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기행
유난히 긴 장마와 기록적인 폭우로 연일 뉴스의 초점이 되었던 비가 그치고
서울, 춘천이 32도, 대구가 36도까지 올라가서 전국을 한바탕 끓일 준비를 하고 있는 날 아침이다.
이 나이에 식구들 아침 한 끼 챙겨 주지 않는다고 쫓겨날 일 있겠니? 하고 큰 소리 쳐가며
동갑내기 열 명이 상봉역에 모였다.
대한민국 아줌마는 용감하다. 용감했던 시대가 저물어가고 이제 이순耳順을 앞둔 우리들은
중년을 멋지게 살고 싶은 소녀들이다.
식구들 잠자리를 찌푸리게 해가며 새벽부터 머리를 만지고, 분칠을 하였을 친구들은
아침 햇살처럼 환한 모습으로 약속된 시간에 한사람도 빠짐없이 짠! 하고 얼굴을 내밀었다.
같은 교회 동갑내기 친구들 9명은 철산역에서 만나 7호선을 타고 왔기에 같이 내린 건 당연하지만,
나는 발산역에서 5호선을 타고 와서 군자역에서 7호선으로 갈아탔는데 약속이나 한 것처럼 같은
지하철에서 내린 것이다.
지난 주일날 만났었건만 오랜 만에 보는 친구들처럼 호들갑스러운 만남을 가진 후에
춘천 가는 특급 열차로 갈아탔다.
자리를 잡고 앉아 옥수수, 감자, 음료수 등 간식으로 아침 요기를 하고
수다 떨 채비까지 마치니 열차가 떠난다.
박완서의 '못 가본 길이 아름답다'라는 글처럼 춘천이 처음길인 난 왠지 모를 설레임으로
자꾸만 창밖으로 시선이 보내지는데, 친구들의 얘기 소리는 매일 새벽 우리 집 앞 공원에서
즐겁게 지저귀는 새 소리처럼 재잘거리며 나의 귀를 유혹한다.
지하철 안에는 각양각색의 행락객들이 저마다 즐거운 표정으로 조용히 담소를 나누는데,
우리의 미모 때문인지, 유난히 우리가 모여 앉은 곳으로 집중되는 시선을 느낀다.
그런 와중에 친구 하나는 파리의 지하철에서 춤을 추었다는 얘기를 하면서 일어나서 엉덩이춤까지
추어가며 이야기의 지경이 온 세계로 넓어 간다.
춘천을 향하고 가는 내내 나의 눈은 동, 서로 움직이면서 풍경을 쫓고, 귀는 이야기 소리를 쫓느라
상당히 부산하다. 회색 빛 빌딩숲을 벗어나자 질긴 생명들을 뿌리박고 있는 초록의 들판이 보인다.
사정없이 몰아친 폭우에 두들겨 맞고도 끈질기게 살아서 예쁜 화폭에 수놓고 있는 저 초록빛 식물들,
너무 고맙고 예뻐서 한 달음에 달려가 쓰다듬고 칭찬이라도 해 주고 싶은 심정이다.
멀리 산모롱이에 낮게 깔린 구름이 산허리를 감고 오르고 있는 대성 리를 지난다.
그곳은 우리 아이들 어린 시절 여름휴가 때 왔던 곳이다.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이틀을 지냈던 생각이 주마등처럼 차창 밖으로 스쳐간다.
호반의 도시라는 춘천이 가까워 올수록 많은 물들이 보인다.
가평을 지나서 바다처럼 넓은 강을 만나 물으니 북한강이란다.
많은 비가 온 후라서 물의 양이 방대해 보인다.
몇 개의 샛강도 지나는데 원시림 사이로 흐르는 냇물과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비 개인 하늘과 하나로 합쳐진다.
* 소양강 처녀 상
춘천역에 도착하여 안내 센터에 들러 예약해둔 씨티투어 탑승수속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그곳에서 하루를 안내해 줄 관광안내원 박명숙씨를 만나고 맨 처음 찾은 행선지는 소양강 처녀상이다.
왜 처녀상일까? 총각상은 왜 없을까? 우리 모두의 의문이었다.
가이드의 설명이다.
소양강 처녀상은 현재 춘천에 살고 있는 60대의 실존인물 '노기순'이라는 여인 이란다.
아직 미혼인 상태로 양친을 모시고 살고 있다고 한다.
1968년 당시, 18세였던 기순 씨네 가정 형편은 결코 녹록치 않았던 모양이다.
