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죽을때까지 싸움이고 죽을때까지 노가다다.
딴지일보에 노가다칸다빌레란 글을 연재하시는 분이 계신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온 기자출신에 평생 글쓰고 취재하는 분이 노가다꾼으로 거듭태어나는 본인의 고군분투기를 연재하고 있다.
나이도 30대후반으로 보이니 나보다 몇살 어리다.
인력소 잡부로 시작해서 건설업체 직영으로 일을하다 최근에 형틀목수로
일하면서 노가다꾼의 삶의 애환을 적절히 녹여내어 많은 사람으로 부터 감동을 사고 있다. 관심있으신분들은 딴지일보에 가서 보기를 바란다.
노가다하면 나도 할이야기가 많다. 나는 노가다로 돈을 벌었고 항상 위기 상황에서 노가다가 있었기 때문에 버틸 수 있었다.
나의 노가다 이야기를 시작하려 한다.
내가 노가다를 처음 한것은 20살때 이다. 그 당시 춘천에 푸른인력과 개미인력이 있었다. 5시쯤일어나서 세수하고 집에서 안쓰는 옷을입고 지저분한 운동화(이 당시엔 안전화개념이 없었음)를 신고나가서 인력소장한테
눈도장을 찍은뒤에 낡은 쇼파에 앉아서 기다린다.
인부를 데리러 오는 곳도 있고 인부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현장으로 가는 곳도 있다.
아무래도 자주나오는 사람과 성실히 일하는 사람을 우선 현장으로 보낸다.
나는 처음에는 일을 몇차례 못나갔으나 성실하게 일하면서 인정을 받았고 그 이후로는
대마(일을 못하게 하는 날)맞는 일이 없었다.
97년도 당시에 하루일당이 5만5천원이었다. 여기서 인력사무소에 소개비 10%를 제하고
5만원이 내가 받는 일당이었다.
이 당시에 짜장면 한그릇이 2000원~2500원이고 담배한갑이 1000원이었다.
강원대학교 천지관 백반값이 500원이었고 김치찌게가 2000원정도 하던때다.
소주는 술집에서 800원이고 아르바이트는 시급 1500~1700원정도 받았다.
은퇴하는 나이의 6급계장이나 경사월급이 120~150만원 인걸로 기억한다.
지금 물어보니 인력사무소 잡부일당이 12만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10%를 공제하면
10만8천원을 받는셈이다.
재밌는 사실 하나는 사창가의 아가씨와 섹스를 한번하는 금액과 노가다 일당은 금액도 똑같고
같은 비율로 상승한다는게 참 재미있다.
누군가가 이와 관련된 논문을 하나 쓰면 어떨까 한다.
이야기가 자꾸 옆으로 새는데 그럼 나는 왜 노가다를 뛰어야만 했는가?
우리아버지는 미군부대 항공교통관제사로 꽤나 고액연봉을 받는 분이다.
그러나 우리아버지는 얼굴만 한국사람처럼 생겼지 스타일은 아메리칸 스타일이다.
나의 가게와서도 나에게 물건을 사가고 나는 돈을 받는다. 우리 아버지는 우리아버지의 인생을
살고 나는 나의 인생을 산다. 아들을 소유의 개념이 아니라 그냥 한명의 인간으로 보고
성인이 된 이후에는 독립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분이다.
아버지가 나에게 준 책의 제목은 '아들이여 아버지를 능가하라.'이다 제목이 꽤 재밌지 않은가?
그러니 여기에 용돈같은 개념이 있을리가 만무하다.
나의 아버지를 아는 몇명의 친구는 이해하지만 처음보는 사람들은 이해를 잘 못하고 당황을 많이한다.
아버지와 돈거래를 하는 불효자식으로 보는듯하다.
미국에서 살거나 미국에서 살다온 사람들은 알것이다. 미국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청년들은
돈이없다. 옷도 청바지에 셔츠하나로 버티고 기껏하는 파티가 식은피자에 싸구려 맥주를
한잔 마시는 것이다. 부모님이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젊은이들은 학자금대출을 갚으려고
그렇게 열심히 일하고 공부한다.
그리고 노년을 즐기면서 산다. 미국의 유명한 거리에 가보면 노인분들이 다들 돈쓰고 재밌게 산다.
그러나 우리는 이와 반대로 한다. 어릴때 자식교육하느라고 돈다쓰고 늙어서는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자식들 눈치보기가 바쁘다.
어느것이 옳다 그르다 하기 어렵지만 나는 미국식의 교육을 받고 자랐다.
사고방식도 미국스타일이 남아있다. 동정받는 것도 싫어하고 동정하는 것도 싫어한다.
신세한탄하는 것도 우습고 이게 내가 갈길이라면 그리고 나의 신체가 멀쩡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주의다.
