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가 멈추자 디지털로 연결되던 시민들의 생활도 멈췄다. 지난 15일 오후 3시30분 SK C&C 분당 데이터센터 화재로 최장 기간 이어진 ‘카카오 먹통 사태’는 대규모 디지털 정전을 방불케 했다. 메신저로 시작한 카카오 서비스가 금융과 이동수단 등 생활 전반으로 확장됐기 때문이다. 서비스 대체재를 찾지 못한 시민들은 우왕좌왕하며 불편을 겪었고 일부는 생계나 병상 배정 등에도 차질을 빚었다.
서비스 장애가 하루를 넘긴 16일 카카오톡 메신저가 주요 소통 수단인 이들은 고립감에 가까운 기분을 느꼈다. 문자나 통화로 소통을 대체하니 “스마트폰 이전 2G 휴대전화 시대로 돌아간 기분”이라는 글이 쏟아졌다.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기보다 카톡 프로필을 주고받는 Z세대에게는 소통 단절이나 마찬가지인 상황이 벌어졌다.
대학생 최제환(20)씨는 “저녁 8시에 카카오톡으로 팀 프로젝트 과제를 하기로 했는데 팀원 연락처가 카카오톡 프로필밖에 없어서 연락하지 못해 과제 제출에 차질이 생겼다”고 했다. 주말이지만 밀린 업무를 처리하던 직장인에게도 불편함은 컸다. 직장인 송도희(30)씨는 “업무 관련 내용도 카카오톡에 많고, 자료 백업용으로 카카오의 업무 툴 ‘아지트’를 쓰고 있어서 난감했다”며 “출력한 문서와 이메일 등을 뒤져 업무 자료를 찾아내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고 했다.
카카오 서비스를 기반으로 영업하는 자영업자도 불편함을 겪었다. 경기도의 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최주은(19)씨는 “하루에 20건 정도는 기프티콘을 이용한 주문이 들어오는데, 기프티콘 주문도 번호 조회도 되지 않는 상황이라 매출에 타격이 있다”며 “상황을 잘 모르고 왜 기프티콘 사용이 안 되냐며 항의하는 손님도 있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예약을 받던 1인 자영업자들은 인스타그램 등 다른 플랫폼을 통해 예약을 받겠다는 공지를 올렸다.
카카오페이나 카카오뱅크 등 금융서비스를 이용하는 시민도 불만을 쏟아냈다. 김지우(28)씨는 “비상금을 카카오페이로 충전해 사용하는데 이번 사태로 돈을 다시 계좌로 뺐다”고 했다. 특히 카카오페이의 경우 지문·안면 인식으로 개인인증을 할 수 있는 인증서를 운영하고 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앱이나 쇼핑몰, 각종 핀테크와 대행사이트 접속을 카카오로 해놓은 사람들과 카카오 인증서로 관리하는 사람들은 토요일 오후 5시부터 거의 주민등록 말소된 상태 비슷한 상황인 것”이라고 불만을 표했다. 카카오 인증을 통한 로그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음악 스트리밍서비스 멜론, 새벽배송 플랫폼 마켓컬리, 가상화폐 거래소 업비트 등도 공지를 통해 로그인이 불가능하다고 알렸다.
모빌리티 서비스도 중단되며 각종 이동수단도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카카오티(T) 택시 플랫폼을 이용하던 택시 기사들은 “하루 장사 공쳤다”는 푸념을 늘어놓았다. 4년 차 법인택시 기사 김영호(60)씨는 “카카오 콜을 이용하지 못하니 적절한 코스로 손님을 태우지 못해 수입이 평소의 60% 수준”이라며 “5년 차 이하 택시기사들은 카카오 콜로 손님을 태우는 데 익숙해서 길에서 타는 손님이 어디에 많은지 알지 못한다. 이들은 아예 하루 영업을 접었다”고 했다.
코로나19 환자 병상 배정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앙사고수습본부 수도권긴급대응상황실 병상배정반과 각 지역 보건소, 병원 관계자들이 카카오톡 단체방을 통해 환자 발생을 보고하고, 병상 수를 확인하는 소통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송명제 가톨릭관동대 국제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병상배정반과 병원 의료진 20여명이 함께 있는 단체 카톡방에서 병상 배정을 논의해왔다. 새로 들어온 코로나19 환자 상태를 보고하면, 배정반이 병상을 지정해주는 식이다. 그런데, 어제(15일) 오후부터는 카카오톡이 되지 않아 개별 의료진에게 문자와 전화로 통보가 오고 있어 병상 배정이 매우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병상 배정이 늦어져 20시간 넘게 병원 응급실에서 대기하고 있는 코로나19 환자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SNS에는 카카오 킥보드 반납이 이뤄지지 않아 이용 요금이 10만원이 넘게 늘어나고 있다는 사례, 내비게이션을 이용하지 못해 불편을 겪고 있다는 여행객이나 배달 라이더, 카카오대리 이용이 안 돼 대리운전 영업을 하지 못했다는 사례 등이 공유됐다. 카카오 서비스 장애로 인한 피해를 보상받을 수 있느냐는 질의도 함께 올라오고 있다. 카카오는 트위터를 통해 복구 상황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오전 8시40분께는 카카오톡의 일부 이용자의 문자 메시지 송수신이 가능하다고 알리며 “현재 정상화 작업 지속 진행 중으로 메시지 송수신이 아직 원활하지 않을 수 있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번 사태로 우리 사회가 카카오라는 단일 사업자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연하게 드러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해외에서도 일부 지역에서 독점하고 있는 메신저 앱이 있지만, 카카오처럼 생활 전반에 침투한 플랫폼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위정현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는 “특정 민간기업의 서비스에 대한 국민의 의존도가 높고, 공공재처럼 작동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의 카카오 사례가 유일해 보인다”며 “지난 10년간 카카오톡을 중심으로 인적 네트워크가 연결돼왔기 때문에 시민들도 별다른 방법 없이 카카오 서비스를 계속 이용하게 될 것이다. 독과점이 무서운 이유”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