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번의 서울번개에서 나는 딸과 동행을 하였습니다.
아내는 베트남에서 살기에 그저 지금은 딸이 모든 모임의 파트너입니다.
많은 분들이 내 딸을 보았습니다. 그 놈은 그저 지 먹을 거 다 처(?)먹은 후에 당연히 피할 시간 제대로 알고 피하지요.
딸 학교에서 교지와 홈페이지에 올릴 학부모수기를 청해서 한번 썼더니 반응이 좋았습니다.
여기에 그 글을 한번 올려봅니다.
나는 여러분들이 다니는 학교처럼, 실업계고등학교에서 근무하는 교사입니다.
1987년부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딱 20년이군요.
나는 어릴 때부터 기계만지는 것을 좋아했어요.
집에 걸려있는 시계를 한번씩은 모두 뜯어보았답니다.
내 눈 앞에 있는 모든 기계를 뜯어보고 싶어서 안달을 했지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공업고등학교를 주장하다가 가족의 거센 만류에 뜻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유는 모두 알지요?
일반계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지금까지 나는 한번도 기계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요.
집에 있는 모든 기계는 한번씩 뜯어봐야 직성이 풀린답니다.
내가 내 뜻대로 실업계고등학교를 갔다면 나는 지금쯤 더 즐거운 일을 하며 살고 있었으리라 상상하면서 후회를 하기도 했답니다.
그래서 나는 결심을 했지요.
내 아이의 뜻을 존중하면서 키우겠다고 말입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그렇듯이 엄마도 딸을 학원에 보내고 싶어했습니다.
어려서는 피아노학원, 속셈학원.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영어학원, 수학학원. 그러나 나는 먼저 딸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원하는대로 하거라.
딸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탁구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방과후 특별활동으로 치기 시작하더니 어느덧 학교대표 선수에 이어 도대표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오전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체육관에서 연습에 열중한다는 말을 듣고 딸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오전 수업만 하고 하루종일 탁구만 치면 수업을 따라갈 수 있니?”
“네, 그대신 열심히 공부할께요.”
난 딸을 믿습니다.
딸은 탁구도 열심히 연습하면서 성적도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탁구를 치지 않았다면 성적이 더 좋았겠지만, 나는 딸이 탁구에 열중하는 것이 매우 즐거웠습니다.
딸의 시합이 있는 날이면, 어디든 쫓아다녔습니다.
승패를 떠나서 탁구를 즐기는 딸이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딸은 탁구를 그만 두었습니다.
나는 서운했습니다.
속마음으로는 더 열심히 연습해서 미래의 올림픽선수를 기대했거든요.
그러나 그것은 나 혼자만의 희망이었고 기대였습니다.
“아깝지 않니? 조금만 더 하면 국가대표도 할 수 있다는데, 여기서 그만 두면 후회하지 않겠어?”
“아빠, 이 정도면 됐어요. 친구들이 그리워요. 친구들과 놀고 싶어요. 공부도 하고 싶고요.”
못내 서운했지만 딸의 뜻이므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딸은 곧 친구들과 다시 어울릴 수 있었고, 항상 피곤해하던 얼굴에서 다시 환한 웃음으로 볼 수 있어서 나 또한 흐믓했습니다.
같은 도시에 있는 중학교로 진학한 후, 친구들은 종합학원이나 단과학원을 다니면서 성적을 올리는 데 열중하였지만, 딸은 여전히 학원과는 담을 쌓은 채 학교수업만 열심히 들었습니다.
가끔 학원다니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다니겠다는 딸의 말의 대답에 만족하였지요.
그러다가 이번에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밴드활동을 하고 싶다고 합니다.
당연히 나도 기뻤습니다.
꽃다발을 들고 객석에서 딸 아이의 밴드연주를 보고 있는 나를 상상하면서 즐거워했지요.
3년동안 딸은 그렇게 친구들과 재미있는 학창생활을 보냈습니다.
