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 반말체로 작성되어 거슬릴 수 있는점 미리 먼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밑의 인터뷰 내용을 위해 미리 부연설명을 하자면
UFC는 선수가 국적란 외에 방송에서 표기될 깃발을 자신이 스스로 정할수가 있음.
(그래서 과거에 추키야마도 공식 국적은 일본이지만 한국의 태극기로 표시해서 나온적이 있었던걸로 알고, 라파엘 피지에프의 경우 UFC 데뷔전 국기 표시를 뜬금없게도 자신의 혈통/국적이라 볼 수 있는 키르기스스탄이나 아제르바이잔이 아닌 카자흐스탄으로 해서 나왔던걸로 기억한다.)
꼭 그곳의 국적을 취득해야하는 것도 아니고, 시민권을 가질 필요도 없는걸로 안다.
(물론 어느정도 주최측을 설득할 근거는 필요하겠지만...)
Q: 당신은 왜 이란이나 미국이 아니라 고대 아시리아 깃발을 들고 나오는가?
베네일 다리우쉬: 나는 이란의 골타페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우리가 나중에 이사한 우미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였는데,
이 마을의 정확한 위치를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좀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아제르바이잔 근처(이란 북부. 참고로 카말 샬로루스도 이란 북부에서 태어남)에 있다고 말하는게 낫겠다.
이란에서 9~10살까지 살다가 미국으로 이주한 뒤 여름 방학마다 그곳에 왔다.
이것은 내가 군대에 징집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그곳으로 비행을 중단한 18세 무렵까지 계속되었다.
현재 세계에는 약 300만명의 아시리아인이 있다. 그들 대부분은 이라크에서 살고 있다.
미국 10만, 시리아 10만, 스웨덴 7만, 이란 3만, 호주 2만, 터키 1만, 러시아 1만 이런식으로...
20세기 초, 터키 당국은 아시리아인의 대량 학살을 일으켰고 그 결과 사람들의 수가 3~4배정도 감소 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실을 미국에 오고 나서야 배웠다.
미국에서 이 학살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기 시작했고,
우르미아와 이란에는 일반적으로 아시리아인이 꽤 많다.
그리고 우르미아에는 개인적인 이유로 터키에 살기를 원하지 않고 이란에 살았던 많은 터키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독특한 터키 방언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아시리아인들과 터키인들은 충분히 잘 지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어머니는 터키어를 잘 하셨다. 그렇다, 사실 나도 어릴때는 이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완전히 잊어버렸다. 우리는 터키인 이웃이 있었는데, 미국으로 왔을때 이 사실을 알게 되고나서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영 다리우쉬)
Q: 왜 미국으로 이주를 했는가?
다리우쉬: 그거 재미있는 이야기네. 우리 부모님께선 자녀, 즉 저와 누이에게 좋은 교육과 좋은 기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셨다.
엄마는 내가 의사가 되기를 정말로 원하셨다. 이것이 우리가 이곳으로 이사하게 된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아버지가 이란에서 계속 끊임없이 문제를 겪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에서 사는것이 거기서 사는것보다 더 좋고 순탄했다.
내 아버지는 이란에서 끊임없이 힘든 상황에 직면했다.
내가 미국으로 왔을때 나의 주변 환경에는 아시리아 인이 없었기 때문에 미국 환경에 적응하고
언어를 배우는것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영어로만 의사소통을 했어야 했거든...
결국 나는 약 6개월만에 대강의 언어를 배웠고, 거기엔 다른 방법이 없었고 그저 난 빨리 적응을 했어야만 했다.
하지만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은 여전히 힘들었지. 나는 여름마다 미국으로 날아갔고 학기는 가을에 시작되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과 역사였지만 그외에는 어려웠다. 특히 작문은 정말 어려웠다...
18살이 될때까지 나는 운동을 하지 않았다.
부모님 말대로 그저 열심히 공부했고 그게 다였다. 가끔 축구를 하는것빼고...
그러나 나는 학교의 마지막 해에 레슬링에 매료되었다.
한달반이나 두달동안 운동하면서 학교를 졸업하고 항상 이렇게 좋은 몸매를 유지하고 건강해지는것이 멋지다고 생각하고
곧 주짓수를 발견했다. 그리고 나는 즉시 이 스포츠에 푹 빠졌다.
다음에 일어난것은 내 생활의 모든것이 이미 주짓수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주짓수는 내겐 인생의 전환점이였다. 나는 곧 주짓수에 맞게 일과 공부 일정을 조정했고,
이 스포츠에 너무 몰입했다. 심지어 밤에 놀러나가는 것도 그만뒀지.
