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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래식 연주 스크랩 ─‥* 클래식 차이코프스키 - 현악 6중주 "피렌체의 추억"
사피엔스 추천 1 조회 21 12.02.27 14:59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Sextet For Strings in D minor, Op.70

        "Souvenir De Firenze"

 

 

차이코프스키 - 현악 6중주 "피렌체의 추억"

 

Pyotr Ilich Tchaikovsky 1840∼1893

 

 

 

 


1악장 (Allegro Con Spirito)

 


2악장 (Adagio Cantabile E Con Moto)

 


3악장 (Allegretto Moderato)

 


4악장 (Allegro Vivace)

 

이 곡의 제목이 "플로렌스의 추억"입니다. 이탈리아의 피렌체(Firenze)를 영어로는 플로렌스(Florence)라 부른다고 합니다. 로마의 북서쪽 약 230㎞, 아펜니노산맥 기슭, 아르노강 연변에 있는데, 역사 BC 1세기 무렵 로마 식민군에 의해 건설된 이 도시는 15세기초에는 재벌 독재 권력 메디치가(家)가 장악한 후 예술과 학술을 후원하는 등 르네상스 진흥을 위해 노력한 그들에 의해 피린체가 르네상스의 중심도시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 역사적 배경 까닭에 건축사적으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 많은데, 독특한 고딕양식으로 세워진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성당, B. 지오토의 벽화로 유명한 산타 크로체성당, 르네상스 종교건축의 최고 걸작 가운데 하나인 산 로렌초성당을 비롯하여 F.G. 프라 안젤리코의 벽화가 있는 산 마르코수도원 등의 종교건축물이 있습니다. 1560년 G. 바자리가 설계한 우피치궁전은 현재 르네상스 예술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는 유명한 우피치미술관이 되어 있습니다.

위 사진에서 보이는 다리는 1345년 아르노강에 설치된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다리로 2층으로된 독특한 구조의 석조 건축물입니다. 'Ponte Vecchio'는 '오래된 다리'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중세 때 놓여져 있던 나무 다리를 석조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다리는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의 단테(Alighieri Dante, 1265 ~ 1321)가 그의 영원한 사랑 베아뜨리체(Beatrice)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고 하는 장소이기도 해서 이 때문에 폰테 베키오(Ponte Vecchio) 다리가 더욱 유명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단테가 9살, 베아뜨리체가 8살 때인 1274년 이었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압도했네'라고 노래하며 그녀를 평생 찬미하게 되는데 단테가 9년 후에 우연히 길에서 다시 베아트리체를 만나게 되었을 때 그녀의 따뜻하고 정중한 인사를 받고 지극한 행복을 느꼈다고 전합니다.

오늘날에도 '베아뜨리체'라고 하면 사랑하는 여인의 대명사격이 될 정도로 1321년 단테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생애 대부분과 시 작품을 바치며 사모한 여인이며, 장대한 서사시《신곡(神曲)》에서 '지극히 하늘 높은 곳'까지 안내하는 여인이 바로 베아뜨리체(Beatrice)임은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요. 물론 이상설(理想說), 상징성(象徵設) 등 베아뜨리체의 실재에 관한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합니다만 그녀는 실제로 피렌체 사람 폴코 포르티나리(Folco Portinari)의 딸로 1288년 시모네 디 발디라는 사람의 아내가되었으나 1290년에 24세로 요절하였다고 합니다.

차이코프스키는 1890년 플로렌스에서 수개월을 머무르는 동안 르네상스의 중심이었던 도시와 문화가 지닌 매력에 흠뻑 빠져 들게 되었다고 합니다.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도시 플로렌스(피렌체)에서 받은 예술적 감흥을 바이올린과 비올라, 그리고 첼로의 선율에 고스란히 담아 아름다운 현악 6중주곡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차이코프스키가 36세 때인 1876년 모스크바 음악원 교수 시절, 《백조의 호수 Le lac des cygnes》를 발표하여 러시아 음악계에 큰 화제를 몰고 온 그는 9살 연상의 부유한 미망인 폰 메크 부인의 경제적 원조를 받게 됩니다. 차이코프스키와 폰 메크 부인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해서 자세히 설명할 필요가 없겠습니다만 이름이 나테즈다 폰 메크(Nadesha von Meck)라는 이 미망인은 러시아 최초의 철도를 건설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던 그녀의 남편이 6남6녀 열두 자녀를 남겨둔채 세상을 떠나 자녀들의 교육에 전념하며 조용하게 살아 가던 45세의 부유한 미망인이었습니다.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 부인으로부터 재정 원조를 받기 시작한 이듬해인 1877년, 28세의 안토니나 밀류코바(Antonina Miljukowa)와 결혼합니다. 모스크바 음악원 제자인 밀류코바의 적극적인 공세에다 이상하게도 러시아 사회에서 그를 따라 다니며 괴롭혔던 '동성애자'라는 끊임없는 소문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였으나 결국 원하지 않던 결혼 생활은 2개월만에 파국을 맞게 됩니다.

