계신 분이 많이 오셔요.”라고 말씀드리며 더 심하신 분들도 많이 계신다고 이 정도는 심하신 게 아니라고 하며 말하였더니 “내가 신고 싶은 것은 샌들이야.”라고 하시며 나보고 직접 골라 달라고 하신다.
넓은 두 줄로 엑스자 모양인 볼도 넓고 외반증 도 살짝 가려주는 검은색 샌들을 골라드리니 흡족해하시며 연한 색은 싫다고 하신다.
사람들이 예쁘면 신발을 보면서 엄지발가락도 보게 될까 봐 시선이 싫다고...
몇 년 만에 신어보는지 모르겠다며 나를 바라보며 말씀하시는데 마스크 뒤편의 미소가 보이는 듯 기뻐하는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할머님께 귓속말로 “할머니 발 모양만 쳐다보고 걸어 다니는 사람 없으니 당당하게 걸으세요”라고 말씀드리니 나를 꼬옥 안아주며 “다음에 또 올게”라며 손을 마구 흔들며 가셨다.
마음이 정말 흐뭇하고 편했다.
2020년 11월 가을에 오픈하여 가을, 겨울, 봄, 여름 사계절을 지냈는데 특히 봄, 여름에는 양말을 잘 신지 않아 무지외반증 손님을 많이 보게 된다.
이곳은 지하철을 내려 위로 올라가서 도로 밖으로 나가면 재래시장과 각 분야의 병원도 많이 있는데 특히 병원에 치료 후 지하철로 이동하는 어르신들을 많이 보게 된다.
빵도 사고 옷도 사고 신발, 꽃 등등 여러 가지 물건도 사지만 오늘처럼 사람을 만나 대화를 사고 싶은 마음이 구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숨기고 싶은 엄지발가락을 보여주신 할머니께서 음료수 마실 때의 모습 속엔 나 역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을 느끼게 되어 나도 감사드린다.
불편함을 감수한 채 걸어 다니시는 무지외반증 환자를 위해 더욱더 편안한 신발 모양을 찾고 또 찾아다니며 사야겠다.
이 글을 쓰면서 할머님께 ‘눈치 보지 말고 멋스러운 신발을 신고 당당하게 걸으시며 노후를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을 보내본다.
첫댓글 신발가게 사장님의 친절과 세심함이 잘 드러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