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한국인을 비롯한 배달민족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의 정서를 ‘은근’과 ‘멋’이라고들 하지만, 자연스럽고 그윽하고 점잖은 것으로 은근을 풀이할 수 있을 것 같고, 멋은 댄디즘의 외형, 형식과는 다르게 정신적 사치스러움과 다소의 해학도 포함이 되어 있지 않나 싶은데, 따라서 여유가 있고, 낙천적이며, 공간지향(이고 – 옮긴이) 동적(動的. 움직이는[動] 성격의 것 – 옮긴이)인 데 비하여,
‘쓸쓸하고 상심(傷心. 상처[傷]입은 마음[心] → 슬픔이나 걱정 따위로 마음을 상함 : 옮긴이)’의 뜻을 가진 ‘와비(侘. <실의할[뜻이나 의욕을 잃을] 차>/<낙망할[희망을 잃을] 차> - 옮긴이)’와 ‘쓸쓸하고 한적한’ 뜻의 ‘사비(寂[<고요할 적> - 옮긴이])’, 숙명적이며 허무한 모노노아와레[物の哀れ. ‘어쩐지 슬프게 느껴지는 일’/‘자연이나 인간 세상에 관한 무상한 느낌’ - 옮긴이],
어의(語意. ‘어의[語義]’와 같은 말. ‘말이나 낱말의 뜻’. - 옮긴이)의 전달이 충분한지 모르겠으나, 대체로 그렇게 집약되는 일본인들의 정서에는 짙은 우수(憂愁. 근심[憂]과 걱정[愁] – 옮긴이)와 허무주의가 깔려 있다.
그리고 감상주의의 소지(所持[가지고 있음]? - 옮긴이)이기도 하며, 정적(靜的)이요 평면, 지상 지향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어둡다.
해서 고목에 앉은 겨울 까마귀는 그들 정서의 근사치(近似値. 다른 말로는 ‘근삿값’. 어떤 수 값에 충분히 가까운 수 값, 그러니까 ‘가깝고[近] 닮은[似] 가치를 지닌 것’이라는 뜻이다 – 옮긴이)며, (그것을 노래한 하이쿠나 일본의 유행가/동요는 – 옮긴이) 우리(한국/조선 공화국 – 옮긴이)의 경쾌한 새타령과는 대조적이다.”
- 42쪽
“우리나라(한국 – 옮긴이)에서는 흔해 빠진 그 통곡이 일본에서는 흔치가 않다. 일본의 문학작품 속에서 ‘통곡’이라는 말에 부딪치게 되면, 아주 특이한 느낌을 받게 된다. 어딘지 모르게 고답적인(현실과 동떨어진 – 옮긴이)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이다.
땅을 치고 통곡하는 원초적이며 아무런 거리낌 없이 독무대 같은 모습의 우리네들 통곡과는 전혀(완전히 – 옮긴이) 다른 이미지다. 분출되기보다 안으로, 안으로 밀어 넣으며 슬픔을 구속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실상 그들(일본인들 – 옮긴이)의 통곡에는 소리가 없는 것으로 표현되기 일쑤이며, 소리 없는 통곡, 그러니까 흐느낌과 비슷하고 오히려 ‘나키사케부(泣き叫ぶ[읍키규부] : 울부짖다)’가 우리네 통곡과 가깝지만, 역시 통곡과 울부짖음은 다르고 통틀어 그들의 울음을 생각할 때, 소리가 없는 것이 특징이며, 또 별로 울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에 대한 인상이다.”
- 43 ~ 44쪽
“통곡이 없는 민족, 울지 않는 민족, (일본인은 – 옮긴이) 왜 울지 않을까? 슬픔도 마치 실루엣같이 소리가 없다. 너무나 정적이다. 본시(本時. 여기서는 ‘원래’라는 뜻으로 쓰였다 – 옮긴이)부터 그러했을까? 그들이라고 울지 않을 리 없다. (그러니 원래부터 – 옮긴이)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칼로 상징되는 그들의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 탓일 것이다.
