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일(2004/02/26)
오늘 충주대회에서 보내온 티셔츠를 받았다.
아내와 두 아이(다솜,민기)는 이제 아빠가 달리기에 참가한다는것을 실감하나보다.
옷을 입어보라고 난리다. 민기는 자기도 한 번 입어보자며 반 코트같은 티를 껴입는다.
옷을 받고 보니 벌써부터 출발선에 있는 듯 가벼운 흥분과 두려움이 느껴진다.
저녁식탁에 집사람이 이젠 고기 먹고 힘 좀 내야한다고 등심을 굽고 난리다.
애 들은 아빠 덕분에 오랫만에 고기 포식한다고 즐거워한다.
(운동 이후 줄곧 생선과 풀로만 밥상을 채웠거든요)
D-1일(2004/02/28)
내일이 대회 날이다.
미리 예약해둔 콘도(돈산 하일라콘도)로 향한다.
콘도로 가는 동안 아이들은 아빠의 마라톤에는 안중에도 없고 마냥 신이나서 떠든다.
콘도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그동안 연습하느라 뭉쳐진 근육도 풀겸해서 아내와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오후를 보냈다.
저녁에는 아내와 오붓하게 술 생각이 간절한데 내일을 위해서 참고 잠을 일찍 청했다.
D-Day(2004/02/29)
아침 7시30분. 단잠을 깨고 창밖을 내다보니 보슬비가 내린다.
반가운 단비인가?
아내는 떡(찹쌀떡,인절미-포만감이 오래간단다)으로 아침을 준비하고 나는 준비물을 챙긴다.
아내와 아이들은 쌀쌀한 날씨 때문에 12:00경에 충주운동장에서 만나기로하고
콘도를 혼자걸어나와 차에 오르는데 가는 빗방울이 하나 둘 나의 얼굴에 느껴진다.
09:30분경 충주공설운동장에 도착해보니 운동장에 모인 사람들이 족히 3000여명은 되나 보다.
삼삼오오 모여 몸풀기도 하고 대화도 나누고 하는데 나는 달랑 혼자다.
혼자서 몸을 풀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그래 처음 출전이니 내가 목표한 기록보다 완주만이라도 하자.
나의 목표시간은 2시간 20분으로 정했다.
풀코스 완주시 4시간 55분대 기록을 역으로 환산한 시간이다.
10:00 풀코스 주자들이 출발했다.
풀코스를 완주한 직장 동료들의 충고는 처음 분위기에 휩쓸려 오버페이스하면
나중에 힘들어 완주 못하는 경우가 생기므로 자기 페이스 유지가 관건이란다.
처음 출전이라 분위기에 휩쓸려 오버 페이스 하지 않으려고 맨뒤에 섰다.
10:10 드디어 출발이다.
1000여명의 주자가 서서히 빠져나가고 나는 맨 뒤를 빠져 나왔다.
출발점이 얼마지나지 않아서인지 옆사람과 대화도하면서 즐겁게들 달린다.
한참을 달리자 5km 반환점(2.5km)이 나온다.
아직까지는 힘든줄 모르고 쌀쌀한 날씨때문에 땀도 나지 않는다.
아무런 생각없이 앞만보고 달리는데 서서히 땀방울이 맺히기 시작한다.
10km반환점(5km)을 통과하면서 시계를 쳐다보니 22분 정도가 흘렀다.
아니, 너무 오버 페이스 한것이 아닌가.
나의 왼쪽 속목에 있는 Time table에는 32분이 5km 통과 기록인데.....
어떻하나. 이제라도 페이스를 줄여볼까.
그런데 숨이 차고 힘이 든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그래. 그냥 가보자.
옆에서 달리는 사람들의 가쁜 숨소리가 들린다.
하나둘씩 나의 뒤로 쳐지기 시작한다.
ㅎㅎㅎ 오늘 사고한번 쳐봐. 서서히 마음 깊숙히에서 자만심이 올라온다.
