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詩 읽기] 그 많던 ‘까치밥’은 어디에
출처 농민신문 : https://www.nongmin.com/plan/PLN/SRS/364237/view
늦가을 감나무를 볼 때마다 홍시를 ‘알전구’에 빗댄 선배 시인이 생각난다. 그렇다. 감은 늦가을이 켜놓는 홍등(紅燈)이다.
감이 유독 붉은 등에 비유되는 까닭은 ‘까치밥’ 때문일 테다. 날짐승 몫으로 우듬지에 감 몇개를 남겨놓는 마음. 까치밥에는 다른 생명이 없으면 사람이 살 수 없고, 하늘과 땅이 없으면 그 어떤 생명도 살 수 없다는 자명한 진리가 담겨 있다.
우리가 잃어버린 ‘나눔’을 우리 코앞에 바짝 갖다놓는 ‘부리의 시’는 짧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읽어야 한다. 홍시가 얼었으니 한겨울. 눈이 내려 다른 먹이를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운 좋게 먹이를 찾았는데, 저런, ‘그림의 떡’이다. 꽁꽁 얼어 먹을 수가 없다.
그때 누군가, 그 무엇이 언 홍시를 녹여 새의 부리에 넣어준다. “겨우 녹인 살을 넣는 이”에서 ‘이’는 사람일 수도 있고, 다음에 이어지는 “참 춥고 붉기도 한 날”을 지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언 감을 녹이는 주체가 사람이냐, 아니면 자연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혹한 속에도 ‘붉음’이 있다는 사실을 놓치지 말자. 붉음이란 무엇인가. 생명이 다른 생명과 더불어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닌가. 새와 홍시가 서로 “껴안는 일”은 어미 닭의 부리와 달걀 속 병아리 부리가 만나는 결정적 순간(줄탁동시)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까치밥이 까치 몸속으로 들어가는 일, 이것이 바로 “나눌 수 없는 나누는 일”이고, 이것이야말로 우리 세상을 세상이게 하는 원동력일 테다. 그런데 그 많던 까치밥은 언제, 왜 다 사라졌을까. 우리가 ‘나누는 일’을 되찾지 못한다면 ‘사람밥’도 조만간 사라질지 모른다.
이문재 (시인)
빛(VIIT)명상
그때 그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
찌그러진 바께스와 누런 양철로 된 큰 주전자를 든 당번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앞줄에 서려고 허둥지둥 달려갔다. 하지만 앞줄은 이미 새벽부터 와 있던 서너 명의 아이들이 차지한 상태다. 사실 앞에 서나 뒤에서나 급식량은 달라질 것이 없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빵을 받아 허기진 배를 채우고 싶은 것일 뿐. 급식을 하는 시간의 백열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며 아이들이 살을 에는 듯 차가운 겨울바람을 이겨보려 발을 동동 구른다. 또 몇몇 아이들은 울긋불긋 얼어터진 손등에 호, 호, 하고 입김을 불어넣어 녹여보기도 한다.
일주일에 두 번, 강냉이 찐빵과 우유 배급이 있는 날은 마치 동네잔칫날 같았다. 평소 지각에결석을 밥 먹듯 하던 녀석들도 이 날만큼은 절대 늦거나 빠지는 법이 없었다. 심지어 담임선생님조차 평소보다 이삼십 분 씩은 일찍 오셔서 배급에 차질이 없도록 몸소 챙기시는 것이다.
마침내 식간에 불이 켜지고, 토끼털 귀마개를 검은 고무줄로 동여맨 소사 아저씨가 어정어정 걸어 나왔다. 그리고 커다란 찜통을 열어젖히자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함께 퍼지는 구수한 찐빵 냄새……. 코흘리개 녀석 하나가 눈을 지그시 감고 흠흠~ 하고 황홀해하던 표정이란. 벌써 꽤 오래전 일인데도 마치 어제의 일처럼 선명히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다.
팔공산 빛(VIIT)명상 터 초입에 감나무 몇 그루를 심어놓았다. 바로 어린 시절 감나무에 얽힌 애틋한 기억을 추억하기 위해서다. 해마다 가을이 되면 우리 집 앞마당의 감나무는 주렁주렁 열매를 달고 서 있었다.
“얘들아, 감 따거라!”
어머니의 말씀이 신호탄이라도 되듯 여덟 형제가 앞 다투어 감나무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서 이 소식을 알았는지 동네 사람들도 허겁지겁 감나무 아래로 모여드는 것이다. 마치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될 무엇이 있기라도 한 듯 걸음을 재촉하는 그들의 얼굴에 어려 있던 배고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이 짠하게 만드는 잊을 수 없는 표정이다.
