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경주고등학교 수학여행지는 일본 큐우슈우 지역이다. 우리는 11월 18일 총 286명이 부산 해안부두 여객선터미널에서 뉴카멜리아호를 타고 일본으로 출발했다. 우리는 큐우슈우 일원을 돌아다 볼 것이며 한국과 일본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사회 상황 등을 비교 체험해 볼 예정이다. 경주고등학교 해외 수학여행은 이번에 세번째로, 재작년 일본 큐우슈우 지역, 작년에는 오오사카 지역, 그리고 올해 다시 환율 폭등이라는 악조건을 무릅쓰고 큐우슈우 지역으로 간다.
우리가 탔던 뉴카멜리아호가 밤새 항해해 새벽에 후쿠오카항에 도착했다.
카멜리아의 의미는 동백꽃이다. 동백은 뉴카멜리아가 운항하고 있는 부산과 후쿠오카의 市花이기도 하다. 선주사인 일본 카멜리아 라인 주식회사는 한국의 고려해운과 일본 NYK Line의 합작법인으로 부산-후쿠오카 정기운항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여객선사이다. 뉴카멜리아호는 각종 첨단 장비를 갖춘 명실상부한 아시아 최신형 고속 카 페리 선으로서 항해 속력은 23.5노트이며 522명의 여객수송과 220teu의 컨테이너 화물 및 승용차 41대가 선적 가능하도록 건조되었으며 선내에는 식당, 면세점, 매점, 오락실, 영화감상실, 노래방, 전망대, 대욕탕, 자판기코너, 야외벤치 등의 편의시설을 완비하고 있다.
후쿠오카 항의 아침. 우리는 아침 6시 경에 도착했지만 식사와 입국 수속 절차 관계로 8시경에야 하선한다.
여행지 처음으로 들런 큐우슈우대학교. 큐우슈우 지역에서는 가장 명문대학으로 예전 큐우슈우제국대학이다.
건물들이 대체로 허술하지만 이 캠퍼스는 처음 시작하던 큐우슈우대학의 옛 건물들이다. 아직도 대학은 이런 옛 건물들을 보존하고 있다. 일본은 형식보다 내용을 중시하는 분위기라 이런 실용적인 면들이 많이 보인다. 오래된 건물들은 채색은 물론이고 외형 보수도 소홀히 하고 있다. 아니! 아예 오래된 건물에도 금이 간 곳이 없다. 단단하게 지었다는 말이겠지. 하지만 저렇게 오래된 건물도 내부로 들어가보면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다. 한국의 명문대학이라면 벌써 오래된 건물은 몇번이고 뜯어고쳤을 것인데 말이다.
큐우슈우대학교 공과대학 우주항공공학과와 조선해양공학과
자연과학부 수학통계학과
태평양전쟁 시 육군본부(?.......이 지역 육군본부인지 전체의 본부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였다는 건물. 오래된 건물을 그들은 그대로 지키고 있다.
큐우슈우대학교 박물관.
응용화학과
큐우슈우대학교의 사무국. 한국으로 치면 본관이다.
큐우슈우대학교는 1903년 교토제국대학의 단과대학으로 설립된 후쿠오카의과대학으로 출발하였다. 1911년 공과대학과 의과대학의 2개 단과대학을 둔 큐우슈우제국대학이 되면서 일본의 네 번째 제국대학이 되었으며 1919년 의학부·공학부·농학부, 1924년 법문학부, 1939년 이학부를 새로 설치하였다. 1949년 후쿠오카고등학교와 구루메공업전문학교를 합병하고 1967년 치학부를 새로 설치한 뒤 2001년 현재 문학부·교육학부·법학부·경제학부·이학부·의학부·치학부·약학부·공학부·농학부의 10개 학부와 대학원을 두고 있다.
