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스 크리스티안 후프가 엮은『역사의 비밀』이라는 책을 보면, 훈족의 고향을 아시아 대륙의 최동단 즉 한국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근거로는 경주 근교의 묘에서 부장품으로 발굴된 ‘점토상’을 들고 있다. 그 점토상은 말을 탄 사람 뒤에 흔치 않게 생긴 솥이 실려 있는 기마상이다. 그 솥은 훈족들이 쓰던 브론즈 냄비이며, 이 기마상은 오직 한반도의 경주 일대 지역과 훈족의 이동 경로에서만 발견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 브론즈 냄비의 가장자리에는 도형화된 잎과 버섯 모양이 몇 개씩 나란히 붙어있는데, 훈족 귀족부인의 장식 머리띠, 신라의 금관에 똑같은 모양이 존재함을 근거로 들어 다시 한 번 훈족이 한반도 출신임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한민족이 곧 훈족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 이미 한반도에 살고 있던 한족이 유럽을 공격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대한 가장 유력한 학설은 흉노족 내부에서 끊임없는 분열로 인해, 원래 흉노족의 지배계층의 한 부류가 동남쪽으로 내려가 한반도에 정착했으며, 또 다른 부류는 서쪽으로 이동하여 훈족으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 최근 들어 연구가 활발하게 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구된 사료와 유물, 그리고 한족과 훈족이 그 뿌리를 같이 한다는 근거를 몇 가지 제시하고자 한다.
1. 첫 번째, 몽골반점이다. 프랑스 등 서유럽에 살고 있는 훈족의 후예들에게서 몽골반점이 발견되고 있다. 몽골반점이 한민족에게만 나타나는 특징은 아니지만 훈족 후예들이 몽골반점을 갖고 태어난다는 점을 미루어볼 때 한민족과 훈족은 친척의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 두 번째, 훈족은 그들 특유의 활(예맥각궁)을 사용했다. 이 특이한 활은 만드는 데만 5년, 제대로 쏘기 위해 활을 익히는 데만 10년이 걸리지만, 1분 안에 15발 이상 쏠 수 있다고 알려진 활이다. 이탈리아 북부 지역인 아퀼레이아에 자리한 크리프다 아프레시 교회의 프레스코화가 훈족이 이 특이한 활을 사용했음을 말해준다. 이 그림에는 말을 탄 훈족이 추격해오는 로마 기병을 향해 활을 쏘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고구려 무용총 벽화에 나오는, 말을 탄 채 활로 동물을 사냥하는 고구려 무사들과 똑같다. 고분벽화에 나오는 화살촉은 도끼날 화살촉인데, 이 화살촉은 날아가면서 회전하기 때문에 목표물에 꽂히는 순간의 충격이 매우 크다. 훈족도 바로 이 도끼날 화살촉을 사용했다.
3. 세 번째, ‘편두’ 풍습이다. 편두라는 것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를 반듯이 눕혀 놓은 상태에서 이마를 돌 같은 것으로 눌러 이마와 뒷머리를 평평하게 하는 대신 정수리를 봉긋 솟아오르게 만든 머리 형태이다. 일종의 성형수술이라고 볼 수 있다. 훈족의 뼈를 보면 이마와 뒷머리는 눌려있고 정수리는 툭 튀어 올라와 있다. 그런데 가야국이 있었던 경남 김해에서도 편두 두개골이 발견되었다. 법흥왕 등 신라의 왕들도 편두였다고 한다. ‘삼국지’의 ‘위지동이전’에서도 ‘진한 사람은 모두 편두’라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편두는 중국과는 구별되는, 꽤 오랫동안 한민족 사이에서 내려온 풍습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만한 점 한 가지는, 훈족에게는 편두 풍습이 있었지만 흉노에게는 그 풍습을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훈족은 편두 습속을 가지고 있는 특수 민족으로, 한반도 남부의 가야와 신라 지역과 연관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4. 네 번째, 한편 훈족의 이동경로에서는 독특한 화분 모양의 브론즈 냄비(동분(銅盆))가 발견된다. 유목 부족장들에게 바쳐진 이 냄비는 정화의식에서 고기를 제물로 바칠 때 쓰였다. 이러한 브론즈 냄비는 가야시대 고분인 경남 김해의 대성동과 양동리 유적에서도 발견된다. 브론즈 냄비는 가야국 등의 원류가 북방의 기마민족이라는 증거로 자주 거론되어 왔다. 훈족은 동복을 말 잔등에 싣고 다녔는데, 경주시 노동동 금령총에서 출토된 기마인물상(국보 91호) 토기에도 말 잔등에 브론즈 냄비를 싣고 다니는 모습이 발견된다. 게다가 이 기마인물상의 주인공들도 모두 편두이다.