다른 형제들은 신이 나서 감 따기에 여념이 없을 때 이상하게도 나는 그 배고픈 표정을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멀리 담벼락 밑의 사람들을 향해 감을 던져주기 시작했다. 이를 본 형제들이
“야, 니 지금 뭐하는기고?”
하며 화를 내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러자 저 아래에서 감을 받아든 사람들은 언제 준비해왔는지 된장을 꺼내들었다. 감의 떫은맛에 목이 메일까봐 감을 된장에 찍어먹는 것이다. 된장에 찍어먹는 감 맛, 과연 요즘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각설이 친구
학교에 가면 한 학급에 70-80명씩이나 되는 아이들이 콩나물처럼 들어차 대체 수업을 하는 것인지 노는 것인지 분간하지 못 할 때도 많았다. 담임선생님조차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우지 못 하시고 출석부 없이는 누가 자신의 반 학생인지조차 확인 할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되면 반 이상의 아이들이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들어올 땐 모두 배가 복어처럼 볼록해져서 돌아왔다. 점심 도시락 대신 우물물로 배를 가득 채우고 말이다.
내 짝은 그런 형편의 친구들 보다 더한, 매끼 밥을 빌어먹는 각설이였다.
“경식아, 너 재밌는 노래 또 불러봐, 그 노래 참 우습고 좋다.”
“좋기 뭘 좋노? 광호 네가 부르라 카이까 또 한 번 불러 본데이, 어얼씨고씨고 들어간다아아아~ 저얼 씨고 씨고 들어간다아아,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아~ 죽지도 않고 또 왔네…….”
내가 경식이에게 재미있는 노래를 불러 달라고 청하면 경식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눈을 질끈 감고 책상 위에 바가지를 둘러엎어 연필로 장단을 쳐가며 각설이 타령을 불러 댔다. 그런 경식이의 노래와 익살에 모든 친구들이 배를 움켜잡고 깔깔거리면 경식이는 더 신이 나서 목청을 높였다. 그런데 그 구성진 노랫가락 속에는 무언가 모를 애달픔이 담겨 있었다.
사실 경식이는 공부보다 각설이 타령을 잘 부르는 것이 더 급했다. 얼마나 슬프고 애처롭게 타령을 하느냐에 따라 얻어먹는 밥의 양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 친구는 내가 청하지 않아도 쉬는 시간마다 노래를 부르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배짱 좋고 여유만만 하던 각설이 경식이도 매월 말만 되면 풀이 죽었다. 그 때만 되면 어김없이 선생님으로부터 월사금 독촉을 받기 때문이다.
“인석아, 받을 때가 없어도 일단 나가! 어디 가서든지 빌려오란 말이다. 너 벌써 석 달 치나 밀렸어. 이젠 더 사정을 봐 줄래야 봐줄 수도 없어!”
“없는데 어떡하는교? 먹고 죽을라캐도 돈 땡전 한푼 업심더, 쌤요.”
이때만 되면 스승과 제자의 사이는 집세를 받는 주인과 하숙비를 독촉 받는 하숙생 꼴과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이 시절에는 혼내는 사람이나 혼나는 사람, 구경하는 사람 모두 안 된 것도 마음 아플 것도 부끄럽고 미안할 것도 없었다. 그만큼 다들 가난하고 함께 배고팠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손이 나도 모르게 그 날 아침 아버지가 주신 월사금이 담긴 호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그 놈을 만지작거리다 과감하게 월사금 봉투를 경식이 앞에 들이밀었다.
“경식아, 잠깐만! 이거 너 해.”
“이게 뭐꼬? 니 월사금 30원 아인가?”
“일단, 이 돈으로 월사금 내. 난 걱정 말고. 나는 월사금이 밀리지 않았으니 선생님께서 봐 주실 거야.”
“광호야, 니 이래도 돼는 기가? 암튼, 참말로 고맙데이! 정말 고맙데이!”
하지만 그런 사정을 알 리 없는 선생님은 나를 몹시도 매몰차게 내쫓으셨다.
“이 녀석, 정광호! 넌 형편도 좋으면서 왜 월사금을 안내? 어디다 까먹은 것 아니야? 어쨌든 너도 나가서 빨리 받아와!”
이렇게 해서 나와 내 친구들은 교실 밖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쫓겨났다기보다 신나게 뛰쳐나왔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좀처럼 오지 않는 자유의 시간이 찾아왔기에!
