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모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일제말기 총독부는 교인들이 부르는 찬송까지도 간섭했습니다. 자기네 정책에 맞지 않는 찬송은 부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찬송가에서 삭제된 ‘금지곡’들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입니다. 이 찬송을 지은 이가 바로 남궁억 선생입니다. 이 찬송은 남궁억 선생이 보리울에 정착해서 무궁화 동산을 꾸미고 무궁화 보급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하던 1922년 봄에 모곡학교 뒷산인 유리봉에 올라 새벽기도를 드리던 중 시상이 떠올라 지은 것입니다.
신사참배 거부운동
일제 말기 일본은 한국을 완전히 지배하기 위하여 소위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펴 우리 민족 전통과 정신을 말살시키려 하였습니다. 우리말, 우리 글을 쓰지 못하게 하였고 우리 역사를 왜곡하여 우리 민족이 일본에서 나온 것처럼 꾸몄으며, 심지어 ‘창씨개명’(創氏改名)을 실시하여 우리 고유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바꾸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을 ‘천황’의 자식이라고 우기며 천황을 숭배하도록 강요하였으니 매일 천황이 사는 일본을 향해 절하는 ‘동방요배’(東方遙拜), 천황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 암송을 강요했습니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일본 국가종교인 ‘신도’(神道) 의식을 강요하였으니, 천조대신(天照大神)을 비롯한 일본 국조신(國祖神)들의 위패가 있는 ‘신사’(神社)를 곳곳에 세워놓고 거기에 참배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면 천황을 모욕한 것이라 하여 ‘불경죄(不敬罪)로, 혹은 일본 국가체제를 거부했다 하여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죄로 잡아가두었습니다. 이때 많은 사회지도자들이 일제의 회유와 협박에 넘어가 신사참배를 하였고, 당시 교회 지도급 인사들도 대부분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대나 양심있는 소수의 신앙인들이 있어 역사의 맥을 이어가듯 일제말기 그 어두운 시기에도 비록 소수이지만 신앙 양심을 지키며 외롭게 진리의 등불을 지킨 신앙인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신사참배는 십계명의 1조와 2조를 어기는 ’우상숭배‘ 죄에 해당하였습니다. 천황의 명령을 어길지언정 하나님의 계명을 어길 수 없었던 그들은 신사에 절하고 편히 살기보다는 감옥을 택하였습니다. 소수 기독교인들의 신사참배 거부운동이 이렇게 해서 일어난 것입니다.
똥지게를 진 최인규 권사
강원도 삼척군 북평읍(현재 동해시) 천곡(泉谷)교회에 최인규(崔仁圭) 권사가 있었습니다. 평범한 농부로 40세가 넘어 신앙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자기 소유 땅 1천여 평을 교회 자립 기금으로 내놓았으며 목사가 없는 교회 강단을 지키며 실질적인 목회자로 활약하고 있었습니다. 그의 신앙은 단순하면서도 철저하였습니다. 신사참배는 물론 동방요배도 거부하였으며 교인들에게도 신사참배가 죄인 것을 가르쳤습니다. 1938년에 이미 감리교회 총리원에서는 감독 명의로 “신사참배는 국가의식이지 종교 의식이 아닌고로 신사에 참배하는 것이 신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다”는 내용의 공문이 내려왔으나 최 권사는 성경과 신앙 양심에 따라 신사참배를 거부하였습니다. 최인규 권사가 일본 경챨에 체포된 것은 1940년 6월이었습니다. 경찰 당국은 처음에 “너보다 많이 배운 교회 지도자들도 모두 신사에 참배하는데 너 같은 시골교회 권사가 왜 말썽을 피우느냐?”며 구슬렀습니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자 혹독한 고문을 가했습니다. 그래도 안되자 경찰은 최인규 권사를 끌어내 똥지게를 지우고 “나는 신사참배를 거부한 최인규요!”라고 외치며 동네를 돌게 했습니다. 경찰은 채찍으로 치면서 그의 뒤를 따랐습니다. 교회와 마을의 지도자로 추앙받던 그에게 모욕을 주어서라도 신사참배를 하게 만들고 마을 사람들에게도 경고하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러나 최 권사는 오히려 ‘이렇게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체험하게 하신 것에 감사한다’고 하면서 기쁜 낯으로 똥지게를 지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그의 믿음은 누구도 꺾을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는 일본 경찰서장마저 교인들에게, “믿으려면 최인규처럼 믿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결국 최인규 권사는 ‘불경죄’로 재판에 회부되어 2년 선고를 받고 함흥과 대전 형무소에서 복역했습니다. 감옥 안에서도 그의 투쟁은 계속되었습니다. ‘정신병자’로 몰려 독방에 갇히기도 여러 차례, 매도 수없이 맞았습니다. 결국 건강이 급속히 나빠져 빈사상태에 이르러서야 대전 형무소 병감으로 옮겨졌으나 회복되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습니다. 1942년 12월 16일 오후 2시, 그의 나이 예순 둘이었습니다.
