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과의 저녁식사(한겨레 하니리포터)

[▦살랑은 무죄]

오늘은 여담으로 최근 몇몇 외국인과 만나 식사한 얘기로 썰을 풀어볼까 한다. 이제 하도 우리 주변에 외국인이 많아, 외국인이라고 하면 너무 구체적이지 못하고 영국인 바이어, 프랑스인 골퍼 이런 식으로 얘기하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최근에 만났던 사람들은 각각 영국인 및 프랑스인 마케팅 책임자, 그리고 러시아 기술자들이다. 마침 이번 테마가 먹는 것에 관한 얘기니 만큼 이들과 식사하면서 나눈 얘기를 소개해도 어울릴 것 같다.



영국인, 프랑스인과의 식사
불과 10여일 전에 올 여름에 유럽 출장 갔을 때 만났던 영국측 책임자와 프랑스측 책임자가 한국을 방문하여 저녁 식사를 대전 유성에서 하게 되었다.
전에 영국, 프랑스 갔을 때 얻어먹은 것도 있고 해서 이번에는 내가 저녁을 초대한 것이다. 원래 한국 음식점을 예약해놨었는데, 이 사람들이 일식을 구경(?)하고 싶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일식으로 옮겼다. (내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치 않은데, 아시다시피 일식 가격이 보통이 아니라서... 쩝~ )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일식이 영국이나 프랑스에도 전파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람들에게도 생소한 음식은 아니다. 그래도 한국에서 맛보는 일식은 생소했나보다. 아무튼 맛있게들 잘 먹는데, 제일 곤혹스러운 것이 생선 이름을 설명해주는 일이다. 사실 우리말로도 모르는 생선이름이 허다한데, 한번도 안 써본 영어 단어를 알 리가 없다. 전자수첩을 뒤져가며 설명을 하면, 이번에는 저쪽에서 그런 생선이름은 생소하단다! 확실히 생선 종류 다양하기로는 우리 나라를 따라 올 나라가 거의 없다.

음식을 좀 먹다가 일행 중 한 사람이 술잔을 돌리는데 이 사람들 당연하다는 듯이 잘 받아 마신다(?). 잠시후 술잔 돌리기가 과연 한국의 전통적 습관인가에 대해 한국사람끼리 논란이 벌어졌다. 사실 연구소에 있는 사람들은 요즘 술을 많이 마시지도 않거니와 술잔 돌리기 같은 것은 거의 안 하는데, 국내 기업은 아직도 술잔 돌리는 관행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역사적인 고증을 보면, 우리 나라는 평민이나 양반이나 전통적으로 술을 마시면서 가무, 시조 읊기 등을 통해 즐기는 문화이지 강제로 술에 취하게 하는 것은 흔한 일은 아니다. 임금이 벌주를 내리거나 새로 관직에 등용되면 고참들이 괴롭히려고 강권하는 경우가 있었다는 기록을 봐도, 폭음이나 강권은 흔한 일은 아니었다고 판단된다.

근데, 이런 논란을 지켜보던 그 두 사람 반응이, 참 다행이라는 표정이다. 사실, 비위생적인 술잔 돌리기 행태는 이 사람들한테는 무척 고역이었다. 다행히 술잔 돌리기는 버려야 할 악습으로 분위기가 정리되어 이날 이 사람들은 자기 원하는 양만큼만 술을 마셔도 되었다. 사실 역사적 근거도 뚜렷하지도 않은 폭음문화나 술잔 돌리기 관행 같은 것은 세계화 대상에서 하루빨리 빼는 게 상책이라는 생각이다.

이날 식사에 대해서는 외국인 둘 모두 아주 흡족해 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각자 자기 나라의 음식에 대해 말하는 시간이 있었다. 대체적으로 프랑스 음식에 대해서는 서로 인정해 주는 분위기다. 근데, 의외로 영국인 책임자가 영국 음식에 대해 자부심을 피력한다, 용감하게도. 뭐 빵도 맛있고, 고기 구운 것도 맛있고, .... 그럼 구체적으로 몇 가지나 맛있는 음식이 있는가 하고 물어보니, 주로 고기 구운 것들 뿐이다. 자기들이 자랑할 만한 음식은 주로 그런 것이라면서 겸연쩍어 한다. 분위기를 보니 한국사람이나 프랑스 사람이나 전혀 동감해주질 않으니까... ㅋㅋㅋ