폰 메크 부인의 재정적 지원으로 교직생활에서 벗어난 차이코프스키는 실패한 결혼으로 생긴 극도의 신경쇠약 때문에 이탈리아, 스위스 등지에서 요양을 하게 되었으며 그녀의 도움으로 어려움 없이 작곡에 전념할 수 있게 되었는데 1878년 이탈리아의 요양지 산 레모(San Remo)에 머무는 동안 작곡한 《교향곡 제 4 번 F단조》를 '우리들의 교향곡'이라 부르며 폰 메크 부인에게 헌정하게 됩니다.

차이코프스키와 9살 연상의 폰 메크 부인과의 연애편지도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서로 만나지 않는다는 조건 아닌 조건으로 차이코프스키를 도와주었던 폰 메크 부인과는 13년간 1200여 통의 편지를 주고 받으며 사랑을 키우게 되지만 끝내 이뤄지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오히려 이 두 사람의 관계가 통속적인 사랑으로 발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지고의 예술로 인정하고 받들어 준 그녀로 인하여 힘들고 어려운 시기임에도 교향곡 4, 5번 같은 걸작이 탄생하게 된 것이리라 생각합니다.

폰 메크 부인이 보내 주는 연금으로 그는 서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했으며, 1891년에는 미국의 초청을 받고 도미해 뉴욕의 카네기 홀에서 지휘를 하는 등 많은 도시에서 공연해 갈채를 받았습니다. 다음 해인 1892년 3월에는 유명한 발레 음악《호두까기 인형(The Nutcracker)》을 발표합니다.

차이코프스키(Tchaikovsky)는 서유럽 낭만파음악의 정신과 기교를 도입하여 러시아 민요의 표현 방법을 개성적으로 조화시키면서 많은 명곡을 남겼습니다. 비장하며 극적인 내용과 넘치는 열정에다 감미롭고 우아한 서정성, 독특하고 교묘한 악기 편성에 어울리는 명쾌한 구성을 가진 음악사에 길이 남을 명곡들입니다.

그의 작품을 대략 살펴보면 11곡의 가극, 3곡의 발레 음악, 5개의 연극용 음악, 38개나 되는 관현악곡, 2개의 현악곡, 17개의 실내악, 5개의 바이올린곡, 12개의 협주곡, 그리고 110개에 달하는 피아노곡과 함께 23개의 합창곡, 6개의 이중창곡, 106개의 독창곡 등 많은 작품이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께서 감상하고 계시는 작품 이야기로 들어 가지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6중주 Op.70 "플로렌스의 추억" 입니다.

'현악 6중주'라는 특별한 형식은 러시아 음악에서는 보기 드문 실내악입니다. 일반적으로도 현악 6중주곡은 그리 많지 않을 걸로 알고 있습니다.

브람스(Johannes Brahms, 1833~1897)나 쇤베르크(Arnold Schnberg, 1874~1951)의 작품 정도입니다. 현악 6중주 작품으로는 브람스(Brahms)의 곡이 걸작으로 가장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그의 현악 6중주 제1번 2악장은 우리들의 귀에 익어 있을 만큼 알려져 있는 곡이지요.

러시아에서는 림스키 코르사코프(Rimski-Korsakov, 1844~1908)의 작품도 있다고 하나 차이코프스키의 이 현악 6중주곡은 유명 연주자나 현악합주단(String Ensemble)의 레퍼토리로 사랑받을 뿐 아니라 또한 클래식 애호가들에게도 사랑받을 만한 특별한 가치가 있음을 여러분께서도 감상해 보시면 아시게 될 것입니다.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센티멘털리즘 색깔이 고스란히 녹아 들어있는 "플로렌스의 추억"에 여러분께서도 함께 빠져들어 보시면 어떨까요!

"플로렌스의 추억"은 차이코프스키의 나이 50세 때인 1890년에 완성되었다고 합니다. 3년 전인 1887년부터 첫머리 악상 스케치가 시작되었으니 차이코프스키가 상당히 열중하여 만든 작품이라고 보여집니다.

그해 7월, 차이코프스키는 폰 메크 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곡의 완성을 알리면서 "집에서 간단히 편곡 연주할 수 있기 때문에 연주회장에 가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라고 전합니다.

당시 건강을 해쳐 외출이 불편했던, 나이 60세가 다 되어 버린 폰 메크 부인을 배려한 말이겠지요. 실내악의 이러한 장점을 지금의 가치관으로 생각해 보면 너무 귀족 음악이라고나 할까요. <글 출처 : 관악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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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12.02.27 19:46

    노을낭송회 사무국장님! 질문이 있는데요~
    원고는 내지 못하고 참석만 하는 사람은
    회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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