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조선왕조실록 읽다보니 나와서..;
가등청정 : 가토 기요마사
경상 좌병사 고언백(高彦伯)이 치계하기를,
“신이 이달 20일에 사졸(士卒)들과 더불어 무술을 겨루고 있을 때 항왜(降倭) 주질지(酒叱只)·학사이(鶴沙伊) 등이 신의 좌석 앞으로 돌진하여 좌우를 물리치고 은밀히 말하기를 ‘우리들은 이미 본국을 등졌으니, 조선 사람이 된 것이다.
이미 조선 사람이 되어 조선에서 옷도 입고 밥도 먹으니 무슨 일을 해야 하겠는가. 우리들은 마땅히 적의 괴수를 베어서 우리들의 뜻을 보이려고 한다.
우리들이 임랑장(林郞將)의 군관(軍官)으로 있을 때 청정(淸正)의 출입하는 상태를 보니, 청정은 매번 우리 장군과 만날 때는 거느리는 군사가 10여 인에 불과하였고, 매번 단기(單騎)로 와서 술을 마시며 즐기다가 해가 저물면 돌아가는 일이 자주 있었다. 또 그 군졸과 더불어 사냥할 때에도 단기로 뒤를 따라가 혼자 높은 봉우리에 서 있었는데 이런 일도 자주 있었다.
이때에 내응하는 사람과 살해를 도모한다면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쉬울 터인데, 사또의 생각은 어떠한가?’ 하기에, 신이 거짓으로 답하기를 ‘이처럼 중대한 일을 어찌 쉽게 할 수 있겠느냐. 단, 명(明)나라가 이미 강화를 허락해서 중국 사신이 머지 않아 나올 것인데, 우리 조선이 명나라의 속국으로서 어찌 그 사이에 어길 수 있겠느냐. 또 너희들은 투항해 온 지 오래지 않은데, 입 밖에 이런 말을 내는 것은 반드시 나를 시험해 보려는 허위이지, 어찌 심중에 있는 말을 한 것이겠느냐. 또 내응할 자는 누구냐?’ 하였더니, 항왜들은 답하기를 ‘사또의 말씀이 이러하니, 안 하면 그만이거니와, 한다면 우리들과 같이 온 왜인 구질기(仇叱己)의 종형인 고로비(古老非)라는 자가 지금 청정의 가장 가까운 군관으로 있는데, 그 사람 역시 청정과 틈이 있어 매번 그 아우와 더불어 공모하여 투항해 오려고 하였는데, 지금은 뒤떨어져서 현재 청정의 막하에 있다. 우리들이 그 왜인과 통사(通事) 금고은손(金古隱孫)으로 하여금 몰래 서생포(西生浦)에 들어가서 그 내응하는 왜인과 상의하여 혈서(血誓)를 한다면 도모하기가 매우 쉬울 것이다.
이 기회를 잃으면 3월 20일 사이에 응고사마(應古沙馬)가 군사를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서 처음처럼 다시 침범할 것인데 어떻게 지탱할 수 있겠는가. 또 청정은 여러 적 중에서 원망이 집중된 대상이며, 매번 관백에게 군사를 더 거느리고 바다를 건너오도록 청하는 자도 역시 청정이다. 청정을 죽이지 않으면 행장과 강화를 정한다 하더라도 관백은 반드시 이 적의 말을 따를 것이니, 어찌 쉽게 철수해 가겠는가.
사또가 만일 불가한 일이라고 여긴다면 우리가 처치하도록 허락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하였습니다. 신이 또 명나라의 말을 가지고 그들의 심정을 떠보고 또 도모하려는 방법을 물었더니, 답하기를 ‘우리들 10여 인이 다 조총을 가지고 서생(西生)·임랑(林郞) 등처의 험한 지대에 숨어 있고, 그 다음 조선의 정병을 전후 도로의 곁에 매복시켜 놓은 다음, 날이 저물어 청정이 임랑에서 돌아갈 때에 먼저 조총을 동시에 발사하고 사격에 능한 자가 좌우에서 쏘아 댄다면 청정이 아무리 용감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우리들의 손에 죽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그 내응자들은 서생포로 달려가서 그곳의 군중을 경동시키기를 「우리 장수는 이미 피살되고 조선의 대군이 포위를 하였으니, 우리들은 어디로 돌아갈 것인가. 」 하고, 밤을 틈타 진중에 마구 불을 지르면 군중은 반드시 독촉해서 배를 탈 것이니, 그 다음날 조선의 좌우 수군과 더불어 식량이 조달되는 길을 끊으면 여러 진영에서 군사를 철수하는 것을 당장에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청정으로 하여금 이 땅에 편안히 있게 하면 비록 10년이 되어도 군사를 철수해 돌아갈 기약이 없을 것이다. 또 전일 우도 거제(巨濟)의 싸움에서 조선의 수군이 만일 물러서지 않았더라면 여러 진영은 배를 타고 돌아가려 하였는데, 끝내 그렇게 되지 않았으니, 그것이 한이다. 또 3월 3일에 청정이 반드시 임랑에 갈 것이니, 그때가 거사할 만한 기회다.’ 하기에, 신이 답하기를 ‘만일 일이 성취되면 마땅히 전하에게 주달해서 너희에게 높은 벼슬을 제수하여 자자손손이 영화와 복록을 길이 누리게 할 것인데, 모든 말이 어찌 너희들의 진정이겠느냐.’ 하고, 또 거짓으로 ‘조선은 본래 약속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하며 이익될 방향을 타일렀더니, 그 항왜들은 스스로 피를 내어 혈서로 맹세하는 글을 써서 바쳤습니다.”