도서관은 중앙도서관과 롯폰마쓰[六本松]분관 외에 각 학부와 연구소 및 센터에도 마련되어 있으며 총 330만여 권의 도서와 각종 정기간행물이 비치되어 있다. 부설연구소로는 생체방어의학연구소·응용역학연구소·기증물질과학연구소 등이 있다.
2001년 현재 대학 재학생은 1만 1,016명(남학생 8,214명, 여학생 2,802명), 대학원 재학생은 5,311명(남학생 4,225명, 여학생 1,086명)이며 교수는 1,372명(조교수 및 강사 포함), 교수 1인당 학생수는 8명이다. 2001년 2월 현재 중국·대만·한국 등 61개 나라 746명의 유학생이 공부하고 있다. 메인 캠퍼스인 하코자키[箱崎] 캠퍼스 외에 롯폰마쓰 캠퍼스와 가스가시[春日市]의 지쿠시[筑紫市] 캠퍼스가 있다.
큐우슈우대학교 캠퍼스 전경. 아무래도 우리는 옛 초창기 큐우슈우대학교 캠퍼스에 온 것 같다. 큐우슈우대학교 캠퍼스를 보면 최첨단 하이테크 건물들이 즐비한 데 여기는 고색창연한 건물 밖에 없으니 말이다.
하카다 타워.
하카다 타워에서 내려다 본 후쿠오카 시. 멀리 후쿠오카돔(야후돔)이 보인다. 개 눈에는 똥 밖에 안 보인다고 했던가? 야구광인 내 눈에는 야구장 밖에 보이지 않는다.
지붕이 개폐식으로 된 야후돔 앞에 선 본인. 날씨가 추워 오버트라우져를 입고 있으나 꼴이 말이 아니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일본 퍼시픽리그에 소속된 야구팀으로, 1938년 창단되었다. 연고지는 후쿠오카현 후쿠오카시[福岡市]이다. 원래는 난카이라는 팀명으로 창단하였으며 1944~1946년의 긴키 닛폰, 1946~1947년의 긴키 그레이트링, 1947~1988년의 난카이 호크스를 거쳐 1989년 다이에 호크스로 팀명으로 바꾸었다. 2005년에 소프트뱅크가 인수하여 현재의 팀명으로 변경하였다. 팀명의 호크스(Hawks)는 ‘매(들)’라는 뜻이다.
1999년에는 퍼시픽리그 1위를 차지하였으며, 일본시리즈에서 예상외로 센트럴리그 1위팀인 주니치 드래건스를 4승 1패로 꺾고 우승하였다. 2000년에도 73승 60패 2무로 퍼시픽리그 1위를 하였으나 일본시리즈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졌으며, 2001년에는 리그 2위였다. 2002년에는 73승 65패 2무, 승률 0.529를 기록하면서 3위에 머물렀다. 홈구장이 바로 이 4만 8000명 수용규모의 야후재팬돔(후쿠오카돔)이다.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2002년까지 일본시리즈에서 3회, 퍼시픽리그에서 13회 우승하였다. 1999년까지 팀 통산전적은 3,413승 3,581패 289무, 승률 0.488이다. 1940년대 중반 전성기를 맞으며 1960년대까지 퍼시픽리그에서 11회, 일본시리즈에서 2회나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하다가 1995년 왕정치(王貞治 오 사다하루) 감독 이후 전력이 강해져 1999년 일본시리즈에서 16년 만에 3번째 우승하였다.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심볼인 매(hawk) 상 앞에 섰다.
소프트뱅크 호크스 팀이 배출한 유명선수는 1947년 최다승·최다탈삼진·노히트노런을 기록한 벳쇼, 1964년 최우수선수인 스탠카, 1958년 신인왕과 1959년 최우수선수로 선정된 스기우라, 홈런왕·타점왕·최우수선수로 각각 9·7·5회 선정되고 통산최다경기·안타 등을 기록한 노무라 등이 있다.
