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21년, 진(秦)나라 왕 영정(嬴政)이 중원대륙을 통일하고 시황제(始皇帝)로 등극하기 전, 동양의 역사는 한동안 주인공 없이 조연들이 설치던 ‘춘추전국시대’라 불리는 혼돈의 무대였다.
조연들은 마치 자신이 주인공인 것처럼 목소리를 높여 그럴듯한 대사(臺詞)로 관객들을 끌어 모았는데 이 때 관객들에게 들려준 솔깃한 대사들을 모아놓은 것이 비유하자면, 오늘날 ‘동양정신의 꽃’이라 불리는 ‘제자백가(諸子百家)’ 또는 ‘백가쟁명(百家爭鳴)’이라 불리는 철학과 사상이다.
다들 자기가 주인공이라 떠들어대는 이들의 현란한 대사에 백성들은 ‘누가 주인공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잘 알지 못했다. 이들의 헷갈리는 공연 때문에 당시 백성들의 삶은 피폐했고 사회는 어지러웠으며 나라는 전쟁으로 도탄(塗炭)에 빠져 있었다.
이 때 진왕(秦王) 영정이 이사(李斯)을 만나 그가 써준 시나리오대로 연기를 한 덕에 중원 천하를 통일하였는데 그 때부터 진왕은 왕이 아닌 황제(皇帝)의 칭호를 등에 업고 동양 역사무대의 주인공이 되었다. 이때부터 동양역사에 황제의 칭호를 쓴 중화제국(中華帝國)이란 ‘정치플랫폼’은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약 2,000년 동안 이어졌다.
그동안 인류는 물질세계의 ‘아날로그문명’을 창조해 왔다. 그러나 지금은 가상세계의 ‘디지털문명’이라는 새 역사를 창조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날로그문명’은 그 옛날 원시인들이 창조한 구석기나 신석기 문명처럼 취급될지 모를 일이다.
오늘날 디지털문명 초기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수많은 군웅(群雄)들이 디지털 역사무대에 주인공처럼 할거(割據)하고 있다. 웹3.0시대는 ‘메타버스(metaverse)’ 세계로 가는 길목이다. 메타버스는 지구안의 가상세계가 아닌 지구 밖의 ‘가상우주’까지 표현하는 용어다.
가상세계는 인간의 뇌가 상상을 통해 물질세계의 한계를 확장시킨 세계다. 콜럼버스가 탐험을 통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하여 세계무대를 확장시킨 것처럼 말이다. 디지털 가상세계에도 백성들이 생겨나고 영토가 만들어지고 있으며 새로운 경제와 정치 이론들이 ‘제자백가’가 아닌 ‘코인만가(Coin萬家)’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 새로운 문명세계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살아가는 백성들은 신석기시대의 원시인이나 다름없다.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진실이며, 누가 역사의 주인공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새로운 코인이 출현할 때마다 코인에 투자하고, 코인으로 패가(敗家)하며, 코인에 의해 도탄에 빠지는 세상이 되었다.
과거 춘추제자백가 시대에 들풀처럼 꽃피웠던 무수한 사상과 철학들은 요즘의 코인처럼 듣기엔 아름답고 달콤한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도(道), 덕(德), 선(善), 인(仁), 악(惡)과 같은 추상적 개념들이었다. 사실 이런 이론들은 왕의 통치와 백성들의 실생활엔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은 공허한 것들이었다.
이 때 이사가 진시황에게 써준 ‘정치 시니리오’는 한비자의 법가사상이었다. 이사는 법가사상은 듣기에는 아름답지 못하지만, '법은 나라의 질서를 바로 잡고 왕의 통치력을 강화시킨다’고 강조했다. 진시황이 자신의 ‘통치(정치) 플랫폼’에 ‘합의 알고리즘’으로 ‘법(法)’을 채택하면서 마침내 나라의 기강을 바로잡고 사회의 질서를 되찾았으며 중원 천하를 통일하게 되었다.
오늘날 디지털세계는 NFT기술이 적용되면서 소유권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리하여 가상세계의 디지털 재산과 용역, 서비스의 거래에는 결국 암호화폐가 지불수단으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가상세계의 경제를 작동시키는 더 뛰어난 화폐가 아직 출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암호화폐가 화폐의 기본적인 역할인 거래수단 및 지불수단 그리고 가치기준이 되지 못한다면 도, 덕, 인, 선과 같은 공허한 추상명사일 뿐이다.
아무리 기술이 좋고 가치가 높은 암호화폐라 하더라도 거래를 위한 생태계 조성과 지불수단을 위한 가치 기준을 정할 수 없는 코인은 ‘화폐 같은 화폐 아닌 골동품’일뿐이다. 오늘을 사는 디지털문명인이라면 이 골동품에 속지 말아야한다. 골동품은 골목상가가 아닌 ‘진품명품’시장에서 찾아볼 일이다. 골목상가에서 지불되는 화폐가 실물경제를 움직이는 진정한 화폐다.
<파이타임 : 정신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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