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다, 피의 나비
- 영화 <火車> 를 보고
서연후
지금,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사랑하는 사람인가? 지인인가? 그 대상이 누구든 당신은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만약 당신 곁에 있는 사람이 지독히도 사랑하는 연인이라면, 당신은 그 대상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가? 당신이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 예컨대 성, 이름, 고향, 출신학교 등 사랑하는 사람이 밝힌 자신의 모든 신상이 가짜라면, 한 점 의혹 없이 믿고 사랑했던 그 대상이 당신을 철저하게 속이고 어느 날 정체불명의 인물이 되어 사라진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여기, 결혼을 앞둔 선남선녀가 있다. 그들은 청첩장을 가지고 남자의 집인 안동에 인사를 가는 중이다. 청첩장에는 아름다운 신부 강선영과 신랑 장문호의 행복한 웨딩컷이 인쇄되어 있다. 비가 내리고 남자는 여자를 위해 커피를 사러 휴게소에 간다. 그 사이 여자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온다. 남자가 돌아왔을 때 자동차 문은 열려있고 여자는 없다. 휴게소를 샅샅이 뒤졌으나 여자의 행방은 묘연하다. 남자는 주유소 화장실 앞에서 여자의 머리핀을 발견한다. 실종신고를 하는 남자에게 경찰은 결혼을 앞둔 여자의 변덕스런 심리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한다. 여자의 집으로 간 남자는 사랑하는 여자도, 여자가 사용하던 물건도 모두 사라지고 다급하게 떠난 듯한 흔적만을 목도한다. 어찌된 연유일까. 결혼을 앞둔 여자가 갑자기 사라지다니. 그것도 자신이 사용하던 물건은 물론 침대 시트까지 없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경찰의 말대로 결혼을 앞둔 여자의 변덕스럽거나 우울한 심리현상이라면 사용하던 물건은 물론 침대 시트까지 없어진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이 영화의 원작은 미야베 미유키의 장편소설<화차>다. 미야베는 ‘미스터리 여왕’이라 불리는 작가다. 아직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원작에 충실했는지 변영주 감독만의 고유한 시선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영화화 했는지는 모르겠다. 이 영화의 장점은,
첫째, 결말이 뻔하고 마무리가 덜 된 듯한 느낌에도 불구하고 차분하면서도 설득력있게, 과장됨 없이, 사건의 핵심으로 파고들어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치는 한 여자의 내면을 흑백의 농담(濃淡)으로 잘 보여준 점.
둘째, 어설픈 에피소드를 삽입해서 억지로 관객의 호응을 유도하지도, 자극적인 장면이나 빠른 장면 전환으로 말초적 신경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시종일관 관객들의 시선을 붙잡는 흡인력이다.
셋째,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차경선)이라는 여자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냉정하게 보여줌으로써 관객들로 하여금 여주인공을 옹호하고 동조하게 한다.
넷째, 강선영 역을 맡은 김민희의 연기다. 평범한 사람의 행복한 삶을 얻기 위해 살인을 하고, 죽인 여자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차경선, 아니, 강선영이고 (임은혜)이며 또 다른 누군가의 신분을 얻기 위해 살인을 계획하는 여자의 심리를 김민희는 섬세하게 표현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서 자신이 원하는 삶을 위해 세상으로 당당하게 걸어가기 위해 입술을 바르르 떨며 자신을 추스르는 장면은 소름이 돋게 했다. 그것은 세상 끝에 내몰린 자가 살기 위해서 자신에게 거는 강한 최면일 것이다.
다섯째, 나비에 대한 상징이다. 좀 미흡하기는 하지만 피가 흥건한 방바닥에서 피 범벅이 된 나비가 힘겹게 퍼덕이는 모습을 통해 여자가 처한 상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려는 시도는 좋았다. 그러나 다소 작위적으로 느껴졌으며 나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한 두 장면 쯤 넣었다면 여자가 꿈꾸는 삶과 좌절되는 현실이 더욱 더 비극적으로 와 닿음과 동시에 관객의 공감을 유발하고 미학적 가치까지 끌어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또 다른 아쉬움은 여자의 머리핀을 남자가 줍는데 이것이 사건을 풀어나가는 데 어떤 단서를 제공하며, 사건과 어떤 연결고리가 있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 끝내 보여주지 않아 아쉬웠다. 다만 여자가 추구하는 삶의 상징과 그것의 상실을(머리핀은 큐빅이 박힌 나비문양이다) 암시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나름 짐작해 볼 뿐이었다.
다시 영화로 돌아가자.
