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9,8-15; 1베드 3,18-22; 마르 1,12-15
+ 찬미 예수님
지난 한 주 안녕하셨어요? 설 명절도 잘 쇠셨지요? 올 한 해도 주님 안에서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오늘은 사순 제1주일입니다. 제대 꽃꽂이를 보시면, 포도나무 줄기와 화살나무로 사순시기의 의미를 표현했습니다. 화살나무는 꺾어지기는 하지만 부러지지는 않는다고 하는데요,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않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않는다.”(이사 42,3)는 이사야서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약함을 알고 계시면서도 우리가 절망하지 않고 당신 안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묵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창세기의 말씀을 들었는데요, 하느님께서는 노아와 계약을 맺으시고 그 표징으로 무지개를 세우십니다. 무지개 이야기를 작년에 평일 미사 강론 때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어떤 남자 대학생이 후배 여학생을 마음에 두고 있었는데요, 동아리 엠티 가서 술을 마시다가 여학생의 옆자리에 앉아서 용기를 내서 물었답니다. “너는 나를 어떻게 생각하니?” 여학생도 술김에 용기를 냈답니다. “선배, 솔직히 얘기해도 되요?” “응, 그럼” “선배는… 술 마시면… 무지개 같아요.” 남학생은 너무나 황홀했습니다. “무지개 같다는 게 어떤 의미야?” 그러자 여학생은 큰 소리로 “무지 개 같다니까요?” 하고 외치고는 자리를 박차고 가버렸답니다.
무지개와 무지 개는 띄어쓰기만 있을 뿐인데, 너무나 다른 의미네요? 무지개가 하늘과 땅을 이어주듯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존재가 되어야겠습니다. 하늘과 땅을 잇는 무지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창세기의 저자들은, 전해져오던 과거의 무서운 홍수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해석했는데요, 이것이 노아의 홍수 이야기입니다. 모든 자연 현상을 하느님께서 주관하신다는 전제 아래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하는 궁금증을 이야기의 형태로 표현했는데, 후대의 해석은 홍수 자체보다 홍수가 상징하는 정화에, 그리고 하느님께서 세상을 멸망시키지 않으신다는 희망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었습니다.
하느님께서 노아와 맺으신 계약을 보면, ‘다시는 물이 홍수가 되어 모든 살덩어리들을 파멸시키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씀하시는데, 하느님 편에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말씀만 있고 인간이 지켜야 할 조항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만 의무를 지우는 불리한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두 번째로 인류와 맺으신 계약은 아브라함과 맺으신 계약인데요, 그 표징은 할례고요, 세 번째로 모세와 계약을 맺으셨는데, 동물의 피가 그 표징이었습니다. 이 계약들은 구약 시대에 맺어진 옛 계약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로운 계약 즉 신약을 맺으셨는데, 당신의 살과 피로 맺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계약에 따라 이 미사에서 예수님의 몸을 영하고 있는데요, 여기서도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해, 너희의 죄를 용서해 주기 위해 내 살과 피를 내준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께만 의무가 있는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다시 1독서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과도 계약을 맺으십니다. “나는 나와 너희 사이에, 그리고 온갖 몸을 지닌 모든 생물 사이에 세워진 내 계약을 기억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요, 이제 생물들이 홍수로 파멸되지 않지만, 인간들로 인해 파괴되는 지경에 이르고 있습니다.
생태 위기의 상황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당신 계약에 충실하시도록 도와드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생태적 회심과 창조 질서 보전은, 그래서 단순한 사회적 활동이 아니라 신앙의 실천이 됩니다.
초대교회에서는 노아의 홍수를 세례의 상징으로 이해했는데요, 이는 제2독서에도 잘 나와 있습니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하느님께서는 참고 기다리셨지만, 그들은 끝내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 이제는 그것이 가리키는 본형인 세례가 여러분을 구원합니다.”라고 베드로 1서는 말합니다.
사순시기는, 처음에는 세례를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교회는 300년 가까이 박해를 받았는데요, 이러한 박해 중에 세례를 받는 것은 목숨을 거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세례를 준비하는 것은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고, 교리 공부는 몇 년간 지속되기도 하기도 하였습니다.
