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권력 앞에서 대체로 무너진다. 쿠데타는 극명한 사례다. 전두환 등 신군부가 자행한 오월 광주학살이 바로 그것이다. 야만의 후진국 정치행태로 간주된다. 그러나 트럼프는 선진국 미국에서도 쿠데타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물론 방식은 총칼이 아니라 법 규정을 최대한 활용, 선거를 부정하는 세련된(?) 것이었다.
그의 쿠데타는 바로 제압되었고 작년 12월까지 16개월 동안 의회 조사가 진행되었다. 조사에 따르면 트럼프의 범죄행위는 네 가지이다. 1 국가 업무방해, 2 국가기망 기도, 3 허위사실 유포, 4 난동 사주혐의.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이를 근거로 법무부는 트럼프를 기소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소 여부보다 주목해야 할 것은 쿠데타의 주범인 트럼프가 법적으로, 사회적으로 단죄되기는커녕, 내년 대선의 공화당 일등 주자로 꼽히고 있다는 점, 또 민주당 후보로 유력한 바이든보다 오히려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현상이다. 4월의 NBC 조사에서 그는 공화당 성향 유권자로부터 무려 70%의 지지를 받고 있으며, 5월초 ABC/워싱턴포스트의 지지율 조사에서는 36% 대 32%로 바이든을 누르고 있다.
경악스러운 일이다. 국가를 능멸하고 민주주의를 압살하려던 자에 대한 지지가 이토록 높고, 그런 인물이 권좌로 돌아오겠다며 기염을 토하는 중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트럼프 현상, 나아가 그의 쿠데타까지도 극단적인 것일 뿐 돌출적인 일회성 사태라고 말하기 어렵다. 많은 연구자가 지적하듯 미국의 정치풍토는 1970년대 리버럴-개혁시대가 끝나고 80년대 네오콘(신보수)-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하면서 크게 달라진다. 관용과 절제 같은 정치의 금도는 사실상 사라지고 민주주의는 권력획득을 위한 합법적 경쟁규칙 정도로 앙상해진다. 탐욕적 권력의 추구행위라는 벌거벗은 각축전이 정치의 틀로 자리 잡는다. 네오콘(신보수)들은 이를 국제정치 영역으로까지 확대한다.
정치인이 당선을 위해, 정당이 다수당 또는 집권당을 목표로, 국가가 이익을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그를 위해 동원하는 방식이고 그것이 어떤 생각에 기초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종전협상? 선거 승리가 먼저야 — 닉슨의 경우
1960년대 이후 미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사건은 베트남 전쟁이다. 미국은 전투에서는 이기고 있었으나 전쟁에서는 지고 있었다. 그것을 보여준 계기 중 하나가 68년의 ‘테트 대공세(구정공세)’이다. 남베트남 주요 도시 전역에 걸친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대대적 기습공격이었다. 승리의 합창만 들어왔던 미군과 미국인들에게 그것은 긴 패배의 서막이었다.
존슨 대통령은 종전 평화협상을 준비했다. 68년은 대선과 총선이 있는 해였다. 대통령은 3월 말 ‘대선에 출마하지도, 민주당 후보 지명도 받지 않을 것’임을 천명했다. 동시에 협상 진전을 위해 북베트남에 대한 공중폭격(북폭)을 일부 중단했다. 협상은 5월에 시작되었지만, 북폭의 완전한 중단과 남베트남의 참여 여부와 자격을 둘러싼 논란으로 10월까지 아무 진전이 없었다. 공화당 후보 닉슨은 일찍부터 종전 평화협상이 성공하면 낙선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협상이 다시 물꼬를 틀 무렵인 10월 22일, 그는 훗날 자신의 백악관 비서실장이 된 H. 할데만에게 “베트남 협상을 ‘뭉개버릴 monkey wrench’ 길”을 찾으라고 지시했다.(할데만 메모 사진 중 위에서 여섯 번째 줄. any other way to monkey wrench it? 부분.)
68년 10월, 닉슨의 전화지시 사항, 할데만 메모 중 일부. 낙슨 도서관 자료실에서 2007년 전기작가 J. 파렐이 찾아 공개한 메모.