하였는데, 상이 이를 비변사에 내렸다. 비변사가 회계하기를,
“기회는 잠깐 동안에 변하는 것이니 천리 밖에서 계책을 결정하는 것은 병가(兵家)의 어려운 바입니다.
이 같은 일은 다만 주장(主將)이 기회에 임하여 처치하는 데 달려 있을 뿐인데, 하물며 3월 3일은 단지 며칠 남아 있지 않은데이겠습니까. 지금 비록 지시한다 하더라도 반드시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또 더구나 도모하는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그의 노기만을 격발시키게 된다면, 우도의 적이 이 소식을 듣고 또한 ‘중국은 실제로 강화할 뜻이 없다.’ 하고서, 반드시 이 일을 기화로 기망(欺罔)을 부리고 허점을 틈타 도모하고자 하여 다시 서로 경동(驚動)하면 이 화창한 시절에 화를 부를 걱정이 없지 않으니, 매우 염려됩니다. 그러나 도모할 만한 형세가 있음을 분명히 알고서도 잔뜩 겁을 내어 기회가 되어도 하지 않는다는 것도 또한 변을 대처함에 방법을 따지지 않는 처사가 아닙니다.
그 일을 꼭 하려고 한다면, 항왜를 후대하여 심복으로 삼은 다음 그들로 하여금 적중을 드나들면서 그들 중에서 내응하려고 하는 자를 몰래 결속하여, 광적(狂賊)이 몸을 일으켜 혼자 나가는 틈을 타서 즉각 제거해 버리게 하되, 변이 그들 내부에서 일어난 것 같이 하여 우리 나라를 의심치 않게 한다면, 성사를 하건 성사를 못하건 모두가 흔단을 일으키는 데 큰 관계가 없을 것이고, 복심(腹心)이 안에서 열어젖히고 지당(支黨)이 밖에서 이끌어내는 등 자중지란이 일어나게 한다면 장차 그들 소굴이 안정될 수 없어 독을 부리는 기세가 조금은 감소될 것입니다.
이것이 비록 기이한 꾀이나, 우리 나라 사수(射手)는 그 일을 행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만일 항왜가 단독으로 도모하기 어려워서 강요해 마지않는다면 마땅히 왜적의 옷으로 위장하고 항왜에 섞여서 어둠을 틈타 잠복하여, 적으로 하여금 우리 나라 사람임을 알지 못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방책입니다. 대개 적국 사람을 이용해서 적국을 도모하는 것은 병가의 승산(勝算)입니다. 우리 나라는 꼭 왜노(倭奴)가 사휼(詐譎)함을 의심하여 그들과 몰래 약속을 해서 우리의 쓰임이 되게 하지 못하니, 이것 또한 대단히 졸렬한 처사입니다.
지금 이 투항해 온 왜적은 이미 졸개가 아니고 또 계책을 내어서 스스로 힘쓸 뜻을 보이니, 그들을 원만히 대접하여 의구심을 모두 털어 버리고 기꺼이 목숨을 바치게 만들고, 성사한 뒤에는 작상(爵賞)을 후하게 주겠다고 약속한다면 소문을 듣고 부러워서 연달아 나오는 자가 필시 한두 사람 정도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길흉(吉凶)과 회린(悔吝)은 움직이는 데서 생기는 것이니, 움직이는 일을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멀리서 헤아리기 어려운 것은 자고로 그러한 것이니, 다시 사세를 살펴 참작 선처하여, 어설프게 해서 그릇되는 일이 없도록 할 것을 비밀히 행이(行移)하고, 또 별도로 선전관 한 사람을 파견하여 고언백이 있는 곳에 달려가서 적의 정세를 세밀히 탐지케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기를,
“나의 뜻은 그 일은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라 여긴다. 그리하면 국사가 반드시 패할 것이니, 깊이 생각해서 잘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36책 60권 48장 B면
【영인본】 22책 452면
【분류】 *군사-통신(通信) / *외교-왜(倭)
첫댓글 ㄷㄷㄷ
ㄷㄷㄷ...역시 자은님!
성공했음 좋은데 쩜 명나라인은 히데요시를 독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