야후돔 바로 옆에 붙어 있는 JAL호텔 건물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어느 선수. 스타 선수이지 싶은데 홈페이지에 찾아 들어가 조사해 봐도 잘 모르겠다.
우리는 메이져리그에는 비교적 익숙해져 있으나 일본 야구는 센트럴리그에만 익숙하다. 한국 선수들이 센트럴리그에 있기에 그렇다. 그래서 퍼시픽리그는 잘 모른다. 호크스 팀에도 아는 선수라곤 작년 요미우리에 있었던 고쿠보 히로키 뿐이다. 그것도 요미우리에 있었기에...........
일본 여인 1 ..........미안하지만 도촬이다. 어느 지역에 가서 여인을 유심히 살펴보면 많은 문화적인 관찰이 가능하다. 일단은 패션, 헤어스타일, 태도에서 나오는 문화 관습, 남성과의 관계에서 차지하는 성 역할..........등 많은 내용들이 유추 가능하다.
일본 상점 진열대
진열대 2
후쿠오카 태재부천만궁(다자이후텐만구).
학문의 神인 스가와라 노미치자네를 모신 신사로 매년 수험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말하자면 한국의 갓바위인 셈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기도 하지 말고 집에 가서 아이들 뒷바라지나 해라.
태재부에서 점심을 먹는다. 역시 일본은 네모진 곽에 음식을 채워넣은 스타일. 일본에는 모든 것이 다 이렇다. 네모난 곽 안에 내용물을 꽉 채워넣은 모양새. 깨끗하고 단정하기는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인간미가 부족해 보인다. 모든 것들이 한조각으로 끝난다.
태재부로 들어가는 통로. 하지만 나는 저 석조물을 찍은 것이 아니다. 일본 여고생들의 치마를 찍었다. 저들은 왜 정숙하지 못하게 저렇게 치마가 짧은가? 건강상 문제는 없는가? 그리고 무척 추운 날씨였는데 모두들 다 저렇게 다닌다. 스타킹도 신지 않고.....들어보니 수준이 떨어지는 촌의 학교들은 치마가 길고 명문학교들일 수록 치마가 짧다고 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전형적인 일본의 주택. 좁은 면적에 꽉 들어찬 건물. 그리고 좁은 정원에는 조밀하게 가꾸어진 꽃나무들. 그리고 입구의 길. 좁은 자동차 주차공간. 척 보면 일본이다...........
일본 여인 2. 아까 여인보다는 좀 젊은 층인듯...........역시 치마는 짧다.
구마모토 성으로 들어왔다.
城主는 임진란 때 조선에 쳐들어왔던 일장 가또 기요마사다. 가또 기요마사는 일본 큐우슈우의 유명한 무장(武將)으로 많은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고 시즈가타케 전투에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조선 정벌이었던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 방면으로 출병하여 맹활약했다. 임란 뒤 일본의 내란 때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이에야스 측에 참전하여 임진란 때 동료였던 고니시 유키나카와 일전을 벌였다.
城의 모양새는 철벽이다. 높은 외곽 성이 있어 접근이 어렵고 그 성을 넘어도 내곽 성이 또 있는데 그 주변에는 해자가 있어 접근이 또 어렵다. 내곽 성에 들어가도 본 성 주변이 윗 사진과 같아 또 다시 접근이 어렵다. 주변에는 전부 못 믿을 자들만이 포진하고 있었는 모양이다. 아무리 철벽으로 쌓으면 뭐 하는가? 로마의 칼리큘라는 옆의 근위병의 칼에 목이 날아가고 박정희는 심복 김재규의 총탄에 사라졌으니.............
이제 구마모토 본성.