5. 다섯 번째, 훈족의 브론즈 냄비 등에서 발견되는 문양은 한민족의 금관 등 머리 장식 양식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에서 출토된 금관에는 나무형상(출(出)자형 장식)과 녹각형상(사슴뿔 장식)이 많다. 이는 북방 민족들에게서도 나타나는 풍습으로 북방민족이 한반도로 이동해 정착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6. 여섯 번째, 북방 유목민족의 전형적인 습속인 순장 또한 가야 지역의 고분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특히 금관가야 유적인 대성동 고분군 1호분에선 소와 말의 머리를 베어 곽 위에 얹어놓은 목곽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훈족을 포함한 북방 유목민족의 동물 희생 행위와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7. 일곱 번째, 훈족이 나무에 빨간 헝겊을 달아 악귀가 접근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원했다는 기록과 곰을 평화의 토템으로 숭배했다는 점은 우리 민족이 마을 어귀에 장승이나 솟대를 세워 염원을 빌고 곰을 토템으로 삼은 점과 매우 유사하다. 대다수 유목민족들은 곰이 아닌 다른 동물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다.
@개인적 의견 : 훈족의 후예인 헝가리와 그리고 훈족의 엄청난 영향을 받은 게르만족의 후예 독일은 그 어느 나라보다도 훈족에 대해서 연구를 많이 했습니다 . 우리나라가 신라 백제 고구려의 역사를 찾을때 그들은 훈족의 역사를 찾았습니다 . 그렇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훈족에 대하여 잘 아는 쪽이 이쪽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기서 주목하셔야 할것은 예맥 각궁과 곰을 숭상하는 토템신앙 그리고 이 브론즈 냄비와 독특한 문양의 왕관 인데요 예맥각궁은 사실 동이족의 전유물입니다. 예맥각궁은 동이족 이외의 민족에서 써본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훈족은 일단 동이족의 후예입니다. 그리고 훈족이 곰을 숭상하는 토템신앙이 있다는 기록을 독일 학자가 발견했는데요 이것으로 훈족은 고조선의 후예이거나 그 당시 고조선의 영향을 받은 유목민족이라 보여집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이 독특한 문양의 왕관과 독특한 화분 문양의 브론즈 냄비는 오로지 훈족과 신라 가야에서만 발견되었거든요...
이 모든걸 가지고 추론하면 훈족과 신라는 같은 조상 즉 고조선 계통의 한 유목 민족에서 갈라져 나왔다는걸로 보여집니다.
당시 고조선도 연합 왕국이었거든요 여러 유목 민족의 부족장과 농경민족의 부족장의 대표자가 단군왕검이었으니깐요
아직 덜 밝혀져서 애매모호한 부분은 있지만 이 것만은 정확합니다. 신라와 훈족은 같은 조상이라는것이죠 다만 훈족의 0세기에서 4세기의 공백기가 있는데요 이 기간동안 작은 부족이었던 훈족이 인구가 늘어난 시기로 보여집니다. 유목 생활을 하다보니 서쪽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강력한 지도자 아틸라에 의해서 훈족을 중심으로 유목민족이 통합되어 유럽으로 진출한것이죠 .
훈족은 그리 인구는 많지 않은걸로 보입니다. 다만 유목민족을 통합한것이 엄청난 힘이었죠 . 유목민족은 인구는 적어도 말이 많아서... 정말 강력하죠 참고로 몽고 제국은 인구 200만으로 유라시아를 정복했습니다.....