이 말이 ‘북폭 중단 조처를 뭉갠다, 즉 북폭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지 ‘종전협상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지만, 북폭 중단이 협상의 핵심 조건 중 하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둘은 실상 같은 이야기다. 사실 닉슨 선거팀은 남베트남 정부와 별도의 바밀 외교채널을 개설했었다. 이 채널을 통해 닉슨은 남베트남에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승리할 것이니 지금 참여치 말고 훗날 더 좋은 조건으로 협상장에 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11월 5일 선거 직전 열린 협상장에서 남베트남 정부는 아무 설명 없이 무단 퇴장했다.
평화협상은 무산되고 닉슨은 당선되었다. 수렁에 빠진 전쟁은 이후 7년이나 더 계속됐다.
정치는 적과의 전쟁이야 — 깅그리치의 경우
N. 깅그리치라는 공화당 정치인이 있었다. 그는 1979년 조지아 주의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깅그리치는 초선 시절부터 만년 소수당인 공화당을 다수당으로 만드는 것이 자기 정치의 목적이라고 말했다. 그를 위해 나름의 정치전략을 수립했고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그는 기존 정치를 오염된 하수구라고 불렀다. 민주당을 비애국 정당, 공산당, 부패한 엘리트 집단이라고 몰아붙였다. “민주당은 오늘날 미국이 앓고 있는 질병의 원흉이다. 민주당은 상대편 정치인이 아니라 적이다. 나라를 어렵게 만들고 있는 집단이다. 우리는 그들을 상대로 전쟁을 벌여야 한다. 전쟁은 성과를 거둘 때까지 지속돼야 하며 실제 전쟁답게 잔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94년 선거 직후 타임지 표지의 깅그리치. ‘미치광이,’ ‘적개심의 정치학’ 같은 캡션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깅그리치는 동료 정치인이 동성애자니 소아성애자니 하는 추문을 퍼뜨리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1988년에는 그가 퍼뜨린 뇌물수수 혐의로 하원의장, 민주당 원내대표, 예결위원장, 심지어 의장 부인까지 FBI의 수사를 받았다. 하원 윤리위원회는 6개월 동안이나 조사를 벌였다. 의사당 전체가 추문 관련 조사와 수사에 휘말리면서 다른 일정은 사실상 중단되었다. 의장은 결국 퇴진했다. 한 의원은 ‘중세 종교재판 같은 악마의 바람이 의사당을 뒤엎고 있다’고 탄식했다. 깅그리치의 계획대로 워싱턴 정치는 수렁에 빠졌다. 정치는 양 정당 간의 전쟁이 되었고 사람들의 정치혐오는 더 깊어졌다.
공화당 지도부는 과격하고 호전적인 깅그리치를 막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의원들에게 ‘막가파식’ 정치(nasty politics) 행태를 권장했다. ‘깅그리치 따라 하기’ 같은 책자를 만들어 의원들과 후보들을 훈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치러진 94년 클린턴 정부 1기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대승을 거뒀다. 하원·상원·주지사 선거가 모두 공화당의 승리로 귀결된 것이다. 정계 전체가 공화당 우위로 바뀐 것은 1950년대 이래 40여 년 만의 일이다. 가히 ‘혁명’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실제로도 ‘1994 혁명’이라고 부른다. 당은 공로를 깅그리치에게 돌렸다. 그는 다음 해 하원의장으로 올라섰다. 의장이 되어서도 그는 의회를 협치의 장이 아니라 대립의 장으로 이끌었다. 공화당은 스스로를 ‘반대의 정당 Party of No’이라고 공공연히 내세웠다. 온건파 의원들은 ‘우리는 멸종위기종이야’라고 자조하면서 사라져갔다. 의장이 된 그는 클린턴 정부의 예산안 반대를 이끌면서 연방정부를 폐쇄시켰다. 98년에는 성 추문을 이유로 클린턴 탄핵을 주도했다. 극단적 정치행태의 공화당에 대한 여론이 급속도로 악화됐다.
98년 선거에서 공화당은 기대한 것보다 훨씬 낮은 수의 당선자를 냈다. 다수당 지위를 내준 것은 아니지만 사실상 패배였다. 이미 끓고 있던 당 내부의 불만이 폭발했다. 이를 계기로 깅그리치는 재임 4년 만에 의장직에서 사퇴하고 정계를 떠났다. 그러나 그가 씨를 뿌린 적개심의 정치는 이후 공화당의 모델이 되었다. 깅그리치가 ‘파괴의 정치인’이라 불리는 까닭이다.