성주인 가또 기요마사는 1562년 나카무라[中村]에서 출생하였으며, 도요코미 히데요시[豊臣秀吉]와는 6촌간으로, 3세 때 아버지를 잃고 홀어머니 아래서 성장하였다. 어렸을 때부터 히데요시의 시동을 지내며 많은 전투에 참가해 전공을 세웠다. 시즈가타케 전투에서는 뛰어난 활약으로 후쿠시마 마사노리[福島正則], 가토 요시아키[加藤嘉明] 등과 더불어 '시즈가타케의 칠본창(七本槍)'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히데요시의 전국통일 이후 큐우슈우[九州]의 히고[肥後] 남부에서 25만 석의 다이묘[大名]로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함경도 방면으로 출병하여 조선의 왕자 임해군과 순화군을 포로로 잡는 등 맹활약하였으나 울산 전투에서 죽음의 위기를 겪기도 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함께 참전한 고니시 유키나카[小西行長],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등과 갈등을 빚었다.
1598년 히데요시가 죽고, 섭정을 맡았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이시다 미쓰나리[石田三成] 간에 벌어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동군(東軍)인 이에야스 측에 참전하여 고니시 유키나가의 우토성(宇土城)을 함락시켰다. 이후 구마모토[熊本] 대영지(大領地)의 세습영주가 되어 7년에 걸친 대공사 끝에 오오사카성[大阪城], 나고야성[名古屋城]과 함께 일본의 3대 명성(名城)으로 꼽히는 구마모토성을 축조하였으며, 정치가로서도 능력을 발휘하다가 1611년 8월 2일 사망하였다.
성 내부에 들어서면 이런 계단으로 정상까지 올라간다. 콘크리트로 되어 있는 것이 유감이다. 나는 성 내부 벽에 복잡하게 붙어있는 일본 역사에 대해 전반적으로 혐오감을 느꼈다. 반일감정이라기 보다는 그들의 침략의 역사나 거칠고 폭력적인 문화 양태가 나의 문화적 분위기와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구마모토성에서 느낀 역한 느낌을 다음날 유후인의 아름다운 경치에서 많이 만회한다. 그래서 다행이다. 이래저래 나는 지일파는 못 되는 모양이다.
구마모토성 맨 위층에서 내려다 본 구마모토 시.
아래에 우리 아이들이 서성대고 있다. 여전히 추운 날씨이다.
성을 떠나면서 다시 되돌아다 본 구마모토 성
구마모토 시가지 거리에 놓여있는 돌 의자. 돌의 가운데를 파고 거기에 다른 색깔의 돌을 끼워 넣었다. 예술적인 조형이 돋 보인다. 일본인들은 역시 섬세하다. 깨끗한 것은 물론이고............
구마모토 시의 밤 거리
구마모토 시로가네 호텔의 나의 숙소. 나는 독방이다. 하지만 할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아이들 식사는 어디든 항상 이런 모습이다. 각자 정해진 수의 그릇에 같은 음식이 같은 량으로 담겨져 있다. 보기에 부족한 량인 것 같지만 다 먹어보면 량이 기본은 된다.
시로가네호텔 앞에 위치한 주점 [黑龍江]에 들러 사케(정종)로 피곤함을 달랜다. 같이 나온 마사시..............뭐냐고? 말 그대로 말고기 회이다. 말 사시미.............맛? 맛은 별로 이다. 좀 질기고. 그들은 대단한 음식이라고 얘기들 한다. 그저 먹어본 것으로 만족한다. 나는 여전히 경험주의자이기에.............
마사시와 같이 나온 교자. 교자는 한국과 맛이 비슷하다. 군만두, 야끼교자이다...........ㅋㅋ 이외에도 라맨이 나왔는데 한국의 라면 생각하면 된다. 단 인스탄트가 아니고 국수처럼 바로 만드는 것이었다. 고기도 첨가되어.........
주점을 나서면서 기념으로 주인장과 기념 촬영. 그들은 제법 지적으로 보였는데 재미있게도 한국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한잔 주니 받아 마시고는 답례로 사케 한병을 서비스로 내어 놓았고 떠날 때에는 사케 담은 도자기병을 선물로 주었다. 일본에서는 좀처럼 보기드문 서비스였다. 아마 시로가네호텔에 한국인이 많이 오니까 그들이 이 주점에 손님으로 많이 왔을 것이다. 아마 거기서 한국적인 분위기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부어라, 마셔라! 하는.................