1,번은 열외 북방 황인종에게 많이 나타나니 타인종에서도 보이고,2번.예맥각궁은 훈족뿐 아니라 북방기마민족들의 공동적 무기 말에서 활 쏠려면 장궁보다는 작지만 탄력이 좋은 각궁이 발전할 수 밖게 없조,3번.편두 훈족의 전통만이 아니라 남방계 민족에게서도 편두는 나옵니다.심지어 남미에서도 나오고 4번.브론즈 냄비는 북방유목민족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조리기구임.이 조리기구가 어떻게 한반도 남단까지 들어와 제기로 사용되었는지 여러설이 있조,5번 문양 샤머니즘과 천생신화 문화권에 있던 민족들이 공동적으로 쓰던 문양입니다,신라 건국신회보면 난생신화와 천생신화의 짬뽕이조,
6번.순장 또한 북방계 특징만이 아닙니다.고대시대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흔하게 행해지던 장례풍습입니다.세월이 지나가면서 이 순장이 변해서 토우를 집어 넣거나 하는 것으로 변했조,7번도 유목 기마민족의 공동된 문화 종교입니다... 결론 문화전파와 민족의 이동은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신라 가야 민족이 훈족인지 문화만 유입되었는지,,,정의 내리기 힘들조 그들은 이제 없으니깐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수의 북방민족이 한반도 남단까지 남하해서 토착민과 융합한 것으로 보입니다.신라와 가야 건국신화와 남방문화와 북방문화가 동시에 나온 것을 본다면요.이후 불교의 유입과 대륙과의 교류로 대륙문물이 많이 들어오게 되어 이전에 들오온 문화가 점점 살아졌조.이 북방 소수민족이 훈족이냐 아니야 이건 정의 내리기 힘듭니다,위 7가지 사항이 그시대의 대 유행한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도 그대로 복사해온거라 1번과 3번은 저도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님이 말하시는 북방 기마민족은 다 같은 동이족이니깐 당연히 비슷하겠죠 자 생각해봅시다 왜 하필 독일은 왜 우리나라가 훈족과 같은 계열이라고 말하는거죠? 왜죠? 그당시 동이족 문화를 계승한 민족들 중 살아 남은건 현재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몽고제국은 1000년쯤에 세워졋고 그 전의 역사가 불명확 하기 때문에 독일은 몽고라고 말할수 없었던거구 유일하게 증거가 나오고 동이족 문화권이라 우리나라를 지목한거죠.
따거족발작님께서 너무 일방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가 해요.., 위의 7가지 유사점 외에, 신라와 훈족간의 서로 다른 수많은 문화들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훈족와 신라가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중국인이 우리와 더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인과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는 7가지가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는 고인돌과 같이 그 나라와 민족을 구분하는 유물과 문화를 말하는것이지 불교와 유교 그러한 아시아의 공통적인 문화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일단 1.3번을 제외한 문화는 공통적인 북방민족의 문화는 맞자나요? 그리고 그 당시 북방민족은 일명 동이족이라고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훈족도 신라의 왕족도 그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부족의 갈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만은 ...
님 동이족은 잡다한 무리가 아니라 고조선 시대( BC 2333~ 고조선 멸망) 때까지 고조선을 맹주 즉 왕으로 받드는 부족 국가가 바로 동이족입니다. 동이족은 즉 같은 문화권을 가진 그 당시만 해도 같은 민족이었죠 다만 그 이후에 융합이 안되어 서로 다른 민족처럼 되버린게 동이족입니다만 기원전 까지만해도 거의 같은 문화권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책을 보면 주나라의 주공이 동쪽의 방이(부족국가이름), (?)이 (?)이 삼국을 치는데 삼국은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고조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고조선은 상국이라 하여 삼이를 도와주러 군사를 일으킵니다. 이처럼 부족처럼 나뉘어 져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고조선을
중심으로한 봉건제 국가였습니다. 훗날 주나라가 이 고조선을 본따 만든게 봉건제였습니다만.. 결국 동이족은 개개마다 나뉘어진거 처럼 보이지만 고조선을 맹주로 받드는 봉건제 국가였습니다.그 당시 중국인들은 고조선의 부족 국가들을 방이 계이 하여튼 머머이 머이 이자를 붙였고 이 이들을 통들어 동쪽에 있다고 동이라 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동이족이란 이런 동이족입니다 후에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이런 동이족들이 한나라와 고구려를 벗어나 독립하면서 선비족 등등 북방민족이 탄생됩니다...
역사적인 사례로 본다면, 외부의 유입세력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경우, 기존의 왕권을 물려받는 식으로 나라를 물려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외부의 유입세력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선다는 것을 의미해요. 위만세력이나 흉노족이 대단히 민주적인 사고 방식을 지니지 않고는 그런 시나리오들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한마디로, 설사 위만조선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다 하더라도, 위만세력이 고조선을 세운 세력과 다른 외부세력이라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 일제 시대 같이,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던 시대에는 그런 말도 안돼는 이론이 나올 수 있겠지만요..