집은 중도에 있었는데, 아버지는 한국전쟁에서 불구가 된 상이용사로 식구들 입에 풀칠을 하기위해
허우적거리는 몸으로 소양강에서 낚시질을 하여야했고, 어머니는 늘 병중에 계셨단다.
가정을 책임져야할 6남매의 맏딸, 기순 씨는 막중한 책임의식을 느끼며 주섬주섬 보따리를 싸들고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가수가 꿈이었던 그녀는 '한국 작가 동지회' 사무실을 찾아가서 취직을 했다.
그해 여름, 기순 씨 부모들은 자기 딸을 맡긴 '작가동지회'사람들을 춘천으로 초대했다.
배를 타고 그녀의 집이 있는 중도에 들어가서 하루 종일 낚시질을 하며 대접을 받았을 이들이
해질녘에 배를 타고 나오면서 보게 되는 아름다운 황혼과, 18세의 건강한 기순 씨를 주제로
'반야월'선생은 음악의 신 뮤즈의 감동에 의해 즉각적으로 작사를 했다.
작곡은 '이호'선생님, 처음엔 '김태희 선생이 노래를 불렀는데 한때 국민가요가 되었다.
'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이라는 소양강 처녀는 이렇게 탄생된 것이었다.
2004년 제작된 '소양강 처녀 상'은 짧은 한복에 버선을 신고, 손에는 갈대가 들려있는데,
이목구비가 수려하고 섹시함까지 느껴지는 미모의 처녀였다.
다음 행선지인 막국수 체험 장까지 가는 길은 소양1교부터 6교까지 소양강을 옆으로 끼고 달린다.
특히 소양2교는 소양강 처녀상과 어우러져 야경이 아름다운 다리로 사진작가들이 선정한 곳이란다.
1년 365일 중 235일이 안개가 피어오른다는 곳, 아침 7시경에 이곳에 오면 몽실몽실 피어오르는
안개의 장관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봄에 초록이 올라 올 때와 겨울에 상고대(눈꽃)가 피어오를 때의 모습이 신비로워
사진작가들과 화가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지역이라고도 한다.
* 막국수 체험관
춘천시에서 운영하고 있는 막국수 체험관 건물 외관은 솥단지 모양에 국수 빼는 기계가 위에 얹어진
형상이었다. 5인 1조가 되어 직접 메밀가루를 반죽해서 막국수를 만들어먹는 체험 장이다.
왜 이름이 막국수일까? 금방해서 먹는다는 뜻이란다.
막국수의 원료인 메밀의 원산지는 중국의 윈난 성, 가장 많이 재배하는 곳은 러시아, 중국, 일본 순이다.
그런데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일본이란다.
메밀은 오방지영물五方之靈物이라고 한다.
선조들은 메밀을 한 몸에 다섯 가지의 색상을 지녔다고 해서 오행 식물이라고 했단다.
오행 식물은 푸른 잎, 붉은 줄기, 흰 꽃, 검은 열매, 노란뿌리로 오색五色을 갖춘 식물임을 나타낸다.
메밀에 들어있는 성분 중, 푸른 잎의 엽록소는 저항력을 증가시키고, 줄기의 붉은색은 안토시아닌이라는
물질로 향암효과가 탁월하다. 뿌리의 노란색은 루틴성분인데 활성산소를 제거하는 황산화작용을 한단다.
그 외에 장암예방, 체중조절, 신장 기능 개선, 노화방지, 혈당조절, 고혈압조절과 콜레스테롤수치도
낮춘단다. 단, 찬 성분이라서 몸이 찬 사람에게는 좋지 않다.
찬 성분을 중화하려면 메밀 삶은 물인 육수를 꼭 마셔야 된단다.
또한 메밀엔 독성이 있는데 이걸 중화하려면 무와 계란을 곁들여 먹으란다.
계란은 위벽을 보호하고 소화를 촉진하는 역할도 하여,
꼭 내가 먹어야 하고 국수를 먹기 전에 먼저 먹어야한단다.
한 조에 메밀가루 300g이 지급되었다. 영숙과 필구가 소매를 걷어붙였다.
메밀가루 300g, 뜨거운 물150cc,로 익반죽해야하는데 물이 날아가기 전에 빨리 치대야 한다.
우리 팀은 선수들이다. 나머지 8명은 괜스레 앞치마만 입고 폼만 잡았다.
