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列國誌]
2부 장강의 영웅들 (313)
제10권 오월춘추
제 39장 미인 서시(西施) (8)
- 오나라 흉작!
이 보고를 받은 월왕 구천(句踐)은 쾌재를 불렀다.
범려와 문종을 불러 다시 물었다.
"이제야말로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칠 때가 되지 않았소?"
그런데 범려(范蠡)가 또 고개를 저었다.
"지금은 오(吳)나라를 칠 때가 아닙니다.
오나라 조정에는 아직도 오자서(伍子胥)와 같은 충신이 있습니다.
또한 우리나라 군사들도 아직 강한 군사들이 아닙니다.
부차로부터 오자서를 떼어놓고 군사를 좀더 훈련 시킨 후에야 오나라를 쳐 이길 수 있습니다."
구천(句踐)은 실망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떻게 오자서를 부차에게서 떼어놓을 것이며, 언제까지 우리 군사를 훈련시켜야 한단 말이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지금까지 왕께서는 7년을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기다려왔습니다.
서시(西施)의 보고에 의하면 오자서(伍子胥)는 오왕의 신임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오자서(伍子胥) 스스로가 타국으로 망명하거나 부차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이 우리는 군사 훈련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할 것입니다.“
범려와 문종의 설득에 구천(句踐)은 조급증을 가라앉혔다.
그 해 범려(范蠡)는 군사 훈련에 한층 더 열정을 쏟았다.
월(越)나라 군사들은 일찍이 여검객 월녀(越女)로부터 검술을 전수받았기 때문에 칼을 쓰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다만 부족한 것은 궁술이었다.
범려(范蠡)는 군사들에게 집중적으로 궁술을 훈련시키던 중 우연히 한 초부로부터 진음(陳音)이라는 사람에 관한 소문을 들었다.
"재상께서는 어찌하여 진음을 초빙하지 않으십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오?"
"진음(陳音)은 원래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젊어서 살인죄를 저지르고 우리나라로 도망쳐온 사람입니다.
그는 백발백중의 명궁일 뿐 아니라 한번에 세 마리의 새를 쏘아 맞추는 신기(神技)를 지니고 있습니다."
범려(范蠡)는 관심을 품고 진음을 찾아갔다.
마침 그는 집 뒤의 공터에서 활쏘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과연 백 발이면 백 발 다 과녁에 가서 적중했다.
더욱이 그가 사용하는 활은 여느 활과 달랐다.
범려(范蠡)는 기뻐하며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그 활의 이름은 무엇이오?“
진음(陳音)이 대답했다.
"이것은 활(弓)이 아니라 노(弩)라고 합니다.
"활과 노는 어떻게 다르오?"
"원래 노(弩)는 활에서 생겨난 것이요, 활은 탄(彈)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탄은 탄궁(彈弓)이라고 하는데 작은 탄환을 튕겨 적을 쏘아 맞추는 것이지요."
탄궁은 오늘날의 새총 같은 것이다.
탄궁(彈弓)은 고대의 어느 효자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옛날 석기시대 사람들은 주로 숲 속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배가 고프면 나무의 열매를 따먹고 숲 속의 짐승을 잡아먹었다.
목이 마르면 안개와 이슬을 마셨다.
그러다가 죽으면 백모(白茅)에 싸서 들판에 내다버렸다.
그 시체들은 대부분 들짐승들에 의해 뜯어먹히곤 하였다.
그런데 어느 효자 하나가 들짐승과 날짐승들에 의해 자기 부모의 시체가 뜯어먹히는 것을 보았다.
그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파 어떻게 하면 그 짐승들을 쫓아낼까 고심했다.
그리하여 고안해낸 것이 탄궁(彈弓)이었다.
원시인들은 그 탄궁을 보고 이렇게 노래했다.
단죽속죽(斷竹續竹) 비토축육(飛土逐肉).
대나무를 잘라 이어 흙덩어리를 쏘아 짐승을 쫓았네 라는 뜻이다.
대나무 조각을 길게 이어 잡아당긴 후 그 끝에 흙덩어리나 돌멩이로 놓아 튕겨 날아가게 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 효자는 이 탄궁(彈弓)으로 자기 부모의 시체를 보호했다.
그 후 삼황(三皇) 중 신농(神農) 대에 이르러 대나무를 휘어 양쪽 끝에 질긴 나무 껍질을 엮어 오늘날과 같은 활을 만들었고, 나무를 깎아 화살로 사용했다.
이것이 바로 궁(弓)이다.
