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니차례기다려요
여시들 안녕!! 오랜만이야
예전에 티에 대한 글을 올렸었는데
차의 역사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려주려고 다시 왔어!
요즘엔 현생 사느라고 바빴는데 그래도 지금은 여유가 좀 많이 생겨서
이렇게 다시 여시들에게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돌아왔어 ㅋㅋㅋ
그러면 재밌게 봐줘!!
차(茶)의 유래
차를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식용 작물로 이용한 나라는 중국이야!
그 기원은 약 45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중국 전설에 따르면 기원전 2500년 경에
중국의 황제, 중의학의 아버지인 '신농'이 차를 처음 발견하여 사용했다고 해
신농은 산과 들에서 자라는 온갖 식물들을 직접 먹어보고, 사람들에게 음용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해서 가르쳤다고해.. (그래서 중국이 온갖 것을 다 먹으려고 그러나..;)
하루는 여러가지 독초를 먹고 중독되어 괴로워 하고 있었는데 물을 끓이기 위해 준비 해 둔 솥으로
차나무의 잎이 몇장 떨어졌대.. 그런데 그 찻잎이 우러난 물이 몹시 향기로워서 마셔 보았더니
온갖 독이 해독되었다고 해! 그 이후로는 중국에서 차나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야
물론 이 전설을 역사적인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중국에서는 적어도 4500년 전부터
차를 중요시하여 음용을 시작했다는 것, 처음에는 차는 기호음료가 아닌 약용으로 사용되었다는 것!
그리고 초기에는 별 다른 제조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국을 끓이듯이 물에 넣어 끓여 마셨다는것을
알 수 있어~ 그 이후 찻잎의 가공이 점점 다양해짐에 따라서 다양한 종류의 차들( 녹차, 우롱차, 홍차 등)이
만들어졌고 우려내는 방법 역시 함께 발전했어
세계 각국의 차의 역사
중국의 역사
중국에서 차를 마시게 된 유래에 대해 위에서 말한 신농의 설화 외에도 전해지는 이야기가 또 있어!!
바로 달마대사에 대한 이야기야.. 그 어르신들 집에 가면 있는 달마도 있지?? 그 달마도의 주인공에 대한 설화야!
달마대사는 인도의 왕자로 태어났지만 출가해서 수행을 하다가 중국으로 건너와 선종을 개창해서 전파했어
소림사에서 9년간 잠도 안자고 면벽 수행을 하던(이게.. 가능해?? 사람이 아니노...) 달마대사는
어느날 깜빡 잠이 든 것에 분노해 자신의 눈꺼풀을 베어 던져버렸대.. 달마도에 그려진 달마대사의 눈이
유독 부리부리한 이유는 바로 이 눈꺼풀이 없기 때문이야!!
그 눈꺼풀이 떨어진 마당에는 그 자리에 두 그루의 나무가 자라났는데, 이 나무가 바로 최초의 차 나무로
그 잎의 모양이 눈꺼풀을 닮아 있었다고 해.. 달마대사가 이 차나무의 잎을 따서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셨더니
정신이 맑아지고 잠이 달아나는 효험을 보았다고 하는 설화가 있어
이 설화 역시도 역사적인 사실로 보기는 어렵지만 승려들이 명상중에 잠을 깨기 위해 차를 즐겨마시고
이로 이해 차를 마시는 문화가 승려들에 의해 전파된것마은 분명하다는데 설화적 근거가 되고 있어~
초기에 주로 약으로 쓰이던 차는 당나라때 이르러서 음료로 각광을 받기 시작해
사람들 사이에서 다과 활동이 일상화 되고, 차를 판매하는 찻집이 생겨나고, 차와 관련된 각종 예술 문화 활동이
시작되었어.. 육우가 집필한 '다경'은 차에 관한 최초의 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해!
