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는 평생 동안 쌓아온 선행을 물거품으로 만듭니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종종 상대를 자신에게 해를 끼치는 적대자로 보는 한편, 자신을 피해자라고 착각합니다. 이처럼 상대를 잘못 인식하여 탓하기 시작하면 화의 근본 원인은 전혀 알지 못한 채 화만 점점 더 커질 뿐입니다. 화를 내면 그 대상은 실제보다 훨씬 더 끔찍하게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실체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욕망과 미움은 자신은 특별하며 다른 사람과 무관한 독립된 존재라고 여기는 착각에서 비롯됩니다. 자기애에 빠져 스스로를 지나치게 믿으면 나와 다른 사람을 구분 지으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모름지기 인간관계에서는 '자신'이 있으면 당연히 '상대방'도 있게 마련입니다.
상대방은 못 보고 오직 자신에게만 집착하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막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화를 내는 데서 문제가 생깁니다. 자신과 상대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올바로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일상생활 속에서 때로 우리는 화와 집착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공평성과 만족, 사랑과 연민을 갖기도 합니다. 하지만 같은 사람에게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느낄 수는 없습니다. 다른 시간대에 미움과 사랑을 느끼거나, 가끔 사랑과 미움을 연속해서 느낄 수는 있어도 동시에 느끼지는 않습니다. 이는 곧 사랑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동시에 생길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미움과 사랑은 서로 반대여서 한쪽 힘이 커지면 다른 쪽은 작아집니다.
만일 당신이 겸손하고 정직하며 차분한 성품의 소유자라면 주위 사람들이 난처한 부탁을 하며 당신을 이용하려 들지도 모릅니다. 그들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다소 손해가 되더라도 마음이 모질지 못한 당신은 쉽게 거절하지 못하겠지요. 만약 당신이 거절하면 그들이 화를 낼 것이고, 그렇다고 그들의 부탁을 들어준다면 훗날 당신이 그로 인해 화를 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든 어느 한쪽이 화를 품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이러한 상황에 종종 맞닥뜨리게 됩니다. 화는 사소한 문제 같지만 살아가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문제입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화를 낼 수밖에 없는 일들이 생깁니다. 그렇다고 해서 화를 화로 다스려서는 안 됩니다. 화는 화를 불러오고 결국 서로에게 불행한 결과와 불편한 관계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화는 자신의 주장을 합리적으로 펼치지 못했을 때 터뜨리는 것이므로 화를 낸다는 것은 자신이 약하다는 뜻입니다. 또한 화는 정신적인 풍요나 물질적인 풍요를 누리는 사람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에게서 행복을 앗아갑니다. 누군가에게 화를 내는 순간 모든 생각과 느낌, 시간과 열정은 거기에 몽땅 사로잡히게 됩니다. 쉽지 않겠지만 스스로 화를 다스리고 사랑과 관용으로 상대를 배려한다면 자기 자신의 화는 물론 다른 사람의 화까지도 누그러뜨릴 것입니다.
화를 내면 마음이 불편하다는 사실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화를 다스린다는 것은 매우 어렵고 인내심을 요하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마음의 평화는 친절과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화를 표출하면 일시적으로 마음을 삭일 순 있겠지만 화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는 없습니다. 역사를 통해서도 인간 내면에 내재된 화의 앙금들이 인류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화는 평생 동안 쌓아온 선행을 물거품으로 만듭니다. 하지만 화를 품은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고 문제의 원인을 찾아 잘 대처한다면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밝은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만일 누군가 우리를 이용하려 한다면 그 역시 나와 같은 사람이며 행복할 권리가 있음을 먼저 분명히 이해해야 합니다.
아울러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의 입장에 서서 처신해야겠지요. 때로는 상대의 나쁜 의도나 부당함에 대해 강하게 반발할 수도 있겠지만 이때도 관용적인 태도를 잃지 말고 그의 행복할 권리를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누군가의 잘못을 관대하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고 나면 무한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이러한 평안은 상대방에게 화를 내지 않고 끝까지 인내와 끈기로 자비를 베푼 사람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스스로 화를 다스리고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만 자기 자신에게까지 그것을 감출 필요는 없습니다. 화를 자신에게까지 감추려 한다면 자비는 빈껍데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티베트 속담에도 "소라가 막혀 있으면 그 속에 입김을 불어 넣어야 그것을 깨끗이 할 수 있다"라고 합니다. 의도적으로 우리를 비하하거나 악의적인 감정을 갖고 대하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기는 쉽지 않습니다. 때로는 더는 참지 못해 과격한 언행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처럼 자비심을 잃지 말고 대처해야 합니다. 부모는 자식이 바보스럽거나 버릇없는 행동을 할 때 심한 말을 하고 벌도 주지만 그 마음에는 항상 자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인관계에도 거듭 인내와 자비를 가지고 차분하게 다가가야 합니다. 이것이 화를 올바로 다스리는 방법입니다.
화는 순간적인 욕망일 뿐입니다. 여과 없이 표출하거나 무조건 억누르려 하지 말고 지혜롭게 다스려 좋은 에너지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그러면 인내와 자비의 열매인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 달라이라마의 행복 찾기 中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