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7-01 토
미령네는 무제한 골프 상품이라서 오전에 18홀, 오후에도 18홀을 돈다 하였다. 우리는 일단 오전에 같이 해 보고 오후를 정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가 본 적이 없는 완전 문외한이라 캐디와 카트도 구별이 잘 안 될 정도로 무척 생소했다.
아침 뷔페를 6시에 먹고 7시에 출발했다. 이 곳 규칙대로 우리 4명은 카트 두 대에 각각의 캐디와 함께 나누어 탔다. 미령네 실력은 엄청났다. 진즉에 폐가 되니 가지 말라는 시동생의 충고가 와닿았다. 진도가 안 맞는 것이다. 미령이 한 번에 친 거리를 나는 여러 번 처야 했다. 이걸 자치기라 하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 미령은 기꺼이 아지매인 나를 가르쳐 주었다. 목표물을 정하고 치세요. 생각보다 짧은 곳을 목적지로 가리켜서 의아해했더니 꺽이는 지점에 설치된 방해물 때문이었다. 이래서 지형을 아는 것이 중요하구나. 물론 설명대로 되지 않았다. 좌우당간 내가 제일 못했다. 즐겁지 않았다. 남편도 마찬가지. 공이 안 맞으면 나를 가르치려 했다. 너나 잘 하세요를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지퍼를 닫아버렸다.
11시에 여는 점심을 먹고 한숨 자고 3시 반에 나가 9홀을 돌았다. 사진을 찍고 싶은 욕구가 이제야 일다니 오늘 아침 무척 긴장하고 있었나 보다. 코스마다 쉼터 그늘집 2개가 있다고 하며 김박사는 불면의 밤에 떠올린다는 C코스 그늘집으로 안내했다. 내려다 보이는 펼쳐진 경치가 막힌 가슴이 뻥 뚤리게 시원하였다. 그는 허술한 천 주머니에서 복주머니 모양의 병을 꺼냈다. 칼바도스였다. 레마르크의 <<개선문>>에서 주인공이 늘 마시던 사과 증류주, 허무를 달래주던 독주가 오전 오후 36홀을 돌게 하는 슈퍼맨 비결이었던 것이다. 너무 뜻밖의 간단한 해답에 폭소를 금할 수 없었다. 더위와 피곤을 단방에 날리는 효과가 있는 듯 했다. 나라이힐 오후 따가운 햇볕은 간간이 부는 바람에 식혀졌다. 특히 4시 이후 사그라드는 햇살은 살랑대는 바람과 합일하여 우리를 품는 듯 했다.
2017-07-02 일
어제와 같았다. 오전에 18홀 오후에 9홀를 돌았다. 골프 코스는 A, B, C가 있었다. A와 B는 전형적인 코스이고 C는 한국 태국 합작이라 했다. 어제 한 번씩 돌아서 오늘은 덜 낯설었다. 어제보다 공이 맞는 빈도가 많아지고 자꾸 까먹는 타수 세기도 아주 조금 늘었다. 5번 이상 자치기를 하고 나면 완전 헷갈리는 타수라 기억이 안 되었다. 나보다 덜 긍정적인 그가 아픈 허리 때문에 퉁명스러웠다. 게다가 장타가 터진 어제와 달리 오늘은 성적도 저조하니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사실 우리가 기분이 나쁘면 안 된다. 30년 매니아는 우리의 경쟁자가 아니다. 학습 연습 실력이 비교 차원일 수 없는데 소침해 있다. 무슨 경우인가? 욕심 없는 자로 자처하던 나인데 이렇게 우울하니 새로운 발견이었다. 우월하고 싶은 욕망은 곧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니 본능이다. 어찌하랴!
오늘 오후도 어제 그늘집에서 멈추기로 했다. 마침 유칼립투스 수풀 담 위로 범상치 않은 짙은 먹구름이 천지를 뒤흔들 듯이 위협적이었다. 금시라도 퍼부을 듯 했다. 맥주와 주전부리를 사서 앞에 놓으니 김박사가 또 부스스 술병을 꺼냈다. 이번엔 코냑이었다. 그가 그렇게 애주가인 줄 몰랐다. 때마침 소나기가 퍼붓었다. 시원한 맥주와 폭탄주의 작용이려니와 멀리까지 탁 트인 공간, 지붕에서 폭포수 커텐처럼 흘러내리는 빗줄기의 굉음, 광란의 몸짓으로 흔들어대는 야자수, 대자연의 웅장한 교향곡이 모두 침묵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열대지방 원정 골프의 진수가 아닐 수 없다. 그 장관을 어찌 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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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엥 ? 오전에 18홀 돌고 오후에 또 ? 세상에 ~~~
그런데 음주골프 했네 ?
사진도 멋지고 소나기 동영상 보니 속이 후련하다 ~~~
저런 날씨에 그나마 마실게 있어서 위로가 되었겠구나..ㅎㅎ
음주 골프는 안 잡나? 다행이네..ㅎㅎ
대단한 정력이야..
아유 말 마.
여기는 특히 여름에는 비 한방울도 없어.
저 소나기 , 폭우가
정말 시원하다.
여기도 그런 비 한번 오면 좋겠다.
사막에 와서, 비를 기다리다니 ~~~ ㅎ ㅎ ㅎ
경치 참 좋아요.
난 비디오 길래,
경위님,
스윙하는 폼을 올리신 줄 알았지 ~~!
역시,
골프가 어렵구나 ~~!!
ㅎ ㅎ
"너나 잘 하세요 ~~" 참 시원 한 말이야
.
나도
그거 쓰고 싶을 때 많어.
그래도
쓸 수는 없더라 ~~!
골프는 설명해도 못알아듣고,
경위가 개선문의 주인공이 마시는 독주를 마시고
쳐졌던 마음이 햇살과 같이 살랑거리고 포근해졌다는 얘기만 크게 들린다.
애주가하고 같이 다니면 골프보다 술 배우겠네. ㅋㅋ
재경아 여기는 정말 소나기더라. 금방 그쳤어. 뭉겔 여유도 없을 정도로...
맞어 뭐든 빠지면 물불 안 가리는 게 인간 아님감!!
그~럼~ 술 빠지면 뭔 재미로...ㅎㅎ 리렉스 시키는데는 역시 술!! ㅎㅎ
젊은 아줌마~ 하루 36홀이라니...
부럽구만유...
저렇게 좋은 곳에서는
자치기두 해볼만 하겠수다 ㅎ ㅎ ㅎ
나도 골프 칠때는 이제 사과주를 하나씩 지참해볼까?
힘도 나고 용기도 나고, 공 안맞을때의 의기 소침함을 좀 해소해줄것 같아
옛날에 남편이 골프치다가 그늘집에서 한잔씩 했었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였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