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뒤척였다. 유명관광지여서 그런지 주위가 소란스럽고 어제 저녁 들어온 컨터키 여행자들의 밤중 소란도 더욱 그랬다. 캠핑 체크인 방식도 다른 곳과 달라 당황하였고 전망대와 레포츠의 예약 방법을 몰라 더욱 어려웠다. 말이라도 통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었을 텐데 새삼스레 언어장벽의 불편함을 실감한다.
여기서 오를 수 있는 전망대로는 융프라우효흐와 쉴트호른 그리고 피르스트가 있고 레포츠는 행글라이더, 계곡의 물결을 헤치며 나가는 캐뇨닝, 번지점프 등이 있다. 오랜 망설임 속에 그 유명한 융프라우요흐는 포기하고 알프스에서 가장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실트호른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나무를 보고 숲을 못 본다는 말이 있듯이 유명 봉우리를 오르기보다 그 옆 전망대에서 유명 봉우리를 감상하기로 한 것이다. 이른 아침의 등정은 가격이 저렴했고 애들은 주니어 요금으로 해결하니 다른 코스보다 비교적 부담 없는 가격으로 오를 수 있었다. 캠핑장 체크아웃 시간이 오전 10시인데 사정을 이야기하여 12시로 연장하고는 아침을 일찍 해먹고 8시 17분에 출발하는 실트호른 역에 도착하였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driving-tour.com%2Fzero%2Fdata%2Ffreealbum%2Fm17road.jpg)
< 실트호른 전망대 오르는 길 >
톱니기차인 푸니쿨라와 열차를 번갈아 타고 뮈렌으로 이동하여 케이블카를 두 번 갈아타고서야 실트호른 전망대에 도착하였다. 오르는 도중에서의 경관도 일품이지만 여기서 바라보는 아이거, 융프라우, 묀흐의 봉우리들의 위용에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거대한 규모와 태고적 신비감이 떠오르는 태양의 역광속에서 희미하게 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실트호른 전망대에선 맘 설레며 만년설을 손으로 만져보고 맛도 보았다. 그리고 007영화 촬영지로 유명하며 55분에 한 바퀴씩 회전하는 전망대의 식당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주위를 조망하는 여유로움도 맛볼 수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driving-tour.com%2Fzero%2Fdata%2Ffreealbum%2Fm17peak.jpg)
<아이거, 묀허, 융프라우>
서둘러 내려와서 캠핑장 체크아웃 시간을 맞추고 다음 행선지를 정했다. 우리는 심사숙고 끝에 여기서 스위스의 일정을 마무리하기로 하였다. 원래의 일정은 그린덴발트 그리고 루째른에서 케이블카로 알프스를 관광하고 레포츠를 즐기는 것이었으나 금전적인 부담도 되고 일정도 많이 늦었으므로 알프스 관광은 이 정도로 하고 다음 나라인 이탈리아로 이동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지금의 늦어진 일정으로는 로마의 관광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유럽관광의 절반이라는 로마는 애들에게는 꼭 필요할 거라는 생각이 든다. 로마로 향하는 길에 이탈리아 북부에 아름다운 호수로 유명한 꼬모에서 하루 지내기로 하고 점심때가 좀 지나 이탈리아를 향해 출발하였다.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를 이용하여 최단 거리를 택하여 가는데 역시 산악국가답게 지도상의 길과 실제 길과는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세상에 어쩌면 이런 길이 있을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험한 계곡과 산허리를 타고 오르는 길을 몇 시간째 운전하였다. 알프스의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산길만 오르내리기 바쁘다. 그런데 주위의 얼핏 보이는 경관이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길옆의 표지판을 보니 그림젤패스라 되어있다. 여기가 책에서 보던 그 유명한 고개이구나. 그러고 보니 주위에 눈이 군데군데 쌓였고 고도가 높아서인지 나무는 자라지 않아 온통 이끼가 낀 바위뿐이며 계곡사이에는 눈이 녹아서 만든 호수가 자리하니 이건 도대체 지구의 경관이 아니고 멀리 다른 혹성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어지러울 정도로 올라온 고개에서 내려본 모습이 정말 장관이다. 이런 경치는 정말 계획에 없던 보너스이다. 너무 추워서 두터운 겉옷을 입고도 5분을 서있을 수 없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driving-tour.com%2Fzero%2Fdata%2Ffreealbum%2Fm17grim.jpg)
< 그림젤고개의 정상에서 >
게다가 간간이 비도 흩뿌린다. 그럼에도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이 고개를 오르는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띈다. 나는 알프스에서 자전거로 험난한 고개를 넘는 남녀 노소의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보았다. 그리고 휙 지나치지만 그들의 표정을 또렷이 볼 수 있었다. 차도 오르기 힘든 길을 강한 정신력으로 오르는 그들을 보며 이 고개만 넘으면 인생의 어떤 어려운 길도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전에 실트호른을 케이블카로 오를 때 아주 작은 점하나가 움직이고 있었다. 가까이 지나치면서 보니 어떤 여자가 눈 덮인 알프스 정상을 뛰어서 오르고 있었다. 이처럼 유럽에서의 알프스는 관광뿐 아니라 도전과 정복, 자기시험의 대상으로 되어있었다.
오늘을 유난히 돌을 많이 보았다. 알프스의 봉우리와 고개들이 모두 바위였고 이탈리아 국경까지 이어져있다. 국경 검문소에선 경비원이 우리를 유심히 쳐다보다 여권을 보잔다. 부시럭거리며 한참 찾으니까 아무 표정 없이 그냥 가란다. 이탈리아의 첫 인상은 인근의 다른 국가들 보다 무뚝뚝하고 얼굴이 굳어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 흔한 고속도로 요금소에서의 인사말조차도 없다. 자연 경관과 운전 습관은 우리나라와 비슷하여 오히려 친근감이 들 정도다. 6시경 꼬모에 도착하여 캠핑장을 찾았다. 작은 도시라 지도에 표시된 숙소를 찾는 게 쉬울거란 생각이었는데 정말 많은 시간을 돌아다녔다. 물어봐도 말이 통하지 않고 가르쳐주는 길도 제각각이다. 애들도 힘들어하고 정말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찾아 다녔다. 시내 호텔은 가격 때문에 망설여지고 비까지 내린다. 남쪽이라 일몰시간이 빨라서 밤 10경인데 벌써 주위는 온통 어둠이 깔렸다. 보통 캠핑장의 마감시간은 10시쯤인데 거의 시간에 맞춰 찾은 캠핑장 하나는 가격도 그렇고 시설이 너무 별로다. 오히려 우리나라의 야영장보다 못한 것 같았지만 늦게라도 찾게된 것이 행운이었다. 아마 오늘 캠핑장 찾으면서 돌아다닌게 이번 여행 중 가장 어려울 때 일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서 빨리 로마와 바티칸 여행 끝내고 이탈리아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여기서는 이상하게 삽질을 많이 한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속에서 서둘러 텐트치고 잠자리를 준비하였다. 너무 늦어서 씻지도 못하고 애들 저녁도 못 먹이고 잠을 재웠다.
비바람에 펄럭이는 텐트속에서 여행이 왜이리 힘드노 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
첫댓글 그렇군요...저두 이탈리아에서 자질구레한 일로 많이 힘들었던 생각이 납니다.
luxlady님 부족한 글 관심 주셔서 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