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불이 중시하는 것은 왕생이다. 그러나 염불이 지극하면 또한 명심견성할 수 있다. 염불하면 현세에 이익이 완전히 없는 것이 아니다. (염불이 지극하여 정념情念이 없어지고, 마음이 공하여 부처님께서 현전하시면, 현생에서 곧 몸소 삼매를 증득할 수 있다.) 옛날 명교대사라 불리던 계승 선사는 매일 공과功課로 관세음보살 성호를 십만 번 소리내어 염하였는데, 나중에 세상의 경서를 모두 읽지 않고 알 수 있었다.
【주】 염불은 비록 신원행을 중시하고, 왕생의 자량을 쌓아 업을 지닌 채 왕생하여 삼계를 횡으로 벗어나길 기약할지라도 염불공부가 정일하고 깊으면 여전히 사지事持로 말미암아 이지理持를 증득할 수 있다. 이지는 곧 깨달음이니, 여기서 지혜가 생겨난다. 이는 계숭선사의 경우와 같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가리키는 점은 인광대사께서 누누이 말씀하신 「삼매」. 「염불삼매」. 「일심불란」이다. 이는 실제로 미혹을 끊는 것을 가리켜 말하니, 주의해서 구별하여야 한다.
염불삼매는 이일심불란을 가리키니, 이 경지에 이르면 무명을 깨뜨려 법신을 친견하고 큰 지혜가 열릴 수 있다. 사일심불란은 견사혹을 끊은 단혹사일심을 가리킨다. 세존께서 《관무량수경》에서 염불삼매를 구분하는 표준에 비추어 보고 《관경소묘종초》, 《미타요해》 등의 서적을 참고하면 염불삼매와 일심불란은 실제상 총괄하여 가리킬 뿐만 아니라 그 간격도 대단히 넓음을 알 수 있다.
원교의 관행위 초품 복혹사일심불란으로부터, 상사위 십신 단혹사일심불란, 및 분증위 단혹이일심불란에 이르기까지 모두 일심불란 및 염불삼매라 부를 수 있다. 인광대사의 《문초》 속 상관된 법문은 결코 이와 같이 총괄해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단혹일심(미혹을 끊은 일심)을 특별히 가리킨다. 황념조 대덕께서도 저작의 법문 중에서 마찬가지로 만약 일심불란을 말하면 모두 단혹일심을 특별히 가리키지, 총괄해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정종의 학불인은 반드시 주의해서 구별하여 몇몇 지식이 뒤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보충】 염불하여 극처에 이르면 저절로 개오할 수 있다. 계契란 부합하여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각覺은 곧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무상각도無上覺道이다. 현재 자리이타의 보리심으로써 믿음. 발원. 염불로 오래도록 염하여 업이 사라지고 지혜가 밝아지면 곧 부처님께서 증득하신 각도覺道와 서로 맞는다.
그래서 《능엄경. 대세지염불원통장》에서 이르시길, “만약 중생이 심념으로 부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부처님을 심념에 매어둔다면 현전이나 당래에 반드시 결정코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과 멀리 떨어지지 않아 방편을 빌리지 않아도 저절로 자심이 열릴지니, 향기에 물든 사람이 그 몸에 향기가 나는 것과 같으니라.” 이는 곧 각도와 맞는다(契覺)는 뜻이다.
그대는 반드시 「사람의 도리를 극진히 하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삿된 지견을 그치고 진성심을 간직하여 여러 악을 짓지 말고 온갖 선을 받들어 행함」을 수지하며 그 이익은 오직 부처님만이 알 수 있다. 만약 이러한 하열한 근선을 배워 부처님 명호를 진실로 염하지 않고 곧 개오하고자 하면, 깨달음의 도와 맞고자 하지만 오히려 등질 것이다. 왜냐하면 염불하여 극처에 이르면 저절로 개오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오하려면 곧 착실히 염하여야 한다. 이러한 하열한 지견은 염불을 등한시하고, 개오를 득도함으로 간주하여 개오한 후에는 닦을 필요가 없다고 여긴다. 이는 미혹과 부합하지 깨달음의 도와 맞지 않는다. ㅡ《인광대사 문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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