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계, 이 차가 SUV야?’라는 실망 섞인 조롱 듣던 날도 이제 끝이다. 신형 2008은 근육을 잔뜩 키워 늠름한 SUV로 거듭났다.
글 윤지수 기자 / 사진 윤지수, 푸조
초대 2008 / 207 SW 왜건
솔직히 지난 2013년 등장한 1세대 2008은 달갑지 않았다. 명색이 SUV라면서 사륜구동 시스템은커녕 스타일마저 MPV처럼 여리여리해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는 했다. 2008은 이전 ‘207 SW’ 왜건 빈자리를 꿰찬 SUV다. 2008이지만 ‘208 SW’이기도 했기에 마냥 우락부락할 수만은 없었다.
신형 2008 SUV
이제는 다르다. 전 세계적인 SUV 광풍은 더욱 거세졌고, 푸조 역시 3008 SUV, 5008 SUV 등 신차 이름 뒤에 노골적으로 ‘SUV’라는 이름 붙여가며 본격적인 SUV를 지향했다. 2세대 2008 SUV가 제대로 ‘벌크업’한 배경이다.
암석을 깎은 듯이
첫 마주한 느낌. 신형은 한결 늠름하다. 덩치가 크다. 길이 4,300㎜로 이전보다 140㎜나 늘었고, 너비도 30㎜ 늘어난 1,770㎜다. 높이는 5㎜ 줄어든 1,550㎜. 현대 코나(4,165㎜)만 했던 SUV가 기아 셀토스(4,375㎜) 버금갈 만큼 커졌다.
보닛을 수평으로 눕히고 뒤 트렁크를 각지게 마감해 실루엣이 강인하다
가까이 다가서도 마찬가지다. 이제 보닛 끝단이 팔 걸칠 수 있을 만큼 높다. 이전 세대 경사졌던 보닛을 수평에 가깝게 눕힌 까닭이다. 마치 작은 지프나 랜드로버를 마주한 느낌이랄까. 더욱이 보닛 전체가 조개껍질처럼 두툼히 열리는 ‘클램쉘’ 구조를 활용해 남성미를 더했다.
2008 SUV는 지름 약 690㎜ 큼직한 타이어를 달아 비율이 당당하다
거대한 바퀴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포인트. 동급 SUV보다 큼직한 타이어를 달아 당당한 비율을 그린다. 신형 2008 타이어 규격은 215/60 R17로 지름이 약 690㎜다. 632㎜였던 이전세대보다 58㎜ 더 늘었고, 덩치가 더 큰 기아 셀토스의 지름 약 670㎜ 타이어보다도 20㎜ 더 큼직하다.
암석을 깎아낸 듯한 날카로운 캐릭터라인
LED 헤드램프, LED 테일램프가 들어간다
마무리는 SUV 맛 낼 조미료다. 차체 옆면은 마치 암석 깎아낸 듯 날카롭게 조각했고, 바닥은 검은색 장식으로 두툼하게 둘렀다. 차체 사방에 붙은 은빛 장식 역시 마치 금속 보호대처럼 시각적으로 탄탄한 느낌을 더한다.
입체적인 굴곡이 인상적인 실내
남다른 ‘조종석’
둥글둥글 귀여웠던 실내는 완전히 탈바꿈했다. 문짝 속살은 3008 못지않게 화려하다. 굴곡이 어찌나 과감한지 대시보드 곳곳에 짙은 그림자가 깔릴 정도. 버튼이 센터페시아 한가운데 토글스위치가 거의 전부인데도 결코 심심하지 않다. 도리어 복잡하다.
계기판을 운전대 너머로 바라보는 아이-콕핏 인테리어 / 계기판엔 3D 디지털 화면이 들어갔다
남다른 스타일 밑바탕은 최신 아이-콕핏. 운전대 사이가 아닌 너머로 계기판을 보기에 구조부터 일반 차와 확실히 다르다. 운전대는 훌쩍 작아졌고, 계기판과 센터페시아 모니터는 높직이 솟았다. 운전대 앉아 바라보면 대시보드 ‘성벽’이 든든할 뿐 아니라, 콘셉트카에 앉은 듯 새롭다.
알칸타라 가죽 시트는 사전계약 초기 150대 한정판 모델에만 들어가는 특별 사양
소재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오돌토돌 깊이를 구현한 탄소섬유 무늬 소재로 대시보드를 꾸미고, 운전대와 문짝 손잡이, 팔걸이까지 제법 아낌없이 가죽을 둘렀다. 심지어 시트엔 부드러운 알칸타라 소재까지 들어갔다. 단, 알칸타라 가죽 시트는 사전계약 초기 150대 한정판 모델에만 들어가는 특별 사양이다.
한층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는 2열 공간
뒷좌석은 신형 2008의 백미다. 덩치를 키우면서 키 180㎝ 성인이 편하게 앉을 수 있을 만큼 공간을 키웠다고. 키 177㎝ 기자가 직접 앉아보니 뻥은 아니다. 앞좌석 시트와 무릎 사이 주먹 두 개가 들어가고, 머리 위로 주먹 하나가 남는다. 특히 1열 시트 아래 깊은 발 공간을 마련해, 다리도 편하게 펼 수 있다. 등받이 각도는 조절할 순 없지만 기본 각도가 불편하진 않다. 가운데 팔걸이만 있었더라면 금상첨화였겠다.
트렁크 용량은 시트를 모두 폈을 때 434L, 뒷좌석을 접었을 때 1,467L다
트렁크 공간도 당연히 늘어 VDA 기준 434L 짐을 꿀꺽 삼킨다. 이전 360L보다 74L나 늘어난 수치다. 60:40으로 나뉘어 접히는 2열 시트까지 접은 최대 트렁크 용량은 1,467L. 2열 시트가 완전히 평평히 눕진 않지만, 트렁크 바닥 판과 시트 사이 걸리는 턱이 없어 차박도 무리 없다.