그래서 나는 남들에게 본의 아니게 상처를 많이 줬다.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여리고 약하고 위로가 필요한데
어릴때부터 이런식으로 20년을 살아온 어찌보면 강철심장을 다른 사람도 가진줄 알고 험한말을 많이 했다.
나는 육체노동을 신성시하고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예전부터 여기는 사람이다. 모든 예술들을 보면 육체노동을 통해서만 나온다. 몸을 쓰지 않고 현실에 표출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한테 힘들면 노가다를 뛰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오해를 하고 반감을 많이 산것도 사실이다.
인력사무소이야기로 돌아와서 일의 대부분은 토목현장,건축현장이다.
잡부라고 불리는데 말그대로 현장에서의 물건옮기기 나르기 정리하기 일들을 하고 또한 데모도도한다.
데모도는 기술자의 보조일이고 현장에따라서 5천원에서~1만원이 더 붙는다.
1.자재정리: 오비끼,다루끼,투바이등 나무자재를 정리한다. 거푸집폼을 정리한다. 아니면 다음현장을 위해서 지정된 현장으로 옮기는 작업이다. 삿뽀드(천장거푸집지지대),아시바(비계작업)도 정리해서 지게차나 크레인이
잘뜰수 있게 만들어 놓는다. 반생이(철사)로 잘 묶고 짜를때는 갓따(절단기)로 짜른다.
2.미장데모도: 사모래질을 한다. 그물같은 철망에 모래를 퍼올려서 고운입자를 걸러내는 작업이다. 개인적으로 사모래질은 어렵다. 삽질을 하면서 쉴 수 있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장비로 옮기기 어려운 시멘트포대를 옮겨주는 작업도 한다.
이럴때는 보통 야리끼리(시간상관없이 수량만 옮기면 끝남)를 하기도 한다.
시멘트 한포대는 40KG인데 요령이 좋으면 두포대를 등에지고도 나른다. 데모도일당도 1~2만원정도 추가된다.
3.철근데모도: 모든콘크리트에는 철근이 들어간다. 현장에서 기술자들이 요구한 치수대로 잘라서 갔다준다.
일이 크게 어려운건 없지만 센스가 있어야 한다. 잡부일당도 2만원정도 추가된다. 친구 아버님 밑에서 3개월정도 아르바이트를 한적이 있다. 일당 8만원을 받았는데 철근일은 머리가 좋아야 한다. 건축도면을 잘보고일머리를 잘알아야 한다.
철근절단은 실수하면 큰일나기 때문이다. 그늘이 없이 일한다는게 단점이다.
깔꼬리질을 해야되는데 철근과 철근을 작은철사로 결속하는 일이다. 그런데 쪼그려 앉아서 해야되는게 무지불편하다.
더군다나 나는 쪼그려 앉아서 10분만 있어도 불편한 스타일이라 차라리 힘쓰는게 좋았다.
그래도 철근구조물을 만들어놓으면 하나의 거대한 설치작품처럼 뿌듯함이 생긴다.
4.형틀목수데모도: 아마 노가다일중 제일 자부심이 강한분들 일것이다. 항상 못통을 차고 다니면서 은연중 나는 목수다를 뽐내는 분들이고 목수정도만 되면 내가봐도 괜찮은 직업으로 보인다.
그당시에 기술자일당이 12만5천인걸로 알고 있고 요즘은 22~23만원인걸로 알고 있다.
특히 목수오야지는 현장기사나 소장도 함부로 할 수없는 권력가이다. 나도 일하다가 스카웃제의를 많이 받았는데
젊었을때라 크게 관심이 없었다. 97년에도 데모도일당이 7만원정도 했었다.
5.비계해체데모도(아시바해체):건설현장을 보면 다른분들이 일할수 있게 쇠파이프를 가로세로 얽히고 설켜조립하는 분들을 가르친다. 다른기술자들이 외장작업을 할 수 있게 길을 만드시는 분들이다.
일은 위험하고 다칠염려가 있다. 그래서 데모도는 보통 바닥에서 까치기를 도와준다. 4M,6M파이프를 올려주면 기술자들이 조립한다.
그밖에 인력소에 다니면 운이좋은 경우 아주 쉬운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경우도 많다.
골프장에 개나리 묘목을 심으러 갈때면 아주 행복하다. 그 끝없는 잔디밭에서 경치를 감상하면서 개나리만 심으면
되는 것이다. 일 열심히 하면 현장소장이 며칠 나올 수 있냐고 물어본다. 5천원도 절약되고 목돈이 모인다.
다만 이렇게 바로직영으로 나가면 인력소장눈밖에 날 염려가 있으니 눈치것 알아서 해야된다.
그리고 국도 양쪽에 경사있는 땅을 그물망으로 덮고 풀이자라게 씨앗을 뿌리는것도 아주쉽고 재밌다.