준비되어있는 다대기로 비벼먹었는데 맛있다고는 할 수 없다. 밖으로 나오니 햇빛이 찬란하다.
얼마 만에 보는 태양인가. 여전히 날씨가 흐릴 것이라 생각하며 모자도 준비해가지 않았는데,
머리가 벗겨질 정도로 내리 쪼는 햇빛이지만 밉지가 않다.
주변에 있는 메밀밭엔 잎사귀마다 햇살이 내려 앉아 하얀 꽃망울을 터트리느라 분주하다.
이제 점심을 먹으러 닭갈비거리로 간다. 자동차가 멈춘 곳은 도로 양쪽으로
닭갈비집이 좍^^들어서 있는 곳이다.
똑똑한 양떼 10명은 운전수가 내려준 집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도로 양 쪽을 한 눈에 훑으며 가장 건물이 예쁜 곳으로 손짓하며 길을 건너 몰려갔다.
닭갈비8인분, 메밀총떡 두 접시, 메밀 동동주 한 병
(술에 대해선, 5명은 입도 대지 않았다. 누가 먹었는지는 절대 비밀, 그런데 달고 맛있었다. 후후).
닭갈비의 유래는,
1960년대 춘천에 김영석이라는 분이 돼지갈비장사를 하고 있었다.
4,19가 나던 해 돼지고기 품귀현상이 일어나서,
닭 두 마리를 잡아 포를 떠서 8 - 12시간 양념에 재었다가 석쇠에 구워먹었더니 맛이 좋았다.
1970년대 철판이 등장하여 볶기 시작했다.
닭갈비 맛있게 먹는 방법은, 야채먼저, 다음 떡 볶기, 고구마, 고기순서로,
야채 남은 것에 밥이나 사리를 넣어서 볶아먹으면 꿀맛,
무지 착한 우리 양들은 가르쳐준 순서대로 맛있게 냠냠^^쩝쩝^^^
* 강원 도립 화목원
금요일 투어코스엔 점심 후 일정이 소양강 댐과 청평사였는데, 비가 많이 온 관계로
'강원 도립 화목 원'과, '김유정 문학 촌'으로 변경되었다.
그렇잖아도 춘천에 가면 김유정 문학 촌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화목원 주차장에서 내리는데 숨 막힐 것 같은 더위가 몰려온다.
다행이 우산 겸 준비해간 양산으로 해를 가리고 가이드를 따라 걸었다.
가이드가 입장권을 사느라 지체하는 사이 더위를 못 견딘 승객들은 멈칫 멈칫 살피더니 살짝 살짝 흩어진다. 친구들과 분수광장을 지나 화목 정 쪽으로 갔다.
화목 정에 올랐으나 덥기는 마찬가지인데다 먼저 온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어 이내 내려왔다.
물레방아를 지나 수생 식물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니,
연못 속에 수련이 녹색 우산 사이로 분홍빛 꽃대를 수줍게 세우고 서 있다.
잘 다듬어진 암석으로 치장한 연못주위에는 샛노란 원추천인국이 무리지어 활짝 웃으며
지나는 객을 반겨준다. 친구 몇과 산림 속 의자에 앉아 쉬고 있다가,
안되겠다 싶어 가이드와 헤어졌던 곳으로 다시 갔다.
땀이 물처럼 줄줄 흘렀지만 지금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오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화목원에 상주하는 가이드는 이미 반비 식물원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반비 식물원에는 난대, 관엽, 다육식물원과 생태관찰원이 있다.
더운 날씨에 온실속의 식물을 본다는 건 상당한 인내가 필요했다.
난대 식물원 입구에 있는 황칠나무는 나무중의 산삼으로 강장작용을 한단다.
열매가 맺어있는 강원도 동백나무가 키 작은 모습으로 (이들은 노란 꽃이 피는 생강나무를 동백이라 부른다)서 있고, 오죽烏竹(검은 대나무)이 군락을 이루었는데, 대가 푸른 것은 1년이 되지 않는 것 이라고 한다,
대나무는 60년 만에 한 번, 그 중 왕 대나무는 120년 만에 꽃이 핀단다.
그밖에 일본 삼나무, 개비자나무, 돈 나무, 생달나무와, 못생겨서, 향이 좋아서, 못 먹어서, 약효가 좋아서
네 번 놀란다는 모과나무도 서있다.