마루나래님, 스페인왕조와 포르투칼 왕조는 이미 오래전 부터 혈연관계에 있었어요.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왕조들이 서로 혈연관계에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서로 다른 외부세력이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유럽이 외부세력에 의해 지배된것은 로마에 의한 지배와, 훈족 몽골족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 세력에 의한 지배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만조선이나 초기 신라같이 중앙집권하고 먼 국가는 지배층이 바뀐다고 다른나라로 바뀌지않습니다. 왕이 바뀐다고 해서 왕과 거의 동등한 권력자들의 지배권까지는 미치지못합니다. 중앙집권개념이 확실히 생긴 나라같은 경우에만 님이론이맞겠죠. 그런 나라는 왕위의 변동이 커다란 여파이며 국가개념도 조금은 있으니깐요
왕과 거의 동등한 권력을 지닌 그런 세력들의 동의를 얻거나, 그들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왕권을 얻을 수 있나요? 전혀 다른 외부세력이 들어와서 자신들의 왕이 되고,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되겠다는 것을 그냥 용납하는 사회가 어디있습니까? . 더욱이 혈연관계를 중요시 하는 동양사회에서는 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포백터/권력자들의 동의를 얻고, 왕이 될수있습니다. 자기조상한테 제사는 지냈는지는 그건 의문입니다.왜냐하면 고조선에서 제기도구는 아직 커다란 변동이 없는걸로 보입니다. 장례문화는 가장 보수적입니다.(이건 역사학자들이 인정하죠) 님이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죠. 독일이 분권국가일때 추첨으로 왕을 뽑았죠. 거기 왕이 혈연이 아닌 다른 나라 왕이 된다고 해서 그 100여개나되는 영주들의 동의를 얻는다고해서 독일이 바뀐나요?
포벡터/그당시 고조선이나 신라초기는 님이 생각하는 삼국시대와는 염연히다릅니다.마치 일본열도와같이 전국통일전 천황만 있고, 각자 영주들 따로노는것과ㅏ 같습니다. 국가개념도 없었고요. 다만 외국에 사신을 보낼때만 통일된 국명을 쓴 것이죠. 그런나라에 지배층이 바뀐다고 해서 국가가 사라지는것은 아닙니다. 아마 위만왕이 왕위에올라도 몇년동안 몰랐던 지방세력들도 있었을것입니다.
포벡터/그리고 님이 주장하는 문장을 보세요 [역사적인 사례로 본다면, 외부의 유입세력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경우, 기존의 왕권을 물려받는 식으로 나라를 물려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문장은 뫼비우스의 띠입니다. 똑같은 문장이 두번반복되네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자체가 기존왕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전 새로운 나라에 대해언급안했습니다. ' 지배층의 변동'을 얘기한 것입니다.
흉노족이 백프로 우리 민족인지 아닌지는 확인된바 없지만,그걸 인정하면 고구려.백제는 다른민족이 되어 버립니다.신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진 국가가 됩니다.실지로 이걸 주장하는 자가 조갑제.지만원 입니다.이들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고구려.백제를 멸시하고 신라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는 설을 퍼트리는 근거를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갈족이나 거란족을 우리역사에 편입한다면 삼국이후 북방에서 건국된 나라는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더 나가 일본의 역사까지 포함되는 결과가 나오고 이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룬다면 가능하겠지만 정치와 연결되면 아주 불행한 결과가 나올수 있습니다.우리나라를 침입한 모든 세력에게 면죄부를 줄 소지가 있습니다.
첫댓글 삼태극 카페에가면 많은 글을 접할 수 있습니다.
