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복음 설교가 없는가? Dr. Hymers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고린도전서 9:16). 이 말은 사도 바울의 말씀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하도록 강요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사역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Matthew Henry는, “사역을 맡은 사람들은 그들이 복음을 전파하는 책임이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추가 설명 없이, 나는 바로 설교로 연결합니다. 몇 명의 사람들이 나에게 오늘날에는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가 없다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은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에 관한 전체 설교를 들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나에게 왜 목사님들이 십자가로 인한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지 물어봤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자들이 거의 없습니까? 내 자신도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설교를 못들은 지 몇 년이 되었습니다. 나는 거기에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는 오늘 설교에서 2가지 이유를 설명하겠습니다. I.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 많은 교회들이 종료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22절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대해 설명합니다. 그것은 마지막 날의 서양의 유럽과 세계의 교회들을 완벽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날의 교회들을 누가 자세히 보고, 우리는 아직 라오디게아의 시대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말해줄 수 있습니까?” “오늘날의 교회들은 슬프게도 라오디게아의 시대의 교회의 영적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습니다. “많은 라오디게아의 교회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지 않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의 운명이 밀봉되어 있다. 사람의 교회가 우리의 교회를 분출시켰다” “우리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시절에 살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본적인 보주적인 교회의 상태입니다. 나는 만약 그리스도께서 오늘날의 교회에게 말씀하시면, 그는, ‘너는 나를 너무 아프게 한다. 너는 나를 사랑한다고 한다. 너는 그렇게 말하지만, 너는 그것의 뜻을 모른다.’ 나의 친구여, 우리는 라오디게아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Stanley High가 말한 교회입니다. 교회들은 내가 죄인이라고 말해주는 것을 실패했습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 만으로 나의 영혼이 구원 받는 것을 실패했습니다. 교회는 나의 죄의 대해서 분명한 지옥, 그리고 예수그리스도만이 구원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실패했습니다.” 우리 시대의 라오디게아 교회에 그리스도는 어디 계십니까? 그것은 바로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나와 있습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계시록3:20). 그리스도께서는 라오디게아 시대에 그의 교회들을 종료시켰습니다. 그가 문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신 이유는 그가 교회를 종료 시켜서 입니다. Dr. Charles C. Ryrie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교회 밖에서 계셔야 하는 것을 믿을 수 있습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Dr. Ryrie가 지적한 것처럼, 그는 그의 교회를 종료시키고, 사람의 마음에서도 나오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요한계시록 3장 22절에 있습니다. 성경에서 아주 확실하게 나와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 말씀하시는 것을 들을지어다.” 따라서 우리는 라오디게아 시대, 마지막 날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 놀랄 필요가 없습니다. Dr. Michael Horton은, Christless Christianit,라는 책의 저자 입니다. 그는 오늘날 거의 모든 교회는 그리스도의 복음대신 “자기 자신을 돕기 위한 메시지”를 전파한다고 했습니다. 그의 교회에서 설교를 이용하여 그의 요점을 증명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신 자신에 대해 더 만족할 수 있나?” 나는 그리스도의 업적= 십자가에서 돌아가심, 그의 보혈의 죄 사함, 그의 부활, 그의 재림에 대해서 설교하지 않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성경의 예언에서 보여 지듯 마지막 날 라오디게아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결정지었습니다. Dr. McGee는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라오디게아의 교회에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교회들이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그의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계시록 3장 14-19절 “라오디게아 사람들의 교회의 천사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요, 신실하고 진실한 증인이요, [하나님]의 창조를 시작한 이가 이것들을 말하노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나는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그런즉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므로 내가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리니 이는 네가 이르기를, 나는 부자라. 