송대에는 차를 마실때 법도, 준비과정, 우려내는 과정을 의식화 하기 시작했고 이때 다구와 다기들이 많이 발전했어
이 당시 차를 만드는 방법과 우려내는 방법은 일본 유학승에 의해 일본으로 전래되어서
일본 전통의 다도 양식인 '차노유'의 기원이 되었어!
명대에는 차가 일반 백성들도 즐길 수 있을 만큼 보편화 되면서 수출이 되기 시작하는데 이때 중국의 차 산업은
중국의 새로운 경제부문으로 성장해! 이 당시만 해도 차는 녹차가 유일했지만, 16세기 말부터는 홍차가 제조되기 시작하면서
청차,백차 등 다양한 차들도 생산을 시작해!!
차가 주요한 수출품으로 자리매김 하면서 중국은 청대까지 차의 제조법을 비밀로 유지해서 서양과의 무역에서
우위를 차지했지만 1840년에 영국과의 아편전쟁으로 타격을 입고 영국이 식민지인 인도에서 차를 직접 재배해
인도에서 생산을 시작하면서 부터 차의 수출량은 급감하고, 차 생산 세계 1위국을 스리랑카한테 내주었다가
1980년대에 들어서 다시 그 1위국에 오르게 되었어!
우리나라의 차 역사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학설이 많이 엇갈리고 있어
가장 오래된 기원 설화로는 금관가야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에 대한 얘기야!!
삼국유사의 가락국기 편에 따르면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였던 허황옥은 꿈에서 하늘의 계시를 받고
베필을 찾아 배를타고 바다를 건너와 가야국의 왕 김수로를 만나게 된다고 해.
이때 혼수품으로 가져온 것 중 하나가 차나무였는데, 이를 지금의 김해지역에 심어 차의 재배가 시작되었다는거야!
또 다른 학설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흥덕왕때에 당라나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던 대신 '대렴'이
돌아오면서 차의 종자를 들여왔는데, 이를 흥덕왕이 지리산에 심도록 지시했다고 해!
신라시대에 차는 이미 선덕여왕시절부터 있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차가 전국적으로 보급, 차를 마시는 습관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전하고 있어~ 이 기록대로라면 대렴이 들여온 차나무의 종자로 인해
차의 재배가 시작된것은 아니지만, 보다 우수한 종을 도입해 재배의 양이 늘면서 차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한것은 짐작할 수 있지!
이후 고려시대때 불교를 국교로 삼아 불교 관련 문화가 매우 발달했는데 이때 차 문화도 전성기를 맞이해
연등행사때는 왕이 신하들에게 차를 하사하기도 하고, 다방(나라에서 차를 보급하고 관리하는 기관같아)등의
국가기관을 설치해서 직접 담당하게 할 정도로 차를 중요시 했대.. 대형 사찰에서는 '다촌'을 두어
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기도 했대!
또 국가적으로 차를 생산하는 장인들의 행정구역인 '다소'를 두어 차 생산을 집중 관리하기도 하고,
전문적으로 차를 생산한 만큼 차의 종류도 다양해지고, 차를 마실때 사용하는 다기와 다구의 제작도
활발해 지면서 바로 이때 도자기 문화도 융성하게 되었다고 해!
하지만 유교의 이념을 바탕으로 둔 조선이 건국되면서 승유억불 정책으로 불교 문화가 철저히 배격/배척 되었다고 해..
이로 인해서 사찰은 재정 상태가 악화되고 이는 사찰 주변에 있던 차밭 관리의 소홀로 이어져 결국엔
차의 생산량도 크게 줄었다고 해..ㅠㅠ
또한 1480~1750년에 걸친 소빙기로 인해 기온이 크게 내려가면서
차의 생산량이 줄어든것도 차를 마시기 않게 된
이유중에 하나야.. 냉해를 입어서 차의 작황이 크게 줄었는데 청나라에 공물로 보낼 물량은 오히려 늘었고
이를 메우기 위해 차에 대한 세금도 크게 늘면서 서민들이 과중한 세금을 내야 하는 차의 경작을 기피하게 된거야..ㅠ
이로인해, 당시 사회 상류층이었던 양반들도 차에 부과되는 세금때문에 마음대로 차를 마실수가 없게 되었어
혹시 여시들 우리 '차례' 지낸다고 할때 차가 '차 차(茶)'인건 알고 있었어??