1,번은 열외 북방 황인종에게 많이 나타나니 타인종에서도 보이고,2번.예맥각궁은 훈족뿐 아니라 북방기마민족들의 공동적 무기 말에서 활 쏠려면 장궁보다는 작지만 탄력이 좋은 각궁이 발전할 수 밖게 없조,3번.편두 훈족의 전통만이 아니라 남방계 민족에게서도 편두는 나옵니다.심지어 남미에서도 나오고 4번.브론즈 냄비는 북방유목민족들이 흔하게 사용하는 조리기구임.이 조리기구가 어떻게 한반도 남단까지 들어와 제기로 사용되었는지 여러설이 있조,5번 문양 샤머니즘과 천생신화 문화권에 있던 민족들이 공동적으로 쓰던 문양입니다,신라 건국신회보면 난생신화와 천생신화의 짬뽕이조,
6번.순장 또한 북방계 특징만이 아닙니다.고대시대에서는 세계 어디서나 흔하게 행해지던 장례풍습입니다.세월이 지나가면서 이 순장이 변해서 토우를 집어 넣거나 하는 것으로 변했조,7번도 유목 기마민족의 공동된 문화 종교입니다... 결론 문화전파와 민족의 이동은 현재 우리가 상상하는 것 보다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신라 가야 민족이 훈족인지 문화만 유입되었는지,,,정의 내리기 힘들조 그들은 이제 없으니깐요,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수의 북방민족이 한반도 남단까지 남하해서 토착민과 융합한 것으로 보입니다.신라와 가야 건국신화와 남방문화와 북방문화가 동시에 나온 것을 본다면요.이후 불교의 유입과 대륙과의 교류로 대륙문물이 많이 들어오게 되어 이전에 들오온 문화가 점점 살아졌조.이 북방 소수민족이 훈족이냐 아니야 이건 정의 내리기 힘듭니다,위 7가지 사항이 그시대의 대 유행한 것이기 때문에 말입니다.
저도 그대로 복사해온거라 1번과 3번은 저도 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님이 말하시는 북방 기마민족은 다 같은 동이족이니깐 당연히 비슷하겠죠 자 생각해봅시다 왜 하필 독일은 왜 우리나라가 훈족과 같은 계열이라고 말하는거죠? 왜죠? 그당시 동이족 문화를 계승한 민족들 중 살아 남은건 현재 우리나라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몽고제국은 1000년쯤에 세워졋고 그 전의 역사가 불명확 하기 때문에 독일은 몽고라고 말할수 없었던거구 유일하게 증거가 나오고 동이족 문화권이라 우리나라를 지목한거죠.
따거족발작님께서 너무 일방적으로 생각하시는 것이 아닌가 해요.., 위의 7가지 유사점 외에, 신라와 훈족간의 서로 다른 수많은 문화들은 어떻게 설명하실 건가요? 훈족와 신라가 관계가 있다고 한다면, 중국인이 우리와 더 관계가 있습니다. 중국인과 우리가 공유하는 문화는 7가지가 아니라 그 보다 훨씬 많습니다.
저는 고인돌과 같이 그 나라와 민족을 구분하는 유물과 문화를 말하는것이지 불교와 유교 그러한 아시아의 공통적인 문화를 말하는것이 아닙니다... 일단 1.3번을 제외한 문화는 공통적인 북방민족의 문화는 맞자나요? 그리고 그 당시 북방민족은 일명 동이족이라고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훈족도 신라의 왕족도 그 고조선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부족의 갈래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만은 ...
동이족은 집단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중국대륙 동쪽에 사는 잡다한 민족 싸그리 이르는 말입니다.그리고 위 내용 상당부분은 그당시 유라시아 전체에서 보여지는 것이고 몇몇것은 전세계적으로 다양하게 나오는 것도 많습니다.,
저의 얘기는 삼국시대와 동시대에 있었던 중국의 국가들에서 발견되는 유물이나 고분양식등을 보면 많은 유사점이 있는데, 이런 유사점들은 중국이 훈족보다는 훨씬 많다는 것이죠.