문호는 동물병원 원장이다. 어느 날부턴가 병원 앞에서 케이지 안에 들어있는 강아지를 무표정한 듯 애잔하게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를 발견한다. 여자에게 끌린 문호는 캠코더에 담는다. 햇빛이 비현실적으로 비추던 일 년 전 어느 낮에, 문호는 병원 앞에 쪼그리고 앉아 애완견을 들여다보는 그 여자를 다시 본다. 남자는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저는 문호라고 합니다, 장문호,’ 그러자 여자가 말한다. ‘저는 선영이에요, 강선영.’ 이렇게 둘의 만남은 시작되고 평범한 연인들처럼 사랑을 한다. 여자는 자신의 고향이 제천이며 일 년 전에 홀어머니마저 사고로 잃고, 친척도 친구도 없이 혼자 산다고 한다. 남자가 여자의 부모님 산소에라도 다녀오자고 하지만 여자는 가고 싶지 않아 한다. 문호는 완고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선영에게 청혼을 한다. 그런 선영이 부모님을 뵈러 가는 중에 사라진 것이다.
선영의 실종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경찰에 마음이 다급해진 문호는 친척 형을 찾아간다. 형은 전직 형사다. 수차례 부당한 돈을 챙긴 혐의로 파직되어 백수로 지내는 전직 형사 김종근. ‘형, 나 이 여자 꼭 찾아야 돼, 다음 달에 나랑 결혼할 여자야.’ 동생의 간절한 부탁을 받은 형은 강선영의 뒤를 쫒는다. 선영이 살던 집을 수색하던 종근은 수납장에서 죽은 번데기를 발견한다. 그것은 선영의 부탁으로 문호가 구해준 나비 성충이다. 언젠가 선영은 말했다. 나비를 키우고 싶다고, 나비는 궁지에 몰리면 눈동자 무늬가 그려진 날개를 펴서 자신을 보호한다고 말했다.
여기서 잠시, 실종된 그날, 선영과 마지막 통화를 한 사람은 누구인지 알아보자. 은행에 근무하는 문호의 친구로, 선영의 은행 신용카드를 발급받게 해 주었다. 이 친구는 선영이 (오년 전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파산신청을 했던 사실을 알고 선영에게 전화를 했던 것. 그렇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자신이 신용불량자이며 파산 신청을 한 것을 아는 자라면 자신의 이름으로 신용카드를 발급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 텐데 어떻게 카드 신청을 할 수 있었을까. 혹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은 아닐까? 선영의 뒤를 캘수록 의문은 증폭된다. 설상가상 선영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친엄마를 죽인 혐의를 받고 있음도 알게 된다.
영화를 보다보면 낯선 장면과 부닥친다. 문호나 종근이 선영의 실체를 쫓아가는 중 즉 과거의 사건을 재현할 때 현재와 과거의 인물이 한 공간에서 만난다. 한 예로, 종근은 선영 엄마가 살던 집으로 간다. 그 집은 가파른 돌계단 위에 있다. 종근은 한 겨울에 선영 엄마가 술에 취해 미끄러운 계단을 내려가는 장면을 상상한다. 그것은 제천 경찰서 소속 형사의 증언과 이웃 주민들의 증언에 바탕을 둔 실제사건의 재현이기도 하다. 계단을 비틀비틀 내려가는 엄마의 뒤에는 선영이 서 있다. 무표정한 얼굴로 선영은 엄마를 밀어버리고, 엄마는 계단을 구르다 담에 부딪쳐 죽는다. 그리고 담담히 계단을 내려오다 종근과 만난다. 이것은 과거 속 사건의 인물과 사건을 쫒은 현재의 인물을 한 공간에 놓음으로써 그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여 공감대를 유도함은 물론 사실성을 부여하고자 하는 감독의 의도로 읽힌다.
자, 그러면 이제 선영은 존속 살인범이기까지 한가? 문호는 변호사를 찾아가 선영이 쓴 신용카드 신청서의 필적과 파산 면책 서류에 쓴 자술서의 필체가 다름을 본다. 그렇다면 지금껏 문호가 강선영라고 믿고 사랑했던 이 여자는 누구이며 실체는 무엇인가? 문호는 묻는다. ‘형, 그럼 이 여자 누구야? 임마, 니가 모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
지금껏 내가 잘 안다고 여겼던, 믿고 사랑했던 여자 강선영과 내가 전혀 모르는 강선영이라는, 하나이되 둘인 여자. 이런 현실과 맞닥뜨렸을 때 어떤 기분일까.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특히 인터넷을 통해 관계망을 확산한다. 그 대상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부여하고 있는가
문호는 미친듯이 차를 걷어차고 자해를 하며 외친다. ‘씨발, 내가 뭘 잘못했길래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고? 도대체 누가 강선영이야?’