이처럼 조상에게 제를 올릴때 차를 사용하던 문화도 점차 사라지고 대신에 술을 사용하기 시작했어
결국 곳곳에서 재배되던 차밭은 노지로 버려지고 이로 인해 차의 생산량이 줄어들었고, 차의 소비량도 크게 줄어서
명맥이 점차 끊기게 되었어..
이후!! 소빙기를 지나면서 다시 기온이 상승하여 차를 재배하기 알맞은 기후가 조성되고,
조선 후기의 실학자 정약용이나, 초의선사같은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차 문화는 다시 부흥하기 시작해
다산 정약용은 유배생활을 하면서 차를 즐기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의 차를 복원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
당시 정약용의 영향으로 차 문화를 전파한 사람들 중의 한명이 초의선사야!
초의선사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도 통달해서 당대의 석학들과도 교류하였대
특히 주목해야 할 점은 '한국의 다경'이라 일컬어지는 '동다송'을 집필, 우리나라의 차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내용등을 기록해 후대에 전했다고 해
다시 중흥하는가 싶었던 한국의 전통 차 문화는 일제 강점기를 겪으면서 정통 문화 말살 정책(씨발..좆본새끼들)의
일환으로 다시 위기를 맞아.. 해방 이후로는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유입된 서구 문화의 영황으로 커피가 대표적인
기호음료로 각광을 받으면서 전통차는 다시 외면을 받게..된거야..ㅠ
여러 이유로 고대때부터 이어져 온 우리나라 차의 역사에 공백이 생기기는 했지만 요즘들어
전통문화와 차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면서 과거에 만들어지던 형태의 차를 재현하려는 노력들도 있고
차의 소비량이 국내에서 점점 늘면서 우리나라의 차를 연구, 정리해 고유의 문화로 부흥하려는 움직임도
점차 늘면서 미래에는 지금보다 차 문화가 지금보다 훨씬 자리잡지 않을까 기대중이야!!
(지금 차에 관심있어서 이 글을 읽고있는 여시들이 대한민국 차 문화의 미래야!!!♡)
일(좆)본의 차 역사
일본은.. 정말 쓰고 싶진 않지만.. 지식 전달하는 글이므로 감정은 빼고 써야겠지..?
일본에서는 차에 관한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시기는 8세기 초야!!
당시 불교 의식에 차가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긴 하지만 그 이후로는 400년동안
차에 관한 기록이 없는걸 보면 외국에서 유입된 차가 한시적으로 사용된것으로 추측하고 있어
이후 승려 에이사이가 송나라에서 불교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서 차나무의 종자를 들여와 교토 외곽의
우지라는 지역에 심으면서 차 문화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워
(쓰기 ㅈㄴ 귀찮다.. 오타 고치기도 싫다.. 좆본새기들...)
에이사이가 유학했던 중국의 송대는 차를 마시는 문화가ㅓ 아주 융성하던 시기였어
당시에는 찻잎을 쪄서 덩어리로 만든 다음 맷돌로 곱게 갈아 뜨거운 물을 붓고 차선(대나무를 잘게 쪼개어
솔과 같은 형태로 만든 다구)으로 격불(거품이 나도록 휘젓는 행위)하여 마시는 말차(가루차,좆본 발음으로 맛차)의
'점다법'이 일반적인 방식이었어!