평화? 중요한 건 미국의 패권이야 — 바이든의 경우
우크라이나(이하 우크라) 전쟁 발발 한 달여 지났을 시점인 작년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미국 CNN 방송은 러시아군의 병력이동과 러시아-우크라 사이의 평화협상과 관련한 여러 뉴스를 내보냈다. “우크라에서 러시아의 일부 병력이 철수하고 있으며 동시에 군사작전을 축소하고 있다. 이에 대해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군의 움직임이 평화협상에 따른 것인지 아니면 시간벌기용인지 상황을 좀 더 파악해봐야 한다‘고 발언했다. 또 바이든은 독일,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지도자들과 의견을 교환하고 있으며, 실상을 파악할 때까지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와 우크라에 대한 군사지원은 여전히 강고하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한편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러시아군의 움직임을 초기 작전의 실패를 보완하는 것으로 우크라 전체가 아니라 일부를 떼어내는 분단전략을 가동한 것이 아닐까 의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과 젤렌스키. 2023년 2월 20일 키이우
CNN은 또 “러시아와 우크라 간의 협상은 이미 상당히 진전되어 푸틴과 젤렌스키 회동까지도 준비되고 있다. 양국 협상팀은 쉽지는 않으나 그동안 상호평등한 입장에서 협상이 진행되었으며, 진전 사항을 대통령에게 보고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러시아는 협상이 진전되면서 군사작전 단계를 낮추는 중”이라는 뉴스도 전했다. 이런 정황에서 4월 초, 영국 총리 B. 존슨이 예정에 없이 우크라를 방문했다. 그는 미국과 나토국가들이 양자 간의 협상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침략자 러시아를 반드시 응징해야 하며, 예상외로 약체인 러시아를 밀어붙이면 군사적 승리를 달성할 수 있다고 젤렌스키를 강하게 압박했다. 러-우협상은 그것으로 끝났다.
바이든이 전쟁을 종결하는 경로를 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다. 왜? 그것은 미국의 계획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러 전문가가 지적하듯 미국의 우크라 개입목표는 러시아의 고립과 약화, 나아가 러시아의 정권교체는 물론 유럽 경제의 미국 종속이기 때문이다. 또 우크라를 교두보로 한 중앙아시아로의 깊숙한 진출도 포함한다. 러-우협상과 전쟁종결은 그와 같은 지정·지경학적 목표의 좌절을 의미한다.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결국 전쟁은 계속되고 국가로서의 우크라는 무너지는 중이다. 미국발 전쟁위기는 이제 중국, 한반도로까지 퍼지고 있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는 식량부터 에너지, 금융, 경기침체 등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미국 정치의 민낯
위 세 가지 사례는 시기도, 주역도, 내용도 다르지만, 70년대 이후 달라진 미국의 정치풍토 속에서 연속적으로 이어진 탐욕의 권력정치 행태라는 점에서 본질은 같다. 지도자나 정당, 국가가 공동체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기보다 권력획득 그 자체를 목표로 하거나, 외교라기보다 제국적 다스림의 행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 자신이 대내외적으로 투사하는 ‘자유민주주의 모범국가’, ‘세계의 경찰’, ‘문명의 지도자’ 같은 이미지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이는 정치인 개인과 정당의 성향, 그리고 권력의 악마적 속성을 권장하는 네오콘(신보수)-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 시대가 합작한 결과물이다.
말할 나위 없이 탐욕적 권력추구가 미국 정치의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결정적 변수로 작용해오면서 미국의 민주주의는 심각하게 망가졌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삼권분립이니, 합리적 중산층과 민주시민이니, 견제와 균형이니, 관용과 절제니 하는 제도적 틀과 정치윤리는 껍데기로만 남아 있다. 트럼프 쿠데타는 이렇게 앙상해진 토대에서 벌어진 한 편의 비극이자 희극이다. 한편 우크라 개입은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오히려 미국 스스로를 추락시키는 중이다.
지금 미국은 ‘규칙질서, 가치동맹’ 같은 구호를 내세우며 기꺼이 신하(?)가 되려는 국가들을 모집한다. 달라지는 세계와 자신의 위상을 애써 부인하는 역사의 바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