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되었거나 옥반 가효에 금준 미주를 청커니 자커니 하면서 둘이서 마셨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사슴의 샤브샤브 요리와 먹고 마시고 나서 취하지 말라고 올라온 冬蟲夏草(동충하초)는 그 시절에는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음식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천인혈(千人血)을 마시고 만성고(萬姓膏)를 먹었는지 알 수는 없다만 금준 미주(金樽美酒)와 옥반 가효(玉盤佳爻)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 술이 그 음식이 千人血이요 萬姓膏였다면 이 자리에서 사죄함을 통찰하오니, 일단 접어두기로 하고 명정기에 오른 술 마신 이야기만 하겠다.
酒宴(주연)에서 사장 같은 그는 하인 같은 나를 上座(상좌)에 앉히고 禮를 다하니 店主와 종업원은 그저 따라서 거지같은 사람에게 굽실굽실했었다.
4계절 중 술이 가장 잘 마셔질 때는 바로 지금이었다. 봄이 오기에 앞서 그리 춥지도 그렇다고 봄이 와서 축 쳐진 상태도 아닌 4월이 술 마시기에 가장 좋은 달이라고 술꾼은 안다. 혹 여러분도 4월이 오면 목련꽃이 피거나 지거나 벚꽃이 한창인 철이 오면 초저녁에 대청마루에 앉아 4월의 저녁 술을 마셔 보라. 굳이 금준 미주가 따로 있겠느냐? 어느 술이든지 어떤 잔이든지 金樽美酒가 될 터이니 말이다.
우리가 그날 마신 술이 알고 보니 호리병에 인삼 몇 뿌리 넣고 조제한 약주였으니 그게 무슨 특별한 미주였겠냐 마는 마음이 미주이면, 미주이니 미주로 마셨던 것이다. 그리고 샤브샤브는 무엇이 또한 그리 귀한 음식이드냐? 수입 소고기 적당히 썰어 신선로에 올리면 샤브샤브가 되고 동충하초는 아시다시피 중국에서 수십 톤씩 싣고 오는 것이 아니더냐? 그러나 나는 그날 금준 미주를 옥반 가효에 마시고 먹었으니 그만하면 융숭한 대접에 기쁘게 먹고 마셨다.
알맞게 취하여 우린 다시 원주로 들어왔다. 어디 주점으로 노래를 부른다고 들어가니 웬걸 그곳에는 그 친구 사무실 직원이 전원 와서 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에는 다들 가족과 떨어져 몇 개월씩 몇 년씩 지방 근무하다 다시 서울로 발령 받고 갈 날만 기다리는 곳이니 다들 저녁이면 어디 건수 없나하고 있던 차 직원 친구 온다니 환영한다며 같이 왔던 것이었다. 술 마시고 어울리는 것은 둘이 노는 것보다 여럿 모여서 노는 것이 재미있고 즐거운지라 같이 어깨동무 새 동무하며 그 집이 떠나도록 마시고 놀아주었다.
자정이면 도시의 모든 술집은 영업이 정지되던 시절이었다. 혹자는 무슨 호랑이 담배 피는 이야기라고 할지도 모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얼마전의 이야기이다. 지금부터 5년 전만 되돌아가도 이 땅엔 관광특구나 특급호텔 제외하고 어느 한 곳 자정 넘어 정식 영업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참 지금 세상 많이 좋아졌다. 그 얼마나 술 마시기 좋으냐? 하다못해 노래방에 가도 술 마시고 밤새 노래한다면 밤새 영업해 주니 말이다.
그러나 그때는 지금과 달랐다. 자정이 되었으니 이제 그만 일어서야 했다. 그러나 술시동이 걸린 우리 둘이 아니 모두가 그만 돌아갈 기세가 아니었다. 그들은 나를 앞세워 원주에 하나뿐이고 마지막인 원주 관광호텔에 스카이라운지 주점으로 갔었다. 그리고 그 노란 술 양준가 무언가 노란 술을 얼굴이 또 노래지도록 마셨다. 몇 병이나 마셨을까? 노오란 술을? 노오란 오줌이 될 노오란 양주를 그 녀석과 나는 끄덕도 없이 세시나 되도록 마시고 호텔 방으로 붙들려 갔었다. 그 큰 방 20명은 잘 수 있는 특실이니 스위트인지 풀장같이 넓은 온돌방에서 눈이 퉁퉁 붙도록 잠을 잤었다.
첫댓글 오전에 일 좀 하고.. 저녁답에 와가 마져 읽고 꼬리 달긋습니당^^
가끔은 예전의 통행금지가 그리울때가 있답니다. 영업도 12시까지만....술도 12시까지만 먹기...ㅎㅎ
에고에고.. 전혀 낯썬문화를 알콩달콩 글로 듣는군요. 두칠님의 글솜씨는 끝간데 없구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