에이사이는 당시 불교 공부와 함께 수행의 도구로 여겨지는 차에 대해서도 지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차나무의 재배법, 가공법, 마시는 법등을 자세히 공부해서 일본으로 귀국 후 차를 일본 전체에 전파했어
그래서 에이사이는 지금도 일본 차의 '다조'로 추앙을 받고있다고 해.. 에이사이가 들여간 말차(좆본식 발음으로
해야하지만 존나 싫어서 그냥 말차라고 할게^^..)양식은 원형을 그대로 유지찬 해로 일본의 미의식과 결합해
일본 고유의 전통 다도인 '차노유'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어
16세기에는 센노리큐라는 불승이 차와 불교의 관례를 정리해 서적을 편찬하는 등 문화적으로 큰 발전이 있었어
특히 차를 마시는 행위에 사상과 철학을 담아.. 차노유는 점차 의식의 형태로 발전하였는데
차 문화가 성행하면서 자연스럽게 다구와 다기에 대한 관심도 늘고 특히 조선 도자기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여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많은 도공들을 납치..(^^..쌍욕나온닺)했다고 해..
그 뒤로는 뭐 일본은 열심히.. 차를 개발을 했고.. 그래서 차 문화가 제대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해..
뒤로 내용은 많지만 중요하진 않아^^
타이완의 차 역사
타이완은 16세기 포르투갈인들에게 포르투갈어로 '아름답다'는 의미의 '포르모사'라고 불리면서
서양에 소개되었어! 이후 국명이 '타이완(대만)'으로 변경되었지만 타이완에서 생산된 차는 그에 연유하여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로 '포모사'라고 불리고 있어~
타이완에서 본격적으로 차를 재배한건 비교적 후대인데 1790년대에 중국에서 차나무를 들여와
재배를 시작했기 때문이야, 그런데 타이완은 북회귀선에 위치, 국토의 절반이상이 해발 고도 200미터 이상으로
차를 재배하기에 아주~~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고산지대는 선선하면서도 습한 기후라서
좋은 품질의 차를 재배하기에는 아주 유리해!!
타이완에서 차를 처음으로 재배하기 시작한 곳은 강수량이 풍부하고 지리ㄹ조건이 조은 북부지역이야~
그러나 시험재배 수준이었고, 1820년대에 다른 재배종을 들여오기ㄲ전까지는 상업적으로 생산되지는 않았어
타이완은 청과 영국 사이에 맺어진 텐진조약을 계기로 1860년대부터 차를 수출하기 시작해서
1980년까지 전체 차 생산량의 80%를 수출했어! 이때까지 타이완에서 주로 생산하던 차는
수출용의 녹차/홍차인데 70년대부터 중국 본토와의 경쟁이 심해지면서 최고급의 청차(우롱차)를
생산하면서 내수 시장에서의 소비량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전환해!( 머리좋노..)
ㅇㅣ는 수출에만 의존하던 차 시장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차를 재평가 하는 계기가 되었ㄴ는데
이후로 경제, 문화, 농업ㄱ의 구조가 변화하면서 차 수출이 줄고 국내에서 소비량이 85%까지 소ㅂㅣ되었어
현재 타이완에서는 녹차, 홍차의 생산량은 미미하고 대신 최고급의 우롱차를 생산하는데 주력하고 있어
차를 생산하는 타이완의 농민들은 연합을 통해 차 생산을 체계화 하고, 재배 축제나 품질 경연대회를 통해
자신들이 생산한 차를 널리 알리려는 활동에 노력하고 있어! 이러한 노력으로 현재 세계 차 시장에서
'타이완 차=고급 우롱차'라는 인식이 자리잡게 되었다고 해!
그냥 잡담인데 차 같이 공부했떤 지인이 대만 야시장에서 사온 차라고 우려줬는ㄷㅔ..
조ㄴ맛이더라 진짜 그냥 우리 막 길가다가 떨이로 파는 양말매대 있잖아.. 그냥 그런데서 잡히는거
고ㄹ라온 거라던데 향이랑 맛이..도라버렸어 진짜 맛있었어.. 그런 차가 대만가면 그냥 깔려있단거잔ㅎ아..//??