위아래가 평평한 '더블 플랫' 타입 스티어링
정평난 핸들링으로
본격적인 주행에 앞서 운전 자세부터. 2008은 운전대 잡는 순간부터 특별하다. 운전대 너머로 계기판을 바라보는 ‘아이-콕핏’ 덕분에 운전대 위치 조절이 ‘내 맘대로’다. 특히 운전대 간격을 조절하는 텔레스코픽 조절 범위도 충분해 마음껏 운전 자세를 조율할 수 있다. 다만 세밀한 시트 높낮이 조절이 힘든 펌핑식 레버와 등받이 각도 조절이 한참 걸리는 회전식 각도 조절 레버는 다소 불만이다.
직렬 4기통 1.5L 디젤 엔진을 가로로 얹은 엔진룸
스타트 버튼을 누르자 4기통 1.5L 디젤 엔진이 굵은 숨 토하며 깨어난다. 역시 공회전 시 진동과 소음은 디젤 엔진 명가 푸조답다. 가솔린 엔진 수준까진 아니어도 차급을 고려할 때 불쾌한 떨림을 제법 효과적으로 억제한다.
첫 가속 반응은 묵직하다. 가벼운 소형 SUV도 디젤 파워트레인 특유의 묵직한 회전 감각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여러 겹 방음재를 뚫고 들이치는 낮게 깔린 저음의 디젤 엔진 소리도 이런 감각을 돋운다.
그런데 가속은 또 빠르다. 무겁게 회전하는 디젤 엔진이 공차중량 1,345㎏ 차체는 우습다는 듯 가뿐하게 차체를 내몬다. 특히 저속에서 눈에 띄게 강력해 일상 주행 만족감이 무척 높다. 이미 1,750rpm에서 3.0L 가솔린 엔진에 버금가는 30.6㎏·m 최대토크를 끌어내는 까닭이다.
물론 토크뿐만은 아니다. 휙휙 돌아가는 작은 운전대와 예민하게 조율한 기어비, 낮은 운전 자세가 어우러져 도심을 날쌔게 누빈다. 특히 꼬부랑 굽잇길에선 입꼬리가 절로 솟을 정도다. 작은 운전대로 레이싱 게임하듯 코너 안쪽을 파고든 후 강력한 토크로 힘차게 코너를 빠져나간다. 분명 키 큰 SUV인데 운전하는 감각엔 작은 해치백 208 흔적이 짙게 벴다.
서스펜션도 그렇다. 유럽 특유의 담백한 성격이 고스란히 담겼다. 노면 충격을 적잖이 전하지만, 충격을 받은 후 출렁임이 거의 없다. 그래서 연속으로 충격이 이어지는 거친 노면에서 오히려 안정적이며, 팽팽한 하체가 좌우 쏠림을 든든히 억제해 급격한 선회도 부담 없다.
고속 안정성 역시 수준급. 작은 차 잘 만드는 푸조답다. 65㎜ 늘어난 2,605㎜ 휠베이스만큼 앞뒤 바퀴 거리가 멀어져 차분하게 직진하며, 간결한 서스펜션은 고속에서 갑작스러운 너울을 만나도 재빨리 자세를 추스른다.
다만 저속에서 빛났던 토크는 고속에서 자취를 감춘다. 시속 약 70㎞를 넘어선 속도에서는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아봐야 느긋하게 속도를 높일 뿐이다. 처음엔 변속기 반응이 늦은 줄 알고 수동으로 저속 기어를 미리 물린 채 페달을 밟아도 봤지만, 마찬가지였다.
1.5L 작은 배기량과 더불어, 최고출력이 130마력인 탓. 사실 작은 차체를 고려하면 결코 낮은 수치는 아니지만, 평소 윗급 세단 타는 기자가 타기엔 출력 부족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도 예전 첫 출시 당시 92마력에 불과했던 초대 2008과 비교하면 일취월장이 따로 없다.
고효율은 여전하다
시승 막바지에 이르러 첨단 운전자 보조 장치(ADAS)를 켰다. 신형 2008 GT 라인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 중앙 유지(LPA) 장치가 들어가 잠깐이나마 반자율주행을 누릴 수 있다.
시승 코스가 얼마 남지 않아 아주 잠깐 ADAS를 써봤으나 최신 신차답게 가감속이 부드러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로 달려도 어색하지 않다. 특히 LPA는 고속도로 진출로처럼 급하게 꺾인 도로에서도 끝까지 끈덕지게 차선 중앙을 유지하려 애쓰는 모습이 인상 깊다. 다른 차였다면 한참 전에 조향을 포기했을 테니까.
시승을 모두 마친 후 기록한 트립컴퓨터상 연비는 L당 18.8㎞. 하늘에 구멍 뚫린 듯 비가와 타이어 구름 저항이 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뛰어난 효율을 기록했다. 심지어 시승 코스 중 정체 구간도 꽤 있었기에 더 대단하다. 역시 효율 좋은 삼박자, 소형차 + 디젤 + 8단 변속기 조합답다. 참고로 공인 복합 연비는 L당 17.1㎞다. 이전보다 2㎞/L 더 높다.
푸조 2008. 덩치도 커졌고, 늠름한 SUV 스타일도 챙겼다. 그럼에도 효율은 더욱 뛰어나고 날렵한 몸놀림은 여전하다. 이전 세대 매력을 지킨 채 새로운 매력까지 더한 셈. 과연 한층 성숙한 푸조의 막내 SUV는 국내 소형 SUV 시장을 다시 파고들 수 있을까? 가격은 GT 라인 시승차 기준 3,545만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