다음날 아침 구마모토를 떠나 아소로 가면서 잠시 들런 사루마와시 원숭이 쇼. 한마디로 원숭이들이 재주 부리는 쇼이다. 나도 원숭이 띠 인데...................
드디어 아소 활화산에 도착했다. 오늘은 분화구에서 연기가 많이 뿜어져 나와 접근이 어렵다고 했는데 케이블카는 올라간다고 해서 다행이었다.
아소산은 지금도 화산이 활동하고 있는 활화산으로 높이 1,592m이다. 위치는 구마모토[熊本] ·오이타[大分] 두개 현(縣)에 걸쳐 있다. 세계 최대의 칼데라(동서 16km, 남북 27km)를 가지는 복식화산으로 아소국립공원이 주요부를 형성하며, 기리시마[霧島] 화산대의 북단과 하쿠야마산[白山] 화산대가 마주치는 지점에 있다. 홍적세 이후 자주 열운상(熱雲狀)으로 분출한 아소 용암은 안산암류가 주체이다. 중앙화구구의 나카가쿠산[中岳]은 현재도 활동 중이며, 그 화구(火口) 구경이 아소산 관광의 중심이다. 여기에는 명문 교토대학[京都大學] 아소산연구소와 기상청의 아소산관측소가 설치되어 있다.
우리는 연기가 많이 뿜어 바로 분화구 위로 가지 못하고 근처에 있는 높은 전망대로 이동한다. 한꺼번에 몰려서 올라가는 아이들. 깡패들인가? 몰려 다니게.............ㅋㅋ
올라갈 때는 케이블카로 올라갔지만 내려올 때는 걸어서 내려왔다. 칼바람이 불었지만 그래도 내려오면서 분화구 쪽을 한 커트 한다.
좀 더 떨어져서 쳐다 본 아소 활화산. 역시 오늘은 연기가 많다.
아소산을 떠나 동쪽 태평양 쪽으로 나아가면서도 산악 지대는 계속되고 여기저기서 분화구가 있어 연기가 나오고 있다.
드디어 도착한 아름다운 유후인. 뒷 배경이 산악지대이고 그 아래에 아름다운 호수와 마을이 있다. 아마 내게는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이 남는 곳일듯............한국의 남이섬이라고나 해야할까?
유후인에는 이런 류의 음식점, 상점들이 줄지어 있다.
유후인의 가을 거리
유후인의 냇가.
아름다운 킨린호수의 가을 풍경.
킨린호수는 호수 바닥에서 차가운 샘물과 뜨거운 온천수가 같이 솟아 나오는 호수이다. 킨린(금린)호수라는 이름은 노을이 지는 하늘에 금빛 붕어가 그 아름다운 비늘을 반짝이며 뛰어 놀았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노을이 지면 무척 아름다울 것 같다. 유후인은 아름다워 영화 촬영이 많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유후인의 어느 상점. 유후인에는 금상고로케와 벌꿀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지?
유후인 킨린호수 변
유황재배지, 유노하나에 왔다. 가족온천탕의 막사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이제 뱃부에 도착한다. 뱃부는 역시 온천 지옥천이 유명하다. 오자마자 바로 카마도 지옥으로 입장한다. 노천온천과 간헐온천을 보고 온천수에 삶은 계란도 하나씩 맛 본다지.
열이 뿜어져 나오는 온천. 모두들 발을 담구어 피로를 풀어본다.
뱃부 시 전체가 여기저기 증기가 뿜어져 나오는 온천지대이다. 어찌 불안한 이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만성이 된걸까? 갑자기 뻥! 터지면 어찌 하려고............
