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는 평등하지 않다. 1천 3백만 노동자의 절반이 넘는 수가 '비정규직'이라는 이름아래 각종 차별을 받고
있다. 노동자로 인정받는 비정규직은 그나마 다행이다. 노동자임에도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이 있으니, 특수고용직이라 부른다.
△특수고용노동자들이 21일 총력결의대회를 열고 "노동3권 인정과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요구했다. ⓒ민중의소리
레미콘 운송기사, 학습지 교사, 보험모집인, 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이
대표적인 특수고용직노동자이다. 이들은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의 적용도 받지 못해 삶, 노동의 어려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정부가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제대로 닦아줄지는 지켜볼 일이다. 지난 3일 노사정위원회는 산하에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위'를 출범시켰다. 20명의 노사전문가로 구성된 특위는 국내외 보호대책 비교 분석, 현장실태조사, 간담회 등을 통해 오는
12월 종합적 보호대책을 논의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정부는 특수고용자 해법에 대해 기존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안의 하나로 제시된 '유사근로자의 단결활동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계약해지와 일부 근로조건상의 보호, 사회보험 적용, 쟁의권이 빠진
유사 단결권과 교섭권의 제한적 인정 등의 방안을 상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중의소리
노동계는 이에 대해 "근로기준법
적용을 중심으로 하는 노동자성과 노동3권 인정을 부정하는 것이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스스로 쟁취한 권리마저 박탈하는 내용이어서 매우
실망스럽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당사자인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직접 권리찾기에 나서겠다고 한다. 특수고용대책회의는 21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앞에서 특수고용노동자 총력결의대회를 열었다. 대회에는 전국건설운송노동조합 소속 레미콘 기사, 구몬 학습지 교사, 남여주 GC
경기보조원, 방송사 비정규노동자, 민주노동당원 등 3백여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공동요구에 기초한 공동 투쟁을 통해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3권 보장과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해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민중의소리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은 "특수고용직은
자본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동자의 단결을 막기 위해 만든 것"이라며 "우리 스스로 권리를 찾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얼마전 나온
노동부의 '노사관계 개혁방향'은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3권을 보장하지 않고, 비정규직 차별을 철폐하지 않는 등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결과를
나을 것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주진우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실장은 "하반기 민주노총은 비정규직 억제와 차별철폐를 위한 제도개선
투쟁에 역점을 둘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26일에는 비정규직 결의대회를 대규모로 열고, 11월에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차별철폐를
내걸고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을 벌인다는 계획이다.
이날 집회에서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이 직접 나서 자신들의 어려움을 밝히고 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부당해고, 노조탄압 등으로 어려움 겪는 특수고용노동자들
해고 부당 인정하지만, 근로자가
아니므로 복직 안 돼?!
전국학습지산업노동조합 구몬지부 경기남부지회장 홍현아씨(32세)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본사
앞에서 거리농성을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난 5일로 50일을 넘어섰다.
전국학습지노동조합이 밝힌 바에 따르면,
(주)교원구몬학습은 출산 후 복직한 학습지 교사가 배정받은 지역이 출산 후 얼마 안 된 몸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지역이어서 조정을 요구하자 이
교사를 해고했다. 또 미혼인 노동조합 간부에 대해 '성관계 문란, 유산 여러번' 운운하며 노동조합과 교사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는 교사들에게 관리자가 강제계약해지를 협박하는 일도 벌어졌다.
홍씨는 "사측이 해고의 사유가
부당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학습지교사는 근로자가 아니므로 복직시켜줄 수 없다"라고 버티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특수고용직으로서 어려움에 대해
"우선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다. 관리지역 배정을 관리자 마음대로 하고, 부당해고도 있고, 노동조합 활동도 보장받지 못한다. 4대보험 적용도
못받는다. 우리는 수업을 위해 이동하는 일이 많은데, 교통사고 나서 입원해도 전적으로 개인부담이다"
구몬지부는 매주 토요일 12시
서울지방노동청앞에서 이런 현실을 고발하기 위해 집회를 열고 있다.
"반인륜적 노조탄압으로 가정이 깨질 위기"
김수완 남여주GC(골프클럽)노조 위원장은 가정이 깨질 위기에 처해있다. 사측이 노조와해를 위해 김 위원장과 노조 여성간부가
불륜관계라는 말을 흘렸다. 그는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창피해서 학원도 못 가겠다고 한다. 아내는 시장도 못 가겠다며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자고 한다. 10년 이상 부모님을 모시고 산 고향을 떠날 수 없다고 하자, 아내는 이혼하자고 한다"
그는 "반인륜적인 노동조합
탄압"에 항의하기 위해 상복을 입고 회사 앞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그는 대표이사의 공개사과와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남여주 GC노조는 22일부터 27일까지 전국 9개 골프장을 순회하며 집회도 열 계획이다. "전체 골프사업장내 노동자들의 처우개선
및 경기보조원 노동자성 인정 등을 홍보"하기 위함이다.
남여주GC는 지난 3월 노조원들에게 노조탈퇴를 강요하고 단체협상에 결정권이
없는 대리인을 내보내는 등 물의를 일으킨 바 있고, 노동조합은 이에 항의해 70일 이상을 천막농성을 벌인 바 있다.
"사내
도서관에서 책도 못 빌려"
특수고용직은 아니지만, 비정규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방송사비정규노조원들도 이날 집회에
참석했다. 방송사 비정규노조는 "모래성과 같은 조직이다" 음향맨, 차량기사 등 방송사비정규직은 파견노동자이기 때문이다. 파견법은 파견노동자
고용을 최장 2년까지 허용하고 있다. 매년 사람이 바뀌는 상황에서 노조 유지조차도 힘들다.
방송사 비정규노조 KBS지부는 지난
6월 임시총회를 열고, 2기를 출범시켰다. 이대섭(41세) 지부장은 "현대판 노예제도인 불법파견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입사한 지 얼마 안 돼 사내 도서관에 책을 빌리러 갔다가 비정규직의 설움을 피부로 느꼈다고 말했다. "책을 빌리러 갔는데, 신분증을 요구하더라
그래서 제시했더니, 하는 말이 이 신분증으로는 책을 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정규노동자로서의 어려움을 묻자, 그는 "너무 많아
이루다 말할 수 없다"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알량한 사업자등록증때문에 노동자로 인정하지 못하겠다면 사업자등록증을 태워버리겠다" 잠시 후
사업자 등록증은 재로 변했다. ⓒ민중의소리
이날 집회에서는 '개인사업자 등록증 화형식'도
진행됐다. 알량한 개인사업자 등록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인정을 못 받는 레미콘 기사들이 준비한 것. 레미콘 기사들은 사업자
등록증이 타들어가자 "우리는 사장이 아니다. 노동자다"라고 외쳤다. 집회 참석을 위해 대전에서 올라온 경력 5년의 레미콘 기사
도명종씨(52세)는 "일하는 것은 일반노동자와 똑 같다. 회사는 일은 시키고 싶은데로 다 시키고, 사업자라는 이유로 노동자로서 대우를 안
해준다. 의료보험, 산재보험 등도 안 된다"라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집회를 마친 이들은 영등포역까지 행진하며, 시민들에게
특수고용노동자의 어려움을 알렸다. 이들은 영등포역앞에 도착해 간단한 정리집회를 하고 이날 일정을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