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연히 바뀐 시간의 이정표
작년 연말 감기로 김경수내과에 갔다가 네 번째 시집『달리의 추억』을 받았다. 그 동안 정신을 아예 놓고 살았구나! 몇 달이 지나서야 시집을 펼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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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는 항상 변곡점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시간의 이정표가 돌연히 바뀌지 않을까? 이정표가 바뀌면 삶의 방향이 바뀐다. “나는 나의 근원을 잃었네. 아버지를 통해 나는 나의 죽음을 보았네.”(「가족사진 1」)라고 고백한다. 의사로서 수많은 죽음을 목격했으면서도 그때까지 죽음이 관념의 영역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일까? 아버지의 죽음을 통해 비로소 죽음이 실존적인 영역에 편입된 것 같다. “살아 있는 자에게만 슬픔이 있으니 살아 있는 그 자체가 슬픔이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기 삶의 크기만큼의 슬픔을 거느리고 다닌다고 말해준다”(「마른 나뭇가지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다」)며 슬픔 속에 허우적거린다.
“하늘나라는 하늘에만 있었고 강풍과 나무 사이에는 오직 자연 법칙만이 있었고 우리가 아는 낯익은 신神은 어디에도 없었다.”(「하늘나라는 하늘에만 있다」)고 원망도 해본다. 그러는 과정에서 자신도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운명적 필연에 전율하지 않았을까? “영혼이란 단지 시간의 다리를 건너는 빛의 덩어리였습니다. 내가 사라진 세상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가집니까. 나는 사람의 아들의 손을 잡고 오랫동안 울었습니다.”(「생명이 이어지다」)며 체념할 수 밖에. 마침내 “다만 보지 못했으므로 확실히 믿지는 못하지만 희망을 남겨두기 위해 믿는다.”(「시간時間과 윤회輪廻」)며 운명을 껴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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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온다. 나는
여름에서 봄으로 겨울에서 가을로 거슬러 올라가다 죽는
연어鰱魚이다. 사랑하던 사람이 여름에 떠나가고 가을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홀로 남은 내가 겨울을 견디고 가
을을 거슬러 올라가 여름을 맞이한다. 한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이 남겨진다. 사랑하던 사람의 따뜻한 음성과 빛나는
웃음과 그리운 체취를 다시 안아본다. 그것은 눈물 나도록
부드러운 꽃이었다. 따뜻한 바람이었다. 나는 지구라는 별
에 인간으로 태어난 죄로 이별의 칼에 찔려 넘어지면서도
시간을 거슬러 죽을 때까지 기어서 올라간다.
-「봄 여름 가을 겨울」전문(全文)
시간의 산(酸)에 부식되지 않는 것은 없다. 시간은 자비롭지도 잔인하지도 않다. 그저 흐르면서 모든 것을 부식시켜버린다. 이에 반기를 든 것이 예술이 아닐까? 물리적 시간을 거슬러 오르려는 원초적 몸부림은 주관적 시간을 창조해낸다. 이 과정이 예술 행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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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왜 다른 길을 선택하였을까? 각자 다른 사연이 있겠지만, 뭉뚱그려 보면 영혼의 허기 때문이 아닐까? 1976년이었던가, 내가 그를 처음 만난 것이. 의대 신입생답게 자신감에 차 있는 그는 전형적인 귀공자 타입이었다. 시내에서 술을 마시다가 그와 같이 통금 직전 그의 집에 몰려갔다. 방이 몇 개인지 모를 정도로 복잡한 구조의 대형 아파트에서 그의 어머님이 가져다 준 미제 야채주스 V8을 처음 맛보았다. 당시 우리들하고는 생활수준이 완전히 달랐기에 그의 문학열을 한 때의 멋부리기 정도로만 여겼다. 그가 서른 여섯에《현대시》를 통해 등단했다는 소식을 듣고 놀랬다. 그의 영혼의 허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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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푸른 눈을 가진 고양이라는 사실을 새해 첫날 새
벽 바다 위로 떠오르던 에메랄드 빛 외눈을 보고 알았다.
수평선이 바다의 바지라는 것은 다리미로 다려진 것처럼
늘 날이 서 있기 때문에 알았다. 밤바다의 스케이트 날 위
에서 아슬아슬 서 있는 외항 선박의 불빛이 피아노였다.
피아노는 제 스스로 건반을 울려 클레오파트라와 양귀비
의 짙은 속눈썹과 향기로운 유두乳頭가 하나의 제국을 멸망
시킨 이야기를 전한다. (…) 흐느적거리는 밤바다는 젊은 미
녀들의 허벅지이다. 여인들의 허벅지를 성탄절 전야 가로수
들에 걸어둔 작은 전구들의 빛들이 흘러내려 뱀처럼 칭칭
감는다. 바다 위에는 바다가 포개어져 서로 안고 놀고 하
늘은 하늘끼리 입맞춤을 하며 논다. 아, 하는 순간 빅뱅이
일어나 바다와 하늘이 일시에 사라지고 빈 공간만 남는다.
무섭도록 조용한 공허 속에 나는 모래알 한 알이 되어 홀로
너무 오랫동안 남겨진다.
-「달리의 추억 1 – 공포에 질린 도시인의 눈」
기억이 시간감각의 핵이다. 시간의 길이와 속도는 기억 속에서 만들어진다. 살바도르 달리는 시간의 무정부 상태를 선포하고 비선형적인 시간을 구상화시킴으로써 시간의 위수령을 이탈할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던 많은 사람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시인도 달리의 방식을 차용해 본 것일까? 그 결과 ‘무섭도록 조용한 공허 속에 모래알 한 알이 되어 홀로 너무 오랫동안 남겨짐’을 경험하게 된다. 그 공허와 소외감을 어떤 방식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을까?
「달리의 추억」 연작시 등에서는 초현실주의적 기법을,「팝 아트」와 「모더니즘 시선집」 연작시 등에서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기법을 실험하고 있다. 평소 성품상 문체나 표현 기법에서의 과감한 실험을 꺼렸던 점을 감안하면 아주 파격적이다. 갑자기 바뀐 이정표에 나만 어리둥절하고 있는 것일까?
첫댓글 인간으로 태어난 죄로 이별의 칼에 찔림을 당해도, 인간으로 태어난 행운으로는 사랑도 해봤을꺼 아임니꺼...사랑을 안하믄 이별도 엄는긴데....그래서 이별을 인자는 안할람니더
한번만 더 하면 안될까예? 한번으로는 아쉽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