코로나 끝나면 대만청차부터 조진다 ㅠㅠ
유럽의 차 역사
13세기부터 유럽에서는 동양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게 높아지면서 모험가, 선교사,상인들에 의해
동양의 문물이 조금씩 유입되기 시작해! 16세기에는 차와 차 문화에 대한 기록 전해지면서
이국의 신비로운 음료에 대한 흥미가 생기기 시작한대.. 17세기부터는 유럽인들이 차에도
깊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항해술이 남달랐던 포르투갈이 아시아와의 교역에 뛰어들고 네덜란드도 시작하면서 차가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된거야! 당시에 차는 중국, 일본의 다기와 함께 수입되었는데 이것들은 귀중품처럼 여겨져서
소장하고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부와 권력을 상징하게 되었어.. 설탕이나 샤프란 등의 고가의 향미료를 넣는 등
독창적인 방법으로도 음용했는데 이로 인해서 차는 점점 인기가 높아지게 되었어
17세기에 접어들면서 네덜란드는 네덜라드 동인도 회사를 설립해서 포트투갈을 경유하지 않고도
인도와 교역을 할 수 있게 되었어.. 영국 역시도 인도에 영국 동인도 회사를 설립했는데
이것때문에 네덜란드 영국에는 무역갈등이 생겨나기 시작해!
이쯤에 영국은 스튜어트 왕조 찰스1세의 무리한 대외 전쟁으로 국고를 탕진하게 되고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세금이 날로 높아져.. 또 청교도들에 대한 억압도 날로 심해져서
의회에서는 왕의 폭정을 비난하면서 대립각을 잡고 혁명을 일으키는데 이게 바로
'청교도 혁명'이야! 이 시민혁명을 결과로 찰스 1세가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고 찰스 2세는
왕권을 빼앗기고 추방을 당해버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혁명으로 세운 공화정이 실패하면서
왕정은 다시 복고되었다고 해
자국의 혼란을 잠재운 영국은 당시 경쟁국인 네덜란드를 견제하기 위해서 포르투갈과 결탁하는데
영국 왕인 찰스2세와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의 결혼 역시 이때문이었어..
당시 포르투갈은 브라질을 식민지로 삼아 설탕을 수탈했는데 포르투갈의 공주였던
캐서린은 결혼 지참금으로 무려 일곱척이나 되는 베에 설탕을 가득 실어 가져왔다고 해
당시 영국에서의 설탕은 같은 무게의 은과는 비등비등 할 만큼 값비싼 귀중품이었어
(이때 캐서린 공주가 배에서 내리자 마자 항구에서 차를 우리는 퍼포먼스를 했다는 말도 있어!)
캐서린은 차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다구를 영국 왕실에 소개해서 엄청난 유행을 시켰대
왕실에서 부터 귀족들에게도 유행하기 시작했고 귀족들을 흉내내기를 즐기는
일반 서민들에게까지 유행하면서 차를 마시는 문화는 굉장히 빠르게 자리를 잡았어
포르투갈과의 관계가 견고해지면서 영국은 네덜란드의 차에 금수조치를 내리고
인도네시아까지 찾아온 중국과 직접 교역하거나 포르투갈에서 차를 직수입 했어ㅓ
17세기 말까지는 아직 차가 대중화 되지 않아 정식으로 수입되지는 않았지만,
이후 영국이 중국과의 무역을 본격적으로! 진행하면서 점 네덜란드보다 큰 규모로 무역을 하게 되었대
그런데 차가 본격적으로 대중화되면서 중국과의 무역에서 차의 교역량이 크게 늘어나자
일방적으로 중국에서 차를 구입했던 영국은 심각한 무역 적자에 시달려....
그래서 영국은 시중에 유통되는 차에 많은 세금을 매기고, 동인도회사에 식민지였던 미국을 상대로
'차 독점 거래권'을 부여했어!(양아치...)