친구들과 신나게 들판으로 달려가는 내게 이미 가방은 오간 데 없고, 옆구리에 찬 자랑스런 수통이 달그락달그락 경쾌한 소리를 냈다. 이 수통으로 말하자면 전쟁 중 군인들이 쓰던 물통인데 어떤 사연인지 우리 집 다락방에 골동품처럼 누워 있다가 내 눈에 띄어 다시금 세상 빛을 보게 되었다. 그 수통은 비가 오는 날이면 시냇가의 붕어로, 오늘처럼 맑은 날이면 메뚜기로 채워져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통 노릇을 톡톡히 해 주었는데 덕분에 책보보다 더 소중한 대접을 받았다. 그 수통이 이제는 검게 찌그러진 모습으로 내 방 한 쪽 구석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쫓겨난 후의 이야기를 연결해 가자면, 다음날, 선생님께 월사금만을 드리기가 겸연쩍어 수통의 메뚜기와 꺼내서 함께 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도 못 이기는 척 눈을 흘기시면서 받으시더니, 조용한 목소리로
“자리에 들어가 얌전히 수업해라.”
하시는 것이다. 나와 그분의 입가엔 미소가 돌았고 그러면서 이미 어제의 일은 그분이나 나난 없었던 일이 되었다.
비 오는 날이면, 아예 수업을 뒷전으로 하고 선생님 몰래 교실 밖으로 친구들과 뛰쳐나가곤 했다. 다름 아닌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였다.
갑자기 쏟아져 내린 빗물에 학교 뒤 개천이 넘쳐나면 숨쉬기 바쁜 붕어, 미꾸라지, 가물치 등이 그냥 물위로 둥둥 떠다녔다. 아무 요령 없이도 손으로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한참을 신이 나서 옷이 젖는 것도 모르고 고기를 잡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를 혼내기 위해 씩씩거리며 선생님도 옷을 걷어 부치시고 도랑으로 들어와 우리와 함께 고기를 잡고 계셨다.
이처럼 굳이 잘못을 빌고 용서해 준다는 말이 없어도 몸짓과 표정으로서 용서받고 화해하던 그 시절 스승과 제자 사이에는 오늘날 찾아보기 힘든 그 무엇이 있었다. 제자의 부스럼 병이 안타까워 자신의 월급을 뚝 떼어내어 치료비로 보태시던 선생님, 그리고 친구의 월사금을 내준 후, 돈을 다시 받으려는 어설픈 거짓말에 모른 척 하시며 묵묵히 30원을 또 내어주시던 부모님, 그렇게 그 때 그 시절은 모두에게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출처 : 빛(VIIT)의 책 2권
행복을 나눠주는 남자 P. 20 ~ 26
행복마에스트로
감나무가 있는 집 아이
옛날 옛날, 각 마을의 집집마다 감나무 한 그루씩 으레 있기 마련이었다.
어린 행복마에스트로의 집 앞에도 커다란 감나무가 있었다.
감 따는 날이면 형제들은 앞다투어 누가 먼저 감을 많이
따는가, 앞다투어 감나무에 올라 감을 땄다.
그러나 어린 행복마에스트로의 시선은
주렁주렁 열린 감이 아니라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감이 주는 풍성함 자체에 머물지 않았고
이를 바라보는 배고픔의 눈빛을 읽었다.
그래서
행복마에스트로의 선택은....?
형제들이 앞다투어 감을 따는 사이
어린 행복마에스트로는 허기진 사람들에게 감을 나눠주었다.
자기 것을 채우는 기쁨보다
나누는 것에 더 큰 기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그런 계산은 애초부터 없었다.
그날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빛명상 터 초입에는 감나무가 서 있다.
빛명상 터 초입에 있는 감나무
자신에게 온 풍요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더 큰 풍요가 있다는 행복순환의 법칙!
그가 감 하나 하나 던질 때마다
그것은 빛(VIIT)이 되어
다시 하나 하나
그에게 되돌아 왔으리라.
**
출처 빛(VIIT)카페 <행복마에스트로> 미리보기1 - "행복마에스트로의 선택"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조상님들의 생명사랑을 실천한 까치밥. 까치밥이 사라지면 사람밥도 사라질 수 있다... 공감합니다.
자신에게 온 풍요를 모든 사람들과 함께 나눌 때 더 큰 풍요가 있다는 행복순환의 법칙에 감사합니다.
사랑과 따뜻한 나눔의 마음이 담긴 글로 마음이 행복해집니다.