강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달리니 드디어, 반환점이다.
시계는 56분을 지나고(Time table에는 1:08분) 있다.
조금을 더 달리다 앞을 쳐다보니 하프코스 2시간 페이스메이커가 풍선을 달고 뛰고 있다.
페이스메이커를 지나치고 좀더 내쳐 달리기 시작했다.
그럼, 이 속도로 가면 2시간 이내에 들어갈수 있다는 계산인가?
한참을 달리다보니 끈으로 몸을 묶은 두 팀이 달려가고 있다.
등에는 '시각장애인 안내'라는 문구가 붙어 있고, 주변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달리고 있다.
시각 장애인의 머리에는 콩알만한 땀방울이 송이송이 맺혀 있다.
속도차가 생기는 것인지 안내인과 시각 장애인사이의 끈이 팽팽해진다.
근처에 있는 모든 지친 주자들이 함께 한마음으로 연호하였다.
“하나! 둘!” “하나! 둘!”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위로하면서 달린다.
흠뻑 땀이 젖은 채 늦으나 자기의 길을 묵묵히 힘들게 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나는 그 순간 그 분들에게서 여태까지 느낄 수 없던 또 하나의 마라톤 세계를 보았다.
이제 우리 무리는 거의 10명정도로 커져 있었다.
어느 누구도 더 빨리 가려 하지를 않는다.
이제는 시각장애인도 힘을 얻은 듯 비록 작은 소리지만 “하나, 둘”을 외친다.
남은 거리 약 2km,
연도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치며 우리를 격려해 준다.
순간 콧등이 시큰해 진다. 주먹을 불끈 움켜 진다.
운동장 트랙을 들어서는 순간 우측에 아내와 아이들이 '아빠'를 외치며 박수를 친다.
민기는 아빠옆을 따라서 뛴다.
드디어 골인!
전광판에는 1:50이 찍혀 있다.
(최종기록 : 01:50:52, 반환점기록: 00:56:10, 하프코스 등수: 612등/1028명)
드디어 그렇게 우리는 먼(?)거리 21.0975km를 달려 왔다.
스피트칲을 뽑아 반납하고 완주 기념 메달을 받아 들었다.
민기의 목에 메달을 걸어 주고 운동장을 한바퀴 가볍게 도는데 다리가 가볍게 떨려온다.
나는 충주대회를 통해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
첫째, 돈으로는 살 수 없는 무형의 유산인 건강하게 사는법을 사랑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알려 주었다.
둘째, 아이들이 일생을 살면서 어려순간에 아빠 얼굴이 기억날 수 있기를 바란다.
먼 훗날 좋은 아빠는 안 되더라도 어려운 것을 이길려고 노력하는 아빠로 기억될 수 있으면 더욱 고맙겠고…
이렇게 하여 비록 하프코스지만 처음 마라톤에 출전한 충주대회는 오랜 기간동안 나의 기억속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것 같은 생각이 든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cafe145.daum.net%2F_c21_%2Fpds_down_hdn%3Fgrpid%3DgPK8%26fldid%3D_album%26dataid%3D43%26grpcode%3Ddrumliveclub%26realfile%3D6%3F%E6%81%8D%7C%3F.jpg)
첫댓글 좋은아빠의 표본이셨네요...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저도 학창시절에 8km는 달려봐서.. 그 힘든 상황을 이해할 수 있거든요.. 등수가 중요한게아니구 완주하셨다는 것에 축하드립니다... 아이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큰 의미로 남을지 아시겠죠? ...^^
어려운것을 이기고 노력한 다솜이 민기아빠~~~~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ㅉ~!!!
낙지님 멋쟁이 화이팅
낙지님..존경 합니다....................................................(아,나랑 너무 비교된다,,,,난 지금 속만쓰린데....)
난 못해----- 엄두도 못내---- 그저 부러울따름---지도 존경합니다--- 낙지님~
멋찐아버님이새요
낙지님 부럽습니다...그리고 멋지십니다..낙지님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