(그러니까 서기 20세기 후반 ~ 서기 21세기 초의 ‘울지 않는 일본인’은 서기 670년에 처음 나타난 것이 아니라, 중세시대에 무사들의 정권인 막부가 만들어지고, 그 뒤 수 세기 동안 내전이나 분열이나 전쟁이나 약탈이나 방화나 성범죄로 사회가 엉망이 되었기 때문에 – 그리고 에도 시대가 된 뒤에도 ‘칼로 다스리는 문화’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 적이나 무사들이나 다른 사람들의 ‘칼’에 죽임을 당하지 않으려면 속마음을 숨기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내가 볼 때는 무사를 비롯한 군인이 나라를 다스리는 전통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도 이어졌고, 전후에도 이 ‘전통’이 완전히 청산되지는 않았으며, 그래서 오늘날의 일본인들도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문화를 지니는 게 아닌가 한다 – 옮긴이)
사실 일본이 이웃에 끼친 피해의 규모가 크고 참혹함도 자심한 것이었지만(왜구[倭寇]의 후기 고리[高麗] 약탈/서기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근세조선 침략 전쟁인 ‘6년 전쟁’/일본 사쓰마 번의 유구[琉球]왕국 침략/왜구의 명나라 약탈/왜구의 다이 비엣[한자로는 ‘대월(大越)’. 비엣남(Vietnam)의 옛 이름] 약탈/일본의 하이[蝦夷. 에미시]족 학살과 혼슈 동북 지역 정복/일본의 아이누[다른 이름은 ‘야운쿠르’]족 탄압과 착취와 아이누 모시르[일본식 이름 ‘북해도(北海道)’] 침입/근대 일본의 대만 침략/유구 번[藩] 해체/근세조선 침략/대한제국 침략/요동반도의 대련[大連] 침략과 점령/‘만주’침략과 서기 1920년대 초의 시베리아 침략/중일전쟁/몽골 침략/태평양전쟁이 좋은 예다 – 옮긴이),
그들 스스로, 동족들 목줄기에 들이댄 칼의 세월이 훨씬 길다(미나모토 씨와 다이라 씨의 내전/일왕 집안 안에서 일어난 내전/남북조 시대의 싸움/오닌의 난/전국시대의 끝없는 전쟁이 좋은 예다 – 옮긴이). 그리고 그 참혹함도 타민족에 대한 것에 못지않았다(특히, 전국시대의 전쟁과 관습, 그리고 중세 이후 무사들의 관습이 잔인했던 점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글을 소개하고 인용하겠다 – 옮긴이).”
- 44쪽
“<체념>이라는 말에서 생각이 나는데, 우리들(한국인들 – 옮긴이)에게는 체념이 그리 오래된 말은 아닌성싶다. 어릴 적(박경리 선생이 어릴 적이었던 서기 1930년대 초/전반 – 옮긴이)에 늘 낯설지 않게 들어온 말에는 ‘포한(抱恨. 한[恨]을 품음[抱] - 옮긴이)’, 한(恨)이라는 말이 있다. 그리고 ‘체념’이라는 말 대신 ‘단념’이라는 말이 있었다.
재미나는 것은 체념과 한과 단념 이 세 가지 말이 지닌 뜻과 그 뉘앙스다. 체념에는 최소한도의 타협이 있다. 운명에 순종하며 살아남으려는, 체념한 대상에서 방향을 바꾸려는 계산이 있다. 한은 소망을 이루지 못한 소망이 저애된(沮礙된 → [일이나 행동 따위가] 막혀서[沮] 방해된[礙] - 옮긴이) 슬픔이다. 그러나 체념과는 다르며, 소망을 연장해 본다.
자신의 미래를 향해, 자식을 향해, 또 내세를 향해, 해서 포한은 ‘풀어야 하는 것’이다. 단념은 끊는 것이다. 타협이 아닌 끊어버리는 그 자체, 체념과 같은 타협이나 순종이 없다.
