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에 올라온 사람사는 이야기 ..... 함 읽어봐 ~~
“강화 사람이시니꺄? 난 강서중학교 나왔시다.”
그녀와의 첫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오래 전에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 새로 슈퍼가 생겼답니다.
그 슈퍼 여주인이 강화 댁이라는 이야기를요.
제 아내로부터 무심히 전해 들었고요.
제가 바나나 우유를 좋아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녀는 얼른 냉동되어 있는 매장에서요.
바나나 우유를 꺼내 건네면서 말했습니다.
“반갑시다. 여기서 고향 오빠를 만나게 되서......”
사실 저는 그녀를 그날 처음 보았습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요.
그냥 강화 댁이라는 것 말고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다만 그녀가 고향에서 중학교를 나왔고요.
처녀 시절 인근 동네 총각들의 연모의 대상이었다는 것을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 사실도 그날 처음 그녀가 말해주었으니까요.
그래도 저를 오빠라고 애교스럽게 불러주는 것이요.
싫지는 않더라고요.
십년하고도 수년이나 연배인 저를요.
그냥 "아저씨"라고 호칭하지 않는 것만 보아도요.
얼마나 사랑스럽던지요.
제 아내와는 벌써 잘 알고 지내던 터였습니다.
단지 내 사람들 누구와도 잘 통하더라고요.
정을 통한다는 말이 아니고요.
그만큼 소통을 잘 한다 그말이라요.
붙임성이 좋은 제 아내였기에.......
물건 값이 싸고 인상이 좋기로요.
소문난 동네 슈퍼 여주인을 모르고 있을 리가 없었어요.
제 아내는 그녀를 "상냥한 강화 댁"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그녀는 상냥하고요.
친절했어요.
그리고 제 아내 이상으로 붙임성이 좋았고요.
그런대로 장사도 잘 되는지요.
손님맞이로 항상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만날 때마다 환한 미소를 머금은 밝은 얼굴로요.
맞아 주곤 했습니다.
해서 그녀를 만나는 날은요.
괜히 기분이 상쾌해 지더라고요.
얼핏 보면요.
제가 좋아하는 절세의 중국 고전 미인 서시(西施)와요.
이목구비가 빼 닮은 것 같았어요.
"오빠, 저 처녀시절 연애편지를 많이 받았시다.
얼굴 짱으로서요. 인근 동네 인기 짱이었시다."
그녀의 말은 빈말이 아닌 듯 했습니다.
아직도 어지간한 남자들이요.
모두 좋아할 것 같은 청순한 미소에다요.
심성마저 곱고 따듯했어요.
그녀는 저를 보고 말했습니다.
“노는 것이 좋아서요. 부모님이 진학하라고 하셨는데요.
여고 진학을 안 했시다. 외지 남자 만나서요. 이곳 서울에서 살게
되었고요.”
이어서 비락 식혜를 가져다가요.
또 먹으라고 주면서 말했어요.
“오빠처럼 공부 많이 한 사람이 부럽고 좋아 보이다.”
어떻게 알았지요?
처음 보는 그녀 보고요.
공부 많이 했다고 말한 적도 없는데요.
젊은 시절 과거낙방해서 실연(失戀)했다고도요.
정부중앙관아로 출근을 한다는 말도 안 했는데요.
덕정산 도깨비가 불을 놓고 다니던 촌 동네 출신치고는요.
제법 출세했다는 말도 한적 없었다고요.
이 모두가 제 어머니의 새벽기도 덕분이라는 말도요.
정말로 한적이 없다고요.
제가 탈영하지 말라고요.
논산훈련소 입대하던 그날부터 시작한 기도가 지속된다는 말도요.
저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있더라고요.
입이 빨라 시어머니로부터요.
한때는 ‘종개비 새끼’라고 불리 운 바 있는 제 아내가요.
제 이야기를 다 한 모양이었습니다.
2008년 새 정부 들어서 강화 댁네 슈퍼를 가지 않았습니다.
아침저녁 오가는 길에도 되도록 눈에 안 띠도록 돌아 다녔어요.
손님맞이로 바쁜 강화 댁이 신경을 써서 바나나 우유를 공짜로 주는 것이요.
미안했기 때문이라요.