왜냐하면 운동을 열심히 하면 더 이상 파티에서 놀 힘이 남아있지 않았거든.
파티 대신 밤에 운동을 나갔다.
(그레이시 바하 시절 캘리포니아 주짓수 유망주로 손꼽히던 다리우쉬. 같이 운동하던 선수, 스승들이 호물로 바할, 에드윈 나즈미, 펠리페 모니카 이런 주짓수 세계챔피언급 선수들이다)
Q: 주짓수를 하다 어쩌다 MMA계로 오게 되었는지?
다리우쉬: 18살때부터 주짓수 연습을 시작했고, 그 후 2년뒤 처음으로 MMA룰로 싸우게 되었다.
사실 코치가 내게 전화를 걸어 '야 베닐, MMA에서 뛰고 싶냐?'라고 하길래
나는 '물론이죠. 한번만 해볼께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코치는 내 경기가 한달안에 열릴것이며, 그것은 프로 파이팅이 될 것이기 때문에
모든 종류의 서류에 서명해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꽤나 당황스러웠는데
나는 당시 내가 프로 파이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거든.
그냥 '취미삼아 컴페티션에 나가서 경쟁할 수 있다.' vs '프로 파이터로써 싸운다' 이건 상당한 차이가 있는거 아니겠어?
그전에 나는 킥이 포함된 스포츠를 한적이 없었고, 그저 그래플링만 좀 했을뿐이였다.
나는 결국 아마추어 파이팅을 단 한번도 하지 않고, 즉시 프로가 되었는데
그것때문에 코치님의 제안은 내게 충격이였다.
나는 '헠... 내가 뭘 할 수 있지?'라는 생각뿐이였다.
당시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완전히 인식하질 못 했던거지.
나는 아버지에게는 곧 프로 경기에 대해 즉시 이야기했지만,
어머니는 싸움이 있던 파이트 위크나 되어서야 그 사실을 알게되었다.
이것도 주최측이 모든 티켓을 완매하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에
출전 선수들의 가족, 친구 및 친척들에게 경기표를 돌리기 시작하면서 일어났던 일이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 어머니는 내가 프로 경기에서 싸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Q: 첫 경기는 어땠는가?
다리우쉬: 그전에 나는 얼굴을 서로 때리는 경기를 해본적이 없었는데 그냥 덜컥 올라가서 싸웠을뿐이였다.
나는 상대를 붙잡고 그를 넘어뜨리려고 했지.
사실 그전까지는 실감나지도 않다가 입장이 다 끝나서야 갑자기 내 자신이 이 망할 케이지위에 어느새 올라와 있다는것을 발견했다.
친척과 친구들이 당신의 이름을 외칠때, 모든 조명이 당신을 향할때, 눈앞에는 당신을 죽이고 싶어하는 상대가 있는거다.
그렇게 내 커리어 첫 경기가 프로 경기로 시작되었고, 어떻게 흘러갔을지도 모를 이 경기는 내가 가진 싸움 중 최악의 경기 경험이였다.
거의 질뻔한 3라운드 경기였는데, 겨우 스플릿으로 이기는데 성공했다.
나는 어딘가로 도망가는것처럼 케이지를 빨리 떠나고 싶었지.
그 경기에 대한 비디오가 있고 지금도 난 주기적으로 이 경기를 보곤 한다. 다른 경기들은 Youtube에 있지만 이 경기만은 게시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 경기는 내겐 기쁘지만 끔찍한 일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MMA에서 계속 싸우기로 결정했다.
왜냐고? 첫번째 경기때 내 자신의 모습이 너무 끔찍했었거든.
그렇게 허접한 모습으로 이 바닥을 떠날 순 없었다.
최소한 돌아가서 정상적인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줬어야했다.
아마 첫 경기에서 졌어도 다시 돌아왔을 것이다.
그게 내 본성이였던 것 같다. 나는 지는것도 싫어하고 끔찍한 경기력을 선보이는것도 싫다.
Q: 그때 그럼 풀타임 파이터가 아니였던건가?
다리우쉬: 그 당시 나는 배스킨 라빈스31에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팔았고, 아이스크림을 먹을 기회도 많았다.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늦게까지 일해서 눈밑에 지방과 다크서클까지 낄 지경이였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비몽사몽하는걸 보고 '깨어있어?'라고 물어본적이 있었고
'아 잠시 졸았는데, 지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네'라고 말한적도 있었다.
그곳을 떠난 후에는 체중이 더 많이 늘었지.
나는 대학에 있었지만 결국 중퇴를 했다. 하지만 BJJ를 그만두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MMA는 말할것도 없고 BJJ를 하는 것조차 반대했다.
그때 나는 우리 가족내에서 일종의 검은 멍에였다.