거푸집을 다설치하고 콘크리트 양생도 끝나고 거푸집과 거푸집을 연결하는 못을 줍는것도 아주 쉬운일이다.
어떤날은 개발에 땀나도록 힘든 일이 있고 어떤날은 돈을 받는게 미안할 정도인 일들도 있다.
노가다를 뛴날은 이상하게 하루가 보람찼다. 나에 대한 자부심이 생겼다. 힘들고 고되지만 무언가를 만들었다는데 일조했다는 기쁨도 있고 나의 노동에 내가 대견했다.
단란주점에서 웨이터를 했으면 어땠을까? 천성이 그런쪽으로 일할 생각도 못하지만 남의 팁이나 바라보고 비위나 맞추고 살아가는데 자부심이 생길리가 만무하다.
강철의 심장이 만들어지는 꺼녕 우리 아버지가 나를 놀릴것이다.
곁눈질이나 보고 사기나치고 살지 않았을까 한다.
재밌는 또하나의 사실은 머리가 좀 좋은 분들은 목수를 한다는 사실이다. 노가다도 기술을 배우려면 똑똑해야한다.
도면도 보고 일머리도 알아야 되고 사람도 부릴줄 알아야 한다. 쉬운게 아니다.
잡부더라도 일머리를 알면 시키는 사람도
편하고 일하는 사람도 편하다. 일은 시켜서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만들고 알아서 하는 것임을 기억해야한다.
목수일을 배우면 건축업자를 할 수도 있다. 인테리어목수도 마찬가지다. 내장목수라고 하는데 내장목수가 되면 인테리어 사업도 할 수 있다. 관심있는 사람들은 도전해보기 바란다. 필자도 목수일은 버킷리스트다.
진정한 보헤미안과 자유주의자는 그냥 인력소 나가시는 분들이다.
이분들은 머리좀 써서 기술을 배우면 되는데 그것도 귀찮은 분들이다. 사람들 만나고 팀만들고 지방내려가고 정치하고 일만하고 이런것 싫어하는 분들은 일당으로 인력소를 나가신다.
나도 약간 이런주의다. 잡부일이 편하고 재밌을때도 많다.
97년 IMF이후로 많은 분들이 노가다판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당시에 40대~60대분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노가다판을 우습게 보면 안된다. 이분들이 예전에 다 중소기업 사장님들이었고 벤츠타고 다니시던 분들이고 어마어마한 이력을 가지신 분들도 많다.
부도가 나고 빛이많고 취업이 안되고 짤리고 삶의 애환이 서려있는 분들이다.
이분들이 그당시에 20살인 나에게 인생의 많은 조언을 해주신 것들이 지금까지 나의 가슴은 기억하고 있다.
누구나 노가다꾼이 될 수 있다. 실은 우리 모두 평생 노가다꾼 아니었던가?
어떤이는 이빨로 일을 하고 누구는 삽질을 하는것 차이밖에 없다. 모든 일은 몸으로 하는 것이다.
내인생의 8할은 노가다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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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내공이 쌓여 오늘날 멋진 작품들이 나오는 거였군요^^
군에서 IMF 체감못했지만, 깊은 수준은 아니지만 노가다는 이것저것 경험해 본듯... 세탁소, 제논 탐조등, 소각장 이걸 나 군생활동안 만든거니...150정도 소규모 포대에 보기에 초라했지만 만들고나서 뿌듯함은 내몫, 근데 지금 노가다 뜀?
군대작업도 노가다죠 형님 ㅎㅎ저도 문만들고 화장실만들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죠 ^^
잘 읽었습니다...많이 공감 되는군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형님!
94년 고딩때 오비끼 못 빼는일 하다 친구 발에 못찔려 망치로 발 엄청때린 기억이 ^^
오우! 못빼다가 발에도 많이 찔렸죠 비오는날 전선에 감전되기도 하고 정화조들어갔다가 질식해서 죽을뻔하기도 했네요 ㅎㅎ
@Veteran_이종배 그립보드 슈가맨 님^^ 추억소환
법대 다니시면서 노가다로 생활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ㅠㅜ
선배님의 글은 언제나 냉정한 문체속에서 휴머니즘을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 ^^
힘들다기보다는 기투하는 재미가 있는거지 ㅎㅎ좌파의 출발은 휴머니즘이지^^ 운동열심히 하자구!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0.03.05 19:48
현재를 기준으로 대략 5년뒤의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강산이 절반정도 변하는 기간인 5년뒤의 모습을 그리며 열심히 살면 됩니다.
팔씨름국가대표가 될수도 있고 돈을 무지많이 벌수도 있고 이쁜여자친구를 만날수도 있고 공부를 엄청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리고 오늘 외로움을 참고 묵묵히 전진하면 좋은결과가 생길겁니다. !
@Veteran_이종배 좋은말씀 감사합니다
힘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좋은글 앞으로도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라더 테레사 넵!! 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