내가 재산을 불렸으니 아무것도 부족한 것이 없다, 하면서 네 비참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다 책망하고 징계하노니 그런즉 열심을 내고 돌아서라.”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에 4장에서 그의 위대한 예언구절을 말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그들이 건전한 교리를 견디지 못하며 귀가 가려워 자기 욕심대로 자기를 위해 선생들을 쌓아 두고 또 진리로부터 귀를 돌이켜 꾸며 낸 이야기들로 돌아서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서 깨어 있고 고난을 견디며 복음 전도자의 일을 행하고 네 사역을 온전히 입증하라.” (디모데후서 4:3-5). “진리에서 귀를 돌이켜”라고 말한 뒤에, 그는 “전도자의 일을”을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은 마치 19세기의 Spurgeon이 설교했던 강하고 학술 복음의 설교가 진정으로 필요한 때입니다! 아, 얼마나 요즘 시대의 사람들이 이런 설교가 절망적입니까! 나는 미국의 모든 설교자들이 성경 구절구절의 교훈을 기독교인들에게 거의 안줘도 상관없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하던지, 나는 나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계속 선포할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린도전서 9:16).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린도전서 9:16) II. 두 번째로, “죄인의 기도”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설교 “현대” 설교자들이 말하는 구식적인 방법은 필요 없게 만들었습니다. 만약 당신이 사람들이 “죄인의 기도”만 하게 한다면 복음을 전파할 필요가 없습니다. “현대적인” 방법의 “죄인의 기도”가 오늘날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설교와 대치되었습니다. 만약 당신은 이것이 과장되었다고 생각하면, 1993년에 Jack Hyles이 쓴 것을 들어보세요. 사도행전에 나오는 신약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였습니다. 비록 우리는 이것을 전도와 그 후 여러 세기 동안 복음주의 교회에 강조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교회들은 복음은 전하지 않고 육신을 치료에 힘을 쓰고 있습니다. 육신을 치료하는 집회를 많이 합니다. 불치병이 고쳐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영혼의 구원하는 집회는 없습니다. 별로 인기가 없습니다. 지금은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와 복음주의 적인 교회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복음주의의 교회의 목사님들은 강당 뒤에 서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설교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모님들이 데리고 왔습니다.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에서는,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서 길과 산울타리로 나가서 사람들을 그리스도로 승리하고 그들을 교회 복도로 데리고 가서 그들의 구원에 대한 간증을 사람들에게 합니다. 우리세대는, 우리는 이런 복음주의의 교회에서 영혼을 구원하는 교회로 바뀌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람이 주일에 기독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 깨닫게 해 줍니다. 그리고 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합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말씀 중에 고린도후서 11장 2절 “내가 하나님께 속한 질투로 너희에 대하여 질투하노니 이는 내가 너희를 순결한 한 처녀로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한 남편에게 너희를 정혼시켰기 때문이라.” 그가 말하는 것은 아주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는 “더 좋은 교회들은” 더 이상 전도 설교를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나가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죄인의 기도”를 말하고, 그들을 교회로 “복도 옆으로 데리고 옵니다.” 그는 또한 신약 성경의 교회에서도 이렇게 말한다고 했습니다. 나는 누군가가 사도행전을 증명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에서는 한 가지만 빼고 모든 설교가 전도적인 설교였습니다. 맞습니다. 사도행전의 한 가지만 뺀 모든 설교는 전도에 대한 설교입니다. 이 설교는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에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설교도 그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복음전도 설교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17-35절입니다. “17. 그가 밀레도에서 에베소로 사람을 보내어 교회의 장로들을 부르니 18. 그들이 그에게 오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아시아에 들어온 첫날부터 모든 때에 내가 어떤 방식으로 너희와 함께 지냈는지 너희가 알거니와 19. 내가 온전히 겸손한 마음과 많은 눈물과 또 숨어서 기다리는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내게 닥친 시험들과 더불어 [주]를 섬기며 20. 너희에게 유익한 것은 어떤 것도 숨기지 아니하고 너희에게 보여 주며 공중 앞에서 또 집에서 집으로 다니며 너희를 가르치고 21.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22. 보라, 이제 내가 예루살렘에서 내게 닥칠 일들을 알지 못한 채 영 안에서 결박당하여 거기로 가노라. 23. 