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제사
어제 부친 제사를 지냈다.
누님 내외분, 전주 동생 가족, 서울 막내, 그리고 빙혼 부부.
둘째는 몸이 아파 참석을 하지 못했다.
노가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니 진설은 끝나 있었다.
누님 댁과 전주 동생 시댁은 제사를 지낸다고 하니 진설하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다.
빙혼은 진설하는 방법을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다.
빙혼은 제사를 지내지 않을 예정이다.
모친에게도 말씀을 드렸다.
모친 살아생전 열심히 모시고 돌아가시면 제사는 안 지낸다고 하였다.
21세기에 농번기 사회의 제도를 빙혼은 따라가고 싶지 않다고 하였다.
만일 빙혼이 유명한 고관대작이라면 몰라도 무명의 백성으로서 제사는 의미가 없다고 하였다.
게다가 현재의 종파 대신에 빙혼은 중국에서 새로운 종파를 창설하였다고 하였다.
비록 빙혼이 시조이자 종조로서 1세대로 끝나지만 현재의 종파는 따르지 않겠다고 하였다.
귀신은 미신이고 과거 먹을 것이 없던 시절에 제사를 핑계 삼아 후손들이 먹고 싶어서
또한 집안 단결을 위해서 모였던 것이기에 빙혼은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것이다.
어쨌든 제사를 지내고 모처럼 형제들이 모여 저녁을 먹었다.
이번 제사는 전주 동생 순서라고 하였다.
내년에는 막내 차례라고 하는데 그 다음해에는 어찌 될지 모르겠다.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제사는 자기가 매년 모시겠다고 하여 빙혼의 주장이 이상해지고 말았다.
아내는 형제들끼리 모여 식사 한 번 하는 것이 뭐가 귀찮느냐며 자기가 한다고 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아내가 항상 미리 와서 제물도 준비한다고 하는데
다만 모친과 형제들이 도와달라고 하면서 제사 연속성을 주장하는 바람에 빙혼은 침묵하였다.
빙혼은 생일도 제사도 의미를 두지 않는데 아내가 제사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나니
내년에 마음이 바뀌기만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오늘 아침에 성묘를 다녀왔다.
여러 할배, 할매들이 주무시는 산소에서 간단하게 성묘를 하였다.
조부모 밑에 부친이 계시고 그 밑에 빙혼 자리도 있는데
빙혼은 죽으면 다 태워서 불함산(백두산)에 뿌려 달라고 아내에게 유언을 남겼다.
민족지도자도 아니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선각자도 아닌 초개와 같은 사람이
무슨 묘를 쓰고 납골당을 만들어 후손들에게 찌질이 모습을 보여줄까?
어차피 아들도 없으니 육신은 물론 이름과 흔적마저 모두 다 태워버릴 예정이다.
어렸을 때나 형제이지 이제 제각기 가정을 이루고 있고
서로가 늙어가는 사람들끼리 특별한 정도 없는데 무슨 제사를 지낼까 싶다.
빙혼은 형제들끼리 만나면 반갑고 애틋해야 하는데 무덤덤한 마음만 지니고 있어
다른 형제들이 하자는 데로 따라갈 예정이다.
고향도 없는 놈이 무슨 무덤을 지닐까?
빙혼 자리에는 다른 형제가 오더라도 원망할 것도 없는 것이 이미 죽었기 때문일 것이다.
부친 제사는 벚꽃이 만개하는 날이라서 그냥 그것 만으로 만족하련다.
부친 제사겸 벚꽃놀이겸 가족들끼리 야유회를 다니는 마음만 지니고 있을 뿐이다.
시아버지 제사 때문에 매년 황해를 건너오는 며느리에게 모친은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외동아들 외동딸이 만나 살아가는 것이라서 부친 제사라는 핑계를 대고
그냥 형제들과 조우하는 마음으로 만나고 모친을 찾아뵙는 날로 삼아가는 것이다.
다 늙어 죽어서 저 세상에서 만나 무슨 말을 할까?
자식은 품 안에 있을 때 자식이지 자식도 언제 갈지 모를 나이가 되었는데
형식적으로 마지못해 전통과 규율에 얽매여 살아가는 삶은 더 이상 빙혼에게는 없다.
오로지 살아생전 서로가 서로에게 좋은 인생 반려자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화사한 벚꽃 길을 걸으면서 내년에 또 형제들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친도 여든이 넘었는데 자식들도 유전자를 물려받았으니 그 정도는 살아가겠지.
그러나 빙혼은 스스로 걷지 못하는 장수는 의미가 없어 늘 건강이 신경쓰인다.
늙어서 자식에게 피해를 주는 삶은 단연코 거부하고 그런 생명이라면 포기하련다.
젊어서나 늙어서나 도움이 되지 못하는 삶이라면 차리라 세상 소풍을 마칠 생각이다.
아내와 서로 건강하게 늙어가자고 맹세를 하였다.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서로가 격려를 한다.
올해도 부친 제사는 이렇게 끝났다.
첫댓글 항상 좋은글 잘보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