이 독점 거래권과 함께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과도한 제재에 분노한 미국 보스턴의 시민들은
그때 보스턴 항에 정박해있던 동인도회사의 상선을 습격해 배 안에 있던 차를 모두 바다로
던져버려.. 이게 바로 유명한 '보스턴 차 사건'이야!!
이 사건은 무력충돌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었고, 결국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나는 직접적인 사건이 되었어
한편으로 오직 중국에서만 차를 구입할 수 밖에 없던 영국 정부는 더욱 심해지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중국을 상대로 아편을 밀매하기 시작해.. 청 왕조는 이에 대응해서 관리를 파견해
영국 상인들로부터 아편을 몰수해서 소각을 했는데, 영국은 자국 상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군사를 일으켜 선전포고를 해..이게 바로 '아편전쟁'이야!
청나라는 신식 무기를 사용한 영국한테 지면서 불평등 조약을 맺게되고 강제적으로 항구를 열어줄 수 밖에 없었어..
이렇게 역사의 흐름을 방향을 뒤바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정도로 차는 서구사회에서
중요한 생활 품목으로 자리를 잡았는데 여전히 중국이나 일본에서 차를 수입해 올 수밖에 없었던
유럽의 국가들은 당시 지배하고 있던 식민지에서 차를 직접 재배할 수 있는 방법들을 모색했어!
특히 홍차의 수요가 가장 많고, 차 시장을 선도했던 영국은 인도에서 차를 생산하려고 여러 방법을 시도해!
인도의 차 역사
차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라 영국은 차를 재배할 수 있는 기후의 식민지에서
직접 차를 재배하려고 했어! 그중에 고른곳이 인도였는데 18세기 말부터 중국에서 들여온
종자를 이용해 재배를 시도했지만 얘네가 뭘 알겠어.. 재배에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이 없어서
계속 실패를 했어
그러던 중 1832년 영국인 로버트 브루스가 인도의 아쌈 지역에서 자생종 차나무 하나를 발견해!
중국의 차나무와는 차이가 있었지만 나중에 식물학자들에 의해 차나무의 품종이 맞는것을 확인해
이 자생종 차나무를 활용해 차를 생산하려고 했지만 완성 차의 품질은 충분하지 않았어..
그래서 영국은 차이 재배와 가공 기술을 확보하기 위해 식물학자인 로버트 포춘을 중국에 잠입시켜
산업 스파이로 활동을 시켜!( 말이 확보지 그냥 쌔벼오는거 아님..??)
로버트 포춘은 식물 채집을 위해서 중국에서 지낸적이 있어서 임무를 아주 잘 수행했다고 해!
약 2년 반에 걸쳐서 2000여 그루의 차 묘목과 차 씨앗, 생산/품질이 높은 차를 생산 할 수 있는 기술을
확보한 뒤 인도로 돌아가! (이정도면 그냥 나라 경제 기반되는 기술 다 빼온거 아니냐고..ㅋ)
이때 가져온 중국산 차 묘목으로 여러곳에서 재배를 시도했고, 최종적으로는 다르질링의 기후가
적합한 것으로 결론이 나서 다원을 설립하고 본격적인 재배를 시작해!
인도에서의 차 산업은 아주 순조롭게 발전해서 1860년대에는 생산량이 수백톤에 불과했는데,
1885년에는 3만 5000톤이나 되었고, 1914년에는 20만톤, 1987년도에는 중국의 차의 품질을 앞지르기 시작했어!
1930년대 아쌈에서는 기존의 생산방법(손으로 잎을 하나하나 직접 따고 모든 제조 과정을 직접 하는 방법)에 비해
생산량과 효율이 월등히 뛰어난 'CTC제법'(기계화라고 보면 쉬워! 기계로 잎을 따고 제조도 기계로 편하게! )이 개발되어
예전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던 품질이 낮은 찻잎까지 활용해 차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어!