최인규 권사 순교기념비: 최인규 권사의 유해는 해방 후 1946년에야 대전 형무소에서 찾아다 삼척읍교회 뜰에 묻고 순교기념비를 건립했다. 그리고 후에 유골은 그가 다녔던 천곡교회로 이장되었고 거기에도 순교기념비를 건립했다. 천곡교회에는 그가 사용했던 강대상이 보관되어 있다.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옥중 순교한 감리교인으로는 최인규 권사 외에 철원읍교회의 강종근 목사, 회양읍교회의 권원호 전도사 등이 있다.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가?
어느 곳에 신경질을 잘내고 다투기를 잘하는 청년이 있었다. 하루는 그의 친구 두 사람이 이 청년의 집을 방문하여 문을 두드리고는, 주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대문 밖에서 서로 농담하며 말하기를, “이 집 주인은 사람은 참 좋은데 성질이 급해서 신경질적인 것이 병이라.”고 했다. 문을 열어주기 우해서 대문가지 나왔다가 친구들의 대화하는 소리를 들은 이 청년은 노발대발하여 뛰어나오더니 “내가 언제 신경질을 잘 내더냐?”고 하고는 닥치는 대로 주먹으로 때리고 발길로 차며 입으로 물어뜯어서 친구에게 상처를 입혔다. 친구라고 찾아갔다가 갑자기 화를 당한 두 청년은 하도 어이가 없어 참고 돌아왔다가 이 친구의 화가 풀린 다음 다시 찾아가 말하기를, “이것이 신경질적인 것이 아니고 뭐냐?”고 말했더니, 그제서야 깨닫고 사과를 하더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자기의 잘못과 부족을 깨닫기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게 하는 말인데, 사실 우리 자신이 부족함을 깨닫기란 힘든 일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기란 더욱 힘든 일인데 문제는 우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을 때에만 은혜를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왜 우리는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는가? 어떤 전도자가 죄에 대하여 설교를 하였더니 불량 청년 하나가 비웃으며 말하기를 “죄짐이라니, 도대체 죄짐이 얼마나 무겁소? 다섯 근만큼이요, 열 근만큼이요?”하고 야유했다. 이때에 전도자가 청년에게 말하기를, “청년! 한 가지 물어 봅시다. 죽은 송정 위에 400근의 무거운 물건을 올려 놓으면 그 시체는 얼마만큼의 무게를 느낄 수 있겠소?”하고 물었더니, 청년이 대답하기를 “송장이 무슨 감각이 있단 말이오?”하고 내뱉자 전도자는 다시 말하기를 “맞습니다. 그와 같이 영혼이 죽은 인생은 죄짐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알지 못하는 것이랍니다.”하고 일러 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자기를 의롭게 생각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바리새 인과 세리의 기도하는 것을 비유로 말슴하신 다음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마23:12)고 하셨다.