곧 3학년이 되어 진학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여러분과 같은 학생들을 20년동안 가르친 교사입니다.
일반계고등학교에서도, 실업계고등학교에서도 근무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의 뚜렷한 교육관을 가지게 되더군요.
일반계고등학교에서 자기 생활을 접어둔 채로, 자율학습, 보충수업 등으로 3년을 보낸 후 대학에 간 제자들과, 실업계고등학교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수업외 활동으로 보낸 후 취업을 택한 제자들을 비교할 수 있었습니다.
성적에 맞추어 원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전공을 택하여 대학에 입학한 제자들은 십중팔구 후회를 합니다.
반면 취업을 택한 제자들은 대학의 필요를 느끼고 다시 대학에 입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목표가 있어서 대학에 입학하였으므로 누구보다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제 나의 첫 제자들은 30대 중반으로 나와 함께 늙어가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두 종류의 제자들을 보면서 나는 딸의 진로를 결정할 수 있었고, 딸 또한 나의 생각을 따라주었습니다.
전국의 실업계고등학교를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같은 지역의 중학교 출신만 입학시험을 치는 고등학교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소위 시골 출신인 딸이 갈 수 있는 학교가 한정되어 있다는 문제가 생겼지요.
밤을 새워 인터넷을 뒤져보던 중 발견한 곳이 바로 “수도전기공업고등학교”입니다.
주위 아는 분께 여쭈어 보고, 또는 인터넷에서 학교에 대한 정보를 찾아 보고, 그리고 내 주위에 있는 진로담당 선생님들께도 질문을 해 본 결과가, 바로 지금의 딸의 모습입니다.
나는 아직도 나와 딸의 결정을 후회해 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내 딸이 학교에 입학할 때 수석으로 입학한 것을 여러분은 잘 알 것입니다(모를까?).
그러나 첫 학기말고사에서의 성적도 잘 알지요?
네. 340명 중 300등 했습니다.
이상하죠? 아니요. 전혀 이상할 것 없습니다.
여러분은 선택받은 학생들입니다.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중학교에서 전교1등하던 딸이 지금의 학교에서는 300등입니다.
내신성적과 학력의 차이지요.
공부는 잘하지 못해도 나는 학교생활을 잘 하고 있는 딸이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이 그 학교에 다니는 것은 바로 행운아들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딸은 스낵코너에서 아르바이트를 합니다.
나는 딸이 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아르바이트할 것을 권장했습니다.
일반계고등학교에 입학했다면 가당찮은 일이겠지요.
그러나 딸이나 여러분이 다니는 학교는 실업계입니다.
시간 많죠? 나도 같은 곳에 있는 사람이기에 여러분 시간 많은 거 잘 알고 있습니다.
오후 5시부터 밤 22시까지의 아르바이트가 물론 힘들다는 것은 압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오후 5시부터 밤 12시까지의 자율학습과 아르바이트 중 뭘 하고 싶어요?
딸은 아르바이트를 선택했습니다.
나도 흔쾌히 허락을 하였고 담임선생님도 허락하였습니다.
자기 용돈은 자기가 벌어서 쓰는 습관을 키우는데는 아르바이트가 최고입니다.
방송반도 활동하고 싶어합니다.
또한 학교 밴드동아리에도 들어가고 싶답니다.
그건 딸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시간을 쪼개서 활동을 하는 것은 스스로의 몫이지요.
나는 여기서 마지막으로 딸을 비롯하여 본교 학생 여러분께 권합니다.
3년 동안 학교수업에 충실하고 수업외 활동을 많이 하세요.
그 경험은 곧 여러분들의 귀중한 추억이 될 것입니다.
대학은 여러분이 정말로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진학해도 충분할 정도로 여러분은 젊고 시간이 많습니다.
부디 즐거운 학창생활하시기 바랍니다.