일본에는 ‘아키라메(諦め[제메] - 체념/단념)’라는 순수한 일본말이 있고, 그 말은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또 그 비슷한 말에 ‘간넨[觀念(관념)]’이 있는데, 자신을 달래는 뜻이 있는 아키라메와는 달리, ‘외부 상황에 따라 어쩔 수 없이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으로, 스스로를(자신을 – 옮긴이) 끊어버리는 단념과도 다소 다른 것이다.
이렇게 쓰고 보니까, 포한이나 단념이 주체적이라면, 아키라메나 간넨은 타의에 의한 것이다.
(일본의 – 옮긴이) 하라키리(切腹[절복] : 할복 – 옮긴이)는 ‘간넨’의 행위이며, 그것이 바로 현실이다(즉, 하라키리는 ‘자유의지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사실상 강요당한 죽음’이라는 이야기이다 – 옮긴이). 그들(일본인들 – 옮긴이)의 현실.
종교에 있어서 신(神)은 내세에 대한 약속을 한다. (그런데 – 옮긴이) 일본의 신은 (다른 종교의 신들과는 달리 – 옮긴이) 내세에 대한 약속이 없다. ‘신국(神國)의 대본신(大本神. 크고[大] 중요한 근본[本]이 되는 신[神] - 옮긴이)’ 아마테라스도 ‘현인신(現人神. 사람[人]의 몸으로 나타나신[現] 신[神]. 그러니까 <신의 화신인 사람> - 옮긴이)’인 왕들(일왕들 – 옮긴이)도 (신도들/백성들에게 – 옮긴이) 내세에 대한 약속을 못 했다.
(참고로,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선한 영혼들이 죽은 뒤에 가는 낙원으로 가는 길이 있다고 가르치고, 힌두교에서는 극락과 지옥이라는 내세를 가르치고, 옛 케메트[‘이집트’의 옛 이름]의 다신교도 ‘착한 영혼이 영원히 살 수 있는 낙원 같은 내세’와 ‘신들의 규칙을 지키지 않은 자가 가는 어둡고 끔찍한 내세’를 가르쳤으며, 천주교로 개종하기 전의 바이킹족은 ‘발할라’라는, 용감하고 씩씩하게 싸우다가 죽은 전사들의 넋이 가는 낙원 같은 궁전을 믿었고, 마야나 테오티우아칸 사람들은 죽은 뒤에 가는 낙원 같은 내세를 믿어 그 내세를 다룬 벽화를 남겼다 – 옮긴이)
(그저 – 옮긴이) ‘<도요아시하라>라는 일본국은 만세일계 아마테라스의 자손이 다스릴 것’이란 말밖에(못 했고 – 옮긴이), 아마테라스는 (다른 종교의 신들과는 달리 – 옮긴이) 종교적 말씀이 없었다(키엔기르[‘수메르’의 바른 이름]와 바빌로니아의 서사시인 『 길가메시 서사시 』 에는 ‘야만인의 문명화’나 ‘과연 인간은 죽음을 피할 수 없는 것인가?’와 같은 진지한 주제가 나오고, 헬라스 본향풀이에는 미다스 왕의 황금 손 이야기처럼, 나름대로 교훈을 주는 이야기가 나오고, 북유럽 본향풀이에도 주요한 신인 오딘이 ‘욕심을 부리는 자는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가르치는 대목이나, ‘손님을 잘 대접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대목 같은, 가르침이나 윤리나 격언이 들어있으나, 아마테라스는 이런 일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 옮긴이).”
- 45 ~ 46쪽
― 이상 『 일본산고(日本散考) 』 ( 작은 제목 「 역사를 부정하는 일본에게 미래는 없다 」. ‘박경리’ 지음, ‘다산북스’ 펴냄, 서기 2023년 )에서 발췌
- 단기 4356년 음력 7월 14일(국치일)에, 영화 < 봉오동 전투 >의 전투 장면을 담은 움직그림을 보면서 이 글을 옮겨쓰는 (그리고 왜국[倭國] 정부에게 후쿠시마 원전 방사능 오염수 버리기를 중단하라고 강요하기 위해 싸우시는 모든 분에게 진심 어린 경의를 표하는) 잉걸이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