잊어서는 안될 죄(罪)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작품인 ‘돌과 두 여인’이란 책을 보면 죄를 많이 지은 사람들일수록 자기의 죄를 깨닫지 못하고 더욱 깊은 죄악의 자리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인데 그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어느 두 여인이 노인인 스승 앞에 가르침을 받기 위해 나왔다. 이때에 노인은 두 연이게 말하기를 현재 마음 속에 무거운 짐이 되고 있는 죄의 문제가 있으면 말하라고 하였더니, 한 여인은 대답하기를 자기가 젊었을 때 남편을 한 번 바꾼 일이 있었는데 그것이 너무도 큰 죄로 생각되어 지금도 마음이 괴로와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또 한 여자는 대답하기를 자기는 지금가지 도덕적으로 살아 왔기 때문에 아무 죄도 벌한 일이 없다고 스스로 만족해 하는 것이었다. 이때에 노인은 처음 여인에게 말했다. “신의 뜻을 따라 지시하는 것이니 너는 지금 당장 밖에 나가 큰 돌 하나를 가져오되 가능한 한 네가 들 수 있는 큰 것으로 가져 오라.”고 했다. 그리고 둘째번 여자에게는 “너는 가능한 한 작은 돌들을 가져오되 네가 들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오라.”고 하고는 자루 하나를 주었다. 두 여인은 노인이 시키는 대로 즉시 밖으로 나가서는 큰 돌과 작은 돌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때에 노인은 다시 말하기를 이번에는 그 돌들을 있던 자리에 다시 갖다 놓고 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큰 돌을 갖고 온 여인은 있던 자리를 알고 있었기에 그대로 그 돌을 제 자리에 갔다 놓을 수 있었으나 작은 돌을 한 자루 담아온 여인은 그대로 그 돌들을 제 자리에 갔다 놓을 수가 없어 그대로 들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노인은 말했다. “죄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란다. 큰 죄는 언제나 기억이 되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질 수가 있지만 작은 죄는 속히 잊어 버리기에 자기는 죄가 없는 줄 알고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기 때문에 더 큰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이라.”고 교훈하는 내용이다.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31:9)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사55:7)
죄수들의 변명(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라)
이탈리아 나폴리의 부왕으로 유명했던 오수나 총독이 한때 바르세르나의 죄수선을 순시했을 때의 일이었다. 총독은 죄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어떤 경위로 이처럼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느냐고 물었는데, 죄수들은 모두 기회를 톻쳐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지 변명하며 말하기를, “저는 아무 죄도 범한 일이 없는데, 상대방의 무고로 이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재판관이 한쪽에서 뇌물을 받고는 부당한 판결을 내림으로 이런 운명이 되고 말았다.”는 등 눈물을 흘리며 자기들의 무죄를 호소했다. 부왕은 이들의 말을 하나하나 다 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면 이 죄수선에 갇혀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아무런 죄도 없다는 말이지,”하고 재차 물었다. 그러자 모두는 “네!, 네!,그렇구 말구요!”하고 이구동성으로 대답을 하는데, 단 한 사람만은 대답을 하지 못하고 울고만 있었다. 부왕은 이상하여 “너는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다. 이때에 그는 대답하기를, “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정말 제가 범한 죄 때문에 이런 곳에서 살지 않으면 안 될 몸이랍니다. 실은, 작년 봄 뜻하지 않은 재난을 당하여 저희 식구들은 하루에 세 끼니의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할 형편이 되었습니다. 가장인 저는 이럭저럭 참을 수가 있었지만 매일 굶주려 우는 처자식들의 얼굴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나쁜 일인줄 알면서도 마음을 악하게 먹고 남의 물건을 훔쳐 그것으로 한때의 주림은 면할 수가 있었으나 역시 하나님의 노여움은 피할 길이 없어 탄로가 남으로 이런 꼴이 되었답니다. 조금만 더 마음을 귿게 가졌더라도 도둑질은 하지 않았을 것인데 이렇게 후회가 되어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총독은 자기가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죄수의 잔등을 후려 갈기며 하는 말이, “이 밉살스러운 놈 같으니, 지금 내가 듣자하니 이 배를 타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죄한 사람들인데 너 한 놈만이 죄인이라니 하늘을 두려워하지 않는 고얀놈! 이런 자를 무죄한 사람들과 함께 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송한 일이니 당장 이 자리에서 나가라.”고 소리를 치고는 밖으로 내보냈다. 자기 죄를 깨닫고 반성하는 죄인을 남 몰래 해방시켰던 것이다. 이것을 본 죄수들은 그제서야 자책하며 눈물을 흘렸다는 것이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라는 속담처럼, 진짜 죄인이 변명을 하는 것이다. 죄를 자백하고 인정하는 사람은 그의 정직함과 솔직함을 도리어 인정받게 되는 법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하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지라.”(대하7:14)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시34:18)
가장 전도하기 어려운 대상은 누구일까요? 세리와 창기는 차라리 전도하기 쉽습니다. 자기가 죄인인 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는 안 믿는데 구제도 잘하고 장학 사업도 열심이고 물질 욕심도 없고 도덕적으로 깨끗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제일 전도하기 힘든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 믿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자기가 잘났다고 생각해서 전도하면 오히려 전도자를 훈계합니다. “너희들이나 잘해, 나만큼만 해 봐, 예수 믿는다는 것들이 나만큼도 못하고서 나보고 예수 믿으라고 해?” 이러면 예수 믿기가 참 어렵습니다. 정직한 사람, 자기가 의롭고 깨끗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사람은 예수 믿기 어렵습니다. 믿음 없이 행위 쪽으로 완전하면 믿음으로 들어오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믿음이 우선입니다.