님 동이족은 잡다한 무리가 아니라 고조선 시대( BC 2333~ 고조선 멸망) 때까지 고조선을 맹주 즉 왕으로 받드는 부족 국가가 바로 동이족입니다. 동이족은 즉 같은 문화권을 가진 그 당시만 해도 같은 민족이었죠 다만 그 이후에 융합이 안되어 서로 다른 민족처럼 되버린게 동이족입니다만 기원전 까지만해도 거의 같은 문화권 같은 민족이었습니다. 중국 역사책을 보면 주나라의 주공이 동쪽의 방이(부족국가이름), (?)이 (?)이 삼국을 치는데 삼국은 이에 위기감을 느끼고 고조선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합니다. 고조선은 상국이라 하여 삼이를 도와주러 군사를 일으킵니다. 이처럼 부족처럼 나뉘어 져 있는것 처럼 보이지만 고조선을
중심으로한 봉건제 국가였습니다. 훗날 주나라가 이 고조선을 본따 만든게 봉건제였습니다만.. 결국 동이족은 개개마다 나뉘어진거 처럼 보이지만 고조선을 맹주로 받드는 봉건제 국가였습니다.그 당시 중국인들은 고조선의 부족 국가들을 방이 계이 하여튼 머머이 머이 이자를 붙였고 이 이들을 통들어 동쪽에 있다고 동이라 했습니다. 공자가 말한 동이족이란 이런 동이족입니다 후에 고조선이 멸망하면서 이런 동이족들이 한나라와 고구려를 벗어나 독립하면서 선비족 등등 북방민족이 탄생됩니다...
마루나래님이 제가 하고싶은말을 정확히 짚어네요. 이런글은 올릴실떄 신중을 기하기바랍니다. 몽골반점만해도 잘못되었습니다.. 몽골반점의 오류주장은 전문적으로 배우지않는 사람이래도 알수있는 내용입니다. 제대로 읽어보시고 올리시는지 궁금하네요. 덧붙여 제생각엔 위만조선같이 훈족이 신라지역으로 유입된것은 맞으나 지배층만 변동이 있은것으로 사료됩니다. 위만이 고조선의 왕위를 얻었지만 그게 고조선과 고조선 백성이 중국역사가 아닌것과 마찬가지죠
역사적인 사례로 본다면, 외부의 유입세력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경우, 기존의 왕권을 물려받는 식으로 나라를 물려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외부의 유입세력에 의해서 지배된다고 하는 것은 나라가 망하고 새로운 나라가 선다는 것을 의미해요. 위만세력이나 흉노족이 대단히 민주적인 사고 방식을 지니지 않고는 그런 시나리오들이 가능하지가 않습니다. 한마디로, 설사 위만조선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다 하더라도, 위만세력이 고조선을 세운 세력과 다른 외부세력이라는 것은 있을수 없는 일입니다. 과거 일제 시대 같이, 역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던 시대에는 그런 말도 안돼는 이론이 나올 수 있겠지만요..
유럽역사에서는 종종 보입니다.
어느나라 역사인가여? 금시 초문입니다...
14세기인가 스페인과 포르투칼 관계에서 나옵니다.스페인 왕인가 왕족이 포르투칼왕이 되어 포르투칼을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그리고 중세시대에도 더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나지않는군요
마루나래님, 스페인왕조와 포르투칼 왕조는 이미 오래전 부터 혈연관계에 있었어요. 유럽의 거의 대부분의 왕조들이 서로 혈연관계에 있습니다. 실제로 그들이 서로 다른 외부세력이라고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에요.. 유럽이 외부세력에 의해 지배된것은 로마에 의한 지배와, 훈족 몽골족을 포함한 동양 문화권 세력에 의한 지배외에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 혈연관계를 간과하였군요
포백터/님얘기의 경우는 하나 간과한게 있습니다. 중앙집권국가와 분권국가 차이입니다.
위만조선이나 초기 신라같이 중앙집권하고 먼 국가는 지배층이 바뀐다고 다른나라로 바뀌지않습니다. 왕이 바뀐다고 해서 왕과 거의 동등한 권력자들의 지배권까지는 미치지못합니다. 중앙집권개념이 확실히 생긴 나라같은 경우에만 님이론이맞겠죠. 그런 나라는 왕위의 변동이 커다란 여파이며 국가개념도 조금은 있으니깐요
왕과 거의 동등한 권력을 지닌 그런 세력들의 동의를 얻거나, 그들을 장악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왕권을 얻을 수 있나요? 전혀 다른 외부세력이 들어와서 자신들의 왕이 되고, 조상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사장이 되겠다는 것을 그냥 용납하는 사회가 어디있습니까? . 더욱이 혈연관계를 중요시 하는 동양사회에서는 더욱 불가능한 일입니다.
포백터/권력자들의 동의를 얻고, 왕이 될수있습니다. 자기조상한테 제사는 지냈는지는 그건 의문입니다.왜냐하면 고조선에서 제기도구는 아직 커다란 변동이 없는걸로 보입니다. 장례문화는 가장 보수적입니다.(이건 역사학자들이 인정하죠) 님이 이해하기 쉽게 얘기하죠. 독일이 분권국가일때 추첨으로 왕을 뽑았죠. 거기 왕이 혈연이 아닌 다른 나라 왕이 된다고 해서 그 100여개나되는 영주들의 동의를 얻는다고해서 독일이 바뀐나요?
