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기
책 속으로
간단히 말해서 적지 않은 비용과 자원을 사용하는 화약 무기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은 캐터펄트와 트레뷰셋 같은 투석기보다 성벽을 더 빨리 잘 무너뜨리는 것이었다. - 36쪽
그러나 느슨하게 조직된 중세의 보병대가 17세기에 잘 조직된 계급 중심 부대로 완전히 탈바꿈한 결정적 이유는, 아쿼버스와 머스킷 같은 새로운 무기가 널리 보급됐기 때문이었다. 머스킷과 파이크를 모두 갖춘 보병 부대 간에는 긴밀한 협력이 이루어져야 했고, 자연히 훈련이 필요한 조직을 편성해야 했다. 결국 직접적으로든 간접적으로든 서양의 현대적 군인, 군사 훈련의 현대적 개념, 현대적 군대를 탄생시킨 시발점은 화약이었다. - 104쪽
간단히 말해서 새로운 기술은 새로운 제국주의를 가져왔고, 제국주의는 기술 변화를 이끌었다. 서구의 팽창주의는 새로운 무기와 전술을 시험하겠다는 음흉한 목적을 수행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유럽의 제국주의는 백인도 유럽인도 아닌 인간 표적을 상대로 새로운 무기를 시험할 수많은 기회를 제공했다. - 251쪽
1914년 여름, 전쟁이 더욱 위협적으로 유럽에 닥쳐오자 기관총이 지상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으리라는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방독면이나 전차처럼 각지고 볼품없던 맥심 기관총은 후회나 양심의 가책 없이 무자비하게 살상하는 기계로서 산업화 시대의 비인간적이고 불명예스러운 모든 것의 표본이 되었다. - 310쪽
전쟁에 참여한 모든 국가의 대중 매체도 전투기 조종사를 모든 전쟁 영웅 이상으로 떠받들고, 공중전을 외견상 매력적으로 그려내면서 긍정적인 인식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물론 현실은 아주 달랐다. - 413쪽
제트 추진과 제트기, 로켓 기술, 소화기 및 대포와 장갑, 잠수함 등은 독일의 기술이 연합국 것보다 훨씬 앞섰거나 독보적이었다. 심지어 이 전쟁에서 등장한 궁극적 혁신 기술인 원자력에서도 독일 과학자들은 연합국 과학자들보다 앞서 나갈 뻔했다. 1943년부터 1945년까지 계속 공습을 받지 않았다면, 독일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이 죽음의 기술을 더욱 발전시켰을 것이며, 전쟁은 더욱 힘들고 아슬아슬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독일제 무기보다 못한 미국제 그리고 소련제 무기가 승리했다. 미국과 소련은 무기를 대량 생산할 수 있었던 반면, 독일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이다. - 439쪽
https://www.youtube.com/watch?v=dV39SPVgRjw
전쟁이 오늘날의 국가를 만들었다면, 오늘날의 전쟁을 만든 것은 화기였다. - 564쪽
접기
출판사 서평
우리는 여전히 화력의 시대에 살고 있다
원자 폭탄의 탄생 이후 화력의 시대는 저물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하지만 정말 화력의 시대가 저물었다면 전 세계가 대한민국의 K-9 자주포와 K-2 전차를 주문하기 위해 줄을 선 작금의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화약 무기의 탄생 이후 화력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강한 화력을 가지는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국방부가 ‘포방부’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화력에 집착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강한 화력이 평화를 지키는 가장 좋은 보험이라는 사실은 조선 시대부터 몸으로 체득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놀랍도록 화력에 무지하다. 국민의 절반 이상이 소총을 다뤄 본 나라이며 국제 군사력 순위에서 최근 3년간 6위를 차지할 정도로 화력 강국인데도 말이다. 임진왜란과 6·25 전쟁의 발발 연도는 알아도, 그 전쟁에서 무슨 무기를 사용했는지는 어렴풋하게 아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는 전쟁사와 무기사의 접근성이 너무 떨어졌던 탓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쟁사는 마니악한 영역이다 보니 관심이 있더라도 책과 정보를 얻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화력》은 이런 경험이 있는 독자들을 위해 출간됐다. 화약 무기의 탄생, 시대에 따른 화력의 발전, 화력이 세계사에 미친 영향 등 화력의 역사를 상세하게 풀어쓴 이 책은 천문학의 《코스모스》, 윤리학의 《정의란 무엇인가》처럼 전쟁사에 첫발을 디딘 독자에게 충실한 길잡이가 될 것이다.