단풍나무와 비슷한 고로쇠나무는, 잎맥으로 확인할 수 있는데 잎맥이 5개면 고로쇠나무, 3개면 신나무,
5 -7개는 단풍나무, 7-12개는 당단풍나무, 잎맥 12개 이상은 섬단풍나무라고 한다.
생태식물원의 작은 연못 안에는 이집트에서 보았던 파피루스나무가 살아서 잠겨 있고,
빨간색 금붕어, 메기, 붉은 점박이잉어가 노닐고 있다.
허브식물원에서 만난 로즈 제라늄, 초코민트, 나스터튬, 베 베인, 크리핑로즈마리는 손으로 만질 때마다
독특하고 상큼한 냄새로 , 머리를 맑게, 코를 행복하게 해준다.
관엽식물원에 있는 튼실한 고무나무는 미국 나사 항공 국에서 10대 유익한 식물 중 2위로 뽑혔다고 한다.
새집증후군을 없애는데 탁월한 식물로 낮에 활동하며, 밤에 활동하는 산세베리아와 함께 두면 좋을 듯싶다. 그 외에 하와이 무궁화, 3대 미송중 하나인 금송도 있다(3대 미송:이카리아, 히말라야시도. 금송).
다육식물원의 선인장은, 기둥모양 부채모양, 나뭇잎모양. 원통모양 등 다양한 모양으로,
세계의 선인장들이 저마다 자신을 보라고 자랑하고 있다.
식물원밖엔 109년 된 플라타너스의 일종인 버짐나무가 서있다.
플라타너스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가로수로 심겨진 건 1920년대다.
지금도 영국엔 대부분의 가로수가 플라타너스다,
잎이 커다란 플라타너스는 잎 뒤에 있는 솜털이 먼지를 흡수시켜주어서 가로수로 선택되었다.
메타쉐콰이아나무는 눌러보니 지우개처럼 폭신폭신하다. 원산지는 중국이고 살아있는 화석이라 한단다.
회화나무를 만났다. 회화나무는 아카시아와 닮은 콩과식물인데 가시는 없다.
느티나무,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3대 대접받은 나무란다.
이 나무를 심으면 출세한다고 양반집에서 안마당에 심었다고 한다.
중국이 원산지인 회화나무는 서양으로 건너가서 법을 다스리는 나무라하여 스칼랏 필(학자)나무라 불린단다. 주황색 꽃을 화려하게 피운 키 큰 원추리가 잘 정돈된 인도 옆에서 날씬한 몸매로 활짝 웃으며 유혹 하고 있고, 개망초, 나리, 산국들이 어우러져 자태를 뽐내고 있다.
기후변화 취약식물 보존원도 있어 미래의 지구를 걱정하는 모습도 보인다.
앞마당에 키가 하늘로 솟아있는 밀레니엄나무라는 느티나무를 세운 산림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화목원 가이드는 자기의 임무를 끝낸다.
시원한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고 다양한 나무를 사용하여 건물이 이루어져있다.
그곳엔 4개의 전시실과, 2개의 체험 공간, 특수 영상관이 있다.
전시관 1층 특별 기획실엔 8월 31일까지 숲속체험관을 열고 있다.
세계의 나비, 풍뎅이, 비단벌레, 대 벌레, 매미, 사슴벌레, 하늘소,
한국의 나비, 참새, 잠자리, 메뚜기들이 박제 상태로 전시되어 있었다.
비상하는 자세의 독수리 다섯 마리가 매서운 눈과, 부리, 4개의 사나운 발가락을 세우고
전시관 곳곳에서 무섭게 노려본다. 더위가 싹 가신다.
물과, 돌과, 나무와 야생화, 그리고 이름 모를 잡다한 풀들이 저마다 묵묵히 자리 매김하며
강원도 산림의 미래를, 나아가서 우리나라의 산림의 미래를 보여주는 화목 원을 나서는데,
태양은 너무 정열적으로 우리를 사랑한다.
* 김유정 문학 촌
촌 ; 작품 속으로 들어간 다란 뜻이란다. 그의 고향으로 들어가면서 그를 만나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일찍 엄마를 잃고 가슴에 내재된 슬픔, 두 번이나 실패한 광적인 구애,
단 5년 동안 미친 듯이 썼던 50여 편의 작품, 29세에 요절한 천재적인 작가,"
그의 고향에서 만난 김유정의 모습이다.
12월 31일을 기억하라.
그의 31편의 단편 소설 중 12편이 그의 고향인 실래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뜻이란다.