욕심의 결과
미국의 소설가 드라이저의 작품 “아메리카의 비극”이란 책을 보면 분수에 맞지 않는 생활 태도와 욕심의 결과가 어떤 것인가를 알게 하는 내용으롤 되어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클라이드 그리피스란 청년은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지 못하고 초라한 옷차림을 하고 있는데 비해 다른 사람들의 호화로운 생활을 볼 때마다 어떻게 하든지 돈을 벌어야 하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래서 그는 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바로 약방의 사환으로 취직하였다가 조금 커서는 캔사스 시에서 가장 큰 호텔의 보이가 되었다. 호텔 보이로 있는 동안 주급 이외에도 손님들이 던져주는 팁의 수입이 제법 많았으므로 그 수입은 자기 어머니에게 말하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에 사용을 했다. 하루는 친구들과 함께 놀기 좋아하는 여자들과 어울려 남의 차를 훔쳐타고는 야외로 놀러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어린아이를 치는 교통사고를 내고 차는 크게 부서졌다. 그러자 클라이드는 경찰에 체포될 것이 두려워 그 길로 도망쳐 공장을 경영하고 있는 숙부의 집으로 찾아가 공장 직공으로 숨어서 일하게 되엇다. 공장 주인의 조카라는 체면을 지키며 숙부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으려고 열심히 일하며 의복도 단정하게 입으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값싼 월급쟁이에 불과했다. 그러던 중 숙부의 집과 가까이 지내는 상류계급의 한 처녀를 사귀게 되었고 그 처녀와 결혼이 될 듯한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클라이드는 이미 결혼을 약속하고임신까지 한 공장 여직공을 애인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돈과 명예와 부귀에 욕심이 생긴 클라이드는 부잣집을 처가로 삼기 위하여 임신한 여직공을 연못에 밀어 넣어 죽게 하고는 부잣집 딸에게 찾아갔으나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행복이 아니라 살인 사건의 발각과 동시에 사형대인 전기의자였다는 내용이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4-15)
네 돈은 필요없다
베토벤에게는 크리스토프라는 동생이 있었다. 그는 투기에 열중하여 대단한 부자가 되었다. 그는 모은 돈으로 땅을 사재기하여 자칭 ‘토지 소유자’라했다. 언젠가 베토벤이 돈애 쪼들려 견디다못해 동생에게 통사정했다. 얼마 후에 동생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장이 왔다. “지금은 매우 살기 어려운 세상이며 이때를 이겨 나가려면 누구나 있는 힘을 다해 일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형님이 선택한 직업은 딱하게도 죽기에는 부족하고 살기에는 더욱 모자라는 수입밖에 안됩니다. 따라서 형님이 지금과 같은 딱한 처지에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형님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저는 형님을 도와 드릴 수가 없습니다. 당신의 동생 토지 소유자 크리스토퍼 올림.” 이런 답장을 받자 분을 못참은 베토벤은 단숨에 다음과 같이 한 줄짜리 편지를 써 보냈다. “네 돈은 필요없다. 네 설교는 더욱 필요없다. 두뇌의 소유자 루드비히.” 재물은 이처럼 인간 관계를 갈라놓기 일쑤다. 정함이 없는 재물 앞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은 이와 같이 부모형제도 몰라보게 된다. 그리곤 수단방법이 어떠하든 치부에만 생의 목적이 있게 된다.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 다니는 안개니라.”(잠21:6)
분수에 맞게 살아야지
이조 선조대왕 때에 유현이었던 이지함이 포천 현감으로 부임했을 때의 일이었다. 옷은 삼베옷에다가 신은 짚신을 신고 갓은 다 헤어진 것을 쓰고 부임하였는데 그 고을 관리들은 새로 맞이하는 현감의 부임인지라 있는 정서을 다하여 진미를 갖추고는 저녁 진지상을 올렸는데,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수저를 들어 보지도 않고는 상을 물렀다. 아전들은 아마도 상이 시원치 않아 그런가보다 하고는 부랴부랴 더 좋은 음식을 마련하고는 두번째 상을 올렸다. 그런데 이번에도 거들떠보지도 않고 상을 물리는 것이었다. 당황한 아전들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고 안절부절하다가 뜰 아래 엎드려 크게 절을 하고는 말하기를, “황송하오나 저희 고을은 서울과는 달라서 이 이상은 더 상을 차릴 수가 없으니 그저 죽여 주십시오!”하고 빌었다. 이때에야 이지함은 온화한 얼굴에 웃음을 지으며 말하기를, “너희가 나의 생각을 몰라서 그러는군, 나는 그런 좋은 음식을 먹어 본 일이 없기 때문에 그저 두려운 생각이 들어 그런 것 뿐인데..., 우리가 넉넉하게 살지 못하는 이유는 분수에 맞지 않게 사치하기 때문이오. 사치란, 언제나 가정과 나라를 망하게 하는 것이니 우리가 부해지기까지는 그런 사치스런 음식을 먹지 맙시다.”하고는 보리밥과 시래기국을 가져오게 하여 부임 첫 달 식사를 마쳤는데, 그가 포천에 부임한 지 2,3년 만에 포천은 눈여겨 볼 만큼 달라지게 되었고, 백성과 현감사이는 부모와 자녀사이처럼 되어 이지함이 아산 현감으로 떠날 때에는 온 고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서서 울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연수약언을 보면 “살림하는 도리는 오직 절약하고 검소해야만 오래 지탱할 수 있나니, 난세에 있어서는 더군다나 사치를 금해야 하는 것이다.”하였고, 힐티의 행복론이란 책을 보면 “추위룰 막기 위해서는 한 벌의 외투면 족하나, 만약 이 경계선을 넘어 의복을 색깔이나 모양에 관심을 쏟으면 색다른 열 벌의 외투도 부족하게 될 것이다.”했다. “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사치를 좋아하는 자에게 분쟁과 재앙과 까닭없는 창상이 있는 것이라.”(잠23:29)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리라.”(잠28:19)