지금껏 문호가 강선영으로 알고 있던 여자는 사실은 진주에 사는 차경선이다. 아버지는 사업실패로 사채를 썼다. 원금과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엄마는 사채업자들에게 끌려가 성을 팔다 처참하게 죽었고 아버지는 종적을 감추었다. 경선은 어린 나이에 마음씨 좋은 식당 청년과 결혼을 했다. 그러나 사채업자의 행동파들은 날마다 찾아와 행패를 부리고 시어머니마저 죽는다. 경선은 신에게 간절히 기도한다. ‘제발, 아버지를 죽여주세요.’ 라고. 아버지가 죽어야 빚과 사채업자들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본 남편은 위자료 오백만원을 주고 경선과 이혼한다. 진주를 떠나기 위해 터미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는 여자 앞에 사채업자의 행동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강제로 노예계약에 지문을 찍게 한 후 끌고 간다. 여자는 학대를 받으며 몸을 팔다 도망친다. 그리고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고, 그 아이마저 죽는다. 실제 강선영의 엄마가 죽던 날 경선의 아이도 죽은 것이다. 여자는 병원 복도에 쪼그려 앉아 밤을 지새우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자는 살인범은 아닌 것이다.
퇴원한 경선은 서울로 올라가 직장을 구한다. 영업 회원명단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나이로 혼자 사는 강선영의 정보를 입수한 후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한다. 강선영이 살아 생전 엄마에게 불효한 죄책감을 덜기 위해 호화 묘지를 분양받으러 간 곳에 따라간 경선은 선영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한다. 둘은 친구가 되고 한적한 펜션에 함께 투숙한다. 화면은 여기서 속옷만 입은 경선이 온 몸에 피가 묻은 채로 목욕탕에서 거실로 뛰쳐나오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선은 구역질을 하며 몸을 떨다 사체를 처리하기 위해 엉금엉금 기어 목욕탕으로 향한다. 경선이 떠난 자리에는 피가 엉켜있고, 피투성이가 된 나비 한 마리가 날기 위해 힘겹게 날개를 퍼덕인다. 경선이 나비이고 나비가 경선인 것이다. 이 장면은 많은 것을 함축하고 있다. 나비는 이 꽃 저 꽃 옮겨 다니며 자양분을 섭취해서 산다. 그것은 경선의 삶을 암시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훔쳐 사는 여자이기에 가짜 신분은 언젠가는 탄로 난다. 그러면 여자는 또 다른 신분을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상대를 해칠 수밖에 없다. 냉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모로 인해 짊어진 원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피 범벅을 한 채 날갯짓을 할 수 밖에 없는, 한번 타면 절대로 내려올 수 없는 불수레에 올라타, 죽음의 질주를 하는 여자 경선.
경선은 자신의 뒤를 캐는 종근과 문호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하기 위해 임은혜라는 여자에게 접근하는 척 하면서 또 다른 대상을 목표로 삼는다. 타깃은 문호의 동물병원에 오는, 전원주택에서 혼자 애완견 호두를 키우며 사는 ‘호두 엄마’. 종근은 자신이 근무하던 서에 사건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한다. 때마침 경선의 방에 있던 웨딩 사진 액자 뒷면에서 너른 잔디밭이 있는 주택사진이 발견된다. 문호는 간호사를 통해 호두 엄마가 친구와 여행을 간다는 것을 듣는다. 순간 문호는 여자가 개입되어 있음을 직감하고 역으로 간다. 그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는 경선을 본다.
‘너, 누구야. 도대체 뭐냐고,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왜 그랬지? 나를 사랑하기나 했니?’ 문호는 소리친다. 경선은 고개를 젓는다. ‘나, 사람 아니야. 행복하게 살고 싶어서 그랬어.’ 여자의 말에 문호는 경선을 끌어안는다. ‘가라, 잡히지 말고,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너로 살아라.’ 문호는 경선을 보내준다. 눈물을 머금은 여자는 몸을 꼿꼿하게 세우고 세상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간다. 그러나 그 앞에는 종근이와 사방을 포위한 경찰들이 있다. 도망치던 경선은 건물 난간에서 철로로 몸을 날린다. 머리에서 흘러나온 피가 침목을 흥건하게 적신다.
역을 나가던 문호는 경찰을 보고, 다시 역사로 달려와 경선의 죽음을 목격한다. 뛰어내리려는 문호와 말리는 종근, 해산하는 경찰들의 모습을 엔딩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조금 신파적이고 상투적이라 맥이 빠졌다.
나는 엔딩 장면에 또 하나의 엔딩 장면을 추가했다. 그것은 죽은 경선의 몸에서 부화한 나비가 훨훨 날아오르는 장면이다. 피를 흘리지 않고도 평범한 삶을 누릴 세상으로 날아가는, 죽어서야 그 소망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선영 혹은 또 다른 이름이 아닌 경선이라는 이름의 나비 한 마리가 훨훨 날아가는 장면을.
2012, 4월 2일, 월요일, 마저 쓰다.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감사합니다. 작은 바다님 ^^
화차가 이런 내용이었군요~ 한편의 영화를 본 느낌이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