오제(五帝) 중의 한 사람인 요(堯) 임금 때에 이르러 초나라 형산 땅에 호보(弧父)라는 사람이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잃고 산야에서 홀로 자라났다.
짐승을 잡기 위해 활 쏘는 법을 익혔는데, 어찌나 그 솜씨가 좋은지 제아무리 날쌘 짐승도 그의 화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 뒤 호부는 예(羿)라는 사람에게 활 쏘는 법을 전수했다.
예라는 이름은 고대 중국의 신화에도 등장한다.
<회남자(淮南子)>에 의하면 요 임금 때 10개의 태양이 한꺼번에 나타나 오곡을 태우고 초목을 말라죽게 했다.
이에 활의 명인인 예(羿)가 요 임금의 명을 받들어 9개의 태양을 활로 쏘아 떨어뜨리고 한 개의 태양만 남게 하여 재앙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이야기다.
이는 곧 예 덕분으로 요 임금이 천하를 안정시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예(羿)는 다시 봉몽(逢蒙)에게 자신의 활 솜씨를 전했다.
봉몽 또한 활을 잘 쏘는 사람으로 후세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인물이다.
<회남자(淮南子)>에 이런 구절이 있다.
하루 종일 말하면 그 중에는 성인(聖人)의 말이 있고, 백 발 화살을 쏘다보면 그 중에는 예와 봉몽의 솜씨가 있다.
마구 떠들어대는 중에도 어쩌다 훌륭한 말이 있으며,
백 발 화살을 쏘다 보면 그중에 한 발쯤은 예(羿)나 봉몽(逢蒙) 정도와 같은 멋진 솜씨도 나온다라는 뜻이다.
봉몽(逢蒙)은 심성이 좋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는 자신이 천하 제일의 명궁이 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스승인 예(羿)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스승인 예의 솜씨를 능가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아예 예(羿)를 죽이고 자신이 천하 제일의 명궁임을 자처했다.
이 이야기는 <맹자>의 <이루(離婁)> 편에 소개되고 있다.
봉몽이 예(羿)를 죽인 것은 그 스승인 예에게도 책임이 있다.
스승을 죽일 정도의 인품을 제자로 삼은 예(羿)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맹자는 단정지은 것이다.
그러나 <맹자> 외의 다른 문헌들은 봉몽(逢蒙)이 스승 예를 죽인 일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그 뒤 다시 봉몽은 금씨(琴氏)에게 활 쏘는 법을 전했다.
금씨는 여러나라 제후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고 예전의 활만으로는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만들어낸 것이 노(弩)다.
즉 활을 눕혀 기계를 설치하고 동시에 여러 대의 화살을 쏠 수 있게 한 것이다.
금씨(琴氏)는 이 노(弩)를 초나라에 전했고,
그때부터 초(楚)나라는 대대로 복숭아 나무로 노를 만들고 대추나무로 화살을 만들어 일약 군사 강국으로 성장한 것이었다.
"저의 선조는 대대로 궁노 쓰는 법을 자손에게 가르쳤으며, 저 또한 그 법을 배워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노(弩)는 활과 달라서 그것을 사용하면 새가 날기도 전에 떨어뜨릴 수 있고, 짐승이 달리기 전에 쏘아 맞힐 수 있습니다.
어찌 탄궁(彈弓)이 궁과 같을 수 있으며, 궁이 노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진음으로부터 활(弓)과 노(弩)에 대한 내력을 들은 범려는 뛸 듯이 기뻐했다.
곧 허리를 숙이고 정중하게 청했다.
"선생을 우리 나라 군대의 활 스승으로 삼고 싶습니다.“
진음(陳音)은 범려의 초빙을 수락하고 그 길로 회계성으로 들어갔다.
그때부터 진음(陳音)은 월나라 군사 3천 명을 뽑아 노(弩) 제작법과 사용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마침내 월나라 군사들은 한 번에 화살 세 대를 연달아 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아무리 강하고 날랜 군사라도 이 연노(連弩) 앞에서는 몸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진음(陳音)은 군사를 가르치는 데 열심인 나머지 3개월째 접어들면서 병이 나 죽고 말았다.
월왕 구천(句踐)은 진음의 죽음을 몹시 아쉬워했다.
그를 위해 극진히 장사지내 주었다.
그리고 그가 묻힌 산 이름을 진음산(陳音山)이라 명명했다.
🎓 다음에 계속..........
< 출처 - 평설열국지 >
첫댓글 오늘도 엄청 춥고요
연말이 다가오고
연시가 다되었습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마니마니 올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