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부에서 계속)
1950년 5월 22일 런던의 로열 앨버트 홀에서 키르스텐 플라그슈타트의 노래,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지휘하는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초연된 이래 "네 개의 마지막 노래"는 독일어권 작곡가의 오페라와 가곡을 주요 레퍼토리로 삼는 소프라노라면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정통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혹은 레지에로 소프라노를 제외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콘서트 무대에서건 레코딩 스튜디오에서건 도전하지 않을 수 없는 필수적인 레퍼토리로 자리잡았습니다.
덕분에 이 작품의 음반은 현재까지 메이저 레이블과 마이너 레이블, 스튜디오 녹음과 공연 실황녹음을 통틀어 무려 50종 이상이 시중에 나와있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슈트라우스의 백조의 노래이자 리트의 위대한 전통을 마감하는 작품이며, 삶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 그리고 따뜻한 포용의 정서를 노래하는 작품이라는 점 때문에 그렇게 만만히 노래할 수 있는 작품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많은 음반들 중에서도 참으로 훌륭하다고 평가할 만한 연주는 그다지 많지 않은 편입니다.
지금까지 제 개인적으로 들어본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연주는 라디오에서 들은 키리 테 카나와의 음반과 피아노 반주에 의한 류바 벨리치의 음반을 포함하여 모두 6종인데, 그 중에서도 이 작품의 사상 첫 스튜디오 레코딩인 리자 델라 카사의 1953년 녹음(Decca), 그리고 모노 시대(1953년)와 스테레오 시대(1966년)에 각각 만들어진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의 2가지 녹음(EMI)이 가장 빼어난 연주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이 3가지 녹음은 국내외의 모든 비평가들과 애호가들로부터도 가히 "결정반"으로 꼽히는 명연으로, 해마다 수 종류씩 출반되어 어느새 50종을 넘어버린 "네 개의 마지막 노래" 음반들 가운데서도 여전히 그 높은 명성과 향기를 잃지 않고 있습니다. 한편 세나 유리나츠의 1951년 실황녹음(EMI) 역시 열악한 음질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개성과 매력을 지닌 뛰어난 연주입니다.
최소한 제가 갖고 있는 이 네 가지 음반에 대해서만은 이 연재에서 자세히 설명해드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벌써 8회를 넘은 이 연재가 더 길어져 여러분들을 지루하게 만들어드릴 것이 뻔한지라, 여기서는 이 네 가지 음반에 대해서만 간단한 설명을 덧붙인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디스코그래피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누어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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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디스코그래피 *****
1. 보카치오가 직접 들어보고 자신있게 추천하는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명반 네 가지
추천 (1) : 가장 뛰어난 명연주
( + 오페라 "아라벨라", 낙소스 섬의 아리아드네", "카프리치오" 발췌)
노래 : 리자 델라 카사
지휘, 연주 : 칼 뵘 /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Decca - Legends / 1953년 빈에서의 녹음, mono ]
* 별 다섯 개(☆☆☆☆☆)를 넘어 별 여섯 개(☆☆☆☆☆☆)가 아깝지 않은, "네 개의 마지막 노래"의 가장 대표적이고 표준적인 명연주입니다. 슈트라우스의 성악곡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고의 성악가(델라 카사), 지휘자(뵘), 오케스트라(빈 필하모닉)의 앙상블이 곡 하나하나에 깃든 '마지막 노래'의 정서를 담담하고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델라 카사는 특유의 경묘하고 우아하며 섬세한 목소리로 이 작품의 바탕을 이루는 쓸쓸하고도 평온한 황혼의 분위기, 조용하고 명상적이며 서늘한 '가을의 느낌'을 그 누구보다도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습니다. 뵘의 지휘는 이 작품의 모든 음반들을 통틀어 아마도 가장 짧은 연주라 생각될 정도로 빠른 템포를 취하고 있습니다만, 결코 서두르거나 숨찬 느낌이 없이 곡 하나 하나가 지닌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빈 필하모닉의 연주 또한 유려하고도 장엄한 감동을 불러일으킵니다. 이 작품의 음반을 '딱 하나만' 사시려는 분들께는 단연 이 음반을 추천해드립니다.
<참고> 1954년에 처음 LP로 출반된 이 음반은 1980년대 초 Decca의 유명 성악가 시리즈인 "Grandi Voci"('위대한 목소리들'이란 뜻으로, 현재 CD로도 계속 발매되고 있습니다) LP로 재발매되었다가 CD 시대의 도래와 함께 Decca의 역사적인 명연 시리즈인 중간 가격대의 "Historic" 시리즈로 재발매되었고, 2000년 10월에는 Decca의 새로운 자랑인 중간 가격대의 "Legends" 시리즈로 새로이 재발매되었습니다.
