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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책소개 스크랩 리뷰 침묵 : 엔도 슈사쿠
민욱아빠 추천 0 조회 77 17.05.22 11:3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세 명의 신부가 포르투갈에서 출발하여 인도와 마카오를 거쳐 카톨릭을 금지한 나라 일본으로 잠입한다.  도중에 한 신부는 인도에서 말라리아에 희생당하고, 두 명의 신부는 마카오에서 마지막 경고에도 불구하고 포교를 위해 일본으로 잠입한다.  나가사키 부근의 한 마을에 표류한 두 명의 신부는 산 속에 은거하면서 마을의 신도들을 돌보다가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도 예상했던 대로 관리들에 잡히고 만다.  각자 따로 잡힌 두 신부 중 한 신부는 카톨릭을 믿었다는 이유로 바다에 수장당하는 신도들을 구하겠다고 바다에 뛰어들다 같이 죽고 만다.  한 신부는 자신때문에 희생당하는 신도들에의 괴로움과 배교의 설득 끝에 형식적인 배교 후 살아남아 번역과 교리물품을 감별하며 일본에서 살아간다.

  17세기 일본은 간결하게 관리와 농민의 계급사회였다.  가혹한 착취와 감시 하에서 농민들의 삶은 비참했다.  그런 배경에서 카톨릭의 포교는 농민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가혹한 착취없이 배가 고프지 않은 세상을 제시한 카톨릭에 흔들리지 않을 농민이 없었고 불안을 느끼지 않을 관리가 없었던 것이다.  현세가 아니라면 죽어 ‘파라이주’에서, 그들은 고통없이 살 수 있다는 교리를 믿을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신부들은 금교된 이후에도 그런 믿음을 가진 신도들을 이끌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떤 종교인가를 떠나, 가혹한 착취로 불평등한 사회에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을 말하는 종교는 필요했다.  금교는, 착취로 이득을 취하는 계급의 폭압이었다.  그러나, 신부는 절망한다.  카톨릭을 믿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해야 하는 농민들의 모습에서 신부 자신의 기도가 조금도 그들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신도들 앞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숨어서 기도하거나, 관리들이 보는 앞에서 기도하는 일 뿐이었다.  신부는 신의 섭리, 신의 숨은 뜻을 끝까지 믿으려 하지만, 종교때문에 자신때문에 눈 앞에서 죽어가는 신도를 구하지 않는 신에 무기력과 절망을 느낀다.  거적에 둘러싸인 채 바다에 던져지는 신도들을 어떻게든 구하겠다고 바다에 뛰어들어 같이 죽은 동료신부가 차라리 옳았던 것인지 고민한다.  마카오에서부터 자신을 끝까지 따라다니며 비굴하게 배교와 고해를 반복하며 자신을 팔아넘긴 일본인 신도를 경멸하면서도 경멸하지 않으려 하는 자신의 마음을 괴로워한다. 

  신은 어째서 자신을 섬기는 이들을 구원하지 않는가.  신과 신도를 이어주는 자신의 기도는 어째서 인간의 무력과 신도의 희생 앞에서 아무런 힘을 발휘할 수 없는가.  인간의 마음을 넘어 신의 섭리를 끝까지 믿어야만 하는 신부의 마음과, 경멸하고 외롭고 힘들고 괴롭고 아픈 인간의 마음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해야 하는 자신은 무엇인가.

  신부는 결국 배교한다.  더럽혀지고 일그러진 동판 위의 그의 얼굴에 자신의 발을 올린다.  그리고 살아남아 번역과  무역물품 중 카톨릭 교리와 연관된 물품감별 일을 하며 일본에 부역한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마음은 배교하지 않았다고 되새긴다.  신을 섬기는 일은 그렇게 고집부리고 고통을 당하지 않아도 가능하다는 생각으로 나름의 마음을 다잡는다. 

  나는 그의 배교를 배교라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의 가혹함 위에 주어진 희망 때문에 죽임을 당해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무력함과 신의 무심함에 절망하고 괴로워하는 모습에 연민을 느낀다.  유럽의 끝에서 지구 반바퀴 이상을 지나 동쪽의 끝까지 신념을 위해 목숨을 건 그들의 여정에 인간의 단단한 의지를 느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신이라는 절대 진리 앞에서 온당했을까?  신이라는 절대 진리는 하나의 종교로 상징되거나 표현될 수 있는 것일까?  가혹한 계급착취의 사회와, 종교로 치환된 진리를 위해 목숨을 걸고 지구 반 바퀴를 도는 신념은 옳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치밀한 갈등과 고뇌에의 몰입 안에서, 전제된 것들의 부적절과 부당함을 생각하면, 의문은 하나로 수렴된다.  신과 절대진리, 신은 존재하며 절대 진리란 어떠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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