이 새로운 생산 방식의 개발로 차 산업은 가속도가 붙어 인도는 세계적인 차 생산국이 되었고
인도 경제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부문을 차지하게 되었어
(다르질링은 세계에서 가장 모조품이 많은 차로 유명해! 우리가 마트 가면 진열되어 있는
다즐링 차들,,, 전부 모조품이야.. 다르질링은 현재도 기존의 생산방법으로 생산하고 있어서
아주 소량만 생산되고 있어! 차에도 등급이 있는데 다르질링 최고 등급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맛볼까 말까 할 정도로 구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 나는 최고등급, 그 아래등급까지
먹어봤는데 내 입이 막입인건지 최고등급 보다는 그 아래등급이 더 맛있더라..)
스리랑카의 차 역사
스리랑카는 1972년에 국명이 바뀌었는데 그 전에는 '실론'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어!!
그 우리 편의점에서 파는 '실론티' 있지..? 여기서 따온거 맞아^.^!!
스리랑카에서 생산되는 홍차의 품질은 예전부터 좋기로 세계적으로 유명했고
생산량도 많았어서 홍차에 한해서는 '실론'이라는 이름을 아직도 사용하고 있어!
스리랑카는 17세기부터 시나몬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당시에는 향신료가
고가로 거래되던 시대여서 네덜란드가 시나몬 무역을 독점하기 위해 스리랑카를 식민지로
지배했었어!!
나중에 커피가 국제시장에서 환금성이 높은 작물로 나타면서 스리랑카에서는 커피를
대규모로 재배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 스리랑카의 지배권이 영국으로 넘어가서도
재배는 계속 이어져서 주요 생산 작물인 커피의 생산량은 연간 5만톤에 이르렀다고 해..
하지만 1869년에 발생한 병충해(커피나무병)로 이내 전 지역의 커피농장이 도산하고
당시 식민지 정부는 차나무를 커피 대체 작물로 다시 재배를 시작해!!
이미 인도에서 오랫동안 차나무의 재배와 가공에 관한 노하우가 있었기 때문에
차는 곧바로 스리랑카의 주요 작물로 자리매김해!
하지만 20세기 말 스리랑카 정부는 차 산업을 다시 사유화 했지만
이미 커피에 밀려 기반을 잃어버린 차 산업에 더 큰 손실을 안기게 되었어..
(스리랑카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정치적으로 큰 변화를 겪었는데
이때 차 산업은 점점 쇠락했어.. 정부가 1975년에 국가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영국 사기업들이 운영하 차 농장을 국유화 시켰기 때문..ㅠㅠ
차 농장의 운영에 관해 아무 지식이 없던 정부가 섣불리 국유화해서
스리랑카는 차 생산량이 점차 줄어들었고 품질도 하락해서 세계 시장에서
외면받았다고 해..ㅜㅜ)
최근에는 스리랑카의 차 기업들이 다시 기반을 잡기 시작하면서
차의 생산량과 품질이 다시 훌륭해지고 있다고 해!
다쓰고 나니 세시간이 지났넼ㅋㅋㅋㅋㅋㅋ
뭔가 예전에 공부했던 자료들+정리했던것들 보니까
감회가 새롭네 ㅋㅋ 그래도 여시들에게 좋은 정보들과 지식을
알려주기 위해서 열심히 썼어!!!!!!!!!!!!
재밌게 봐줬으면 좋겠다!!
다음에는 차의 식물학과 생산지에 대한 분류/특징으로 글 써볼게!
(※다른곳으로 퍼가지 마세요 오로지 여시 내에서만 봐주세요
문제시.. 코로나 끝나면 대만으로 청차 조지러 감
첫댓글 유용한내용 고마워
재밌다ㅠㅠㅠㅠㅠㅠ 평소에 차에 관심 많은데 넘 재밌게 읽었어!! 고마워
너무 흥미돋이야 대박...