"Legends" 버젼은 2000년 10월 22일 현재 시중에는 아직 수입되지 않았으나 적어도 2000년 11월 초까지는 수입될 계획이라 하는데, 통상 새로운 재발매 음반은 이전의 버젼과 나란히 유통되는지라 이 음반을 구입하실 때는 기존의 "Historic" 버젼보다는 "Legends" 버젼으로 구입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가격은 차이가 없지만 새로운 리마스터링 기술을 적용한 "Legends" 버젼이 보다 향상된 음질을 들려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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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2) : 그에 못지않게 빼어난 명연주
( + 오케스트라 반주에 의한 슈트라우스의 가곡[12곡] )
노래 :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지휘 : 조지 셸 / 베를린 방송 교향악단
[ EMI - 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 / 1966년 녹음, stereo ]
* 슈바르츠코프의 두 번째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녹음으로, 델라 카사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별 다섯 개(☆☆☆☆☆)의 영예가 부족함이 없는 명연입니다. 50세가 된 슈바르츠코프의 한결 깊고 원숙해진 해석, 황혼을 바라보는 이의 심경을 노래할 때의 절묘한 감정이입은 과연 명불허전(이름은 헛되이 전하지 않는다)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절창입니다. 본래의 피아노 반주를 오케스트라 반주로 편곡한 슈트라우스의 가곡 12곡을 함께 수록하여 애호가들의 기쁨을 더해줍니다.
<참고> 이 음반은 이전에는 top price로 발매되었다가 최근 EMI가 Decca의 "Legends" 시리즈에 맞서 기획한 중간 가격대의 "Great Recordings of the Century"(약칭 "GRC") 시리즈로 재발매되었습니다. 델라 카사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전자보다는 후자가 음질면에서 보다 우위를 점하고 있는데다 이 경우는 가격면에서까지 우위에 있으므로, 이 음반을 구입하실 때는 "GRC" 버젼으로 구입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아직도 시내 변두리에서는 기존의 top price 버젼이 유통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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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3) : 바로 위의 연주와 반드시 비교해 들어야 할 명연주
( + 오페라 "아라벨라" 및 "카프리치오" 발췌 )
노래 : 엘리자베트 슈바르츠코프
지휘, 연주 : 오토 아커만 /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 EMI - Reference / 1953년 녹음, mono ]
* 슈바르츠코프의 두 번째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녹음입니다. 아커만의 지휘에 다소 영감이 부족한 탓에 별 네 개(☆☆☆☆)에 그쳤습니다만, 보다 깊이있는 해석으로 평가받는 바로 위의 두 번째 녹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슈바르츠코프의 섬세하고 정돈된 노래가 감동적입니다. 슈바르츠코프의 음반으로 이 작품을 들으시려는 분들께는 바로 위의 두 번째 녹음에 못지않게 이 녹음도 꼭 들어보시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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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4) : 역사적인 가치가 돋보이는 실황녹음
( + 오페라 "코지 판 투테", "이도메네오", "잔 다르크", "예브게니 오네긴", "스페이드의 여왕" 등 발췌 )
노래 : 세나 유리나츠
지휘, 연주 : 프리츠 부쉬 / 스톡홀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EMI - Reference / 1951년 실황녹음, mono ]
* 1951년 5월 2일 스웨덴의 스톡홀름 콘서트 홀에서의 실황녹음으로, 열악한 음질과 다소 오페라틱한 유리나츠의 창법 때문에 별 세 개(☆☆☆)만을 주었지만 역시 독특한 매력을 지닌 녹음입니다. 당년 30세의 유리나츠는 델라 카사와 슈바르츠코프에 비해 비교적 강한 스핀토가 내재된 목소리로 이 곡이 지닌 극적인 면을 강조한 새로운 해석을 들려주며, 부쉬의 지휘는 독일의 마에스트로답게 중후하고 품위있는 연주를 이끌어냅니다. 녹음을 많이 남기지 않은 유리나츠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 녹음이자 부쉬의 흔치 않은 오케스트라 가곡 반주라는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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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음반들
( + "메타모르포젠" / "죽음과 변용")
노래 : 군둘라 야노비츠
지휘, 연주 :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Deutsche Grammophon - Originals / stereo ]
* 제 자신은 솔직히 말해서 카라얀과 야노비츠의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이 음반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습니다. 야노비츠의 목소리 자체는 델라 카사나 슈바르츠코프, 유리나츠에 비하면 깊이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지만 그 음색은 이 곡이 요구하는 정서에 잘 들어맞으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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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케스트라 반주에 의한 슈트라우스의 가곡[6곡] )
노래 : 제시 노먼
지휘, 연주 : 쿠르트 마주어 /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 Philips / stereo ]
* 오페라에서는 아주 유니크한 레퍼토리를 고수하지만 리트에 있어서는 표준적인 레퍼토리를 선호하는 노먼은 현대의 고전이 된 이 곡에서도 이 많은 사랑을 받는 음반을 만들어냈습니다. 마주어의 지휘와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이 곡에는 "너무 지나치게" 중후하지나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만 한 번 들어보고 싶은 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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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그너의 "베젠동크 가곡집" / "트리스탄과 이졸데" 중 전주곡 및 '사랑의 죽음')
노래 : 셰릴 스튜더
지휘, 연주 : 쥬제페 시노폴리 /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
[ Deutsche Grammophon / stereo ]
* 최근에 나온 여러 리트 음반들 중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은 음반으로, 스튜더가 무분별한 레퍼토리 선택으로 목소리를 손상시키기 이전의 녹음이니만치 노먼의 음반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기대를 갖게 만드는 음반입니다. 스튜더가 좀 더 신중하게 제한된 레퍼토리를 노래했더라면 슈트라우스의 성악곡에서 일가를 이룰 수 있었으리라는 아쉬움 섞인 찬사를 이 음반은 받고 있습니다.
(다음 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