러시아 기술자들과의 식사
요 며칠 이상하게도 외국인들과 만날 일이 많았다. 며칠 전에는 러시아에서 온 기술자들과 서울 근교에서 식사를 했다.
하루 종일 같이 일할 게 있어서 점심 및 저녁을 같이 먹었는데, 먼저 점심 때 일이다.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데, 간장을 작은 그릇에 따라서는 숟가락으로 떠 먹는다. 짜지도 않은지 그것을 밥도 없이 맨입으로 아주 맛있게 먹는다. 신기하기도 하고 해서 한국의 간장에 대해 아는지를 물어봤다. (이 러시아 기술자는 영어를 잘 못해서 옆에서 통역하는 사람한테 우리말로 물었다.) 그랬더니, 자기가 한국 간장을 좋아하는데, 러시아에서도 사먹는다고 한다. 러시아에 한인들(까레이스끼)이 많아서 간장을 쉽게 구할 수 있는데, 많은 러시아인들이 사먹는다고 한다.

일전에 러시아 모스크바 갔을 때 러시아인들이 한국의 도시락 라면을 아주 맛있게 먹는 것을 본적은 있는데, 의외로 간장이 이렇게 인기일 줄은 몰랐다. 된장과 간장, 고추장 자체가 외국인에게 어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퍼뜩 스쳤다. (이렇게만 된다면야 아예 입맛을 통째로 한국식으로 바꿀 수도 있는데... ㅎㅎㅎ)

저녁때는 쌈 싸먹는 곳엘 데리고 갔는데, 이번에도 아주 맛있게 잘 먹는다. 근데, 술을 한 잔씩 따르고 축배를 제의하는데, 우리가 러시아에 갔을 때 했던 것처럼 이 사람들은 축배 제의하면서 거창하게 한 5분은 뭐라고 떠든다. "... 호의에 감사드리며, 관계가 원만히 지속되기를 희망하고..... 어쩌구 저쩌구.... " 하도 길게 하길래 '여기는 러시아가 아니고 한국이니까 좀 줄이자'고 농담을 좀 했더니, 다음 번 하는 사람은 줄인다고 줄인게 한 2분정도의 연설이다.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그렇지만, 사회주의 국가 사람들이 확실히 말빨이 세다, 뭐 실용적이고 감동적인 말은 거의 없고 좀 거창하고 딱딱한게 흠이긴 하지만...

이 사람이 실력이 좀 있어 보이길래, 한국에 와서 한 1년 일할 수 있겠느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는 그렇게 하고 싶은데, 러시아 정부나 회사의 승인이 필요해서 그게 쉽겠냐고 되물어본다. 최근 러시아에서 한국에 와 있는 수백명의 과학기술자들 상당수는 최고 수준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자들은 소련이 무너졌을 때 상당수 유럽이나 미국으로 빠져나갔다고 본다. 그리고 민주화만 알았지 세상물정에는 어두웠던 옐친에 비해, KGB 출신으로서 러시아의 내부 사정에 밝은 푸틴이 정권을 잡은 후로는 쓸만한 기술과 과학기술자 유출 방지를 위해 대통령이 직접 챙긴다는 소식이다.

아무튼 러시아 사람들과 식사하면서 느낀 점 몇가지는....

첫째, 나라가 쇠하면 거기에 몸담았던 사람은 누구든 할 것 없이 좋은 대우를 받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지금 외국에 이민이나 유학을 가는 사람들이 그 나마 대우를 받는 것은 우리나라가 고도 성장을 유지하고 OECD 10위권의 막강한 경제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 제 2의 IMF를 맞아 국가경제가 파탄이라도 난다면 러시아보다 더 못한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둘째, 나라가 망하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것이다. 15년전쯤 소련이 해체되고 러시아가 이렇게 쇠락할 줄을 누가 예상했겠는가? 미국과 더불어 세계 최강의 군사, 과학기술, 정치, 경제, 문화력을 가졌던 국가가 아니었던가? 최근 중국에 의한 티벳의 멸망, 아프카니스탄의 주권상실, 필리핀과 아르헨티나의 급속한 몰락을 보아도 그렇다. 역으로 독일, 일본이 부상하는데 30년이 채 소요되지 않았던 사실 등을 보면 한 나라의 흥망성쇠 주기도 매우 빨라진다는 생각이다. 세계 최강의 미국마저도 현재의 지위가 과연 20년후에도 끄떡 없을 지는 의문이다. 하물며, 우리 나라의 장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