포벡터/그당시 고조선이나 신라초기는 님이 생각하는 삼국시대와는 염연히다릅니다.마치 일본열도와같이 전국통일전 천황만 있고, 각자 영주들 따로노는것과ㅏ 같습니다. 국가개념도 없었고요. 다만 외국에 사신을 보낼때만 통일된 국명을 쓴 것이죠. 그런나라에 지배층이 바뀐다고 해서 국가가 사라지는것은 아닙니다. 아마 위만왕이 왕위에올라도 몇년동안 몰랐던 지방세력들도 있었을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말한 위만조선에 관한 건은 이미 학계에서도 기정화된것입니다. 님이 추측으로 아니라고 말한다고 해도 그당시 기록과 특히 발굴 유물로 역사학자들이 이미 결론낸것입니다. 역사를 '사실'이 아닌 '논리와 추측'으로 기정사실화시키지 않았으면합니다.
포벡터/그리고 님이 주장하는 문장을 보세요 [역사적인 사례로 본다면, 외부의 유입세력이 정권을 잡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경우, 기존의 왕권을 물려받는 식으로 나라를 물려 받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문장은 뫼비우스의 띠입니다. 똑같은 문장이 두번반복되네요.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자체가 기존왕권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전 새로운 나라에 대해언급안했습니다. ' 지배층의 변동'을 얘기한 것입니다.
아직도 그차이를 모르고 그게 그것아니냐고 생각한다면 님에게 할말이 없습니다.
퍼온글이 좀 미흡하지만 아무튼 그 미흡한걸 제외하고 관련된것만으로만으로 볼때 현재 남아 있는 아시아 국가중에서는 가장 훈족에 접근했다고 봅니다만...
흉노족이 백프로 우리 민족인지 아닌지는 확인된바 없지만,그걸 인정하면 고구려.백제는 다른민족이 되어 버립니다.신라만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진 국가가 됩니다.실지로 이걸 주장하는 자가 조갑제.지만원 입니다.이들이 주장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고구려.백제를 멸시하고 신라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진 유일한 국가라는 설을 퍼트리는 근거를 만들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구려도 당시 말갈족 거란족 등 다민족 국가였는데욥 그래서 전 말갈족이나 거란족도 고조선의 전통을 이은 우리 민족이라고 생각하는데욥 흉노족이 신라왕족의 조상이든 아니든 그건 조갑제 지만원이가 이상한거임 ..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현재의 우리는 고려시대에서 정의되었다고 전 봅니다,삼국의 주민과 발해의 주민까지 융합하였으니
역사라는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천차만별입니다.문제는 이걸 이용하는 수구 쥐체사상파들의 저의가 음흉스럽습니다.이들은 역사를 자기들의 정치적인 수단과 도구로서 변질시키고 있습니다.정말 경계해야 합니다.
말갈족이나 거란족을 우리역사에 편입한다면 삼국이후 북방에서 건국된 나라는 우리의 역사가 되는 것이지요.더 나가 일본의 역사까지 포함되는 결과가 나오고 이문제를 학문적으로 다룬다면 가능하겠지만 정치와 연결되면 아주 불행한 결과가 나올수 있습니다.우리나라를 침입한 모든 세력에게 면죄부를 줄 소지가 있습니다.
저도 말갈이나 여진 우리역사에 포함되는것이 타당하다고 봅니다.헌데,이걸 오히려 민족해체 작업에 이용하는 딴나라당의 개들이 있다는것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그들 속에 들어가면 역사든.경제든 모두 쓰레기로 변질되어집니다.
정치가들이 자꾸 역사를 자의적으로 해석을 하니 문제입니다.학문적으로 다룬다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학문은 없고 자유로워질 수 있는데 말입니다.
지배게층이 누구냐에 따라서....고구려는 말갈을 안에 두었던것 뿐이고요....신라는 아무리 봐도 뚝 떨어져 있는 느낌
몽골반점은 일본은 물론이요 일본 베트남 캄보디아 같은데서도 많이 발견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특정 집단의 특이성으로 규명될수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