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지금 혹시 자신에게 바꾸고 싶은 것이 있지 않습니까? 바꾸고 싶은 것이 많은데 경제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못 바꾼다면 이런 경우라면 어떨 것 같습니까? 로또 1등에 당첨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바꾸고 싶습니까? 차를 바꿀까요? 집을 바꿀까요? 고급스러운 명품 옷과 비싼 보석류? 혹시 자기 외모를 바꾸겠다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실제로 로또 1등에 당첨된 사람이 제일 먼저 바꾼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부분이 참 재미있습니다. 글쎄 로또 당첨자들이 제일 먼저 바꾼 것은 자기 배우자라고 하네요.
로또에 당첨된 후 배우자와 헤어지고, 몇 달 안에 직계 가족과 의절하고, 친구들과도 연을 끊는 것이 순서라고 합니다. 이렇게 뜻밖의 행운을 얻게 되면 ‘불신의 형벌’을 당하게 된다고 합니다. 가까운 사람부터 의심이 드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지독한 외로움을 접하게 됩니다. 사람을 멀리하고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쾌락에만 집착하게 됩니다. 결국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이하고 맙니다.
불신하게 되면 그 어떤 사람과도 함께할 수 없습니다. 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인데도 돈의 유혹 속에서 사람에 대한 의심이 더 커져서 함께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 주님과 함께할 수는 있을까요?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된 보이는 인간을 멀리하는데, 보이지 않는 주님과 어떻게 함께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성 야고보 사도 축일을 맞이해서 복음은 야고보 사도의 어머니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머니는 예수님께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합니다. 세상의 권력을 탐하는 모습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자들은 세상의 권력처럼 하느님 나라 안에서의 권력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른 열 제자가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지요. 세상의 기준으로만 생각하니, 동고동락했던 동료인 제자를 믿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겸손한 사람만이 다른 이를 받아들이는 믿음을 갖출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셨던 섬기는 삶을 통해서만이 우리는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더 나아가 주님과도 함께할 수 있게 됩니다.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외로움에서 벗어나 이 세상을 맘껏 누리는 유일한 방법은 이 믿음 안에만 있었습니다.
일단 꿈꾸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칼 샌드버그).
성 야고보 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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