세례성사가 부활절에 베풀어졌기 때문에, 이를 위해 3주간의 사순시기가 제정되었는데요, 이 흔적은 지금도 남아 있어서, 부활 직전인 사순 제3, 4, 5주일 미사의 독서와 복음은, 모두 세례성사와 관련된 말씀입니다. 또한 부활 성야에 세례 서약 갱신을 하게 되는데요, 죄를 끊어버리고, 죄의 지배를 받지 않기 위해 악의 유혹을 끊어버리고, 죄의 뿌리인 마귀를 끊어버린다는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하면서, 주님 안에서 새로 태어나던 첫 마음을 되새깁니다.
이후 사순시기는, 배교와 같은 큰 죄를 지었던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돌아오기를 원할 때 그들에게 명했던 속죄와 참회의 시기로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배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광야를 걷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느님 사랑을 잊고, 하느님 외의 다른 것을 섬기려는, 특히 자기 자신을 섬기려는 유혹에 자주 떨어지기에,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깨달음 안에서 사순시기는 모두를 위한 회개와 쇄신의 시기로 정착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순시기 동안 40일의 노아의 홍수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40년을 기억하며 정화와 회개의 기간을 지냅니다. 또한 광야에서 예수님의 40일의 단식과 기도, 그리고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수난을 기억하며 하느님 사랑 안에서 살아가도록 노력합니다.
교황님께서는 올해 사순시기 담화문에서 ‘람페두사’를 언급하십니다. 2013년 교황으로 취임하신 후 바티칸 외부의 첫 방문지로 람페두사섬을 택하셔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셨습니다. 수많은 난민이 나무로 만든 배와 뗏목으로 바다를 건너다 목숨을 잃고 있는 이 섬을 방문하여, 교황님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이고 다른 하나는,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창세 4,9)입니다.
교황님께서 선출되신 후 전 세계 앞에서 던진 첫 번째 단어는, “형제자매 여러분”이었습니다. 이후 교황님의 모든 말씀은 단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이기도 합니다.
교황님은 11년 전, 당신께서 ‘무관심의 세계화’에 맞서는 길로 제시한 두 가지 질문이 여전히 제기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고통받는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교황님은 담화문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행동할 때입니다. 사순시기에 행동한다는 것은 또한 멈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말씀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도 안에서 멈추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아파하는 형제 자매 앞에서 멈추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제게 떠 오르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토론토에서 공부할 때, 한인 성당 신부님이 평일 미사를 부탁하신 적이 있습니다. 마침 누군가 차를 빌려주어, 운전을 해서 성당에 가고 있었는데, 퇴근 시간에 차가 그렇게 막힐 줄 몰랐습니다. 미사에 늦을까봐 마음이 급해진 저는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차가 너무나 많기에 일단 직진을 했습니다. 그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을 해야 하는데, 거기도 너무나 차가 많아서 또 직진을 했습니다.
그때에는 네비게이션이 없었는데요, 나중에 지도로 확인해 보니 성당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더 빨리 가려고 했지만, 빨리 가면 갈수록 목적지에서 멀어졌고, 결국 미사에 늦고야 말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이 제 마음에서 맴돌았습니다.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디로 가고 있느냐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오늘날 문화는 우리를 계속해서 경쟁으로 몰고 가면서, ‘남들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면서 속도만을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이 사순시기에, 교황님께서는 일단 멈추고 우리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방향을 확인하자고 제안하십니다. “기도 안에서 멈추고, 아파하는 형제자매 앞에서 멈춥시다.”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하느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너 어디에 있느냐?” “네 아우는 어디 있느냐?”
https://youtu.be/vc4BHSm4ycw?si=WsvO996eIpRscs4e
2013년 3월 13일, 교황님 선출 직후 말씀 - "형제 자매 여러분" (1분 19초)
2013년 7월 8일, 람페두사
사순 제1주일 제대 꽃꽂이, 노은동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