(주: 대가족인 다리우쉬의 형제, 남매중에선 치과 의사, 법조인도 있는걸로 앎여)
부모님은 항상 나에게 불만스러웠다.
BJJ 매거진에서 나를 캘리포니아 BJJ씬 미래의 유망주라고 칭하는 순간에도 부모님은 내가 하는 운동을 인정하지 않으셨다.
물론 나는 정말 기분이 좋았었지만 말이다...
이 스포츠에는 돈이 없었고, 현실은 냉혹했다.
부모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아무리해도, 그 운동에 얼마나 걸어도 아무것도 벌지 못 하는거 아니겠니?'
그들은 나에게 학업을 시작하고 교육을 받으라고 조언을 했다. 그래야 나중에 정상적인 페이를 받는 유급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그러나 나는 이것이 내가 원하는것이 아니기 때문에 결국 MMA 파이터가 되어버렸다.
Q: UFC에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
다리우쉬: 2013년말에 UFC에 오게 되었지. 엄마는 이란과 미국간의 정치적 문제, 경제 제재때문에
우리 가족이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란에 대한 제재로 인해 우리는 약간의 수입을 잃었다.
그때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서있었고 두 가지 옵션이 있었다.
첫번째는 9시간 교대로 일정하게 일하는 본격적이고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는 것.
두번째는 그저 싸우고 훈련하는 것이였다.
하지만 나는 나의 매니저 알리 압델 아지즈 덕분에 UFC와 사인할 수 있었다.
사실 그는 나를 UFC에 여러번 데려가려고 노력했지만 MMA 경험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UFC는 어떤식으로든 나를 데려가지 않았다.
결국 UFC와 계약하기전에 나는 6-0의 전적을 가지고 있었고, 내가 다시 그 문을 두드렸을때
그들은 마침내 나를 위해 문을 열었다. 그들은 대체 파이터로 오퍼를 줬지.
그리고 나는 첫번째 UFC 경기에서 이겼다(vs 찰리 브레네만에게 쵸크로)
두번째 경기에선 TKO로 람지 니젬에게 졌다. 그 후 5연승을 했다. 나쁜 전적은 아니였지.
(주: 현재 베네일의 총전적은 14승 4패 1무)
(UFC 데뷔시절의 베네일)
Q: 들고나오는 국기와 대표하는 국가에 대해...
다리우쉬: 내가 이란 국기를 들고 나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무슬림 국가기 때문이다. 내가 개인적으로 무슬림 형제들에 대한 경멸과 증오는 없지만
우리는 서로 다른 믿음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 다른 인식을 가지고 있다.
둘째, 아시리아 국기 아래서 싸울때 나는 부모님과 전세계 수천명의 아시리아 사람들이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가장 최근의 경기 후에 나는 약 1만개의 응원 메세지를 받았는데
그 중 8000개가 세계 각지의 아시리아인들로부터 온 것이였다.
그들의 응원과 지지는 뜨겁다.
물론 아마도 내가 이란을 대표해서 싸웠더라면 이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응원과 메세지, 이득을 받았을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아시리아 사람이다.
그렇다, 나는 이란에서 태어났지만 아시리아인이고 다른 나라를 대표한다.
내가 이란 국기를 들고 나온다는 것은 나를 속이는 행위이다.
내가 100만개의 응원 메세지를 받는다는 사실의 의미, 하지만 내가 실제론 그들을 대표하지 않는것이라면?
결국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런 숫자나 크기가 아니라 진실이다.
Q: 당신의 타고난 성격은 어떤가?
다리우쉬: 어렸을때 이란에서 몇번 맞긴했지만, 지금은 꽤 잘 싸우고 있는 것 같다ㅋㅋ
모든 민족의 전투는 피속에 녹아있지만, 우리 국민들이 역사적으로 겪어야했던 것을 고려할때,
더 많은 전투가 우리 민족의 피에 흐르고 있는 것 같다.
7년동안 나는 아시리아의 사자라고 불렸지만, 일단 나를 개인적으로 알게 되면
내가 매우 침착하고 조용하게 행동하기 때문에 내가 아시리안 캣에 더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뭐라고 부르든 그들 맘이지. 그들이 나를 사자라고 불러도 상관없다.
미국에선 날 일반적으로 베니라고 부른다.
Q: MMA 이후에 그리고 있는 다른 커리어 패스가 있는가?
다리우쉬: 내가 아주 어렸을 무렵, 이란에서 아버지는 나에게 이런 가르침을 주셨다
'일단 한번 싸우면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는 것이 너의 임무다 베네일아...
더 크고 나이 많은 상대와 싸워서 힘으로 안될 것 같으면 돌이나 막대기라도 들고가라.