언제나 감사합니다.
마지막 글도 감동입니다.
이제늦가을홍시"까치밪이 자주보인다. 시인들은이를 홍등이라는는표현을쓴다
하늘과 땅에 감사드리는 '나눔의가치' 이다. 란글과
구;한 빛글인 "그때 그 시절 감나무에 매달린 추억"을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초입에 감나무가 있군요. 눈여겨봐야겠네요.
조건없는 나눔과 베품을 몸소 실천하시는 학회장님의 모습에 뭉클해지는 감동 존경하옵니다. 까치밥을 남겨두는 나눔을 행하는 옛모습 시에서 읊어보면서 점점 사라져가는 나눔의 안타까움이 묻어나는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릴때는 깡통들고 밥얻어먹는 거지들이 많았지만 거지로만 보였습니다
어른이 되어서야 나누는 기쁨이 두배라는 것
조금은 알지만 실천이 잘 안될때가 있습니다
학회장님 정말 공경합니다
우주근원님께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고 실천할수 있는 마음을 청해 봅니다 회원님들
오늘도 빛과함께 행복하세요^^~~
까치밥,,,요즘엔 감농사 짓는 사람이 많이 까치밥을 남겨두지 않는가 봅니다,
시골이나 공원가면 작은감들이 감을 달고 그대로 겨울나기 하는것도 심심찮게 봅니다,
학회장님 어릴적 감나무에 얽힌이야기는 나눔을 실천하시는 순수한 마음이 겻들여 있군요,
글 감사합니다
행복순환의 법칙,
자연도 사람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세상이 지속 되기를 소망합니다 . 감사합니다 .
읽을 수록 가슴 따뜻한 이야기! 명당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정보력을 자랑했던 걸뱅이 아저씨들과 동네 아이들의 훈훈한 이야기, 그 중심에는 감나무 주인인 빛선생님이 계시죠. 한 겨울에 홍시로 식사를 하는 까치를 볼 때면 행복마에스트로에 나오는 감나무가 있는 집 아이가 생각납니다.ㅋㅋ 그 힘든 시절, 세상과의 나눔을 실천하셨던 순수하신 학회장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이 부모가 되어보니 얼마나 큰 마음인지 알 것 같습니다. 빛VIIT, 감사합니다^^
나눔의 기쁨!
감사합니다
학회장님께서
어릴때부터 순수하시고
남을배려하시는 마음
참으로 감사합니다.
허기진 몸과 마음의 고향
빛Viit마음이 있어 든든합니다 ~
감사합니다 😊
어린시절부터 나눔을 실천하신 학회장님께 무한 공경의 마음 올립니다 ~
감사합니다.
귀한문장 차분하게 살펴보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운영진님 빛과함께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어릴적 거지들이 딱 밥때를 놓치지 않고
왔던거 같습니다.
그래야 밥한숟가락이라도 얻어갈 수
있었으니까요~~^
그시절 우리 부모님들 없는 살림이었지만
기꺼이 밥한술 나누는 마음들 갖고
계셨던거 같습니다.
나눌수록 더 배가 되어
돌아오는 기쁨
귀한 빛글 읽어도 읽어도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행복 마에스트로 “
학회장님께서 높고 크신뜻 걸어 가시는 길마다
행복을 뿌리신 일들을 생각하며 감동으로 전해옵니다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올립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 어릴적 시절
나눔과 사랑의 실천이
감동입니다
감사합니다
나눔의 행복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그때 그시절 감동이 물결이 요동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어릴적부터 나눔의 실천 감동의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가슴 뭉클한 글 감사합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을 실천하시는 학회장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 올립니다.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학회장님 어린 시절 이야기 감사합니다.
귀한글 감사합니다^^
귀한 글 감사합니다.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감을 나누어 주시는 따뜻한 마음이 감동입니다.
감사하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린시절이야기,가슴이뭉클합니다,감사합니다
귀한 빛의 글볼수있게해주셔서진심으로감사합니다
어린시절 가난한 이들에게 나눔을 실천 하시는 학회장님 감사합니다.
아무생각이 없을 어린 시절에도 이웃을 위해 감을 던지셨던 학회장님의 어린시절 감나무 이야기에 가슴 따뜻해집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빛역사이야기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빛이야기는 언제나 감동입니다.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
빛이야기 감사합니다.
감사드립니다.
나눔으로 커지는 행복.. 학회장님은 어린 시절부터 몸소 실천하셨습니다.
빛으로 오신 우주마음과 학회장님께 공경과 감사의 마음을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