뱃부에서 저녁에 차를 달려 다시 후쿠오카로 돌아온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이 될 것이다. 호텔은 비교적 수준이 높은 후쿠오카 카메노이호텔. 모두들 독방이다. 식사도 뷔페인데 맛은 제법 수준이 있었다.
마지막 날 아침 후쿠오카 거리로 나온다. 아직 아침이라 그리 분주하지는 않다.
우리는 복합 상가 건물인 캐널시티로 간다. 캐널(Canal)...............운하라는 뜻이다. 캐널시티는 시설의 남북을 천천히 흐르는 운하를 중심으로 다양한 건물들이 세워져 있다. 한국인들이 많이 찾기로 유명한데 전자제품류 보다는 의류, 용품 위주의 복합 상가이다. 한국의 신세계 백화점 몇개를 붙여놨다고 보면 될 것이다.
케널 주변에 세워 놓은 철 이른 크리스마스 츄리...........설치 미술의 수준이 돋 보인다.
여러 설치 조형물
캐널 주변. 상가 내부는 보지 않고 캐널 주변만 서성인다. 왜? 나는 쇼핑을 좋아하지 않거든......아니, 돈이 없다. 아니! 돈은 있는데 돈 쓸 필요를 못 느낀다. 엔화의 환율이 원화의 15배를 넘어서고 있다.
역시 설치물.
또 일본을 떠난다. 앞으로도 얼마나 오고 갈 것이냐? 현해탄, 민족의 혼이 묻힌 바다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왕래했던가? 이제 또 다시 우리가 건넌다. 별 생각도 없이...............
후쿠오카 항이 멀어진다. 배의 조명등이 외롭게 제 자리에 붙어 있다. Adieu! Hakada!
첫댓글 저도, 유후인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을 경관도 나름대로 느낌이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우리 경주가 유후인 처럼, 주민의 힘으로 가꾸고 보존 되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는데 라는 생각도 들었고요....일본에서 유일하게 다시 가 보고 싶은 곳이기도 합니다 !!!! 지난 초여름, 제 처와 경주고도보존회 일본 답사 때 다녀온 곳이 몇군데 더 있군요....
그렇죠? 조경도 치밀하게 했지요. 예술적인 면과 자연적인 면들을 잘 배려해서 조성해 놓았어요. 경주도 많이 아쉽죠. 그저 조명만 달고 꽃만 잔뜩 심어놓고 하여 예술미가 많이 떨어집니다.
요즈음은 고등학교때 일본으로 수학여행을 가는군요! 제가 있을때는 설악산으로, 중학교때는 서울로... 덕분에 일본구경 잘했습니다!
아, 저보다 1년 후배인데 우리하고 다르군요. 우린 제주도 갔는데..............술 마시고 취하여 서귀포 시내를 팬티 바람에 마라톤했는데...........ㅋㅋ 내가 아니고 내 친구가.......
일견 부럽기도 하지만 또 다른 생각은 ...저도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ㅋㅋㅋ 의사선생님이 환자 병 고쳐야지. 어딜 가?
우리땐 외국 수학여행은 상상조차도 못했었는데,,, 요즘아이들이 부럽네요 집에서 편하게 일본여행 잘했습니다~~~~
경주가 밴치마킹 해야 할 곳이 한 두 군데가 아닌 나라가 바로 일본입니다. 경주시민들이 깨어나지 않으면 안될 이유가 되기도 하고요.
그렇지요?
근영이도 같이 갔다 왔잖아 ????
제가갔던 여행코스랑 같네요... 다시한번 잘보고 갑니다...
잘 지내시죠? 겨울이네요.
올초에 가족들과 비슷한 코스로 다녀왔습니다. 그게 며칠 안지난것 같은데 어느새 계절이 한바퀴 돌아버렸네요. 뜨끈뜨끈한 온천 생각이 납니다.
ㅋㅋ 온천.............담그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