언제나 중요한 것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이다.'라고...
하지만 이제와서 나는 이것을 끔찍한 충고라고 생각한다.
내 아이들에겐 절대 이런 마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다.
3~4세때 당시 내게는 이것이 훌륭한 조언처럼 보였지만, 주님이 이 생각을 저에게서 제거하셨다.
그리고 나는 야만스러운 짐승이 되는 대신 목자가 되어야한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렇게 행동하는것보다 그저 이웃, 도시, 사회, 국가를 섬기는것이 전반적으로 낫다.
MMA 커리어를 마친 후 나는 선교사가 되어 평생 내 사명에 따라 봉사를 하고 살고 싶다.
사실 휴가마다 아내와 함께 틈틈히 자주가는 아이티에서 이 활동을 시작하고 싶다.
나는 그곳으로 자주 가야한다는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봉사활동과 선교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
그곳의 사람들은 이런 부두교의 국가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무언가를 줘,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널 저주할거야.'
그것 대신 나는 그들이 '내 이웃을 어떻게 축복 할 수 있는가? 그들의 삶을 어떻게 더 좋게 만들수 있을까?'로 바꾸고 싶다.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그곳에서 부른 것 같고, 가시는길에 나를 부른 것 같다.
물론 고통이 많은 내 고향, 중동 역시 잊지 말아야한다.
내 아내는 아시아인이고 내 딸 역시 반은 아시아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로 미션 활동을 가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나는 그것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그것은 일어날 것이다.
전 세계를 여행하며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gbuBldFXCAc
베네일 최근에 아나토미 오브 파이트 찍은거 보면 참...
얘는 사람이 참 착하고 선한 것 같다. 목소리도 그렇고 그냥 평소에 대화 나누고 있으면 파이터라고 알아차리기도 힘들듯
(연승끝에 자기 어필하라고 인터뷰어가 기회줬더니, 그전에 UFC에 약간 함량 미달로 들어와서 퇴출되었던 놀란 틱만 밀어주는 것도 그렇고, 자기보다 자기 팀원들 먼저 챙기고 UFC에서 상 받고 눈물 흘리는 것도 그렇고 사람자체가 선한 듯)
참고글
https://gall.dcinside.com/m/mma/190599
첫댓글 고퀄의 인터뷰네요ㄷㄷ 잘보고갑니다
누가이길까여 빅잼 ㅎ
생각이 깊은 선수네요
잘봤습니다! 아는애가 아시리아 사람인데 나라는 없고 민족만 있다고 하길래 얘네는 뭐여 라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자부심이 강한 민족이던데 다리우쉬도 그런가 봅니다.
사람도 착하고 상남자에 개썅마이웨이라 응원하는 선수네요.
쿠르드족도 그렇고 세계에 생각보다 나라없이 떠돌면서도 그들만의 자긍심과 똘똘 뭉치는 힘이 강한 민족들이 많더군요... 핍박받고 열악한 생활 환경에서 길러진 헝그리 정신과 특유의 투쟁본능 덕에 좋은 훈련환경만 성립한다면 좋은 격투기 선수로 발전하는 경우도 많구요,
캬 좋은 글 번역 감사합니다!!
지금껏 브라질출신 미국인인줄 알았는데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상남자 타격뽕 다리우쉬 챔프 꼭되길
타격뽕(?)이 있고 공격적인 사우스포 타격을 주술사 코데이로 아재가 주입하긴했는데, 다리우쉬는 노기 그래플링, 탑포지션 압박이 정말 진국이죠... 좀 큰 선수라 감량고가 있고, 레슬링 할때 체력이 좀 빨리 떨어지는게 흠이긴한데 그 빡센 UFC 라이트급에서 오는 경기 가리지 않고 안정적인 성적 내준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사람이네요.
당연히 무슬림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네요. 좋은 인터뷰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잘 봤습니다.
Yorba Linda 에 살죠.
이번에도 개이치때문에 퍼거슨이랑 말싸움하는거 보면 참 착하기 그지 없음
그때 4월에 개이치가 한달간 빡세고 충실한 캠프 가지는데 도움 줬었죠...(알리 주선으로 개이치 캠프에만 다리우쉬, 베토리, 나즈미, 매그니, 도버, 우스만 이런 선수들과 같이 훈련했는데 정말 좋은 파트너들이였죠) 토니가 그때의 앙금(?)이 남았나봅니다. 퍼거슨이 좀 이상한 말도 하고 뜬금없는 말도 하더군요... 그냥 다리우쉬는 별 생각이 없었을텐데 말이에요,
우리나라 선교단체는 미쿡선교가 최대 목표인데