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으로 3개월 기한으로의 올인,,, 고추였다... 것도 냉동고추!!!
지금은 많이 알려져 이사람 저사람 많은 업자들이 들어와서 직접 한국으로 가져가던데
당시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고 2000년에 한 사람이 시도를 했던 일이였다,,,
우연한 기회에 선배가 조사를 나가서 법적으로 하자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참 대단하더란 말을 듣고 급거 중국으로 달리게 된 것이다...
계산기를 놓고 많이 두드려 보았다,,,
고추값에 운반비에 세금에 그리고 건조비에 마지막으로 판매가에,,,
많이 남는 장사였다,,, 물론 계산적으로,,,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뭔가 돌파구를 찾던 상황이 맞춰 준거고 또 준비자금도 대략 맞출 수 있게 되었다... 속된 말로 준비 땡이 되어서 못먹어도 고만 하면 되는 상황이였다...
처음 계획은 거창했다,,,
40"짜리 냉동으로 200개만 하자였다... 엄청난 물량이다...
일단 중국에 물난리가 나서 물량이 부족할 것 같으니 되는대로 확보를 하고 보자는 심사였다.
막말로 아도라도 칠 판이였다...
당시 고추장사를 하던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암것도 모르는 쌩촌넘이 와서 온통 가격을 흐려 놓으니 여간 황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의 그 범인이다... 물론 그러고 있을 때는 몰랐지,,, 근데 몇 개월 지나 좀 친하게 된 수집상을 하던 중국친구가 그런 말을 해주더만,,,
중국 농사꾼들 좋은 일 많이 시켜주었다고,,,
교주에 있던 어떤 공장에서 몇 개를 작업하고 한국으로 보냈다...
근데 웃기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난 상검증이 뭔지 c.i.q가 뭔지도 모르고 있었다....
한국에서 통관을 하려하니 상검증이 있어야 한단다...
근데 더 웃기는 얘기는 수출한 회사에서 니들이 말을 안해서 안만들었단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것은 수출할 때 당연히 동봉해야 하는 것이였는데 이런 것도 없이 수출을 했던 것이다... 정말 웃기는 짜장같은 나라였다...
뭐, 짜장 탓을 할게 아니라 암것도 모르고 일을 서두른 내 탓이 더 컸겠지만,,,
그러면서 한국에선 한국대로 웃기게 돌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계획한 건조장을 짓기로 한것이 너무 큰 자금 부담으로 간이로 하기로 하고 하우스를 빌리고 진행을 했는데 이것이 나중에 문제가 된 것이다...
중국이란 나라가 돈과 줄만 있으면 다 된다고 하더니 니들이 수출을 했으니 당연히 상검증 만들어 내라고 닥달을 했더니 일주일 정도가 흐른 어느날 만들어 왔다... 잽싸게 국제특송으로 관세사에 보내주고 뭐 다른 하자가 없어서 바로 통관이 되었는데 건조장에 들어선 약 50톤의 고추가 어마어마한 것이였다...
중국에서 싣는 과정에서 분명 엄청난 양이니까 잘 준비하라고 했건만 한국에선 상상이 안됐던 모양이다... 먼저 들어간 물건도 미쳐 건조가 되기전에, 뒤이은 물건들이 줄줄이 들어가니 그 양을 감당하지 못하고 거의 대부분을 썩히고 말았다...
한국에선 그런 상황이고 또 중국에선 중국대로 양은 잡아두고 싣지를 못하니 또 썩어나간다.. 당시 웃기는 게 냉동고추니까 당연히 급속냉동을 했어야 했는데 그런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걍 냉동창고에만 보관했다가 온도가 좀 떨어지면 가면서 얼겠지 하는 심사로 보낸 것이다... 사실 급속냉동 과정을 몰랐던 것이다...
뭐 안망할래야 안망할 수가 없는 상황 아닌가?
중국에선 중국대로 사고를 치고 다니지 한국은 한국대로 건조장 미확보로 사고 치지,,,
한달 여의 시행착오를 거친 후 공장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급속냉동이 가능한 곳으로 가서 창고료만 지불하고 일을 진행한 것이다...
그런데 여태 일을 하면서 모든 물건을 직원들 대동하고 다니면서 일일이 구매를 했었는데 한국에서나 통할 그런 짓을 중국에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였다...
근 두달 가까이를 헤매고 나니 그제서야 길이 보였다,,,, 또 그쯤 되니까 한국에서 요구하는 고추가 나오기 시작하는 것이였다,,, 여태 많은 헛 짓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왕따거라고 불렀던 중국 친구를 만났다...
나보다 몇 살 위라고 따거라고 부르라고 해서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하고 "따거"라고 열심히 불러줬었다... 이 친구를 만나면서 부터 일이 좀 수월해졌다...
일일이 쫓아다닐 필요없고 물건 실을 때 가서 물건 확인만 하면 되었다...
여러가지 계산할 때도 편했고 좋은 물건들을 잘 확보해왔었다...
그런데 항상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할만하니까 뭐가 없다고 동안 수업료를 막강하게 치르느라 준비된 자금이 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에서, 중국에서 양쪽에서 펑펑 터지니 대머리 아들도 아니고 자금이 마를 수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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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스크랩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건 제 사적인 이야기입니다,,, 부탁~
다음 편이 기대되네요^^
죄송 -.- 스크랩했던 게재물은 조금전 삭제처리 했읍니다. 앞으로도 좋은 경험담 기대하겠읍니다 ^^
푸른바람님의 용기에 경의를......
푸바 엄첨 용감했네... 그래 한국은 좀 어때요? '떠날 때는 말없이' 라더니 암말 않고 그냥 가버리셨네. 언제 들어오시면 연락주세요. 그리고 교주사람 다 나쁜 거 아닌디~~~
고생 많이 하셨네요. 저희도 고추 했는데 .. 정말 힘들드라구요.. 돈 날렸습니다. .. 중국 이제 돈만 있고, 사람은 없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