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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만 매립지 오다이바. 1800년대 에도시대 방어목적으로 만들기 시작한 인공섬인데, 지금은 도쿄의 관광 명소 중 한 곳이 됐다. 오다이바에는 자동차 복합문화공간인 메가웹, 국제박람회장인 빅 사이트, 후지TV 스튜디오, 그리고 레인보우 브리지까지 수많은 볼거리들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로봇 마니아들에게 오다이바는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곳에는 아는 사람은 다 아는 두 개의 로봇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다. 하나는 애니메이션으로 전 세계인들에게 잘 알려진 건담 로봇이다. 다이버시티 앞에 우뚝 서 있는 건담의 높이는 무려 18m. 움직이지 않는 모형에 불과하지만 그 큰 덩치에도 워낙 정교하게 제작돼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것 같은 분위기다.
낮과 밤에 쇼를 하는데, 밤에는 특히나 볼 만하다. 어릴 적 만화영화 속 건담의 활약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경험이 있는 이들에겐 가슴 두근거릴 만한 광경이다.
건담이 있는 곳에서 걸어서 10여 분쯤 가면 ‘미라이칸(미래관)’이 나온다. 과학관인 이곳에는 또 하나의 유명한 로봇이 있다. 글로벌 자동사 회사가 만든 인간형 로봇 ‘아시모’(ASIMO)다. 18m 높이의 거대하고, 비장한 모습의 건담과는 달리 아시모는 1m20cm 정도의 아담하고 귀여운 크기다. 하지만 무뚝뚝하고 건장한 모습으로 서 있는 건담과는 달리 아시모는 하루 3차례 관람객들을 위해 즐거운 쇼를 한다.
10분 정도에 불과하지만 아시모를 처음 본 외국인들은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 서서히 걸어 나와 앞뒤로 빠르게 뛰는 모습은 흡사 사람이 로봇 안에 들어가 쇼를 벌이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한 발로 연속 점프를 하는 모습을 보면 정교한 균형 감각이 혀를 내두르게 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에 아이들 모두 박수를 치며 즐거워 하지만 너무 놀라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도 심심치 않게 있다.
일본과 미국의 로봇대전
미국의 대형 로봇업체인 메가보츠가 얼마 전 유튜브에 ‘일본 대형로봇 결투 신청’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메가보츠의 임원 2명이 거대한 로봇 앞에서 마치 슈퍼맨처럼 성조기를 몸에 두르고 화면에 나타나 일본 로봇업체인 스이도바시를 지칭하며 “우리 대형 로봇이 너희에게 결투를 신청한다”며 전의를 불태웠다.
해프닝으로 끝났을 법도 한 일이 글로벌 미디어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스이도바시 중공업이 이 대결을 받아들이겠다며 맞장구를 치면서다. 스이도바시 중공업의 창업자인 구라타 고고로 사장은 일주일쯤 뒤에 유튜브에 “거대 로봇은 일본의 문화”라며 “이 싸움에서 다른 나라가 이기도록 놔둘 수 없다”는 동영상을 올렸다. 이로써 초유의 미일 로봇 대결이 1년 내에 벌어지게 됐다. 스이도바시는 탑승형 로봇인 구라타스를 전투형으로 개조해 메가보츠의 메가봇마크와 대결을 벌일 예정이다. 로봇 마니아들은 몸집으로 보면 메가봇이 크지만 스이도바시의 구라타스가 워낙 정교하게 만들어져 만만치 않은 승부가 될 것이라며 벌써부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로봇 마니아들이 즐비한 일본 열도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질 것은 당연지사다. 스이도바시의 구라타스는 높이가 4m, 무게가 3.5t에 달하는 로봇으로 사람이 직접 탑승해 조종석에서 조종이 가능하도록 제작했다. 영화 <아바타>에서 인간이 탑승해 아바타들과 전투를 벌이던 바로 그런 로봇 방식이다. 스이도바시는 2013년엔 15억원에 달하는 이 로봇을 일본 아마존에서 판매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당시 이 로봇은 6일 만에 완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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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용화된 일본의 지능형 로봇
최근 일본 도쿄의 가전·도서판매점 츠타야에 귀여운 인간의 모습을 한 로봇 ‘페퍼’가 등장했다. 소프트뱅크가 시중 판매를 시작한 이 로봇은 고객의 말에 반응하며 ‘오하요’(안녕) 등 인간처럼 말을 쏟아냈다. 페퍼는 손정의 회장이 참석한 주주총회나 발표장에 간간이 나타나 청중들에게 소개되면서 이미 일본 내에서는 친숙한 이미지가 됐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 밖으로 뛰쳐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소프트뱅크는 지난 6월에 180만원 정도의 페퍼를 시판하기 시작했는데, 불과 1분 만에 1000대가 완판되기도 했다. 높이 120cm 정도인 페퍼는 장난감 로봇이 아니다. 가정에서는 간호용으로, 사무실이나 매장에서는 접객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지능형 로봇이다. 지금은 초보적인 수준의 말이나 반응이 나오고 있지만 점점 지능화되면서 웬만한 보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페퍼가 시중 판매를 시작할 즈음 손정의 회장이 중국의 벤처 거부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 애플의 아이폰을 위탁생산하는 대만 팍스콘의 쿼타이밍 회장과 함께 손을 잡는 모습이 미디어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글로벌 IT산업을 이끄는 이들 3명이 손잡고 본격적인 로봇 시대를 열겠다는 선언식이었다. 3개 회사는 공동으로 출자한 회사를 통해 페퍼를 연 1만대 이상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우주소년 아톰과 건담, 트랜스포머에 이르기까지 무한한 상상력과 감성을 자극했던 로봇들은 이제 더 이상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다. 1만대 이상의 하얀색 페퍼가 눈을 깜박이며 공장에서 출하를 기다리는 모습을 실제로 보게 된다면 할리우드 영화 <아이로봇>이 더 이상 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로봇이 현실로 튀어나오기 시작할 때 일본은 앞선 기술력으로 로봇 시장을 이끌어갈 나라 가운데 한 곳이 될 것이 분명하다. 아톰이나 건담에 대한 향수를 넘어 이미 수많은 일본 기업들이 로봇 기술을 연구하며 실용화를 서두르고 있다. 일본 경제 산업성은 올해 1조5000억엔 수준인 로봇시장 규모가 2035년엔 10조엔을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인터넷 시대의 제왕’으로 우뚝 섰던 손정의 회장은 향후 최고의 성장산업은 ‘로봇’이 될 것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부지불식간에 로봇 시대는 벌써 우리 앞에 성큼 다가왔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Luxmen 제59호 (2015년 08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