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태는 서울 팬들에게 한국시리즈를 오래 보여줄 생각이 없었다. 해태 선발은 앞선 등판에서 호투한 신동수, 벼랑 끝에 몰린 빙그레는 부상으로 제 컨디션이 아닌 한희민을 선발로 냈다.
승부는 1회부터 갈렸다. 해태는 1회초 공격에서 1사후 조재환의 우전안타, 김성한의 좌측 2루타, 박철우의 볼넷으로 만루의 찬스를 잡았다. 여기서 한대화의 중견수 희생플라이가 나오면서 손쉽게 선취득점, 백인호의 2루타가 이어지며 1점을 보태 2-0으로 앞서 나갔다. 빙그레가 2회말 전대영의 솔로포로 한 점차로 추격에 나섰지만, 해태는 곧바로 점수차를 더욱 벌리며 상대의 의지를 꺾었다. 선두 김성한이 볼넷으로 출루한 뒤 박철우의 좌중간을 가르는 2루타가 나오면서 3-1. 한대화의 좌전안타로 계속된 무사 1, 3루에서 백인호의 절묘한 스퀴즈 번트가 나오면서 점수는 4-1이 됐다. 앞선 타석에서 2루타를 친 타자에게 스퀴즈를 지시한, 지극히 ‘승부사’ 김응룡 감독다운 작전이었다.
4회에도 한 점을 보태 5-1을 만든 해태는, 4회말 신동수가 이강돈-고원부에 연속안타를 맞으며 무사 1, 2루가 되자 선동열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선동열은 6이닝을 2안타 10탈삼진 무실점으로 틀어막는 괴물같은 피칭으로 또 한 번 우승 확정의 순간을 장식했다. 패전투수가 된 1차전 때와는 전혀 다른 선동열의 구위에 빙그레 타자들은 헛스윙만 거듭했다. 특히 연속안타로 만든 7회말 무사 1, 2루와 연속 볼넷이 나온 9회말 1사 1, 2루에서 득점에 실패한 것이 빙그레에게는 뼈아팠던 부분이다.
이강철, 김정수, 문희수, 신동수, 선동열 등 투수진이 모두 고른 활약을 펼치면서 표가 갈린 탓에, MVP는 이번에도 타자 쪽에서 나왔다. 시리즈 18타수 8안타(타율 .444)를 기록한 박철우가 그 주인공이다. 박철우는 정규시즌 막판까지 타격왕 경쟁을 벌이다 3위에 그친 설움을 달래기라도 하려는 듯이, 한국시리즈 매 경기마다 안타를 쳐내며 타선을 이끌었다. 박철우의 활약으로 해태는 김봉연의 대를 잇는 새로운 중심타자를 얻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