청빈한 이상재
김을한 씨의 저서인 월남 이상재 선생의 일화집을 보면 8.15해방 직후인 1949년에 이상재 선생 추도회가 열렸을 때에 김규식 박사는 이상재 선생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월남 이상재 선생은 전 생애를 청빈한 생활로 일관하신 분으로 그의 만년은 몹시 곤궁했었다. 그런데 그가 기독청년회 총무로 재직시 하루는 평소부터 선생님을 존경하던 분이 선생집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는 추운 겨울이라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선생님의 방은 냉냉하기 짝이 없었다. 너무 추워 어쩔 줄을 몰라해 하던 손님은 약간의 돈을 내놓으며 “이것으로 우선 땔나무나 사십시오.”하고 드렸더니 선생은 그저 “고마우이”하고는 돈을 받아 호주머니에 넣었다. 그런데 조금 있다가 한 학생이 찾아와서는 선생님에게 학자금이 없다고 사정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선생은 아무 말도 없이 조금 전에 받았던 돈을 선뜻 학생에게 내어 주면서 말하기를 “공부나 잘해라.”하는 것이었다. 학생이 나간 후 처음부터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내객은, “선생님! 그 둔을 학생에게 다 주고 나면 나무 살 돈이 없지 않습니까?”하며 민망한 듯 말하자 선생은 곧 대답하기를 “나의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또 주겠지 뭐!”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의 궁한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라고는 그 내객 밖에 없었으므로 내객도 웃으며 다시 나무 살 돈을 내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월남 이상재 선생이 물질에 담백하였던 것과 어려움 중에서도 항상 비국하지 않았던 것을 알게 하는 말이다.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마 19:24)
어리석은 부자
어느 소년이 공자님께 나와서 하늘의 별이 모두 몇 개나 되냐고 물었다. 이때에 공자님의 말씀이 “하늘의 별들은 너무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취미가 없어서 모른다”고 답변하였더니, 짖궂은 소년은 다시 묻기를, “그럼 가까이 있는 눈썹은 몇 개나 됩니까?”하고 물었다. 공자님은 다시 대답하기를, “눈썹은 가까이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것은 별로 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모른다.”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사실 별의 숫자나 눈썹의 숫자는 알아서 손해될 것도 없고 모른다고 문제될 것도 없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것이지만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반드시 알아야 할 것 몇 가지가 있다. 성경을 보면 많은 재산을 가지고 호의호식하면서도 알아야 할 것은 알지 못하고 살아간 어리석은 농부의 비유가 나타나 있다. 그는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부유하게 살았지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믿지 못했다. 농사일을 하여 부유하게 되기까지는 농사일을 거둘어 준 이웃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웃을 알아보지 못했다. 하나님께서 재물을 주실 때에는 그 재물로 값진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인데 이 농부는 재물을 창고에 쌓아 두기만 하는, 생의 목적을 알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언제 죽음이 닥치고 죽음 이후에 갈 곳이 어딘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던 어리석은 부자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도 세상을 살아가면서 아무리 많은 지식과 재산을 가지고 정치와 경제를 논하며 문화와 예술을 논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이웃이 있음을 알지 못하고 생의 목적과 죽음 이후에 돌아갈 곳이 어딘지를 모르고 산다면 이것이 비극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눅12:20)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지 이해하라.”(엡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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