첫댓글 감동적인 글입니다 부전자전(?) 이네요
여자를 남자로 트랜스시켰네요. 히히 제 딸은 앉아서 오줌 눈답니다.
따님과의 대화를 듣고 참 부러웠습니다.
아직도 내 딸한테 관심있는감? 깨몽~
저는 애가 없어서....잘 공감은 안가지만.....^^ 분명...평범치는 안은...부녀..지요 ^^~~~!!!! 행복하세요 !!
아니...지극히 평범한 부녀지간이라네. 다만 대화를 너무 자주 하다보니 가끔 버릇없는 태도가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그 역시 넌 딸이니 이래야한다 말 못하는 것이 좀 답답하긴 하더군.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좀 더 오래 있을 수 있도록 밝은 곳에서 만났으면 좋겠네.
이 시대의 살아있는 교육관이란 생각이 듭니다.저도 제 딸을 그렇게 키우고 싶은데,,,전 처가 키우고 있으니 참 안타깝네요.
그래도 만날 수는 있겠지요. 제 딸 역시 전처가 만나고 싶으면 마음대로 만난답니다. 그러나 엄마 아빠의 일관된 모습을 볼 수 없으니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으나 좀 크면 부모의 심정을 각각 헤아릴 줄 아는 소녀가 된답니다. 많이 보고 싶으시겠어요. 그러나 언젠가는 아빠 보고싶어서 찾아 올테니 마음아프더라도 기다리세요.
우리 은총이 커서 학교갈때 고음 불가님에게 상담 받아야겠습니다. 고음불가니의 교육관 정말 마음에 듭니다
서울에서 교육받는 것도 하나의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총이 사진 보았습니다. 나도 얼른 아들 하나 갖아야할텐데....
경험에서 비롯 된 교육관 참 현명하십니다. 저도 중3때 수도전기 가려 했는데 부모님 반대로 못 갔어요. 만약에 고음불가님이 ^^ 제 아버지였으면 후회는 하지 않았을 것 갔네요 하하하....
만일 제가 님의 아버지였다면 저보고 지금 할아버지 되란 말씀? 에구~ 아들이나 한번 낳아보고 할아버지 할라우. 저는 성동기공가려다가 공돌이되려냐 뺨맞고 꼬랑지 내려버렸지요. 거기 나왔으면 지금쯤 베트남에서 공장장이나 하고 있었을까요?
눈물나게 하네요...저도 대학교 다니는 딸이 둘이나 있습니다...태권도를 잘해 둘다 도 대표도 했고 작은놈은 전국체전에서 은메달도 땃지요...저도 그렇게 고집스럽게 딸을 길렀는데...어릴땐 원망도 있더니...이제는 아비마음을 많이 알아주더군요...따님의 푸른꿈이 이루워 지길 기원하며...글 잘 보고 갑니다...^*^~~~
반갑습니다. 작은딸 좀 소개시켜주세요. 제 후배가 되겠네요. 80년 61회 전국체전에서 서울대표로 플라이급 은메달 출신입니다(항상 자랑으로 입에 달구다닌답니다). 태어나서 전주를 처음으로 가보았지요. 전 창무관출신입니다 삼오구님은 어디신가요? 분명히 제 선배님이 되시겠군요. 제 딸은 딱 한달 도장 다녀보고는 멋있는 오빠없다고 바로 때려치우더라구요. 흐미~
흠 형님 이렇게 멎져도 되는겁니까? 나도 우리딸 멎지게 끼워야징..나도 멎진 아빠 되야 하는뎅...참 벳남에서 전화 왓어요 딸이래 어떡해? 하길래 만세 해 버렸습니다. 정말 딸이길 바랫거든요.. 이름도 지어나 버렷는뎅.. 아라 라고.. 그랫더니 아내 왈..아라? 아라 나중에 몰라 그럼 어케 해? 쩝..
저도 언능 장가 가서 딸 키우고 싶어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