고향 오빠라고 무엇 하나 도와 준 것이 없었답니다.
도와 줄 것도 없는 제가 매번 공짜 우유를 받아먹는 것이요.
너무나 미안했습니다.
진짜로 솔직히 말할게요.
강화 댁이 걱정스런 눈빛으로요.
"오빠가 다니는 부처가 페지된다는 것이 맞아요? 그럼 직장에서 퇴출되면
어쩐데요? 아직도 정년이 많이 남아 있는데"
답변해 줄 적당한 말이 없었기 때문이라요.
새 정부 들어 느닷없이 멀쩡했든 제 과장자리가 날아갔었어요.
작은 실용정부를 구현한다나 뭐라나 하면서요.
소위 새 정부 실세라는 인간들이 조자룡이 헌 칼 휘두르듯 조직을 뒤죽박죽으로 만들더라고요.
민족 분단의 고통을 종식시키고 한반도의 평화정착 실현을 위해서요.
이권도 없이 충직하게 일 잘하던 조직 및 인원을 감축 하더라고요.
마치 토목공사 현장 인부들 수급대책 세우듯 철학도 비젼도 없이요.
이런 와중에 대기발령을 받고 보니요.
별 생각이 다 나더라고요.
사실상 감원대상자로 낙인이 찍힌 것이였으니까요.
지나온 세월이 너무나 허망했습니다.
습관처럼 일어나 출근하려니 갈 곳이 없더라고요.
벼슬자리가 대단한 것처럼 살아왔던 제 자신이요.
무척이나 작아보이고 초라해 보이더라고요.
이후 아파트 단지 인근에 대형마트가 생겼어요.
그 마트로 인해 아파트 값이 올랐다고요.
제 아내는 좋아했습니다.
대형마트로 인해 인근 소매상들이요.
울상이라는 말도 들었고요.
강화 댁네 슈퍼가요.
주인이 바뀐 것을 한참 후에 알았습니다.
"어디로 갔나? 당신도 몰라?"
"나도 몰라, 며칠 안 본 사이에 이사 갔으니......"
제 아내보고 물어도 모른답니다.
그러고 보니요.
이름도 모릅니다.
그저 만나면 "오빠네 누이네" 하면서요.
이름을 서로 부를 일이 없었으니 까요.
이사 가기 전에 분명히 저를 찾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야속하게 생각 했을까요?
저는 그런 것도 모르고 애써 피해 다녔으니 말에요.
공짜 우유 받아먹는 것이 미안해서요.
아니 대기발령 받고요.
집체교육 받으러 다니는 제 초라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
‘이럴 줄 알았으면 명함이라도 한 장 주는 것인데, 가늘고 여린
그 고운 손이라도 한번 꼬옥 잡아 줄 것을......’
다행히 인연이 있는 귀한 분의 배려로요.
그해 말 다시 현직에 복귀 하였습니다.
이후 꿈에 그리든 승진을 하고요.
기라성 같은 후배들 출세길에 걸림돌로 남고 싶지 않아서요.
얼마전 제 스스로 훌훌털고 나왔더니 자유롭고 홀가분해서 좋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답니다.
하나님 곁을 떠나 방황하던 탕자가요.
내 아버지 집에 다시 돌아왔다고나 할까요?
늙으신 제 어머니의 간절한 새벽기도 소리에요.
응답하신 하늘의 도우심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잘 것 없는 제 인생길이지만요.
고비마다 역사하시고 도와주신 “보이지 않는 은총의 손길”을 간증하고 싶습니다.
말로써 글로써 노래로써 때로는 이웃에 대한 봉사로써요.
그 누이를 집으로 초대해서요.
저녁이라도 같이 한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습니다.
공짜로 바나나 우유만 받아 처 잡숫고…….
어제도 오늘도 경제가 어렵다고요.
이웃들의 표정이 어둡습니다.
경제가 빨리 안정되고요.
경기가 살아나서요.
어디 가서든 그 누이 네 장사가요.
잘 되기를 진심으로 빕니다.
빨리 남북관계가 안정되어서요.
평화가 상존해야 경제가 살아 날텐데요.
그 고운 고향 누이 얼굴에요.
삶의 그늘이 지지 말아야 하는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