김유정(1908년 - 1937년)
춘천시 신동면 증리(실레마을)에서 2남 6녀 중 차남(일곱째)로 태어났다.
유난히 몸이 허약하고 자주 횟배를 앓았다.
유품이 하나도 없는 이곳 ㅁ자형 초가집이 그가 6살 때 서울로 이사 가기 전까지 살았던 집이다.
3천석지기의 부잣집, 청풍김씨 명문 세도가의 후손으로 그의 출생은 화려했다.
그러나 그의 불행은 7세에 엄마가 세상을 떠나면서 시작된다.
2년 후 9세 때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고 당시 풍습대로 모든 재산은 장남의 손에 들어갔고,
장남은 그 많은 재산을 주색잡기로 탕진한다.
다행히 그의 형은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을 학교에 보낸다.
유정은 한때 모성 결핍으로 말을 더듬기도 했다. 1
923년 휘문 고보에 입학하여 2학년 때 눌언교정소에서 고치긴 했으나 그 일로 그는 늘 과묵했다.
바이올린도 잘 켰다. 작가집안의 안회님을 친구로 사귀었다.
휘문을 졸업하고 연희전문 입학하기 전 길을 가다 우연히 목욕탕에서 나오는
국악인 박녹주(조상현의 양어머니)를 만난다.
그녀는 이미 유명 정치인에게 머리를 얹은 유정보다 4살 위의 여인이었다.
유정은 그녀에게서 7세 때 떠난 엄마의 모습을 봤던 것이다.
그로부터 답장 없는 연서를 3개월간 쓰며 광적인 구애작전이 벌어진다.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지만 두 달 동안 출석을 못해 결국 재적 당한다.
23살 청년 유정은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야학과 농촌 계몽 운동을 벌인다.
1년 7개월만인 1933년 서울로 올라간 유정은 고향이야기를 소설로 쓰기 시작한다.
1933년 처음으로 잡지 (제일선)에 '산골나그네'와 (신여성)에 '총각과 맹꽁이'를 발표한다.
1936년 폐결핵과 치질이 악화되는 등 최악의 환경 속에서 작품 활동은 계속된다.
그러던 중 여성잡지에 '어떠한 남편, 어떠한 부인을 맞이할까"란 원고를 청탁받고 싣게 된다.
그때 공동제목으로 유정과 나란히 글을 실은 여인이 있었으니, 그 여인은 유정의 두 번째 사랑, 박 봉자였다. 얼굴은 한 번도 보지 못하고 글만 보고 사랑에 빠진 유정은 혈서 30통을 봉자에게 보낸다.
그러나 그녀는 한통도 받아보지 못했다.
그녀의 오빠였던 시인 박용철이 중간에서 편지를 가로챘던 것이다.
유정이 그토록 사랑했던 박봉자는 유정과도 알고지내는 문학평론가 김환태와 결혼하여 훨훨 날아가 버린다. 유정의 병은 급속도로 악화되어 고향으로 내려와 다섯째 누님 댁에 얹혀살다 1937년,
엄마를 잃은 일곱 살 아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렇게 쓸쓸히 병든 생을 마감했다.
그의 생가엔 유품이 한 개도 없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유품마저 친구였던 안회남이 북으로 가져가 버렸다한다.
춘천, 어디가나 호수이고 강이었다. 바다같이 넓은 호수가 있고, 산허리를 굽이도는 물길이 있었다. 북한강, 소양강, 공지천이 지나는 이곳에는 춘천댐, 의암댐, 소양강댐 등 세 개의 댐이 물길을 막아 드넓은 호수를 만들어냈다. 나의 생각 속에 언젠가 가서 살고 싶은 도시로 자리 잡았다.
또한 그곳에 사랑에 죽고 사랑에 살았던 남자 김유정이 있었다.
일찍 엄마를 잃은 슬픈 아이. 그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얻고자 광적인 구애를 했지만
이미 떠난 엄마에게선 대답도 없었다.
그의 작품 '동백꽃'에 등장하는 향긋하고 알싸한 꽃을 피는 동백나무 2천 그루가 생가 주변에 심겨졌다니,
동백이 피는 3월쯤 바보 같은 그를 만나러 다시 와야겠다.
김유정, 그로 인해 가슴이 먹먹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여름날의 오케스트라, 춘천여행은 막을 내렸다.
첫댓글 좋은 여행 축하드립니다. 재미 있으셨나봅니다.
네^ 마침 딸래미가 휴가라서 저도 휴가를 보낸셈이예요.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