오직 [성령님]께서 모든 도시에서 증언하사 결박과 고난이 나를 기다린다고 말씀하시나 24. 이 일들 중 어떤 것도 결코 나를 움직이지 못하며 또한 내가 나의 생명도 내게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니 이것은 내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님께 받은 사역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기쁨으로 끝마치고자 함이라. 25. 보라, 내가 너희 가운데서 [하나님]의 왕국을 선포하며 다녔으나 이제는 너희가 다 다시는 내 얼굴을 보지 못할 줄 내가 아노라. 26 그러므로 내가 이 날 너희를 데려다가 증언하게 하거니와 내가 모든 사람의 피로부터 깨끗하니 27. 이는 내가 지금까지 회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모든 계획을 너희에게 밝히 말하였기 때문이라. 28.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 29. 내가 이것을 아노니 곧 내가 떠난 뒤에 사나운 이리들이 너희 가운데로 들어와 양 떼를 아끼지 아니할 것이요, 30. 또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내어 자기들을 따르게 하려고 왜곡된 것들을 말하는 사람들이 일어나리라. 31. 그러므로 깨어서 내가 삼 년 동안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32. 이제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하나님]과 그분의 은혜의 말씀에 맡기노니 이 말씀이 너희를 능히 든든히 세워 거룩히 구별된 모든 자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상속 유업을 주리라. 33. 내가 어떤 사람의 은이나 금이나 옷을 탐내지 아니하였으며 34. 참으로 너희가 알거니와 내가 이 손으로 나의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였고 또 나와 함께한 자들을 섬겼노라. 35. 내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보여 주되 곧 너희가 마땅히 이렇게 수고하여 약한 자들을 지원하고 또 [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 즉,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복 되도다. 하신 그분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였느니라.” “유대인들과 또한 그리스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회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을 증언하였노라.” (사도행전 20:21). 사도행전에 나온 다른 모든 설교들은 오순절 날 베드로의 설교도 포함하여 복음전도주의적인 설교입니다. (사도행전 2:14-40); 산헤드린 앞에서 드린 베드로의 설교 (사도행전 4:5 – 12); 스데반의 설교 (사도행전 7:1-53); 사마리아에서 빌립의 설교 (사도행전 8:5); 사도바울의 구원받은후의 설교 (사도행전 9:20–22); 이방인에게 한 베드로의 설교 (사도행전 10:34-43); 비시 디아 안디옥 에서 바울의 설교 (사도행전 13:14-41); 아테네에서의 바울의 설교 ( 사도행전 17:22 ) 등등입니다. 우리는 또한 사도바울이 집에서 집으로 가면서 복음전도적인 설교를 한 것을 읽었습니다. (사도행전 20:20-21).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복음 전도를 위해여 설교 사원에서 또 여러 집에서 설교한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는 것을 읽었습니다. (사도행전 5:42). 그래서Jack Hyles이 “신약에 나와 있는 사도행전”이 복음 전도 설교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고 Jack Hyles가 “더 나은 교회의” 목사들이 복음 전도 설교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주일날 설교”하는 것으로 변했다는 말은 완전 잘못된 것입니다. 그러나 Jack Hyles의 말들중 아주 흥미로운 것은 “죄인의 기도”가 복음전도주의의 설교를 대신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따라다니면서 “죄인의 기도”를 하라고 하는 것이 복음 설교를 불필요하게 만들고,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과거의 것이 된 것입니다. Jack Hyles말하듯이, “몇 년 동안 우리는 영혼의 승리 [사람들에게 ‘죄인의 기도’를 하게 하는 것]에서 전도주의로 변했습니다.” 그러나 Hyles은 틀렸습니다. Hyles만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들에게 “손을 들어” – “죄인의 기도”를 하게 하는 것은 너무 쉬운 일입니다. 왜 그리스도에 대한 설교를 하면서 문제를 일으킵니까? 왜 단지 “기독교인들은 주일에 교회를 가야한다고”- Jack Hyles이 말한 것처럼 설교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John MacArthur 에서 Joel Osteen까지 사람들은 “기독교 사람들은 주일날에 대해” 가르칩니다. 그래서 “죄인의 기도”라고 불리는 기도가 오늘날 우리 교회들에 복음에 대한 설교를 파괴시킨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사도바울의 말을 해야 합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린도전서 9:16). 나는Thomas Williamson이라는 사람의 아주 생각하게 하는 말을 읽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내가 무엇을 잘못 알 수도 있지만, 나는 신약성경에서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기독교인들이 “회개하고 나를 따라서 기도문을 말하고, 만약 당신이 통성으로 기도하기 창피하면 그냥 작게 하고 그래도 당신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나는Mr. Williamson이란 사람도 모르고 그의 생각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말한것은 생각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에게 “죄인의 기도”로 구원받은 것은 없습니다! 이것은 새로운 방법입니다 – 성경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위험한 방법입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선포하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 우리는 많은 교회에서 이것을 봅니다. 