역사를 추진시킨 힘, 화력
화약을 무기에 접목하여 탄생한 화기는 역사적인 순간마다 함께했다. 아니, 이렇게 말하는 게 정확하겠다. 화기가 역사적인 순간을 만들었다. 1300년대, 유럽 최초의 화약 무기인 대포는 지방 영주들의 거점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탄생했다. 당시 구경이 500밀리미터가 넘는 무시무시한 대포를 제작하고 운용하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했다.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왕국은 몇 되지 않았지만, 이 몇몇 왕국만이 지방 영주를 굴복시켜 중앙 집권적인 통일 왕국을 형성했다. 근대 봉건제가 무너지고 근대 국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는 화력이 쓴 역사책의 겨우 첫 장에 불과하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휩쓸 수 있었던 이유, 서구의 제국주의자들이 거함을 끌고 다니며 패악질을 부릴 수 있었던 이유 모두 화력을 운용하기 위한 조건을 충족하는 시스템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다. 성을 무너뜨리는 대포를 운용할 자본이 있는 왕국이 패권을 쥐었듯, 역사의 승자는 화력 맞춤 체제를 갖춘 국가가 차지했다. 새로운 화기를 개발하는 발명가에게 부와 명예가 돌아가는 사회·경제 체제, 새로운 화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산업 구조, 새로운 화기를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군사 체제, 새로운 화기를 들고 전장에 투입될 병사를 모을 수 있는 정치 체제를 가진 나라만이 열강의 칭호를 얻었다. 즉 화기의 발전과 맞물리는 변화를 소화할 수 있는 나라가 화력의 시대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전쟁사·밀리터리 마니아의 테마파크가 열렸다!
그렇다고 《화력》이 화력의 이름을 빌려 역사를 개괄하기만 하는 책은 아니다. 총(gun)과 포(cannon)의 이름을 단 화기를 망라하고 전차, 전함, 항공기가 쏟아지는 이 책은 국내 전쟁사·밀리터리 마니아들의 가슴을 뛰게 하기에 충분하다. 또한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과 그 이후의 전쟁에 치우친 전쟁사·밀리터리 자료들과도 차별점이 있다. 머스킷과 아쿼버스, 고체탄에서 폭발탄으로의 전환, 복엽기의 시대 등 중요성에 비해 조명받지 못했던 화기들까지 담은 이 《화력》은 마니아들에게도 즐길 거리가 넘쳐난다.
[건들건들 컬렉션]
유튜브 밀리터리 채널 ‘건들건들’이 큐레이팅하는 밀리터리 역작 컬렉션
〈건들건들 컬렉션〉은 밀리터리 전문 유튜브 채널 〈건들건들〉과 레드리버가 함께 만드는 전쟁사 ㆍ 밀리터리 시리즈다. 최근 한국에도 밀리터리 도서들이 많이 소개되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양서가 번역되지 않아 외국어가 가능한 일부 마니아들만 즐기는 책으로 남아 있다.
〈건들건들 컬렉션〉은 레드리버와 밀리터리 전문 유튜브 채널 〈건들건들〉이 선별한 수준 높은 밀리터리 도서를 국내에 소개하고, 때로는 국내 전문가를 섭외하여 한국 독자들을 위한 책을 출간해 밀리터리 도서 시장의 저변을 확장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