와 완전 흥미돋이다
와 대단하다.... 요즘 차에 관심 많은데 덕분에 글 잘봤어!
와 너무 재밌게 잘읽었어!! 완전 흥미돋
오 이따 각잡고 앍을래!!!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7.19 23:30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7.19 23:3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7.19 23:54
흥미돋2222 많이 배우고갑니다 여시!♡
와 너무 재밌어... 유교랑 일제때문에 차문화가 약해졌군.. 차례의 차가 tea였다니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ㅋㅋ
와 나 대만에서 일할때 집주인이 티마스터 여서 맨날 녹차 우려줬는데 진짜 맛있었어 타이완티 유명하다고 맨날 그러더니 찐이였구만 (본인은 차알못)
오 완전 흥미돋이다!
와 이글 너무 흥미롭고 배워가는 것같아서 너무 좋은 글이야!! ㅠㅠ 지우지 말아주라 차 관심 많은데 천천히 읽어볼게 글써줘서 고마워 ㅠㅠ
호오 흥미롭다!! 다음편 기대할게
넘나 흥미돋..!!
오 여샤 넘 좋은 글이다 잘봤어 고마워!! 나도 시국 끝나면 대만으로 우롱차 조지러 가고 싶다!!
대만 우롱차 맛있어ㅠ 홍차로 시작해서 우롱차에 정착했다가 백차를 지나 보이차로 슬금슬금 옮겨가는중인데 재밌다!! 더 써줘!!!
와ㅠㅠㅠ글 너무 재밌어 ㅜㅠ고마워!!
나 대학 교양때 들었던 차와문화수업보다 훨씬 유익한 글이다.. !!
와 너무 재밌어 완전 흥미롭다
헐 흥미롭다 잘 읽었어!!
이런거 넘 조하 ㅠㅠㅠ 흥미돋... 지식 나눠줘서 고마워..!
우와아 고마워!! 내가 찾아보다가 맨날 흥미 딸어져서 중간에 그만뒀는데 덕분에 자세히 알아가
흥미돋 고마워!
넘 재밌당 고마워!
글 써줘서 고마워😊
와 정말 흥미돋이야 자세한 글 고마워
여샤 재밌게 읽었어 고마워! 차의 역사에 각국의 이해관계랑 힘의 이동이 다 드러나는게 너무 신기하고 재밌다ㅠㅠ
홍차 녹차 차이도 잘 모르는 나지만 여시가 올려준 글 읽고 차도 많이 마셔보려구!!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1.07.20 10:44
와 진짜 인터레스팅이다 내가 알던 차 이름이 지역명에서 따왔구나...몰랐어 차 때문에 온 세계가 싸우고 쌔비고 얽히고 얽혔네ㅋㅋ글 써줘서 고마워! 차 마실때 더 맛있게 느껴질 것 같아
와 흥미돋...!!! 여행갔을따 차가 일상화 되어있는 나라들 보면거 궁금하긴 했는데 이렇게 친절하게 알려주다니 고마워!!
밀크티 좋아하는데 흥미롭다 고마워
우오ㅏ 출력해서 정독할게 고마워
나 우롱차 너무좋아하는데 대만의 차 고급화전략이엇구나
크 정치적 배경까지 곁들여서 설명해줘서 고마워 좋은 글 잘 읽고갑니다
안그래도 차에대해 관심 많아졌는데 이렇게 역사까지 써줘서 고마워 흑흑 진짜 재밌게읽었어 ㅈ본...ㅂㄷㅂㄷ 우리나라도 전통차 많이 퍼졌으면좋겠다ㅠ
와 연어하다 우연히 봤는데 넘 재밌다.. 우리나라 역사 아쉽군 ㅠㅠ유교,,, 읽다보니까 진짜 유럽 양아치들 ,,식민지 진짜 ㅠ 글 쪄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