나의 동료인 Dr. Christopher Cagan과 나는 Joel Osteen을 컴퓨터로 보았습니다. 그는 간단한 자기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기에 대해서 말했습니다. 그는 성경 말씀을 2번 정도 인용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한 단어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대속의 죽음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단 한 단어에 대한 주님의 보혈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전대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말끝에 나는 그것을 한 단어 한 단어 적었습니다. Joel Osteen은 말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에게 예수님을 당신의 삶의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기회 없이 방송을 마감할 수 없습니다. 나와 함께 기도 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 예수님, 나의 죄를 회개합니다. 나의 마음으로 와주세요. 나는 당신을 나의 주인으로 구주로 모십니다.” 친구 여러분들, 당신은 아이가 이렇게 간단한 기도를 하면 우리는 당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믿습니다. 그는 아마도 “다시 태어났다고” 믿을 수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도 이런 기도로 통해서 다시 태어날 수 없습니다. 이 기도에는 복음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의 설교에는 복음이 없기 때문에 Mr. Osteen는 그리스도 없는 설교와 “죄인의 기도”를 주고 복음의 언급은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해서 그 대가를 치루기 위해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신 언급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죄를 씻겨주시는 보혈의 언급이 없습니다. 그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 살아나신 언급이 없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복음에 대한 언급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은 짧은 기도의 거짓된 복음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그래서 Osteen은 사도바울이 지적한 “다른 복음”을 설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닙니다. “1. 또한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복음을 너희에게 밝히 알리노니 너희 역시 그 복음을 받았으며 또 그 가운데 서 있느니라. 2. 너희가 만일 내가 너희에게 선포한 것을 기억하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또한 그 복음으로 구원을 받았느니라. 3.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나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4.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5. 게바에게 보이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보이셨다는 것이라. 6. 그 뒤에 그분께서 오백여 형제에게 한 번에 보이셨는데 그중의 대다수는 지금 이때까지 남아 있고 어떤 사람들은 잠들었느니라.”(고린도전서 15:1-6) “그리스도의 은혜 안으로 너희를 부르신 분을 너희가 이렇게 속히 떠나 다른 복음으로 옮겨가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그것은 또 다른 참 복음이 아니며 다만 너희를 어지럽히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왜곡하려 하는 자들이 더러 있도다.”(갈라디아서 1:6-7)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린도전서9:16)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지나간 때에는 너희가 그것들 가운데서 이 세상의 행로를 따라 걸으며 공중의 권세 잡은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자녀들 가운데서 활동하는 영을 따라 걸었느니라.”(에베소서2:1-2) “그러므로 기억하라. 너희는 지나간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하는 할례를 받아 할례자라 불리는 자에 의해 할례 없는 자들]이라 불리던 자들이라.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연방 국가 밖에 있던 외인들이며 약속의 언약들에서 분리된 낯선 자요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 밖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한 때 멀리 떨어져 있던 너희가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에베소서2:11-13).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온전히 받아들이기에 합당한 말이니 곧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다는 말이로다.” (디모데전서1:15) 예수님은 천국에서 오셔서 우리와 함께 죄 없이 사셨습니다, 완벽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독생 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러나 아주 끔찍한 밤 겟세마네 동산의 어둠속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의 죄를 “그 몸”으로 짊어지셨습니다. “22. 그분께서는 죄를 짓지 아니하시고 입에 교활함도 없으시며 23. 욕을 당하시되 맞대어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당하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며 오직 의롭게 심판하시는 분에게 자신을 맡기시고 24. 친히 나무에 달려 자신의 몸으로 우리의 죄들을 지셨으니 이것은 죄들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살아서 의에 이르게 하려 하심이라. 그분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가 고침을 받았나니 25. 너희가 전에는 길 잃은 양 같았으나 지금은 너희 혼의 [목자]요 [감독]이신 분에게로 돌아왔느니라.”(베드로전서2:22-25). 예수님께서는 인간들의 죄의 무게로 힘들어 하셔서 “그분께서 고뇌에 차서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그분의 땀이 큰 핏방울같이 되어 땅에 떨어지더라.” (누가복음 22:44). 성전의 사람들이 와서 예수님을 거짓혐의로 체포했습니다. 그들은 그를 그들의 가장 높은 제사장에게 끌고 갔습니다. 그들은 그의 눈을 가리고 얼굴을 때리고 다른 사람들을 그의 수염의 뿌리를 뽑았습니다. 그들은 그를 로마 총독 본디오빌라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그는 그의 병사들에게 예수님을 반이 죽을 때 까지 뒤에서 채찍질을 하고, 땅에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그의 얼굴에 침을 뱉고, 때리고 머리를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그들은 그에게 십자가를 끌고 거리로 나오게 하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아사셀(עֲזָאזֵל) 염소가 끌려가면서 욕먹고 돌팔매질 당하고 침 뱉고 마침내 버림당하는 성경을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못 박을 장소에 왔을 때 그들은 그의 손과 발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분은 십자가에 매달리고, 십자가에서 벌거벗기고 사람들은 그를 조롱하고 비웃었습니다. 그렇게 십자가에서 6시간의 고통이 끝난 후 그는 외쳤습니다. “다 이루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떠나 가셨습니다. “그러나 군사들 중의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요한복음 19:34). “이는 피가 모든 육체의 생명이기 때문이니 육체의 피는 육체의 생명을 위한 것이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어떤 육체의 피든지 먹지 말라, 하였나니 모든 육체의 생명은 그 육체의 피 인즉 누구든지 피를 먹는 자는 끊어지리라.”(레17:14) “11.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곧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그것을 먹을지니라. 그것은 {창조주}의 유월절이니라. 12. 내가 이 밤에 이집트 땅을 두루 지나가며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이집트 땅의 처음 난 모든 것을 치고 또 이집트의 모든 신에게 심판을 집행하리라. 나는 {창조주}니라. 13. 그 피가 너희가 거하는 집 위에 있어 너희를 위해 표가 되게 할지니라. 내가 그 피를 볼 때에 너희를 넘어가리니 내가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재앙이 너희 위에 임하여 너희를 멸하지 아니하리라.”(출12:11-13) 예수님께서 흘린 피가 우리의 죽음을 면하여 줍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의 시체를 가지고 가서 세마포로 싸고 무덤으로 가지고 갔습니다. 그들은 큰 돌을 무덤 앞에 놓았고, 문을 막고 로마 병사들이 무덤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안식 후 첫날 예수 그리스도 주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나의 친구, 예수님은 당신을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하셨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죄를 대신해서 어린양의 제물로 죽으셨습니다. 당신은 당신의 죄로 벌 받아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그 고통을 다하고 당신 대신 죽으셨습니다. 성경은 당신이 예수님이 당신의 죄로 돌아가셨고,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인하여 당신의 생명을 대신 하신 것을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의 물과 피를 당신을 위해서 한 방울도 남기지 않고 흘리셨습니다.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시고 당신에게 영원한 삶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사랑하셔서 벌써 당신의 고통과 아픔을 대신 당하였습니다. 예수님께로 돌아 오십시요! 주님은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구원하시길 원합니다. 지금 이 순간! 무엇이 남아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당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죄를 참회하고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당신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참회하고 예수님을 믿을 때 당신의 죄로부터, 무덤에서, 그리고 지옥에서 다 구원받습니다! 지금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리고 그는 당신의 그의 보혈로 깨끗이 죄에서 씻겨 주실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나니 이는 필연적으로 내가 해야 하기 때문이라. 만일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아니하면 참으로 내게 화가 있으리로다.” (고린도전서9:16). 주님께 찬송합니다. 1)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죄 씻음 받기를 원하네 내 죄를 씻으신 주 이름 찬송합니다. 여러분 만약 당신이 오늘 죄를 사면 받고 예수님으로 부터 구원받고 주님과 동행하시기를 원하신다면, 지금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당 뒤로 가세요. 먼저 구원받은 선임자들이 당신을 조용한 곳으로 데리고 가서 같이 기도하고 상담 할 것입니다. 지금 누군가 당신들을 위해서 예수님을 믿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복음이 선포 되는 곳에 생명이 있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